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 감자』
삶은 감자, 삶이 잘 삶긴 감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난 하짓날, 요양원에 있는 고모를 만나러 나섰다. 오랜만이어선지 기차는 자꾸만 덜컹거렸다. 고모를 생각하면 감자가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 얄궂게도 우리는 요양원 면회실에서 찐 감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힘들었던 옛날 생각에 가슴 아려왔다.
고모는 핏덩이 같은 아들 하나만을 위해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청상으로 살아온 억척이었다. 열 살에 엄마를 여의고 외발자전거처럼 비틀거렸던 나는 한때 고모를 엄마처럼 붙들고 살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를 단단히 묶어준 건 가난이었다. 모두가 희망을 가꿀 때 우리는 감자밭으로 달려가야 했다. 도시의 변두리 뒷산 자락을 헐어 텃밭을 일궜고, 그곳에다 씨감자를 넣었다. 싹이 나고 잎이 난 모습이 대견해서 부지런히 호미질하며 북을 돋워 주었다. ‘더 커져라, 자꾸자꾸 커져라, 빨리빨리 커져라.’는 주문도 걸었다.
허기를 메우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던지 툭, 투득 감자 커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동네 아이들이 부르는 <감자꽃>* 노래를 들으며 밭고랑은 나날이 통통해졌다. 심은 대로 거두리란 뜻을 우리 가슴에 심고 싶었나 보다. 드디어 감자를 수확하는 날, 줄기를 잡고 힘껏 당기자 둥글둥글한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올라왔다. 끼니가 걱정이었던 집에 웬 축복인가,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서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감자 냄비를 통째로 받은 식구들의 마음도 따끈따끈해졌다. 삶이 삶은 감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감자가 땅속에서 묵묵히 제 몸을 키우듯 고모도 어떤 일이든 소리 없이 해내는 소박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포슬포슬 분이 난 감자를 먹고 앉았을 만큼 태평한 세월은 못 되었다. 사철 내내 감자만 먹고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달리 밑천이 없었던 고모는 보따리 장사에 나섰다. 시골 사람들은 물건 값 대신 농작물을 내놓기도 했다. 여름 감자는 유난히 무거웠지만, 허기를 메우기 위해서는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다. 오뉴월 무더위에 감자를 머리에 이고 팥죽 같은 땀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오던 고모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둥글둥글한 감자도 햇볕을 받으면 독이 생기듯, 외롭고 슬픈 생각이 들수록 더 부지런을 떠는 억척이 되었다고 했다.
고모부는 강직한 장교였다. 잘못을 저지른 부하를 훈계하다가, 도망치는 젊은 사병을 잡으려고 쫓아 달린 게 화근이었다. 부대 정문까지 통과한 사병이 장맛비로 출렁이는 강물 속으로 계속 달렸고, 고모부도 뒤따라 뛰어들었다가 탁류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다. 아무리 정의감이 강했다고 하더라도 가족을 생각해 어딘가에서 멈췄더라면 가정은 건사했으리라. 꽃다운 나이에 청상靑孀이 된 고모는 그리 아망스럽게 떠난 서방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세상에 위대하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을까만, 핏덩어리 아들이 ‘아비 없는 자식’이 될까 노심초사했다. 본디 감자처럼 둥글둥글했던 고모는 포슬포슬하게만 살 수는 없었다.
갓 중학생이 된 나도 여름방학에는 내 키만 한 지게를 지고 고모를 따르곤 했다. 어려서 흘린 땀은 두고두고 약이 된다며, 내 등을 토닥였어도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었던 가난은 넌더리가 났다. 아무리 운명이라 하더라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달리면 걷고 싶고, 걸으면 멈추고 싶고, 멈추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잠들면 계속 자고 싶어진다. 인간의 속성이란다. 하지만 계속 자다가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죽지 않으려면 깨어나야 했다. 깼으면 앉아야 했고, 앉았으면 일어서야 했고, 일어섰으면 걸어야 했고, 걸었으면 달려야 했다. 그게 내 운명이었다. 더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이제부턴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꿈같은 꿈이 있어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고흐의 그림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장식이 없는 얼룩진 벽, 거칠고 투박한 손, 일에 지쳐 피곤해진 표정들이 어둡고 칙칙한 농부의 가난한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그림은 옛날 우리들이 가난했던 시절의 자화상 같았다. 생전에 단 한 작품도 팔지 못했던 고흐는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자기 귀를 잘랐을까. 얄궂게도 그의 아픔이 우리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고모도 고흐처럼 꺾였으면 꺾였지, 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흙먼지 풀풀 날리던 신작로 길은 너무도 아득해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장삿길을 나설 때마다 머리에 인 보따리는 아들 몫으로, 손에 쥔 보따리는 친정집 조카 몫이라 여기며 걸었단다. 삶이 너무 무거워서 울고 싶었어도 울 힘조차 없었다고 했다. 이 사정 저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그리 생고생하느니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하라는 권유도 했지만, 친척들은 혹 재혼이라도 할까 봐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그들은 삶이 감자처럼 찌고, 굽고, 볶고, 으깨서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왜 몰랐을까. 고모는 설익은 감자로 배를 채웠을지언정 사람다운 지조는 끝까지 지켜냈다. 얼마나 속이 아렸을까?
결코 늙지 않을 것 같았던 고모는 어느새 고목을 닮아 있었다. 낙엽 지운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졌고, 내 얼굴 또한 단풍잎 닮아 불그스름해졌다. 멀리 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이 아려왔다. 변덕스럽기가 여름 날씨 같은 치매를 앓던 고모의 머릿속에선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던지, 아들을 곁에 두고도 연신 내 손을 쓰다듬으며 아들이 돌아왔다고 좋아했다.
얼마나 더 사실까, 내 목구멍은 뜨거운 감자를 삼킨 것처럼 뜨거웠다. (13.6)
• 이규석 수필집 『당신 어디야』, 「아린 감자」, 23쪽
『당신 어디야』 이규석 수필집, 맑은책, 2026. 6. 23.
첫댓글 감자 한 알에도 이렇게 깊은 통찰이 있을 수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오뉴월 무더위에 감자를 머리에 이고 팥죽 같은 땀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오던 고모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이 대목에서 '팥죽 같은 땀'은 어떤 것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림과 함께 수필을 읽으니 그 재미와 여운이 배가되는 듯합니다. 좋은 수필과 정성스러운 손길이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