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을 키우는 것은
모두를 위한 일이다;
이는 신나는 여정이다
(부활제5주일2024.4,28)
사도 9:26-31; 1 요한3:18-24; 요한 15:1-8
지난 세기의 뛰어난 신학자이셨던
칼 라너 신부님Father Karl
Rahner께서는 “미래의 독실한
그리스도교 교인은 신비주의자가
될 것이다. 즉 무언가를 체험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그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라고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신부님의 이런 말씀은 우리가
삶에서 하느님의 존재와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지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의 말씀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외부세계에
의존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확정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충분하지
못합니다.
– 즉 우리는 이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예수께서 사용하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자신과의 하나의 가까운 관계 속으로
이끌어 들이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갈망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가 됩니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말씀은 바로 하느님을
경험해볼 수 있는 초대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거의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 추구하고 찾으며 갈망하면서
-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 즉 현재 우리가
있는 곳 너머의 무엇인가에 대한
경험에 이끌려서 항상 무엇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의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좀처럼 안정을 취하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내면에는 결코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불, 에너지,
갈망이 도사리고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를 안절부절못하게
이끄는 것은 사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갈망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우리의 갈망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갈망은 많은 사람들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끌어 주게
됩니다. 그런 갈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은 기쁨과 평화를 위해
모든 잘못된 장소를 뒤지고,
종종 아픈 상처를 입기도 하다가,
결국은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
공허함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깥 저자거리에서
하느님을 찾아나서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하느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의 많은 요소들이
우리의 영적인 여정을 방해합니다.
우리의 감각은 강렬하고 지속적인
음속과 시각적인 충격에 의해
무디어지고 무디어집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생산하고,
성취하고, 소유하려는 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영적인 현실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에 대한 분석과
통제를 강조하는 능동적인 의식
양식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 즉 우리는
질서와 예측 가능성, 그리고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능동적인 의식 양식은 그 자체의
관심사에 따라 우리의 인식능력을
제한하기도 한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다른 의식 모드가 있는데, 그런 의식
모드는 수용 모드입니다. 의식의
수용 모드가 바로 우리의 인식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그런 수용 모드입니다.
의식의 수용 모드는 자기 포기, 직관,
그리고 집착하지 않고 놓아주는 것과
같은 것들과 연관되는 모드입니다.
의식의 수용 모드는 의식(儀式)의
세계와 이야기 속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의식입니다.
의식의 수용 모드는 의식과 생각을
자제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모드입니다. 그러나 의식의 수용
모드를 통해서 우리는 기도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되고 하느님의 존재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 존재의 깊은 내면에서 하느님과
접촉하게 되는 진정한 기도가 의식의
수요 모드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연유로 인하여 황야,
혹은 사막의 체험이 – 즉 피정,
혼자만의 시간, 순례 등의 체험이
-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매우 가치 있는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신비,
경외,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개방감을 발전 시킬 수 있게 되며,
그런 경험은 우리를 하느님의 현존
앞에 대령 시켜 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버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정신으로 현재에 집중하여
하느님 현존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선하심과 너무나 많은 것을
받은 것에 대한 강한 인식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는 것도 이러한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수용적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그 만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스스로를
계시하여 보여 주시도록 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
가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
드리자면, 우리는 예수님의 행위에 대한
동기에 더 집중하기 시작할 수도
있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 중 많은 부분이
만족에 대한 욕구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상황에
만족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동기를
바꾸도록 하라는 성령의 촉구를
느끼게 되며, 심지어는 예수께서
당신의 행동에 대해 가지고 계셨던
것과 같은 동기를 가지게 되기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더욱 더 가까이
다가오라는 주님의 초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어렵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초대의 말씀은 들리는
것만큼 신비롭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고 하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수용적인
의식 방식에 집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음악을 받아들이거나,
우리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놓아주거나, 직관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알게 되거나,
시를 읽는 것을 즐기는 것 등에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탐험하는 것은 신나는
여행입니다. 그 여정의 과정에서
우리는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하느님께서는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첫댓글 하느님의 현존안에서~~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영.육간 건강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신부님먼곳에서 연락주셔서고맙읍니다~~~♡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기
자유 ㆍ 평화 ㆍ
감사합니다~💕
신부님♡
이젠 꽃들도 활짝 예쁘게
피고 주변이 초록초록하네요.
우리 갔을때는 안 그랬는데요.
감사합니다.신부님♡
항상 좋으신 말씀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멘.아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즐건주말보내세요~^^**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4월28일]
📖말씀: 1요한 3,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 묵상
성령의 역사하심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이미 내 안에 오셨고 언제나 함께 하시며 자비와 은총을 부어 주셨는데, 그 사랑을 받고도 증거하지 못하면 성령 강림의 역사는 내 안에서 끝나고 맙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내 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더 깊이 엎드려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깊이 기도하는 사람 안에 함께 하십니다.
🕯기도
주님, 제 모난 마음을 당신께서 친히 깎아 주시어 주님의 영적 집을 짓는데 주춧돌이 되게하소서.
💒실천해보기
•기도하며 성령께 간구하기
♧복음화발전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