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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
158. 성서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 존재가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한 말의 첫 마디는 계약의 친교로 함께 살아야 할 주체(여성)를 알아보는 사람(남성)의 말이다(창세 2,23). 그 말은 선물을 높이 평가하고 감사하는 시적 언어들이다. 그 말은 사랑의 성령으로 충만한 "신부"(교회)가 신랑(그리스도)에게 "오십시오"(묵시 22,17)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삶과 완전한 기쁨을 완성 하게 될 때까지 인간의 역사를 표시하게 될 불확정의 노래의 시작이다(예레 33,11). 사랑의 노래 성서에는 혼인의 사랑에 관한 시만으로 쓰인 책이 한 권 있다. 매우 특별한 문학 유형을 가지고 있는 그 책은 바로 아가다. 그 책이 아가로 불리게 된 것은 사랑하기 위하여 사는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의 사랑 노래이며 노래 중의 노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 자와 여자는 이중창으로 그들의 애정과 기쁨을 노래한다. 남자와 여자, 곧 연인과 애인은 각자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달리 말해 다른 사람을 위한 갈망과 매력으로 그의 정체성을 칭송하면서 그들 사이에 밀접히 일치되어 있다(아가 7,11). 관계는 서로 높이 평가하는 아름다움에서 시작된다. 관계는 지속적 탐구와 서로에 대한 앎으로 발전하며, 갈망하는 친교로 실현된다. 그리하여 모든 이를 기쁘게 하는 축제에서 사람들의 행복을 만들어 내고 세상의 모든 요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랑이 드러난다. 아가의 시를 엮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적이다.
아름다움
159. 혼인의 사랑은 상대방의 아름다움의 표출에 대한 놀라움에서 분출된다. 남자는 여자의 사랑스러움에 이끌린다. 그리고 여 자는 남자다운 매력에 유혹된다: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당신의 두 눈은 비둘기라오. 정녕 당신은 아름다워요, 나의 연인이여. 당신은 사랑스러워요"(아가 1`,15-16). 아름다움의 모티프는 아가에서 반복해서 울려퍼진다(아가 1,8; 4,1.7; 5,9; 6,1.4.10). 인간의 몸의 특질을 그렇게 표현하며, 눈부 신 아름다움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간의 몸을 경탄한다(창 세 2,25 참조). 그러나 인간의 몸이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되는 것은 사랑에 빠지게 하며(시라 36,24 참조),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육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원 역사를 이해하는 한 가지 길일 수 있다. 구원 역사 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그들의 사랑스러움 때문에 기억된다. 사라 (창세 12,11.14), 라헬(창세 29,17), 아비가일(1사무 25,3), 욥의 세 딸(욥 42,15), 에스테르(에스 2,7), 유딧(유딧 8,7)과 같은 여자들 뿐 아니라, 요셉(창세 39,6), 모세(탈출 2,2), 다윗(1사무 16,12), 대사제 시몬(시라 50,5-10)과 같은 남자들도 기억된다. 이 인물 들의 아름다움은 설화 줄거리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넘어 독자에게 애정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에게 매료되어 그들의 역사 를 사랑하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마침내 "어떤 사람보다 수려하 신"(시편 45,3) 메시아에 매료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눈을 쳐다보면서 담콤함과 부드러움과 열정을 본다. 눈동자는 찬란하게 빛나며 침묵 중에 사랑의 감정과 손짓을 표현한다. 더욱 일반적으로 말해, 모든 지체가 말을 하면 서 매력과 제안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연인은 애인을 묘사하면서 애인의 몸의 모든 부분을 시적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한다(아가 4,1-5). 연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경탄과 갈망을 표현한다: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그대에게 흠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려(아가 4,7).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소. 한 번의 눈짓으로, 그대 목걸이 한 줄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소"(아가 4,9). 그리고 애인은 강렬한 열정을 가진 표상으로 응답하며(아가 5,10-16)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사랑 받으며"(아가 5,9) "내 영혼 이 사랑하는 이"(아가 1,7; 3,2-4)라고 불리는 그의 모습을 묘사한다. 창조된 세상의 놀라운 일들이 그 과일들(아가 4,16; 2,3; 5,1 등)과 그 향기(아가 2,12-13; 3,6; 4,6; 5,1 등)와 더불어 잘 가꾼 "정원"처럼 삶의 근거인(아가 4,12.15-16; 5,1; 6,2; 8,13) 사랑하 는 사람의 기적을 제시하는 은유로 이용된다. 연인은 하느님이 주신 에덴의 선물을 참으로 경험하면서(창세 2,8-25) 경탄하며 외친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나의 정원으로 내가 왔소. 내 몰약과 발삼을 거두고 꿀이 든 내 꿀송이를 먹고 젖과 함께 내 포도주를 마신다오"(아가 5,1).
서로의 탐구와 친교의 염원
160. 사랑은 탐구로, 연인/애인을 보고 만나고 포옹하고 싶은 갈망으로 표현된다. 여자가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여, 내게 알려 주셔요. 당신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아가 1,7) 하고 묻는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아가 3,1-2; 참조: 아가 5,6-8). 그리고 연인은 애인을 만나러 가며(아가 2,8) 그녀에게 속삭인다: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아가 2,14). 사실 연인은 열망의 밤에 애인의 문을 두드리러 온다(아가 5,2). 연인은 생명이 시작되는 그 은밀한 방으로 인도된다(아가 3,4; 8,5; 참조: 창세 24,67). 그리하여 상호 소속의 친밀함 안에서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이의 왼팔은 내 머리 밑에 있고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답니다(아가 2,6; 8,3).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아가 2,16; 6,3; 7,11). 사랑은 서로에게 거저 너그럽게 주는 선물이다.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사람은 사랑을 파괴한다(아가 8,7-12).
유일한 관계
161. 연인은 애인에게 말한다: "나의 비둘기, 나의 티 없는 여인은 오직 하나"(아가 6,9). 사실 그녀만이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자 기 연인의 염원을 충족시킬 수 있다(아가 4,10). 수없이 많은 처녀 들이 있지만(아가 6,8), 한 여인만 선발되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 우며(아가 1,8) 애인이고, "엉겅퀴 사이에 핀 나리꽃 같으며"(아가 2,2), 해처럼 빛나고(아가 6,10),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다. 그녀는 연인의 배타적 소유다: "그대는 닫힌 정원,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는 닫힌 정원, 봉해진 우물"(아가 4,12). 그리고 이와 유사제1장·215 하게, 젊은이들 사이에 있는 연인은 "숲속 나무들 사이의 사과나무 같고"(아가 2,3), 다른 모든 연인보다 나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아 가 5,9),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다(아가 5,10). 그러므로 사랑의 온갖 맛깔스러운 과일들이 "그를 위해 간직되어 왔다"(아가 7,14). 그리고 정확히 말해 아가는 이상적으로 솔로몬의 세계(아가 1,1.5; 3,7.9.11)와 따라서 일부다처제(아가 6,8-9)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배타적이며 전체적인 소속 안에서 사랑을 노래하려는 시인의 의도가 대조적으로 부각된다. 사실 이것이 성서 전통이 지향하고 있는 형태이며 유일하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깨어지기 쉬운 사랑, 보호해야 할 사랑
162. 아가 전체를 흐르고 있는 비범하고 열정적인 격정은 아가의 가장 유명한 단언들 가운데 하나, 곧 시의 마지막에 배치된 단 언을 이해하게 해 준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정열은 저승처럼 억센 것. 그 열기는 불의 열기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한 불길이랍니다"(아가 8,6). 어떤 것도 끄거나 휩쓸어 갈 수 없는(아가 8,7) 그런 감정은 타고난 연약성을 잊어버리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실상 사랑은 인간의 마음의 사건이며 마음은 어두움과 불확실성과 불안과 환멸의 경험을 건너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인은 자기 영혼의 사랑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아 내지 못한다(아가 3,1-2). 만남의 순 간 자체가 역설적으로 사라져가는 것으로 제시된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가 버렸다네. 그이가 떠나 버려 나는 넋이 나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이를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네"(아가 5,6). 더 나아가, 외부에서 오는 위협이 있다. 그 위협은 그녀를 때리고 상처 내는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아가 5,7)에게서도 오지만, 특히 꽃이 한창인 포도밭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에게서 온다 (아가 2,15). 이 마지막 표상과 더불어 시인은 사랑이 꽃피는 것을 폭력으로 파괴시키는 욕망의 힘을 암시한다. 보호가 없으면 사랑은 취약성을 드러낸다(아가 8,8-9).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축제
163. 아가에는 축제의 분위기가 살아 있다. 왜냐하면 신랑과 신부가 다른 이들에게 그들 자신의 행복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 먹어라, 벗들아. 마셔라, 사랑에 취하여라"(아가 5,1); "노래의 계절 이 다가왔다오"(아가 2,12) 하고 신부가 말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대관식의 대축제 날(아가 3,11; 7,6)과 그의 혼인 예식(아가 3,11; 8,8)이 기억된다. 금으로 입힌 가마(아가 3,9-10)가 용사들의 호위제1장·217 를 받으며 나아가고(아가 3,7-8), 우아한 샌들은 춤추는 발을 묘사한다(아가 7,1-2). 그러므로 사랑의 신비의 상징인 친밀감은 일종의 공적 증언과 결합하여 마음의 기쁨이 공유되고 모든 이를 흥미로운 칭송으로 이끌어간다(아가 6,9). 아가의 아름다움은 사랑의 아름다움 자체로 찬연하게 빛난다. 여자가 세 번에 걸쳐 연인에 대해 말하며 그를 절대적으로 " 사랑"(ha 'ahabah)(아가 2,7; 3,5; 8,4)이라고 정의한다(아가 2,7;3,5; 8,4). 연인 역시 똑같은 식으로 응답하며 다음과 같이 말 한다: "정녕 아름답고 사랑스럽구려, 오, 사랑('ahabah), 환희의 여인이여!"(아가 7,7).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가 주님께 사랑 받은 신부인 이스라엘과 사랑 자체이시며 신랑인 하느님 사이에 위대한 우화로 읽힌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예언 전통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헌신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하여 혼인의 사랑의 동일한 상징적 지원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반향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 복음서들의 결론에서 - 부활하신 분과 막달라의 마리아가 동산에서 만난 것을 이야기한다(요한 20,11-18).
기도가 되는 사랑의 노래
164.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하신 일을 명상하며 거기에서 가르침과 찬양의 동기와 마음의 기쁨을 이끌어 낸다. 시편집에 있 는 기도의 논제들 가운데에는 혼인의 사랑을 경축하는 것도 있다. 혼인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데에서 주님의 행위를 발견하고 기념한다. 마치 아가를 반향하듯이 "사랑 노래"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는 시편 45은 젊은 공주와 결혼하는 임금의 혼인잔치의 찬란한 순간을 표현한다. 신랑신부의 아름다움(3절과 12절), 의복의 화려함 (4.10.14-15절), 향기(8-9절), 음악(9절)이 축제를 장엄하게 하는 행렬(10.13.15-16절)과 함께 기쁨이 충만한 분위기(8.9.16절) 속에 기억된다. 그러나 아가와 달리 이 시는 연인들의 주도적 사랑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신랑에 대해서는 강복(3절)과 축성(8절)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개입을 강조하고, 신부에 대해서는 풍요(17 절)와 찬송(18절)이 약속된다. 또한 임금은 초인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적 인물로 제시된다. 왜냐하면 으레 하느님께 유보된 특징들이 그에게 부여되기 때문이다. 곧, 그는 "엄위"와 "영화"를 입은(4절) "용사"(4절)라고 말하며, 그의 입술은 "우아함"(3절)을 머금고 있으며, 당당한 그의 걸음은 "진실"과 "정의"를 만들어 내며, 그의 오른팔은 "무서운 일들"(5절)을 한다. 그는 심지어 "하느님"(7절) 과 신부의 "주인"으로 불린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사랑 노래가 메시아적 의미로, 종말의 때에 그의 정의의 왕좌에 영광스럽게 착좌하는 의기양양한 다윗 후손의 임금의 결혼 잔치를 증언하는 것 으로 읽힌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신부는 자기 주인의 열망에 경의를 표하며 자신을 내어 주며(12절) 풍요와 기쁨의 왕궁으로 들어가도록(16-17절) 지나간 옛 것을 잊어버리라는 부름 을 받은(11절) 이스라엘의 모습을 나타낸다. 임금의 혼인 잔치의 인 간의 모습은 이처럼 기도 안에서 메시아와 이스라엘의 사랑과 승리의 역사의 상징이 된다. 그리하여 그의 모습은 찬양과 희망의 노래 가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혼인의 모티프는 시편 128에서 행복의 표현 (1절)으로 다시 받아들여진다. 이 시편에서 칭송을 받는 것은 특 히 가족들에게 보호를 받는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 햇순들의 표상(3절)으로 표현된 풍요로움이다. 이 시편은 기도 본문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축복을 노래하며(4절) 축복을 청하기 때문이다(5 절). 그리하여 인간이 아무리 애쓰며 수고한다고 하더라도 "아들들" 은 주님의 선물이기 때문에(시편 127,3) "집을 지을 수가 없음(시편 127,1-2)을 아는 가운데 미래에 주님의 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혼인의 사랑의 노래는 사실 인간의 사랑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은밀하고 막강한 행위를 경축하는 것이다.
현인들의 평가와 그들의 권면
165.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은 다양한 음조의 책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문서"의 위대한 수집물에 속하는 아가와 시 편을 통해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모든 책이 혼인 제도에 대한 무한한 존중을 드러낸다. 혼인의 사랑의 가치를 장려하기 위하여 현인들이 사용한 양식 들 가운데 하나는 비유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야기 들에서 주인공들은 존경하고 모방해야 할 이상적인 모범적 인물로 나타난다. 유다인들에게는 아가와 함께 "다섯 두루마리"의 하나인 룻기에 서 중심 인물은 모압 여자 룻이다.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 마흘론의 과부가 된다. 그녀는 남편과 맺은 사랑의 끈에 강인하고 충실하게 머물면서 남편의 가족과 해소할 수 없이 연결되어 남음으로써 자기 조국(시편 45,11 참조)과 종교 전통을 포기한다. 시어머니 나오미에 게 한 그녀의 선언은 유명하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룻 1,16-17). 그리하여 룻은 나오미와 함께 유다 지방으로 이민을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보아즈를 만나면서 그의 사랑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보아즈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면서 과부를 도와 주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다(루사 4,10). 이 짤막한 교훈 이야기의 설화의 복잡 성은 주인공들의 공덕을 칭송하는데 소용된다. 그들은 서로 자비를 베푸는 데 있어 다른 민족과 전통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영속적 끈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가진 혼인의 결속의 힘을 드러낸다. 그 결속은 끝에 가서 놀라운 결실로 보상을 받는다. 왜냐하면 룻과 보아즈에게서 메시아가 되실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룻 4,17) 오벳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 감동적 이야기에서 죽음이 가족을 갈라놓지 못한다. 그리고 책임감(형사취수兄死娶嫂의 제1장·221 법에서 장려하는)과 결합된 사랑 가득한 충실성은 개인들과 공동체 전체에게 위로와 희망의 원천이 된다(룻 4,11-17). 우리에게는 그리스어로 쓰인 또 다른 짤막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토비야(니네베로 유배온 연로한 토빗의 아들)의 여행과 일곱 남편을 두었던 과부 사라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모세의 율 법을 준수하며(토빗 7,11.13) 기도로 봉헌된(토빗 8,4-8) 그들의 혼인의 일치는 부모와 시아버지의 가족들에게 생명과 기쁨의 근거가 된다(토빗 8,15-20; 11,17-18).
166. 행복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 이 이야기들은 신랑신부의 사랑과 충실성을 장려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역경과 불운을 극복하 도록 용기를 줌으로써 행복의 목표를 달성하게 한다. 이와 유사하게, 비록 다른 설명이기는 하지만 잠언은 "힘 있는" 신부에게 헌정 된 시로 가르침을 마무리하면서 첫 번째 장점으로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남편은 그를 마음으로 신뢰하고 소득이 모자라지 않는다. 그 아내는 한평생 남편에게 해끼치는 일없이 잘해 준다"(잠언 31,11-12). 이 시는 아내이자 어머니인 그녀의 사업과 자선의 특질들을 칭송(잠언 31,13-27)한 뒤에, 결론적 찬사로 마무리된다: "아들들이 일어나 그를 기리고 남편도 그를 칭송한다. '훌륭한 일을 한 여인들이 많지만 당신은 그 모든 이보다 뛰어나오'"(잠언 31,28-29).
167. 그와 같이 이상적인 그림은 부부 관계의 문제들을 명확히 지적하는 것을 건너뛰지 않는다. 사실 현인은 결혼 생활이 항상 완 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남편은 때로 게으르고 술주정뱅이이며 어리석다. 그리고 아내는 포달스럽고 다 투기 좋아하며 심지어 수치스럽기도 하여 그 결과는 파국적이며 불명예스럽다(잠언 12,4; 19,13; 21,9.19; 25,24; 27,15-16; 참조: 코헬 7,26-27; 시라 25,20). 그러므로 좋은 아내를 "찾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려 깊은 아내는 주님에게서 온다"(잠언 19,14)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를 선택할 줄 아는 것은 젊은이의 몫이며(잠 언 18,22), 외부의 매력보다 영혼의 특성을 선호해야 하기 때문이다(잠언 31,30; 참조: 시라 42,12). 또한 한 번 결혼하면 남자는 " 낯선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잠언 5,1-14.20-21; 7,4-27; 23,26-28) 자기 아내와 유일한 결속을 보존해야 한다: "네 저수 동굴에서 물을 마시고 네 샘에서 솟는 물을 마셔라. 네 샘물이 바깥으로 흘러 버리고 그 물줄기가 거리로 흘러서야 되겠느냐? 그것은 너 혼자만의 것 네 곁에 있는 낯선 자들이 가져서는 안 된다. 네 샘터가 복을 받도록 하고 네 젊은 시절의 아내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그 여자는 너의 사랑스러운 암사슴, 우아한 영양 너는 언제나 그의 가슴에서 흡족해하고 늘 그 사랑에 흠뻑 취하여라"(잠언 5,15-19). 자신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것은 규칙이 없는 성에 반대하는 선의 현실에서 정의에 따라 성취되는 욕망의 은유이다(잠언 31,2- 3; 참조: 시라 23,16-27; 47,19; 토빗 8,7). 신부를 가리키는 샘은 하느님에게서 축복을 받는다. 하느님은 인간 존재의 삶 전체를 지 켜보신다(잠언 5,21; 시편 1,6). 이 유형의 본문이 은유적으로 읽힐 수 있다 하더라도 - 은유적 독서에 따르면 이상적 신부는 참 지혜를 대표하고, 낯선 여자는 세속 지혜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잠언 2,16-17; 9,13-18) - 여기에 이용된 은유적 복합체 는 그 의미와 요구에 있어서 혼인의 일치의 구체적 현실에 기반을 둔다.
168. 벤 시라의 책도 많은 경구들을 혼인의 문맥 안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 할애하고 있다. 유다 전통에서 공통적으 로 볼 수 있듯이, 그 전망은 남자(남성)의 전망이며, 현인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신부를 찾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시라 7,22; 26,13-18). 위험이 없지 않은(시라 36,23-28) 그런 결정의 중요성은 유혹하는 여자와 나쁜 여자에 대해 매우 혹독한 표현을 사용 하는 이 지혜 수집물의 격언들을 설명해 줄 것이다(시라 23,22- 23; 25,13-26; 27,7-12). 그것은 대조적으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 화목하게 사는"(시라 25,1; 또한 25,8; 26,1 참조)행복한 결혼 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게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며 어떤 배신도 하지 말아야 한다(시라 3,3-9; 19,2; 23,16-21; 26,11-12; 42,12-13). 또한 아버지는 딸을 위해 특별히 경계를 해야 한다(시라 7,24-25; 22,4; 26,10; 42,11). 딸은 자신의 취약성으로 인하여 처녀일 때나 남편이 있는 여자일 때나 아버지에게 "은근한 걱정거리"가 될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시라 42,9-10).
169. 이러한 유형의 전통 문학에서 아가의 서정성을 찾아볼 수 는 없지만, 지상에서 남자에게 가능한 저 행복을 위해 필요한 더욱 구체적인 지혜의 길은 있다. 코헬렛도 이 노선에서 움직인다. 코헬 렛은 인간 삶의 여러 측면에서 회의적이기는 하지만 각자 배우자에 게서 받는 도움의 좋은 점을 인정한다: "혼자보다는 둘이 나으니 자신들의 노고에 대하여 좋은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일으켜 준다. 그러나 외톨이가 넘어지면 그에게는 불행! 그를 일으켜 줄 다른 사람이 없다. 또한 둘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지지만 외톨이는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으랴? 누가 하나를 공격하면 둘이서 그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으로 꼬인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코헬 4,9-12). 마지막 잠언의 표현을 해석하면서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세 번째 요소에서 부부의 아들에 대한 암시나, 또는 혼인의 사랑의 보 호자이며 지지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을 보는 사람 들이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이 금언은 단순히 "일치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시사하며 결혼이 그에 대한 명백한 증언일 것이다. 코헬렛은 자기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제를 다시 선택한다. 그것은 곧 세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단순한 기쁨을 즐기라는 것인데, 그 기쁨들 가운데 혼인의 기쁨이 최고다: "그러니 너는 기뻐하며 빵을 먹고 기분 좋게 술을 마셔라. 하느님께서는 이미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신다. 네 옷은 항상 깨끗하고 네 머리에는 향유가 모자라지 않게 하여라. 태양 아래에서 너의 허무한 모든 날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네 허무한 인생의 모든 날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인생을 즐겨라. 이것이 네 인생과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너의 노고에 대한 몫이다"(코헬 9,7-9).
170.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진부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시편 128을 다시 읽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더욱 단순한 실재는 하느님이 당신의 피조물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저 인간의 행복의 기 회요 도구로서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것을 설정하는 데 더욱 적합 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혼인의 조건이 지혜 전통에서 개인과 지혜의 관계(행복의 샘인 관계: 잠언 3,17-18; 시라 15,2; 지혜 8,18)의 위대한 은유로 받아들여진 이유를 설명한다. 지혜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지혜를 사랑하여 젊을 때부터 찾았으며 그를 아내로 맞아들이려고 애를 썼다(지혜 8,2). 그래서 나는 지혜를 맞아들여 함께 살기로 작정하였다. 지혜가 나에게 좋은 조언자가 되고 근심스럽고 슬플 때에는 격려가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지혜 8,9). 또 집에 들어가면 지혜와 함께 편히 쉬리니 그와 함께 지내는 데에 마음 쓰라릴 일이 없고 그와 같이 사는 데에 괴로울 일이 없으며 기쁨과 즐거움만 있기 때문이다"(지혜 8,16). 잠언의 이상적 아내(잠언 31,10-31)는 (아마도) 지혜의 은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혜서에서는 본보기적 아내로 상상되었다 (시라 15,2 참조). 결혼이 세상 창조 때부터 창조주가 원했던 내밀 한 가치에 응답할 때, 결혼을 삶과 기쁨의 사건이며 상징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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