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관계를 읽는다 / 은종일
잠실나들목 래빗뮤지엄에 길이 13m, 높이 3m 대형 스크린에 빈센트 반 고흐의 디지털 작품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 전시되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가 1889년 생레미 요양원에서 밤 풍경에다 상상을 더해 그렸다. 영면에 들기 1년 전이다. 바다처럼 짙푸른 하늘에 달이 태양처럼 불타고, 하늘 가득한 노란 별들이 소용돌이치며, 사이프러스 나무가 불꽃처럼 높이 솟는다. 파문은 일렁이고 별은 더욱 빛난다. 들끓는 에너지로 물결치듯 토하는 말 없는 걱정의 시(詩)다.
이 한 편의 시에서 폴 고갱을 만나고 빈센트 반 고흐와의 ‘관계’를 읽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폴 고갱은 다섯 살 위의 형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함께 지내며 사사 받고자 했던 스승이었다. 도선사와 주식중개인을 거친 폴 고갱, 책방 점원과 선교사를 거친 빈센트 반 고흐, 이들 30대 늦깎이 두 화가는 고흐의 희망대로 아를 노란 집에서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달이 났다. 그것은 둘 사이 다툼에서 발작한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른 불상사였다. 강한 개성과 예술가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생긴 다툼이었다. 이로써 고갱은 타이티로, 고흐는 생레미 정신요양원으로 갈라섰다.
고흐가 자진해서 들어간 정신요양원이지만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였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림 그리는 작업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으면 그의 동생 테오에게 마치 종교와 같다고 말했을까. 충동을 가누면서 그린 작품이 〈별이 빛나는 밤〉이다.
이즈음 고흐의 일화다. 어느 날 고흐가 창가에 앉아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포장용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이가 지나가는데 가슴팍에 ‘Breakable’(잘 깨짐)이라는 글씨가 뚜렷이 보였다. ‘사람은 깨지기 쉬운 존재로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가는 그의 등짝에 ‘Be Careful’(취급 주의)이라고 쓴 글씨가 이어서 보였다. ‘사람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존재로구나.’라며 인간관계에 대한 때늦은 이해와 반성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필시 고갱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관심을 먹고 자라고, 관심이 없어지면 경계로 바뀐다는 ‘관계’이다. 그 가운데 가장 다루기 어려운 관계가 인간관계라고들 말한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관계를 두고 모든 행복의 근원이자 고뇌의 근원이라면서 비즈니스 관계에서 친구 관계로, 사랑 관계로 나아갈수록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점점 더 크게 느낀다고 하였다. 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자율적인 이성을 지닌 존재지만 이에 못지않게 감성적 한계에 매여있는 존재라고 규정하였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사회적 존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도움과 보호가 있어야 하는 의존적 존재다. 가족, 친족, 친구, 친지, 동료, 이웃, 기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아갈수록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점점 더 크게 느낀다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지적처럼, 인간은 감성적 한계에 매여있는 존재라는 임마누엘 칸트의 규정처럼 인간관계는 끝없는 관심과 진정한 배려를 필요조건으로 한다. 그렇다. 인간관계는 정형이 없어서다. 일을 그만두거나 직장을 옮기는 원인이 일보다 인간관계의 갈등 때문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원인도 당면 위기보다 대인관계 문제 때문이라는 현실적 통계가 이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고흐가 보았던 가슴팍의 ‘Breakable’, 등짝의 ‘Be Careful’은 포장물의 불안정성을 밝히는 경고문이었다. 잘 깨지는 대표적인 것이 유리그릇이다. 이 유리그릇보다 더 잘 깨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일러준다. 서운한 말마디에도 상처를 입고, 그 상처는 깨진 유리 파편처럼 부딪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낸다. 감정의 바탕인 마음은 보드랍고 연약하여 여차하면 상처를 입는다. 마음먹고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깨어지고 무너져 버린다.
‘마음 툭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최고의 자산이야말로 좋은 사람과의 좋은 관계일 것이다. 밝고 부드러운 미소,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 관계로의 투자가 관계의 미학을 실천하고 향유할 수 있는 좋은 관계의 전제이리라.
이제 만년에 이르기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들을 되돌아본다. 누구하고, 언제, 어떤 일로,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하였는가를. 대개가 좋은 관계보다 유익이 앞섰던 것들이다. ‘나이 들면 순해진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다.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간의 다툼에도 30대 넘치는 에너지가 기폭제가 되었으리라는 믿음은 이 때문이다.
* 《창작산맥》 제47호(2023. 봄)
* 『스케치북 펼치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관계를 읽는다, 212~215쪽.
『스케치북 펼치다』 은종일 에세이 / 은종일 저자 / 북랜드 / 2024. 3. 5
첫댓글 고흐의 작품과 삶을 통해 '인간관계'라는 깊은 화두를 풀어내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가슴팍의 'Breakable'과 등짝의 'Be Careful' 일화가 마음속에 깊게 와닿네요. 유리보다 깨지기 쉬운 사람의 마음을 대할 때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백발의 은종일 원장님 모습은 언제나 멋지십니다. 달빛 선생님이 작가님들의 이미지를 뽑으실 때 아마도 눈에 하트가 그려져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