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김환식
어느 날은
배추나비가 쉬었다 가고
어느 날은
아카시아 꽃잎이 생각에 잠겼다 가고
또 어느 날은
떡갈나뭇잎이 낮잠을 자고 가고
또 어느 날은
먼 길 떠날 석양이
잠시 너의 안부를 묻고 가는
단산지*
그 외진 둘레길
나무벤치에
오늘은 공허가 혼자 앉아
묵상 중이다
나도 잠시
그의 곁에 다가앉아
먼 산을 보고 싶다
*단산지: 대구 동구 봉무동 소재 저수지
김환식 시인의 시, 「안부」를 읽습니다. 시, 「안부」에서는 자연 속에서 존재들의 교감을 관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환경 중, 인간의 힘이 작용하지 않은 채 본래 그대로의 존재를 자연이라 합니다. 자연은 우주의 섭리에 의해 운용되기 때문에 나름의 질서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안부」는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 위치하는 저수지 ‘단산지 둘레길’에 있는 ‘나무벤치’가 시의 중심 배경입니다. ‘나무벤치’는 인간이 가공한 것입니다. 인간이 배치했지만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아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이 벤치를 중심으로 존재와 존재들의 교감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관조했습니다. 이 벤치에 ‘배추나비 → 아카시아꽃잎 → 떡갈나뭇잎 → 석양’이 차례로 “너의 안부를 묻고” 갑니다. 이 순서에서 무엇을 볼 수 있나요. 꽃의 시절에서 낙엽으로 다시 석양으로 즉 생성에서 소멸까지의 과정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공허가 혼자 앉아” 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공허(허무)’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시인은 시, 마지막 연에서 “나도 잠시/그의 곁에 다가앉아/먼 산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두말할 것 없이 ‘공허’이지요. 즉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섭리에 따르겠다는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독자들은 또 “너의 안부를 묻고 가는”에 나오는 ‘너’는 어떤 존재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나무벤치’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만 결국 이 시를 읽는 ‘우리’로 확대되어 읽힐 것입니다.
이 시는 평이한 어휘와 구조의 시이지만 시가 담고 있는 주제는 우주적 질서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여기서 하나 묻습니다. 이 시 마지막 “먼 산을 보고 싶다” 에서 시인은 “보고 있다”가 아니고 “보고 싶다”라고 했을까요?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하면서 오만과 탐욕으로 한 생을 보내지만 마지막은 ‘공허’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봉무동 단산지 대구 시민들의 휴식 공간 중의 일부분이죠.
이곳에서 지는 석양을 벤치에 앉아 글쓰시는 김환식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해질 녘
사람 뜸한 공원
나무벤치를 보면 지독한 고독을 떠올립니다
감사히 읽습니다
봉무동 단산지
한 번 갔던 곳이네요.
우주적 질서를 일깨워 주는
좋은 글 감사히 읽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회원님들 뵙습니다.
구석본 주간님 덕분에, 졸시 안부로 인사를 대신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분명 시평은 구주간님께서 쓰신 듯....
어쩜 제 생각 속을
한동안 여행하고 돌아가신 듯 합니다.
단산지는 저와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 사이입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날이나
시간이 저를 옥죄는 날은, 선약을 지우고도 다녀오는 곳입니다.
단산지 둘레길을 돌다가, 가끔은 나무벤치에 앉아
그리운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구요.
뒷산 언덕길을 걸으며, 낙엽들의 하소연도 들어주기도 하구요.
또한, 시인부락의 제호는 제가 작명을 했는데....ㅎ
날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인부락의 태동과 함께하였기에
풋풋한 보람과 기쁨을 누려보기도 합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구석본 주간님을 비롯한 시인부락 가족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김환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