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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청난 인파가 부산역에 모였다고 한다. 전한길이라는 강사가 등장하여 부정선거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라고 해서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새로 들어서 알게 된 것을 서로 이야기하며 하루빨리 부정선거가 밝히 드러나고 인정받기를 소리쳤다.
생각할수록 놀랍다. 지난 5년 이상을 부정선거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책도 쓴 사람들이 있었고, 모여서 시위도 하였지만 ‘음모론’이라고 무시되거나 비난받을 뿐이었는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특히 2030 세대들이 앞장서서 부정선거에 대하여 알리고, 선관위와 법조계와 정치계를 비판하고 있다.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나는 우리의 교과서가 너무나 왜곡되어 가는 것에 분개하고 슬퍼하였다. 지금의 교과서는 북한의 교과서와 비슷하게 변해버렸다. 북한을 옹호하고 북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고, 문화계와 예술계, 학계와 노동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장악하고 있으면서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교과서를 통하여 자기들의 ‘교리’를 주입시키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깜짝 놀라고 있다. 저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쌓아올린 것들이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다. 다시는 저들의 ‘선전선동’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무슨 말을 해도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럴듯한 말을 하면 속아 넘어가던 젊은 세대가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면서 냉정하게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그동안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한 가운데 오직 자신만 생각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나라의 상황이 바로 자신의 상황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나라의 상황에 몸을 던지고 있다. 도무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젊은 세대는 참 지혜도 많고 활기도 넘친다. 이제까지 어르신들이 눈비 맞아가며 고생하던 집회와는 다른 기발한(?) 방법들을 많이 동원하고 있고, 특히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효과적인 활동을 함으로 이전의 어르신들과는 전혀 다른 막강한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당황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너무나도 분명한 증거가 있는 부정선거, 혹은 개표조작에 대해 이미 책으로 출판된 것이 있다. 무조건 반대만 하거나 의심하기 전에 이런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여전히 믿을 수 없다면 믿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알아보지도 않고 비판부터 하고, 공격부터 한다면 양심적인 자세가 아닐 것이다.
오래전에 쓴 글을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철학자 베이컨이 말한 네 가지 우상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습니다-동굴의 우상-일부만으로 전체인 양 속지 말자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 19:1-7)
1.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브리스길라를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의 오심에 대하여 듣고 나서 그는 고린도에 가서 이전보다도 훨씬 더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열두 제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들의 문제가 되는 것을 해결해 준 것을 읽게 됩니다. 그들이 아볼로의 제자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들은 제자들이기는 하지만 ‘불완전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처럼 세례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과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보지 못하고 일찍 순교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그러한 온전한 복음은 알지도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요한의 세례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그들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즉 세례 요한을 넘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마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많은 복음의 내용을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의 전도를 확증하시려고 성령이 임하게 하시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히 2:3-4).
2.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장로교회(합동)에 출석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로교인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7년 이상의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고백서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런 고백서가 있음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신앙생할을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너무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3. 조금 더 지난 후에 칼빈의 『기독교 강요』란 책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는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며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건실한 개신교 가정에는 종요개혁자들의 책이 있는데, 특히 칼빈의 『기독교 강요』란 책은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까지 칼빈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기독교 강요』란 책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너무나 무지한 것이 문제이었겠지요.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보니까 어떤 교회에서는 『기독교 강요』란 책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공부하는 교회도 있고, 주중에 공부하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동안 출석했던 교회들은 이 『기독교 강요』를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 책을 사 놓기만 하고 읽지는 못하다가 결국 퇴직한 후에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많이 놀랐던 것은 이 책이 늘 예상했던 것처럼 어렵거나 딱딱하고 지루한 책이 아니라 무척 재미있고 유익하며 어렵지 않게 잘 이해가 되는 책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많은 것들이 정리되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왜 이리 늦게 읽게 되었을까 안타까워하면서 동시에 이제라도 읽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일부만 알면서도 전체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에베소에 있던 열두 제자들은 바울 사도를 만나서 그 부족한 문제를 해결 받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바울 사도를 만나기 전에 저 열두 제자들은 자신들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큰 선생님인 아볼로-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있을 때 아볼로에게 속한 자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고전 1:12)-에게 배웠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바울 사도를 만나야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접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고 주장하거나 내 안에 계신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아무에게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요일 2:27), 그것은 다른 선생님, 즉 바울 사도와 같은 지도자를 거부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사 큰 선생님으로 일하게 하신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모세를 세워서 일하신 하나님, 다윗을 세워서 일하신 하나님, 열두 사도와 바울 사도를 세워서 일하신 하나님은 그후에도 많은 사역자들을 종으로 세워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성경을 읽고 기도할 뿐 다른 신앙서적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의가 되지 않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위험한 생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며 정리한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조차 거부하는 분들을 볼 때에는 그들의 신앙의 정체성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과 염려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교회 역사를 통하여 검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벨직 신앙고백서』를 잘 배우고 믿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고, 장로교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책들을 집에 갖추고 수시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에서 주일 오후예배나 수요기도회 혹은 수양회 등을 통하여 공부하는 교회들도 있으니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열심히 참여하여 공부해야 마땅하겠지요.
5. 철학자 베이컨은, '실험을 통해 증명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기존 지식들을 우상이라 보고 이들 우상을 타파하고자 하면서 네 가지 우상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적용할 부분이 있으면 잘 걸러서 적용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리한 관찰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물론 합리주의자로서 과학과 경험을 최고로 아는 자세는 주의하면서요.
* 종족의 우상( idola tribus)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입니다. 인간의 감각은 종종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인간의 감각은 불확실하고 오류투성이기 때문에, 자연계의 진리에 좀 더 근접하기 위해서라면 적절한 사례와 조직화된 실험에 근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견해를 일단 수용하게 되면 아무리 강력한 반증의 사례가 있어도 애써 그것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려 듭니다. 들어맞지 않은 것들은 얼버무리거나 무시하지만 요행히 들어맞는 사실은 강조하면서 이들은 헛된 믿음을 계속 이어 갑니다.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부정적인 사례들에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이 올바른 명제를 수립하는 데에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 동굴의 우상(idola specus)
동굴의 우상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오류입니다. 개인마다 겪어온 삶과 살아온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특정 주제를 선호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하게 됩니다. 그것은 타고난 개인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교육의 영향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감화를 받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혹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인지, 귀찮은 상태인지에 따라, 또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에 따라, 개인이 받는 인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시장의 우상(idola fori)
시장의 우상은 인간의 의사소통, 즉 언어가 가지고 있는 오류입니다. 애매한 단어를 사용하면 자신의 뜻이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단어는 그것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는 시장에서 자신의 제품을 과장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들을 제각각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학문하는 데 있어서는, 동일 사건, 동일 사물에 대해 그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가 서로 같아야 합니다. 만약 다르게 되면 학자들 간에 혼란이 생기고 무의미한 논쟁이나 공허한 허상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
극장의 우상(시스템의 우상)은 철학적 논리 체계에 의해 생기는 오류입니다. 베이컨이 생각하기에 지금껏 수용되고 있는 철학 체계는 여러 막으로 구성된 일종의 연극과 같습니다. 자연 현상은 한 가지로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여러 배우들이 차례대로 극장에 오르는 것과 유사하게, 저마다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지고 제각각 자신의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들의 대본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고 심지어 우아하고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철학적 논리를 너무 적은 것에서 많은 것을 이끌어 내거나 반대로 너무 많은 것에서 소수의 것을 이끌어 내기 때문에, 자연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즉, 그들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연 현상이 외부에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작정 자신들의 논리 체계의 정합성을 끝까지 지키려고만 하기 때문에 도리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철학적 논리나 체계에 얽메이지 않고, 실험하여 관찰된 사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네 가지 우상을 좀 자세히 옮긴 이유는 듣기는 했지만 그것의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우상 중에 “동굴의 우상”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많이 있었는데 선입견에 사로잡혀 어떤 울타리를 치고 주관적으로 수용도 하고 배척도 하는 상황을 볼 때마다 나름의 우상을 섬기는 자라고 생각하면서 특히 ‘동굴의 우상숭배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매우 위험합니다. 본인을 위해서도, 주변 사람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이 동굴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6.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서 늘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자라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일부만 보면서 전체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교만을 버리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날마다 변화되고 장성해 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장성을 말씀하시는 성경을 살피면서 글을 마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
* 위의 책들을 구입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자녀들을 위해서는 구입해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