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에 머문 한 걸음
김희재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뒷모습이었다. 그 뒷모습에 사랑한다는 주석을 달지 못한 채 나는 페이지의 모서리에 머물고 있다.
어떤 이에게 영생은 형벌이었겠지만 내게 그것은 유예였다. 인연이 한 번의 호흡으로 끝난다는 사실이 두려울 때마다. 나는 끝나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존재의 고독을 떠올렸다. 오래 산다는 것은 무너지는 일이 아니었다. 사라짐을 아는 자의 떨림으로 깊어지는 일이었다.
죽음이 슬픈 이유는 그것이 고쳐 쓸 수 없는 마침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야 지난 문장들의 오탈자를 발견한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오열하지만, 한 번 그어진 선은 좀처럼 되돌릴 수 없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이 약속한 영생을 믿으며 살아온 내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페이지의 모서리 같은 것이었다. 인연 또한 스치고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이어지는 긴 문장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모서리를 채 넘기기도 전에 내가 남긴 오류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이제 와 돌아보니, 나의 가장 뼈아픈 오탈자는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눈먼 유년 시절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는 내게 괜히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내 마음은 아버지에게서 더 멀어졌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맨몸으로 피난 온 사람이었다. 지주들을 반동으로 몰아세우던 시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남으로 내려왔다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이산가족으로 남았다. 이남에서의 삶은 막막하고 고단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였던 아버지는 타향살이 막막함에다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으며 남보다 빨리 노쇠해지셨다. 생계를 위해 붙잡았던 일들은 번번이 그를 놓아 버렸다. 퇴직금은 사업 실패로 사라졌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숨어 지내던 날도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망치와 대패를 담은 연장통을 들고 건설 현장의 목수로 떠돌게 되었다.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고쳐내던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삶만은 끝내 고쳐내지 못한 채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맥가이버처럼 무엇이든 뚝딱 고쳐내시던 그 투박한 손마디가 정말 부끄러웠다.
우리 집은 늘 살얼음판 같았다. 부모님의 싸움은 전투처럼 치열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숨을 죽이며 외면했다. 가난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작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집이 늪처럼 느껴졌다.
내게 결혼은 사랑 이전에 탈출이었다.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가난을 미워했다. 그 속에 서 있던 아버지도 함께 밀어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내 속마음을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도 끝내 깊이 담아 두었던 말을 건네지 못하셨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인 같았다.
언젠가 아버지가 연락도 없이 우리 집에 오신 적이 있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죽변 해안부대 근처 단칸방에서 살던 때였다. 꼭두새벽 인천을 떠나 우리 집까지 오시는 데 한나절이 넘게 달려온 길이었다. 그렇게 불쑥 찾아오신 아버지는 막상 내 얼굴을 보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그냥 왔다.”
그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버지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느라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차려드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하룻밤 묵는 것도 마다하고 저녁 어스름에 다시 길을 나섰다. 구부정한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배웅하며 돌아서는데 눈물이 확 쏟아졌다. 달려가 잡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끝내 내딛지 못한 한 걸음이었다.
그렇게 다녀가신 뒤로 병석에 누우셨는데도 나는 아버지의 병세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멀리 사는 내가 걱정할까 봐 가족들은 아무 말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는 서서히 무너지고 계셨다.
하필 그 무렵에 남편이 중대장을 마치고 미국으로 위탁 교육을 떠나게 되었다. 두 살과 백일 된 아이 둘을 데리고 나는 정신없이 그 길을 따라나섰다. 낯선 땅에서 가난한 유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전화 요금이 무서워 집에 전화 한 통 마음대로 걸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큰마음 먹고 국제전화로 안부를 묻던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삼우제 지내고 왔어.”
동생의 건조한 한마디에 억장이 무너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창가에 서서 오래도록 하늘만 바라보았다. 눈물도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아직 이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도 다 읽지 못했는데, 책장은 무심하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 버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미처 적어 넣지도 못한 채 아버지는 그렇게 페이지의 모서리 너머로 사라지셨다.
서른세 살에 맨몸으로 피난 내려와 예순다섯 살로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헤어진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아무 말 없이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를 오래도록 만져드리고 싶다. 대패질에 닳아버린 지문 위로 내가 미처 적지 못한 주석들이 눈물처럼 배어 나올 때까지.
인연이 한 번의 호흡으로 끝난다는 사실이 두려울 때마다, 나는 끝내 다 읽히지 못한 문장들을 떠올렸다. 어떤 문장은 너무 늦게, 거의 다음 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의미를 드러낸다. 더러는 아주 긴 시간을 건너며 이어지는 문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벌이 아니라 미처 쓰지 못한 말들까지 적어 넣으라는 유예였을지도 모른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그 아득한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가 남긴 행간을 읽어 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 모서리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