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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9 ~ 28. 지리산 순례
2021. 4. 19. 지리산 순례 1일 차. 월
학교에 모여서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작년에 기억상으론 상당히 힘들었던 것 같아서 상당히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았다. 가방이 가벼웠던 건지, 아니면 몸이 순례하던 느낌을 기억하는지는 몰라도 꽤나 가볍게 걸어왔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지쳐있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버스에서 잠들지 않은 걸 보면 기력을 많이 쓰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구례까지 이동했다. 거기서부터 갑자기 목이 빠른 속도로 말라오기 시작했다. 한 번 쉴 때 물 한 모금만 마시면 되던 게 쉬면서 두세 모금을 마시고, 걸으면서까지 계속 목이 말랐다. 나만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평소엔 물을 별로 마시지 않던 친구도 목이 마른다며 물을 많이 마셨다. 아마 공기가 건조했거나 땀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목이 쩍쩍 갈라지는 것 같고 숨 쉴 때마다. 입과 목으로 숨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나아갈 힘을 겨우겨우 내며 숙소까지 도착했다. 원래 가려고 했던 작년에 갔던 숙소가 폐업해서 다른 숙소를 이용했다. 짐을 풀자마자 밥을 먹고 마무리 모임을 했다.
2021. 4. 20. 지리산 순례 2일 차. 화
아침에 눈이 번쩍 떠졌다. 밖이 워낙 밝아서 늦잠 잔 줄 알았지만, 시계를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잠시 누워 있다 밥당을 깨웠다. 자연스레 일어나서 그런지 피곤하지 않아서 기운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걷기 시작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올 거라 우리 모둠은 돌아가면서 가방을 메기로 했다. 출발할 때 가방을 메지 않아서 편하게 걸었다. 이날은 목도 안 말랐고 걷는 것도 빠르게 훅훅 걷는 느낌이라서 ‘오늘은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어제 걸었던 동천 길로 걸어갔다. 빠르게 걸어가 점심을 먹고 왔던 길로 다시 걸어갔다. 그때부턴 내가 가방을 멨다. 우리가 다시 출발했을 땐 중천에 뜬 해와 뜨거워진 날 때문인지 전날처럼 목이 마르고 탈수 증세가 났다. 목은 점점 타들어 가고 돌아가는 길은 내가 걸어온 길에 두세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바짝 마른 목에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으로 계속해서 캑캑거리며 겨우 숙소까지 도착했다. 시원한 물이 그렇게 달았는지, 쉬는 게 그렇게 좋은 거였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안 힘들 땐 그렇게 짧았던 길이 힘들면 도착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 보일 수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2021. 4. 21. 지리산 순례 3일 차. 수
아침을 먹고 노고단으로 출발했다. 사람이 꽤 있었기에 모둠별로 나눠서 걸어갔다. 도로를 따라 걸어 천은사로 갔다. 천은사로 가는 길이 도로라도 가파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르기 쉽고 편했다. 천은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산으로 가는 길이 출입금지여서 의논 끝에 도로로 가기로 했다. 선두로 서서 그런지 부담감이 들었다. 그늘이 없어서 쉴 곳도 못 찾았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걸으며 열심히 찾았다. 겨우 쉴 곳을 찾아 한숨 돌릴 때는 정말 행복했다. 다시 출발했을 때 먼저 앞서가던 아몽이 산으로 가는 길 앞에 계셨다. 산으로 얼마 올라가지 않아 계곡이 있었다. 오랜만에 계곡물을 만나니 기분이 좋았고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을 마시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시원한 계곡물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물도 넉넉히 마시니 아까 걸었던 힘든 길은 모두 잊혀졌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점점 길이 아닌 것 같은 길로 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낙엽이 쌓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가면 갈수록 아무도 다니지 않은 것 같은 길이 나왔다. 결국, 잘못된 길에 들어섰고 은지가 보았다는 길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그 길 역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니었고 결국 노고단으로 가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힘들게 올라간 길이 잘못된 길이란 걸 알고 실망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땐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날 순례의 주제인 ‘탐험과 모험’이 아주 확실하게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탐험과 모험에는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온 나의 마음은 아주 가벼웠다.
2021. 4. 22. 지리산 순례 4일 차. 목
일어났을 때 이상하게 몸이 아프고 피곤했다.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 모두를 깨우고 아침 준비를 했다. 다른 숙소로 옮겨야 하기에 3일 동안 머문 숙소를 정리하고 짐을 싼 후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했다. 몸도 아픈데 산을 넘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걷기 시작하자 기운이 났다.
산 앞에 섰을 때 잠시 무서워졌다. 높고 가파른 산을 오른다는 생각에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갈수록 발걸음이 느려졌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갈수록 빨리 가는 것 같은데 나만 계속 뒤처졌다. 겨우겨우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기운이 났다. 갈수록 힘이 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운이 나서 신기했다. 우리가 쉴 정자에 도착했을 땐 처음 출발했을 때처럼 쌩쌩해져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땐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는 다르게 몸도 개운하고 즐거운 기분이었다.
2021. 4. 23. 지리산 순례 5일 차. 금
잠을 잘 자지 못해서 피곤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짐을 싸고 아침을 먹었다. 양이 부족해서 배가 고팠지만 참았다. 밥을 다 먹고 걷기 위해 준비를 했다. 전날보다 조금 더 힘들다고 해서 살짝 겁을 먹었지만, 언제나처럼 힘차게 출발했다. 전날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오르막길이 많았지만, 전날 걸었던 것을 생각하며 열심히 걸었다. 중반부부터 전날과 비슷한 길이 이어져 있어서 그래도 조금은 덜 힘들었다. 이날은 전날과는 다르게 일부러 앞 사람들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고 내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걸으니 확실히 부담감이 적었고 훨씬 즐거웠다. 내려오는 길에 너무 늦게 숙소에 도착하진 않을지 잠시 걱정했다. 산을 오르는 시간이 꽤 걸렸기 때문에 내려오는 시간도 그만큼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 한 것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했다. 이제 슬슬 내가 알던 그 순례의 느낌이 난다.
2021. 4. 24. 지리산 순례 6일 차. 토
일어나긴 했지만, 왠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누워 있었던 것 같은데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몸을 일으켜 이불을 갰다. 너무 오래 잤는지 몽롱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몸이 찌뿌둥했다.
배가 고픈 사람들은 누룽지를 먹자고 하여 세수를 하고 갔다. 하지만 이미 누룽지는 다 비어 있었고 남은 건 빈 그릇뿐이었다, 약간 허기가 졌지만 참았다. 남는 시간 동안 정신없이 놀다 보니 어느새 허기는 살아져 있었다. 놀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갔다. 쉬는 날이니 각자 밖에서 사 먹으라는 말에 따라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먹은 것 같다. 간식을 하나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할 것 없이 방에서 뒹굴거리다 아침에 오신 두더지와 순례 중 내가 집중에서 생각할 한 가지 화두와 질문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지만, 머리도 살짝 아프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얘기가 끝나고 다시 신나게 놀았다. 정말 놀고먹기만 한 날이었다. 뭔가 허전하고 이러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이런 날도 가끔은 필요한 것 같다.
2021. 4. 25. 지리산 순례 7일 차. 일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이 누룽지 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먹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가 고팠고, 그만큼 누룽지가 맛있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밥을 먹고 여유롭게 준비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짐을 모두 꺼내 놓아서 가방이 무척 거벼웠다. 걷기 시작했을 때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잠시 쉬다 구룡 폭포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선두로 섰지만 그다지 큰 부담은 없었다. 구룡 폭포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 때 폭포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더 가야 할지, 아몽이 올 때까지 기다릴지 고민했다. 하지만 육모정 앞까진 괜찮을 것 같아서 계속 걸어갔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했다. 한숨 돌린 후 그 밑에 있는 강가 바위 위에서 밥을 먹었다. 잠시 쉰 후 백일장을 열었다. 한 시간 동안 주제에 맞춰 글을 쓰고 발표했다. 글 쓰는 것이라기에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글이 잘 써졌다. 발표도 떨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생각한 것보다 재미있었고 글 쓰는 것도 평소보다 더 유쾌하게 쓸 수 있었다. 백일장을 끝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도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서 놀랐다. 전체적으로 하루의 기분이 머리가 살짝 아팠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2021. 4. 26. 지리산 순례 8일 차. 월
이날은 오래 걸어야 하기에 6시에 기상했다. 다행히 피곤하진 않았지만,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적응이 안 됐는지 몸은 조금 힘든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아침 준비를 했다. 아침은 누룽지였고, 잘 들어가진 않았지만 배고픔을 방지해 억지로라도 먹었다. 숙소를 정리하고 방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로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산으로 올라가서 뒤처지고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래도 천천히 산을 넘었다. 계속 산일 줄 알았는데 조금 걸으니 도로로 내려왔다. 길을 몇 번 잘못 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발이 아프긴 했지만, 전에 걸었던 것보다 나았고,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참으며 걸었다.
아침도 일찍 먹었기에 저녁도 일찍 먹었다. 한식 뷔페 집에 갔는데 막 정리를 하고 계셨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치운 걸 도로 가져다 놓아 주시고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편하게 있게 해 주셨다. 밥도 맛있고 주인아저씨도 친절하셔서 변하게 먹고 나올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우리가 잘 민박집을 구했다. 주변에 있는 민박집을 찾아 한 모둠씩 들어 가 보았다. 하지만 몇몇 민박집은 문을 닫았고, 그 외 모든 민박집은 많은 인원을 재워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모이기로 한 다리로 갔다. 다리에 도착했을 때 어떤 아저씨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모텔 하나를 알려 주셨다. 기대하면서 걸어갔지만 이미 몇 번이나 지나쳐 온 곳이라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쉴 곳을 찾았다는 생각과 아저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실망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2021. 4. 27. 지리산 순례 9일 차. 화
일어나서 남은 시간에 일지 정리를 했다. 잠시 후 아침으로 빵을 먹고 실상사로 걸어갔다. 걸은 지 별로 되지 않았는데 버럭 네 집이 있었다. 땅만 보고 걸어가던 나는 집이 있는지도 보지 못했지만, 흑진주가 우리를 불러 세우셨다. 버럭 네 집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 흑진주가 과일도 잘라 주시고 마실 것도 주셨다. 잠시 쉬고 인사를 한 후 다시 출발했다. 그 뒤론 대부분 산이었다. 오르막길이라 무척 힘들었는데 다행히 지호가 도와준 덕에 조금 덜 힘들게 올라왔다. 산에서 내려와 도로를 지나니 실상사가 나왔다. 그곳에서 도법 스님을 뵈었다. 질문도 하고 이야기도 들었다. 그 중 ‘공짜라는 건 중요하지만 무서운 것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도법 스님과 별로 얘기를 나눈 것 같지 않은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스님과 인사를 나눈 후 실상사를 구경했다. 오래된 절이어서 그런지 옛날 것들이 많이 있었다. 실상사에서 나와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씻고 쉬고 있을 때 버럭과 흑진주가 오셨다. 인사를 나누고 사 오신 간식도 먹었다.
순례 말이어서 그런지 조금 어벙벙한 하루였다. 하루 동안 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날이었다. 피곤하고 조금 얼빠진 날이었던 것 같다.
2021. 4. 28. 지리산 순례 끝. 수
일어나서 짐 정리를 하고 첫차를 타고 남원역으로 갔다. 사람이 많아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일어나 있었는데 멀미가 나서 힘들었다. 자리가 나서 앉았을 때는 나만 앉아있는 느낌이어서 왠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남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순천으로 왔다. 오랜만에 순천에 발을 디디니 너무 감격스럽고 들떴다. 이젠 거의 다 끝났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순천역 근처에서 밥을 먹고 학교로 걸어갔다. 눈앞에 익숙한 길이 이어져 있으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 가까워지는 걸 보니 얼른 가고 싶었고, 뛰어라도 가고 싶었다. 언덕 하나만 넘으면 학교가 보이는 곳에 왔을 때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열심히 걸어 학교에 도착했을 때의 그 꿈만 같은 느낌은 몇 번을 느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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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 내 생각에 가장 힘들어 하는 사람들.
왕따당한 사람들
없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아서, 어쩌면 내 주변에 있을 수도 있는 그 사람들. 많은 사람이 지켜보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사람들. ‘만약 옆에 있어서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웃어서 죽음을 면하면 좋을 텐데.’ 하고 가끔 원하곤 한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 난 슬픔과 외로움을 안다. 만약 정말로 그 사람이 나의 곁에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그 사람을 다독여 줄 것이다.
첫댓글 순례이야기 잘 읽었어요^^
생각해보면 모든 순간이 선택이고 하루하루가 탐험과 모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