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실 원고>
둘 혹은 하나 외 2편
엄창섭
회산(回山)의 낮은 산자락 휘도는
자유로워 감미로운 바람처럼
내밀한 언약 통신하던
맑고 빛난 감동의 느낌표(!)는.
새로운 항해 언약한 입맞춤에
대륙의 심장은 충격이다.
아득한 삶의 눈부신 뱃길은
아흐, 황홀해 현기증이다.
무념(無念)
사람아,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처럼
듣고 말하되 집착(執着)하지 말아라.
꽃과 편지
어둠 속에 수줍은 네 밝은 미소
청초한 꽃으로 피어나고,
천천히 커가는 만월(滿月)처럼
나뉨의 아픔은 깊이를 더하는데
가슴을 뛰게 하는 고운 눈망울은
새벽 산등성이로 날아오르는
물안개인 양 휘감는다.
끊임없는 세월의 격랑에
피곤한 일상의 항해는
안식(安息)의 닻을 내리고
심장이 뜨거운 눈부신 언약이다.
목숨처럼 떠받들며 지켜온 네 일념은
뜨락에 나려 앉은 영혼의 순결인 꽃눈,
신의 은총 같은 한 날의 축복이다.
<시작 노트 1>
1. 따뜻한 서정성과 담채색 수묵화
- 김장순의「자작나무의 방향계」시편 감상
아침 창가에서 김장순 시인의 시첩(詩帖)을 펼쳐 들면 ‘정결함과 순수함의 상징인 자작나무가 겨울 산의 적막감’에 조화로운 한 폭의 담채색(淡彩色) 수묵화로 클로즈업(close-up)된다. 그렇다. 그 자신의 대표 시편인「자작나무의 방향계」는 순수서정성의 비교적 호흡이 단조로운 6연 12행의 시적 구도처리의 결과물이다. 까닭에 “아무도 걷지 않은 눈밭 길이라도 함부로 걷지 말아라. 네가 남긴 발자국은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느니라.”라는 서산대사의「답설(踏雪)」을 새삼 헤아리지 않더라도 밝은 미래가 불투명한 시간대에서 “한해를 돌아보니/빈손이었다.”라는 화자의 담담한 술회(述懷)는 시선의 끝이 하나의 소실점을 찍는’ 시 심리의 현상이다.
또 한편 “살아온 날의 뒷길에는/푸른 빛 한 줄기/내일로 가는 방향계”는 오래된 기억의 잔상(殘像)을 스키마(schema)로 끄집어낼 것이다. 마치 ‘창조한 꽃의 사물화’로 명성을 얻은 미국의 여류화가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꽃은 작고, 들여다보는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라는 삶의 일상에서 “빈손이 하얗다.”라는 시적 감응(感應)은 잠시 멈춰 섬이 지극히 좋은 일임’을 분별한 행위이다. 차제에 “치악산 마른 숲에서/춥게 서 있는 자작나무 앞에/방향계가 멈추고 있다.”라는 일면에서 ‘풍향계가 아닌 방향계’의 그 가시화는 날(刃) 푸른 생명의 엄숙성을 가늠한 존재감으로 신선한 충격이다.
각론하고 “자작나무 숲은 영하 이십도를 부둥켜안고”에서 새삼 확증되는 시적 형사(形似)는 혹한 뒤 그만의 깊은 심상은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역설인 ‘그 신비스러운 동반자’와의 맞물림이다. 이처럼 치열한 삶의 일상에서 견고한 고뇌와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로서 시적 의미망을 결(結) 곱게 직조한 정신작업은 “흰 겨울과 하늘에/몸을 맡기고 있다.”라는 상황정리는 ‘눈 덮힌 산과 하늘의 구도처리’로 ‘불림(佛林)의 적막함’에 언희(pun)를 거부한 ‘자기만의 육성, 체취, 느낌’의 정감이기에 ‘오호라!’ 한껏 가슴을 저며줄 따름이다.
<시작 노트 2>
2. 삶의 일상과 황금찬 시인과의 감회
특히 지나쳐 온 삶에서 후백(后白) 황금찬(黃錦燦) 시인과의 감회는 남다르다. 일찍이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창립 126년의 역사를 지닌 필자가 출석하는 강릉중앙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황금찬 시인은 당시「중앙교회」와「강릉극장」을 중심으로 지역 학생의 ‘문학행사’를 이끌며 영동지역 문학의 맥을 이어가는「관동문학」(1958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같은 교회 출신인 이성교 교수와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사실도 그렇지만, 필자가 1967년 10월 ‘전국 율곡백일장대회’에서 (황금찬 시인 심사) 일반부 장원(문화공보부장관상)으로 입상하였고, 뒷날『關東文學』을 창간하고 13년간 회장을 역임한 일도 결코 우연일 수 없다.
또 한편 1991년 8월과 12월 2회에 걸쳐 ‘조병화, 박화목, 황금찬, 문효치, 엄창섭’의『추억 속의 山 바다 우리 모두 詩人들』및 ‘유안진, 황금찬, 성기조, 장윤우, 엄창섭’의『마음 하나 네게 보내면』과 같은「詩選」도 출간하였다. 까닭에 평생을 황금찬 시인이 일상의 가르침으로 문학에서 품격이 요청되듯 시 낭송 또한 시적 정취의 담백함을 지녀야 하기에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한「보리수 낭송회」와 그 연을 맺음도 무관치 않지만, 독서를 즐기지 않는 국민의 정서 순화와 서정시의 저변확대를 위해 시 낭송이 필요한 장르임’을 강조한 것은 못내 인상적이어서 기억 흔적에 남아있다.
그렇다. ‘한국문단의 성좌(星座)’ 황금찬 시인과 50년 남짓「한국문협, 기독교문인협회 세미나, 관동문학의 초청 강연, 심연수선양위원회, 청송문학회」의 각종 행사로 사적인 교분이 이어져 왔다. 특히 작고(作故) 1년 전인 2016년 10월, 성산면 주민회관에 초청한 날, 필자가 축사를 끝낸 후의 저녁 식탁에서 갈 앉은 음성으로 “엄선생! 여기가 병원이지요?”라던 그 물음에 일순간 가슴이 저며왔다. “오호라, 국민시인 황금찬 선생님!” 큰 생명나무로 우리 곁 버팀목이 되어주길 기도드린 일이 엊그제인데 지금 그분은 밤하늘의 성좌로 저토록 빛난다.
* 약력 : 강릉출생,『華虹詩壇』(1965) 발행인,『시문학』출신, 한국시문학 학회 및 김동명학회 회장, 관동대학교 대학원장
(총장대행)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학 명예교수, 한국기독교문협 고문, 월간『모던포엠』주간, 사) k 정나눔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