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무나무
유은주
“오랫동안 함께 하기 위해서니까 네가 이해해 줘.”
용서를 구하고 야무지게 가위질을 해버렸다. 순이 잘려 나간 자리에 눈물 같은 수액이 흘러내린다.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도 끄떡없다는 듯 눈부시게 하얀 수액이 상처를 감싼다. 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 나무가 무성한 잎들을 피워내며 하늘에 닿을 듯 자랐다.
엄마는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늘 예쁜 꽃들이 가득했다. 이웃들이 꽃구경을 핑계 삼아 모이는 날이면 사람 사는 향기가 활짝 열린 현관 밖으로 퍼지곤 했다. 화초 가운데서도 엄마는 고무나무를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했다. 틈만 나면 잎을 닦아 반들반들 윤기가 돌았다. 꽃도 피지 않는 고무나무를 엄마는 왜 그리도 사랑했을까.
지병을 앓던 엄마가 꽃이 만발하던 화창한 5월에 하늘로 가셨다. 살뜰히 가꾸었던 화초들은 가까운 이웃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고무나무는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좀처럼 꽃이 피지 않는 화초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남은 것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고무나무 화분 하나였다. 틈날 때마다 남겨진 고무나무를 매만지며 얼굴을 묻었다. 달콤한 엄마의 살냄새가 어딘가에 남아 있을듯했다. 한없이 다정하던 아버지는 웃음을 잊어버리셨다. 마치 멈춰버린 벽시계 같았다.
싫다고 휘젓는 손을 억지로 끌어 동네 노인회관에 모셔가 등록했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점심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와의 추억이 가득한 공간을 한시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싶어서 간곡히 달래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식의 욕심이라고 침묵으로 알려주실 뿐이었다. 간식거리를 들고 회관으로 찾아가 동무들과 어울리는 아버지를 가끔 보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아버지는 마치 엄마가 돌아온 것처럼 고무나무 잎을 정성껏 닦았다. 남의 손을 빌려 생활하시면서도 고무나무는 손수 보살폈다. 집안 비좁게 화분을 자꾸 들인다고 불평하던 아버지가 엄마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 고무나무를 돌보셨다. 그런 아버지를 통해 나는 엄마를 만난다. “식물도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이렇게 쑥쑥 잘 큰단다. 그러니 우리 딸은 얼마나 예쁘게 잘 자랄꼬.” 아버지가 종종 하는 말도 생전의 엄마가 하던 말이다. 불편한 몸으로 달걀말이와 어묵볶음을 차려낸 밥상에 나를 앉혀놓고 찬은 없지만 많이 먹으라고 말씀하실 때면 어쩜 저리 똑같을까 싶었다. 어질고 정 많은 아버지도 8개월 만에 엄마를 따라가셨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변형일지도 모른다. 죽은 육신은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반복할 뿐 존재 자체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으로 만나서 이승의 삶을 함께하는 동안 우리는 인생의 동무가 되고 유전으로 물려받아 내가 된다. 조상들은 그렇게 후세에 함께 사는 것이리라. 그러니 무로 돌아간다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되어 남는 것이 아닐까. 떨어진 낙엽이 흙이 되고 생명을 틔워 다시 생장하는 것이 이런 이치라고 생각하면 슬픔도 견딜 수 있었다.
고무나무는 분갈이와 이사를 겪는 동안 성장을 멈추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 뒤 혼자 남겨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에 고무나무와 단둘이 남겨진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의자에 앉아 가끔 고무나무 잎을 닦았다. 혼잣말로 흘리던 몇 마디가 조금씩 늘어났다. 고무나무가 나의 좋은 말벗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 빨래를 널다가 깜짝 놀랐다. 고무나무 순이 붉고 뾰족한 입술을 빼꼼 내밀어 인사를 건네 왔다. 그리고 며칠 뒤 보드랍게 피워낸 연두색 잎을 날개처럼 활짝 펼쳤다. 그 고운 초록빛에 나는 반해 버렸다. 오랜 침묵을 깨고 갑자기 일어난 변화가 기특해서 자꾸 눈길이 갔다. 갑옷처럼 두터워진 초록 잎으로 비바람을 씩씩하게 막아내었다. 그러다 어느덧 노랗게 물들어 가볍게 떨어졌다.
고무나무 한 그루가 작은 화분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숭고했다. 마치 너도 나처럼 기운을 내라고, 이렇게 날개를 펼쳐 보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다. 혼자 남겨진 딸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무나무는 어느새 말벗에서 스승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꺾은 가지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물컵에 담가놓았다. 손톱처럼 자랐을 즘에 잘라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아서 다 자란 나무를 잘라내야 했다. 뜻밖에도 잘린 가지 끝에서 수염처럼 하얀 뿌리가 빽빽하게 자라 나오더니 잎들을 피워내었다. 상실 속에서도 견뎌내야 하고, 고통 속에서도 정착해야 한다는 것을 마치 가르치기라도 하려는 듯이.
볕 좋은 날 창가에 앉아 고무나무 잎을 정성스레 닦는다. 세상살이에 부대끼다가 상처가 깊은 날에는 나도 고무나무처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용기를 내 보리라 마음먹는다. 상처 난 자리를 메꾼 옹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처럼만 버티면 된다고, 옹이가 눈을 부릅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