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찰스 램(Charles Lamb, 1775~1834) 영국의 수필가. 필명 ‘엘리아(Elia)’를 사용했다.
런던에서 태어나 크라이스트 하스피털 학교에서 공부했다. 정신질환을 앓던 누이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을 겪은 뒤, 자신에게도 같은 병이 유전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평생 독신으로 누이를 돌보며 살았다.
대표작인 『엘리아 수필집』(Essays of Elia)은 인간과 일상을 따뜻한 유머와 깊은 통찰로 그려낸 영국 수필의 걸작이자 수필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수도에서 거지가 사라지는 것을 한탄함 / 찰스 램
모든 것을 일소(一掃)해버리겠다는 사회 혁신의 비(篦, 빗자루), 즉 시대의 온갖 악습을 뿌리뽑겠다는 오직 한 가지 근대적 알키데스의 곤봉이 수도에서 거지라는 괴물의 마지막 필령대는 누더기 자락을 근절시키고자 한껏 들어올려져 있다. 거지 보따리, 돈주머니, 가방, 그리고 지팡이, 개, 게다가 목발 같은 이러한 모든 짐을 끌고 다니는 거지 떼들이 모두 이번 제11차 박해를 받으며 그들의 빈민가에서 매우 서둘러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네거리에서, 길거리 구석구석에서, 또한 골목으로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터줏대감 거지들이 ‘탄식을 발하면서’ 사라져갔다.
이 한창 진행 중인 대규모 작업, 다시 말해서 안 해도 좋을 탐탁지 못한 박멸 운동, 혹은 한 종족에게 선포된 ‘박멸 전쟁’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적잖은 이점을 이 거지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지들이야말로 빈민의 제일 오래되고 또 제일 명예로운 형태다. 그들이 하는 호소는 교구 또는 사회 단체의 동포들이나 혹은 그 부류 사람들의 유별난 기분이나 변덕에 맞추어 애원하기보다는 우리 인간의 공통된 박애심을 향한 것이어서 고귀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겐 미워할 만한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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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극빈자, 가난뱅이란 말은 모두 동정의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동정에는 멸시의 뜻이 섞여 있다. 거지에 대한 적절한 경멸이란 있을 수 없다. 가난이라는 것은 비교를 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가난의 각 단계는 그 '다음 단계에 있는 자'에 의해서 조롱받는 법이다. 그 쥐꼬리만 한 집세와 수입이라는 것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집계되어 헤아려진다. 재산깨나 있다고 해서 으스대는 것은 개가 다 웃을 노릇이다. 돈을 좀 모아 보겠다고 하는 가긍한 노력은 웃음을 자아낸다. 피차 상대방을 깔보는 친구들은 그것에 대해 자기의 조금 더 큰 돈주머니 무게를 저울질할 수 있다. 한 가난뱅이가 다른 가난뱅이를 길바닥에서 만나, 제 형편이 눈곱만큼쯤 나아졌다고 해서, 건방지게 지껄여대며 상대방에게 치욕감을 주는 동안 부자들은 그 곁을 지나치면서 양쪽을 다 비웃는다. 견주어보기 좋아하는 장사꾼이 그 아무리 몰염치하다 해도 거지를 모욕할 수는 없거니와, 거지와 돈주머니 무게를 대보려는 수작을 할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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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그것은 가난뱅이가 입기에는 남부끄러운 것이 되겠지만, 거지가 걸치면 예복이 되며, 직업의 품위 있는 휘장이 되고, 그 거지 생활의 보유권(保有權)이 되는 동시에, 그의 성장(盛裝)이며, 그것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한 벌의 정장이다. 거지는 결코 유행에 뒤떨어지는 일이 없거니와, 그 뒤를 쫓아가느라고 꼴사납게 절뚝거리는 일도 없다. 그는 또 궁정의 상복을 입도록 요청받는 일도 없다. 그리고 어느 누구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이, 오만가지 빛깔을 죄다 입을 수 있다. 그의 의복이라는 것은 퀘이커 교도의 복장보다도 변화가 없다. 거지란 외모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하늘 아래 단 하나의 존재이다. 세상의 흥망성쇠쯤 거지에겐 관여할 바 아니다. 그만이 홀로 언제까지고 한 군데 머물러 있다.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땅값이 어떻게 되든 상관할 바 아니다. 농사든 장사든 그 번영의 파동이 어찌되든 그와는 거리가 멀다. 최악의 경우라도 동냥 상대를 바꿔치기 하면 되는 것이니까. 또 누구의 보증인이 되어주어야 할 필요도 없다. 누구 하나 거지의 종교나 정견을 캐고들어 괴롭히는 일은 없다. 거지야말로 이 세상천지에서 유일한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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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 사기, 협잡 같은 심한 말에 움츠러들지 말라. 주라, 그리고는 묻지 마라. 그대가 가지고 있는 빵을 물 위에 던져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경우도 있으리라.
꾸며낸 불행이라고 해서 그대의 주머니 끈을 항상 졸라매 놓아서는 안 된다. 때때로 자선을 행하라. 가난한 자가 그대 앞에 찾아왔을 때(외관상으로만 그렇게 보일 경우), 그자가 도움을 얻고자 애원하는 구실로 그 명목을 대는 ‘나이 어린 일곱 명의 자식들’이 과연 있는지, 어떤지를 캐묻는 일 따위를 하지 말라. 반 페니를 아끼려고 탐탁지 않은 내막까지 미주알고주알 따지고 들 필요는 없다.
그를 믿는 것이 좋으리라. 설령 그가 하는 소리가 새빨간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일단 주라.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사칭한 자에게 베풀었다 하더라도(만약 그래서 괜찮다면) 그대가 빈곤한 독신자를 구제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그들이 표정을 꾸며가지고 치사하게 만드는 목소리로 다가오면, 배우라고 생각하라. 그대는 희극 배우가 이따위 꼴을 꾸미는 것을 구경하려고 돈을 치르고 보지만, 이들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한은, 과연 그들이 꾸며낸 것인지 진실인지를 확실히 가려낼 수가 없다.
찰스 램, 「수도에서 거지가 사라지는 것을 한탄함」(48~60쪽), 문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를 발췌·중략했습니다.
『찰스 램 수필선』, 찰스 램 지음 / 김기철 옮김 / 문예출판사 / 197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