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긍휼히(merciful) 여기는 자의 복
마태복음 5:7
긍휼히(merciful)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로마서 9장15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라고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긍휼'이라는 말은 '사랑'과 '동정'이 어우러진 말입니다. 긍휼한 마음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는 다릅니다. 이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긍휼을 베푼 가장 대표적인 예가 누가복음 10장25-37절에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보며 불쌍한 마음이 생겨서 일차적으로 감정적으로 돌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끝까지 즉 그가 회복될 때까지 그를 돌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한 마음입니다. 감정적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어느 정도 돌보다 그만 두는 것은 긍휼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듯이 실천(행함)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4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8장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가족이나 이웃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지 않고 용서하지 못하며 성내며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이 있다면 전도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 주위에 있는 죄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죄는 밉지만, 죄인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가운데 들어가더라도 주님의 긍휼함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25편 6-7절을 보면, 긍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즉 긍휼의 근원지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소시(my youth)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여기에 쓰인 '긍휼히'라는 헬라어 '엘레에몬(ἐλεήμων)'은 '긍휼히 여기다' '동정하다' 등의 뜻을 가진 동사 '엘레에오(ἐλεέω)'에서 나온 형용사이며 '엘레에오'는 '긍휼'이라는 중성명사 '엘레오스(ἔλεος)'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엘레오스(ἔλεος)'라는 단어는 비참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친절함과 선함을 뜻하는 말로 그들을 돕고싶은 마음과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긍휼'에 대하여 3가지로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며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긍휼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자비하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신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4)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은 마지막 심판날에 심판주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충성을 다한 주님의 일꾼들을 구원해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4-7)
셋째로 인간의 긍휼은 이세상에서 사는 동안 긍휼이라는 선을 베푸는 훈련을 해야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긍휼을 어떻게 베풀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긍휼의 대상은 한정되어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의 종들과 가난한 사람과 고아와 과부와 가족이 없는 이들을 돌보는 것을 원하시며 가족과 이웃과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며 긍휼을 베풀기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긍휼의 마음이며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주기도문을 결코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면서 주기도문을 습관적으로 외우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미안하다" 또는 "잘못했다"라고 해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그 마음 속에는 지옥불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결코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긍휼한 마음은 마음이 가난하여 오직 주님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주님의 법을 어긴 것이 생각나서 애통하며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잠도 자지 못하고 눈물로 회개하는 가운데 주님의 용서하심을 받고 위로를 받아 회복되므로 그의 강퍅하고 딱딱하게 굳어진 상처 투성이였던 마음이 예수님처럼 온유한 마음이 되어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에 나올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천국이 없는 사람은 결코 긍휼한 마음이나 온유한 마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이 없고 지옥불이 마음 속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밖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것은 매우 뜨겁습니다. 그 누구도 끌 수 없는 것이 분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긍휼함이 없을 때 나오는 것이 바로 분노입니다.
특히 분노를 유발시키는 것들 중에 질투는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불입니다. 스바냐 1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보며 분노하시며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는데, 그 분노가 질투에서 나온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스바냐 1장18절을 보면 "질투의 불"이라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습 3:8)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자와 분노를 쏟아붓는 자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따라서 긍휼과 분노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분노를 쏟아붓는 그 순간에는 긍휼함이나 동정심은 이미 사라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를 낼 상대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멸하기로 작정한 상대를 말하며, 긍휼을 베풀며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위하여 오래 참고 관용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로마서 9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을 보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손에 의해 빚어지는 토기와 같은 우리를 비유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21-26)
그러므로 하나님꼐서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 긍휼함과 인자하심을 따라 우리도 서로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도 긍휼을 베푸시지만, 남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돗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0-32)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천국을 만들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아직도 너무 어린아이와 같아서 자꾸만 자기만 봐달라고 자기 주장만 하면서 칭얼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하고 분을 내는 것이고 또한 다른 이의 사역을 훼방하는 것일 수 있으므로 그러한 모든 악을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미워하고 싸우지 말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을 이해하며 용서해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역시 나를 이해하며 불쌍히 여기며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옆에 있는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태도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를 나타내기 떄문입니다. 빛은 밝을 수밖에 없고, 어둠은 어두울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밝아질 수 없고, 빛이 아무리 어두워지려고 해도 밝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빛의 자녀로서 오늘도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을만한 조건이 없는 저에게도 긍휼함을 베풀어주셔서 주님을 믿게 하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님의 일을 하도록 저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어떠한 행위를 해서 주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저의 의로움과 상관없이 주께서 저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저의 의로움을 보고 선택하셨다면, 아마 저는 선택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으로 저를 선택하여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를 진노의 그릇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도 저는 가족과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하고 자주 화를 내며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참아주신 것은 기억하지도 못하고, 저는 다른 이들이 저와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른 것을 참지 못해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뜻에 따라주지 않으면 저를 사랑하지 않고 저를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어리석음이었을 뿐이며 제 생각과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저의 어린 생각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성한 분량으로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라셔서 아브라함을 25년간 훈련시키신 것처럼 지금도 저를 이끌고 계시는데, 저는 아직도 너무 어리면서도 마치 큰 믿음이 있는 것처럼 제 주장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저를 그래도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계시니 제가 어찌 하나님 아버지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사랑과 긍휼함을 받은 제가 주님 이외의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설사 부모님이나 자녀가 저를 힘들게 할지라도 그들을 통해 제가 실망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에게는 오직 주님 한 분만 계시면 되는데, 육을 입고 살기 때문에 자꾸만 실망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실망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제 주위에 주신 가족이나 이웃들은 오직 저에게 긍휼을 베풀며 용서를 배우라고 주신 지체들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주께서 저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그들을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열심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오늘도 저에게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셔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베풀며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