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못 할 어린시절.내 가장 작은 모습들을 애써 더듬는다.한강에 나룻배가 강을 건너게 해주던 시절.여유로운 강줄기, 나룻터에서 배를 기다리던 정겨움.강을 건너면 무엇이 나올까,강은 내게 미지의 세계로 안내했다. 강가에 앉아 빨래하던 아낙네들,엄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그저 강길이 무서웠으리라.오랜 세월을 희미한 그림처럼 남아있는 그 곳은 마치 이승과 저승을 잇는 경계선, 그 틈바구니의 옛터아닐까.결코 찾을 수 없는 비밀,수수께끼의 강.흰 옷 나풀거리며 슬픔의 강을 건너신 한 많은 어머니가 계시겠지. 언젠가 여름휴가를 부여 낙화암으로 간적이 있다.백마강,삼천궁녀,고란사에서 시원한 물도 마시고,부소산성을 지나 바위 나무가 어우러진 낙화암 낭떠러지 같은 길을 오르며 캑캑..아이고 숨차라.올라서 본 옛스러운 풍경에서 문득 엄마를 생각했다.오래된 역사,오래된 모습에 옛추억이 어린다. 강,물,바다,어머니 뱃속 태고의 고향같은, 연어가 모태의 강을 찾는 마음이 어린다.생명의 원천일까.
나른한 여름.느릿느릿 강을 향했다.또래의 친구들.물장구를 치니 작은 손에서 뿌려진 물줄기가 평화롭게 유리알처럼 흩어지는 광경들을 실눈 뜨고 본다.투명함,강물이 토해내는 아름다운 동화가 내 마음에 흘러간다.기억속에서도 강은 맑고 푸르다.그리깊지도 않은 강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는데..뱀이 출몰한다.유유히 가로질러 가기에 사람을 헤칠 기미는 없지만 아이들과 나는 질겁을 한다.그자리에 우뚝 서 입을 틀어막고 비명이 뱀의 청각에 전달되지 않도록 나를 견제한다.물살도 고요해지도록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심장이 멎을 듯 적막하게 뱀이 가던 여행길을 무리없이 빠져나가기를 배려한다.두려움으로.헉헉,.나중에 알고보니 그 유명한 뚝섬의 민물장어다.서울지역의 지명치고는 꽤 둔탁한 발음의 뚝섬유원지.말 그대로 섬처럼 소박한 터전,서민적 마을이다.나무도 많고 숲도 무성해 좋은 쉼터였고 ,강가에 핀 들꽃들,버려지듯 홀로 흙속에서 자생하여 꽃씨를 터트리던 강둑의 정경,내 고향마을이다.
또 다른 이름 성수동은 공장지대다.어린 여공들이 점심 때나 일을 마치고 골목을 가득메운다.어린 나이에 그 곳을 지나며 슬픈 장면을 목격한다.점심시간인가.공장 밖에 젊은 두 사람이 심각하다.남자보다 훨씬 나은 예쁘고 순박한 여자는 고개 숙이고 울고있다.얼핏 들으니'나에게 여자가 생겼어,너도 행복하길 바래'절박한 얘기를 그리 쉽게 하다니.초등학교 5학년 정도일 나는 그 때 '남자는 역시 도둑놈이구나' 부정적 관념을 일찍 알아버렸다.아름다운 강을 끼고 그렇게 사랑은 흐르고 멀리 사라져갔다.유원지는 유흥지와도 같아 연애의 온상이었고 태양이 맑게 비추는 뒷면에 그렇게 슬픔,비극도 흘러다녔다. 가정을 책임지지 못할 나이..슬픈 영혼들.
일요일 미사가 끝나면 간혹 강변을 향했다.이유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절,층층 계단에 앉아 우리만의 노래를 부른다.적선을 바라는 거지의 몰골이다.성가대원들이니 조금 주위의 시선을 받는다.힐끗 주변을 민감하게 감지하지만 뻔뻔해서 가져간 술까지 마시는 젊은이들.곧장 집으로 향하지 못한 텅빈 시간,멀고 먼 거리를 주체 못하는 이유없는 반항인가.강변은 그래서 많은 추억이 어려있다.유년을 지나고 젊음을 깨우치고 두고 온 내 마음이 촘촘히 박혀있다.계절과 함께 보여주던 봄,여름,가을,겨울,강의 향기.꽃그늘의 향기.꽃이 피고지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겠지.내가 곁에 없어도..그 강변은 철마다 세월따라 변하는데 내 마음은 늘 예전 그 자리에 있다.
첫댓글 강을 끼고 살았어도 수영을 못합니다.'강변연가'노래를 좋아합니다.가사는 청승맞고 멜로디만..내가 늘 솔로였겠다 느끼시면
오산..만날 외롭고 슬픈 이야기만 하니까..아무튼 강과 함께 살아서인지, 나이스짱님 말대로 성격이 우울해진다는데 그래서 이리 성격이 감상적인지요..
저는 나주 영산포에서 '으앙' 태어나고, 군복무중이시던 아버지는 내사진을 보시고 예뻐서 자랑하셨답니다. 맏손녀인 내가 방바닥에 등지고 있을 적에 할아버지께서 고모들이 내곁에서는 살며시 움직이게 했답니다. 먼지 떨어진다고. 내이름은 할아버지께서 한학자에게서 받으신 이름중에서 막내고모가 '정하'를 고르셨답니다. 고모부는 호주에 사시는 성공회신부님이시고 호주 분이시고, 봄에 또 오신다하여 영어공부를 하고 있지요. 유년기는 송정리에서, 초1엔 담양고서국민학교 사택에서 살았죠. 할아버지께서 교장선생님이셨답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화장실에 귀신이 있다하여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달려갔지만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났지요.
한번은 그네 타다 떨어져 땅바닥에 고인 빗물에 머리를 적셔 엄마가 머리를 감아 주셨죠. 머리에 부스럼인가가 낫을 때 간호사선생님께서 오셔서 내가 맏이니까 먼저 해야된다며 소독약인지를 발라주고 눈에도 안약을 넣어주었죠. 참새를 잡는 아저씨들의 총소리에 말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답니다. 그 후 법성포로 아버지께서 발령이 나셔서 이사오게되어 홍농을 포함하여 7년동안 바닷가에서 살았네요. 새벽에 뱃고동 소리와 함께 막내동생이 태어났지요. 낚시가신 아버지께 남동생과 함께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고 받은 용돈이 오원이었던가. 어쨋든 동생돈으로 같이 사탕 사먹고 내돈은 저금통에 퐁당. 결국 부모권유로 영양제 사먹었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일제시대 지어진 건물이라 따로 소학교도 있었는데 음산하기가 '학교괴담'수준이었지요.같은 건물의 소학교는 기피대상으로 주번들도 일이 끝나면 도망가기에 바빴어요.귀신이 나왔겠어요,모두 상상에서 비롯된 낭설이겠지요.아무튼 그 때는 왜그리 무서웠는지요..경동국민학교..언젠가 아이들과 가보았는데,불량식품도 사먹고..쫀드기등..우리 어렸을 땐 칡도 팔았어요.학교 가는 길에 아주 큰 집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 사는 기미가 없어 괴물이 산다고 상상하고..국민학교 교과서 책에 그려진 그림들..참 마음을 콩콩 뛰게하던 추억들입니다.
'강변' 이란 단어가 예스러워 추억하게 하네요.투망으로 은어를 잡으셨던 아버지를 따라 꾸덕에 은빛비늘의 은어가 쌓여갈수록 내 마음도 함께 차곡차곡 부자가 되어갔던 어린시절.아버지께서 넓다란 토란잎으로 우산을 만들어 주시고, 자전거 뒤에 태우시고서 울퉁불퉁 탐진강 하천둑을 달리기도.지금은 그 탐진강이 바라뵈는 양지 바른 선산에 누워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