이 작품은 상당히 지루한 감이 있는 영화였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 그야말로 바보라는 의미로 사용된 '백치들'이라는 영화. 나체의 젊은이들이 어디론가 질주하는 장면이 그려진 비디오 자켓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물론 배우들의 나체가 많이 보이지만,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시커먼 부분으로 중요 부분은 가리고 상영된다. 하지만 전혀 야하지 않은, 생각할 거리를 엄청나게 던져주는 영화이다.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친 저능아들을 따라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카렌. 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며, 의사와 미술가 등 실제 사회 속에서는 불편함이 전혀 없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다. 마치 자신들은 세상의 속물들과는 다르다는 듯이...
이들은 단지 자신 속에 감춰진 바보를 찾아내기 위해서 일부러 남들 앞에서는 바보노릇을 하면서, 자기들만의 집단을 이루며 산다. 집이 팔릴 때까지 친척의 집에서 살기로 하고, 집단 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남들의 반응을 즐기기 위하여 바보노릇을 하는 것이 취미이다. 누가 완벽하게 바보노릇을 하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바보 역할에 대해 타인의 반응을 평가하고 즐기는 것이 유일한 낙이고, 그들이 공동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뭔가 사연이 있는듯이 보이는 카렌은 그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그들의 바보노릇에서 인간적인 순수한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밖에서는 그들과 함께 바보노릇을 하면서 어울릴 수 없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바보가 되기도 한다. 이제 카렌 역시 아웃사이더가 아닌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그러나 어느날 조세핀의 아버지가 찾아오고, 그녀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기 싫어하는 그녀와 보내지 않으려는 일행, 그리고 딸을 데려가야만 하는 아버지의 갈등.
그녀를 보내고 일행은 그녀의 병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책하게 된다. 그리고 일행이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공동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하게 된다. 물론 그녀가 중병에 걸렸다는 것은 상황에 의해서 짐작만 할뿐이다. 과연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 무슨 의미였는지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바보노릇은 자신들을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만 행해졌다는 당연한 사실를 발견하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똑같이 바보노릇을 할 수 있는가하고 내기를 한다. 빈 병을 돌려 지명된 사람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바보노릇을 하기로 하지만, 지명된 사람은 하나 둘 자신없이 물러난다. 자신의 일상에 매몰된체....
이 시점에서 그들이 벌이는 일탈행위의 의미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누구든지 용감해질 수 있지만,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러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동안 이룩했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의식이 결코 일탈을 즐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드러난다. 결국 뿔뿔히 흩어지려는 일행들.
그들 앞에서 뒤늦게 새로이 합류했던 카렌은 자신의 가족들 앞에서 바보노릇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을 통해 얻었던 마음의 평안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녀의 집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앞에 절망적이었던 과거를 알아내고, 그녀가 왜 그리 쉽게 그들과 합류하게 되었던가를 확인시켜 준다. 일행과 달리 그녀는 가족들 앞에서 완벽하게 바보노릇을 소화해 낸다. 그녀를 경멸하듯이 쳐다보는 가족들. 아내에게 실망한 남편은 드디어 그녀를 때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을 떠나는 카렌. 이미 카렌은 아들의 죽음과 함께 그들과 마음으로부터 결별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과연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가? 일행에게 있어서 바보노릇은 단지 하나의 유희였을 따름이지만, 카렌에게는 절망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계기였던 것이다.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바라보았던 그녀와 달리, 일행은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려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깨기로 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순수해질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카렌과 달리, 철저히 위선적인 삶으로 일관했던 일행을 대비시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 역시 사람의 시선을 따라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손으로 들고 찍는 그의 영화적 특징을 여기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지루하지만 그래도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주는 영화이다. 포스터나 자켓만 보면 야한 영화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리 야하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할 것.(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