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자족(自足)」에 대한 평
김병래의 「자족(自足)」은 아주 평범한 목부의 일상에서 뜻밖의 풍요와 행복을 발견하는 밝고 유쾌한 시조입니다. 제목인 ‘자족(自足)’의 철학을 무겁게 설명하지 않고, 코스모스를 ‘귀빈을 맞이하는 소녀들’로 바라보는 상상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준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1. 코스모스의 의인화가 아름답다
첫수의
길가에 핀 코스모스
영접 나온 소녀들 같다
는 매우 친근하면서도 정감 있는 이미지입니다.
길가에 줄지어 핀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하는 소녀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자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는 뒤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말합니다.
소들이나 돌보는
목부일이 고작인데
즉, 현실의 자신은 특별한 신분이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소를 돌보는 목부일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평범함과 앞부분의 ‘영접’이 만나면서 작품의 재미가 생깁니다.
2. ‘고작인데’가 만들어 내는 반전
이 작품의 중심은 바로 다음과 같은 대비에 있습니다.
현실의 나는 → 소들이나 돌보는 목부
그러나
자연 속의 나는 → 날마다 귀빈 대접을 받는 사람
이 대비가 시조의 해학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 ‘고작인데’에는 자신을 낮추는 듯한 겸손과 소박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장에서는 갑자기 상황이 뒤집힙니다.
아 글쎄, 나는 날마다
귀빈 대접 받는다니까
여기서 「자족」은 단순한 자연예찬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시조가 됩니다.
돈이나 권력, 사회적 지위가 없어도 자연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매일의 길이 축제이고, 길가의 꽃조차 자신을 반겨주는 귀빈 영접단이 됩니다.
3. ‘자족’의 철학을 잘 살린 작품
자족(自足)이란 흔히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스스로 충족을 느끼는 삶을 말합니다.
이 시의 화자는 객관적으로 보면 평범합니다.
소를 돌보고, 들길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길가의 코스모스가 그냥 꽃이 아닙니다.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소녀들’입니다. 따라서 그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 작품의 철학적 핵심입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세계를 얼마나 풍요롭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4. 종장의 구어체가 주는 생동감
아 글쎄, 나는 날마다
귀빈 대접 받는다니까
이 부분은 상당히 구어적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앞부분이 자연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분위기라면, 마지막은 누군가에게 자랑하듯 말을 건네는 느낌입니다. ‘아 글쎄’와 ‘-다니까’가 작품에 인간적인 친근함과 해학을 더합니다.
다만 정통 시조의 단정하고 절제된 어조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말맛이 강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족」이라는 작품의 밝고 소탈한 성격에는 잘 어울립니다.
종합 평가
「자족」은 큰 철학을 작은 일상 속에서 발견한 시조입니다. 목부의 평범한 삶과 코스모스의 아름다운 환영을 대비시켜,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귀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이 작품의 미덕은 자족을 교훈으로 설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길가의 코스모스를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소녀들로 바라보는 한 장면만으로 자족의 삶을 보여 줍니다.
한마디로 평한다면,
「자족」은 가난하거나 평범한 삶도 바라보는 눈에 따라 날마다 ‘귀빈 대접’을 받는 풍요로운 삶이 될 수 있음을, 해학과 서정으로 표현한 소박하고 건강한 시조입니다.
특히 ‘소들이나 돌보는 목부’가 ‘날마다 귀빈 대접을 받는다’는 역설적 반전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