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1
수 신: 경북중고42회동창회원, 동영부인
제 목: 2019.8월 동창회보
8월을 지혜롭게 넘겨야
연일 40도를 오르내린 지난해 여름 대구의 8월은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러나 1942년 이래 전국최고의 더위를 자랑했던 대프리카의 40도가 강원화천, 경북경산, 경북영천의 41도에 왕좌를 빼앗겼을 때는 참으로 시원섭섭함을 금치 못했지만 금년8월은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먼저 간 첫사랑이 아무리 보고 싶더라도 100세 시대에 90은 넘기고 가야되지 않겠습니까, 최근에도 세 친구를 먼저 보내긴 했습니다만 인간의 수명이 날로 길어지고 있으니 이 불량황혼을 건강하게 즐기며 천천히 가도록 합시다.
물론 장수가 꼭 축복일수만은 없고 상황에 따라 리스크로 와 닿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뜻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돈 없이 장수하는 것, 아프면서 장수하는 것, 소일거리 없이 장수하는 것은 삶 그자체가 고역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무릇 동창회란 가진 자가, 건강한 자가, 덕이 있는 자가 당연히 이들을 끌어안고 가야지 이를 외면해버린다면 동창회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어디 있으며 우리들의 남은 인생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도 우정도 지키고 관리하는 유지보수가 필요하며 프랑스의 대표지성인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성공적인 삶이란 매일매일 고쳐야 하는 대저택과 같다’고 했습니다만 ‘나만 옳다’는 아집은 나이 들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400년 전의 풍운아 허균(許筠)도 而同則皆爲君子 異則皆爲小人(자기와 뜻을 같이하면 군자로 여기고 달리하면 소인배로 여긴다)이라 개탄하며 광해군이 ‘역모를 하지 않았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살려주겠다’고 눈물로 애원했으나 기어이 ‘전하 신은 역모를 했나이다’ 하고 종로에서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자기주장을 목숨과 바꾸는 것은 혁명가에게나 있을법한 일이지 동창회에서 사생결단을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으며 얼굴 붉혀가며 삿대질 해봐야 내게 돌아올게 뭐가 있겠습니까, 매사 져주고 양보하며 더불어 살아갑시다.
요즘 날씨가 심상찮으니 골고루 찾아먹고 틈틈이 운동하면서 무슨 수를 쓰던 간에 8월을 잘 넘기고 추계단합대회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도록 합시다.
2019년 8월 1일
경북중고등학교42회동창회장 윤호정
‘걷는다’는 것
김광진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확실한 증표이다.
우리는 걸을 수 있을 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다는 감각의 여행이 가능하고, 여기에 더하여 기억과 인지로서 고차원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충족된다.
물론, 걸을 수 없는 사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모든 것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 용해원님의 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예가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갇혀진 곳에서/새로운 출구를 찾아가는 것이다
천천히 걸으면/늘 분주했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걸으면/생각이 새로워지고/만남이 새로워지고/느낌도 달라진다....’
‘걷는다’는 것의 많은 것을 함축했고, 마지막 구절인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희망을 갖게 한다’는 기막힌 표현이다.
‘걷기예찬’의 David Le Breton의 글에서도 그렇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라며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라고,,,
이것은 매일 그렇게 걷는 사람의 입장에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걷는다’는 순간 ‘그것은 잠시 또는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서 사는 것이다’라는 뜻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고희를 넘어서부터 매일 걷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절을 불문하고 내가 사는 유등천 천변 길을 ‘만보’이상 걷고 한 달에 두 번씩 산에서 둘레길 트레킹도 하고 성지순례도 한다.
지난 6월엔 우리또래의 산 친구들과 중국 형산(1,300m), 명월산(1,500m), 무공산(1,918m)을 4박6일 동안 트레킹도 했다.
나보다 10년 위이신 ‘소산’ 선생님도 동행할 정도였다.
며칠 전에도 산악회장을 하던 친구는 ‘카카오톡’에 ‘예방(Prevention)’이란 미국잡지에 ‘장수하는 사람의 전체적인 특징은 다리 근육의 힘’라고 소개했다. 두 다리가 튼튼하면 천수를 다하고, 수노근선고(樹老根先枯)이고 인노퇴선쇠(人老腿先衰) 즉, ‘나무는 뿌리가, 사람은 다리가 먼저 늙는다.’라고도 했다.
일생동안 이것들은 전체 에너지의 70%를 쓴다니 일리 있는 말은 아니던가...?
두 다리는 사람의 교통수단이다.
다리엔 온 몸에 퍼져있는 신경과 혈관의 절반이상이 분포되고 두 정강이가 튼튼하면 경락도 잘 통해 뇌, 심장, 소화기계 등의 기(氣)와 혈(穴)이 순조로워 걷는 모습만으로도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가늠할 수 있단다.
자신의 다리를 보라! 노쇠는 탄력을 잃은 자신의 다리에서 비롯됨을 알고, 뇌에서 전달되는 모는 기능들이 예전과 다름도 느끼리라...
지금부터라도 걷고 또 걷자.
부와 명예는 서천부운(西天浮雲), 멀쩡한 두 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내 자산(資産)인지 걸을수록 대견하다.
‘7월 42회동창회보’에 이승을 떠난 두 친구의 슬픈 소식과 함께 ‘이방노’ 회원이 80줄의 나이에도 ‘킬리만자로’(5,895m)를 다녀오고 최근엔 히말리아 ‘조카치봉’(6,000m)을 정복했다는 놀라운 소식은 삶과 죽음을 극명하게 갈라버린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했던가?
하루가 다르게 기력(氣力)이 떨어지는 느낌, 그냥 앉아서 한탄만 할 것인가? 대퇴부와 종아리 근육이 땅의 인력과 맞싸워 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견실한 골격과 강인한 근육, 부드러운 관절은 ‘철의 삼각’을 형성해 몸의 중량을 지탱한다. 이렇게 ‘걷는다.’는 것, 이것을 자신의 몸에 적절하게 활용해 남은 삶이라도 잘 가꾸어 보면 어떨까 싶다.
David Le Breton의 충고로 이 글을 마감한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신 내면의 길을 더듬어간다.’
집주변에 걷기 좋은 길을 찾아서 걷기 시작하라, 늙었다는 생각도 거두어라. 두 발은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세상의 더 높은 경지까지 자신을 데려다 준다는 사실을 명심(銘心)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