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큰 시숙님께서 아버님과 마지막 밤을 보내시고,
우리 모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병원으로 향합니다.
고운아빠와 시숙님들이 먼저 병원으로 가셨는데,
잠시 후 고운아빠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아버님이 오늘 돌아가실 것 같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보다 한숨이 먼저 퍽 하고 터져나오고..
자, 얼른 준비해서 가자.. 하면서 서둘러 병원으로 향합니다.
병원에 가보니, 어제보다 아버님이 훨씬 많이 숨이 차서 힘들어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의식은 아주 명료하시고..
곧 임종하실 거라는 것을 아는 우리 모두는
되도록 그 시간에 아버님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아 꼭 붙어 있다가도,
너무 많은 사람이 4인실에 있으니 붐비고 또 시끄럽고 그러다 아버님이 쉬이 피로하실까봐 걱정되어서
복도에 나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합니다.
점심 먹을 때가 되자,
"일단은 밥을 먹으러 다녀오라"는 고운아빠말에
병실에는 고운아빠와 큰형님만 남고,
다들 인근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서둘러 오라"는 고운아빠의 전화를 받고,
그 많은 식구가 또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가네요.
어진이는 "엄마, 이 메밀막국수 집에 한번만 더 오자"고 했었는데,
더는 못 가고 돌아왔습니다.~~
지나고 보면, 아버님이 저희에게 점심까지 먹을 시간까지 넉넉히 주신 셈입니다.
형규가 급하게 일산병원으로 오고 있는 중인데,
혹시 늦을지도 모르니 할아버지께 읽어드리라고 한 카카오톡 메시지..
고모가 아버님 바로 앞에서 읽어드리는데,
고모가 그래도 차분히 잘 읽어드렸고요..
그때 고모가 읽어주신 형규의 글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 글이었기에 두고두고 너무도 고마울 뿐입니다.
편지글을 써보낸 형규에게도 고맙고,
저 같으면 우느라고 못했을텐데, 그래도 끝까지 다 읽어주신 우리 고모도 너무 고맙고...
그때 큰시숙님께서는 정말 바쁘셨습니다.
아버님과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하시고,
서둘러 집에 돌아가셔서 아버님의 영정사진과 호국원에 제출할 사진도 챙기시고,
장례절차를 함께 할 상조회(시숙님께서 수년전에 혼자 들어놓으셨다는)와의 연락도 챙기셔야 하고,
곧 사용하게 될지 모르는 일반병원 영안실의 사용가능 여부도 파악하셔야 하고,
나머지 우리 식구는 슬퍼하기만 할 뿐, 그런 복잡하고 중요한 일들을 신경쓰지 않았던 것은
부모님의 맏아들이자,
네 동생의 맏형, 오빠로 가족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은연중에 마음의 부담으로 안겨사시고 계실 큰 시숙님이 조용히 그러나 미리 다 준비하고 계셨던 턱입니다.
고운아빠는 일을 치루는 내내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말이 맞아"라는 말을 여러번 했습니다.
점심 먹고 다들 급하게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아버님이 아주 많이 숨이 가빠하셨고,
그래서 우리 모두 심장이 가쁘게 뛰었습니다.
아버님, 할아버지, 여기 걱정 마시고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인사하는 동안
고운아빠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보여드린 이 사진,
"아버님 이 사진, 누구세요?"
아버님이 답하십니다.
"어머니...."
아버님의 그 음성을 들을 때에도,
지금 그 세 글자를 쓰는 지금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네요.
고운아빠가 이어서 말합니다.
"아버지, 할머니가 지금 기다리고 계세요." 하는데
그 대목에서 가슴이 퍽 막히는 엄청난 슬픔과 함께 눈물이 쏟아지면서도
아버님이 그 말에 큰 위안을 받으셨을 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생겼습니다.
때가 다가오자,
고운아빠는 좀더 가족들과 독립된 시간을 갖고자 1인실로 옮겨달라고 요청합니다.
모두들 마지막을 안타까워하는데,
우리 어머님.. 계속 맏아들을 찾으십니다.
"빨리 형 불러라, 어서"
맏이로써 챙길 것이 많아 정신없는 맏아들이 혹여 임종을 놓칠까봐 대단히 초조해하셨습니다.
다행히, 큰시숙님도 도착하시고,
얼마 후...
아버님의 모든 자식들과 며느리, 사위, 손주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아버님은 정말 곱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으시고, 아름답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저야 임종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기껏해야 드라마 영화에서 본 것이 다라서 잘 모르는데,
애들 고모부께서 "정말 편하게 가시는구나" 여러번 말씀하시는 것에 큰 위안을 받습니다.
나중에 듣고보니, 이렇게 모든 자식들 앞에서 임종하시는 경우가 무척이나 드문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제 아버님이 고인이 되시고,
마지막 그 순간까지 엄청 바쁘셨던 큰 시숙님의 덕분으로
그 이후 일정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미리 다 이야기를 해놓으셨던대로
상조회에서 바로 도착해서 영안실 준비를 했고
가족 모두 상복을 받아 입었습니다.
아직은 지인들에게 알리기 전이라,
우리 식구들끼리 저녁을 먹습니다.
영안실에서 조의를 전하시는 분들의 사진은 당연히 안 찍었고요,
우리 식구들의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그 사진들을 올립니다.
훤이 형아와 사랑에 빠져버린(고운이의 말) 샘이입니다.
형규와 훤이는 연중 쉬는 때 없이 정말 바쁜데,
고운 어진 샘 데리고 워터파크 간다고
딱 3일 휴가를 미리 냈었어요.
그 날이 바로 8월 1일부터 3일까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예정되어 있는 듯한 아니 일부러 맞추신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아버님빈소 뒤에 상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이쁜 제 조카들입니다.
이번에 조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정이 듬뿍 깊어졌어요.
모두 11명의 손주들 모두 한데 모여서 저렇게 며칠 시간을 보내기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아버님 덕분에 아이들은 사촌들과 참으로 돈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저대로, 이제는 장성해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하는 조카들과 이야기 나누고
정말 좋았습니다.
희성이가 급하게 병실에 달려왔을 때 장면이 지금 떠오르네요.
청바지 입고 배낭 매고 수원에서 달려온 우리 장조카 희성이
"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할아버지 손을 두 손으로 맞잡고 어쩔 줄 몰라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희성이는 아버님의 장손답게 끝까지 아버님 영정사진 들고 참으로 듬직하게 있어주었어요.
희성아, 난 네가 말이 없는 줄만 알았는데 너 정말 멋지더라..
언제나 이 작은엄마가 응원할께,
너랑 나눈 몇 마디, 참 반가웠다.
막내삼촌(고운아빠)의 "자, 귀엽게 해봐" 하는 포즈에 저 하나씩 브이자를 꺼내보입니다.
결혼할 때 정말 아기들이었던 이 조카들이
이번에 일을 치르면서 각자 큰 역할들을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릅니다.
희연이와 희진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하게 있다가 빈소가 북적북적 바빠지니
열심히 그릇도 나르고 손님들을 맞아주었습니다.
연락받자마자 단숨에 달려오셔서 자잘한 일까지 직접 다 챙겨 손수 다 도와주신
시숙님입니다.(고운아빠 사촌형)
4형제가 조문을 받다가 나란히 앉아 잠시 쉬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좋아보이던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모도 얼른 오시라고 해서 5남매가 나란히 찍으셨습니다.
한 장 더!!
(우리 아이들은 이 사진을 보고, 누가 누구를 제일 닮으셨나.. 맨날 그 이야기를 하네요)
한 장 더 !!!!
나중에 이 사진을 어머니께 보여드리니,
"어찌 이리 잘 찍었냐" 하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던지요.
사진이 담긴 제 핸드폰을 손에서 한참을 내려놓지 못하고 보시더라고요.
8월 2일,
본격적으로 영안실이 바빠오고...
아이들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너무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다정이에게 부탁해서 애들 좀 데리고 나가 놀다 오라고 부탁했어요.
나중에 다정이와 솔이가 제게 사진들과 동영상을 찍어서 핸드폰으로 그리고 이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솔아, 무엇을 비웃고 있는 게냐?
한국에서 찾아간 베스킨 라빈스..
미국 우리 동네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는 일년에 한번 갈까 말까인데..
한국 가서는 열심히 찾아 다녔네요.
아이들이 내린 결론..
"엄마, 한국 베스킨 라빈스가 훨씬 더 맛있어!!"
여기는 멀티방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랍니다.
노래방도 되고, 게임방도 되고,
정말 건전해 보이지요?
애들이 두고두고 멀티방 재밌다고 노래를 불렀어요.
다정아, 솔아, 희원아, 고마워.
어린 동생들이랑 놀아줘서..
이 사진은 병실에서 찍었던 사진인데 여기 들어갔네요.
셋째 형님과
둘째 형님과 셋째 형님
귀한 사진과 동영상 보내 준 솔아, 고마워.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런 거 하려면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는거.. 고맙다.
덕분에 좋은 추억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을 거야.
이날 아이들이 즐긴 동영상을 솔이가 이메일로 보내준 것이 몇개 있는데,
그 중 3개를 뽑아 올립니다.
애들이 희원이 형아 진짜 노래 잘 한다고 해서 언제 들어보나.. 했더니만,
이렇게 동영상을 보내줘서 잘 봤어요.
고운아빠의 노래방 18번인데..
여보, 다시는 어디 가서 이 노래 부르지 마.. 너무 비교된다...
저는 저 노래 동영상 보면서 다정이 표정이나 몸짓이 너무 이쁘더라고요.
어린 동생들 데리고 나가서 저렇게 놀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저렇게 이쁜 표정으로 애들 율동을 리드하다니..
우리 다정이 데려가는 남자는 복 터졌다.
어진이는 노래 한자락 안 하고,
고운이와 샘이는 노래를 불렀고 동영상도 있는데,
이거 올리면 애들이 뭐라 할까봐 못 올려요.
살짝, 덧붙이자면..
얘들의 노래솜씨는 누굴 닮은 걸까요?
딱 요만큼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랑 고운아빠는 어디 가서 못 부른다는 소리는 못 들었시유)
영안실에서의 두번째 날 밤,
사실 첫날은 집에 가서 몇시간 자고 나왓고,
둘째날은 영안실에서 계속 있었는데...
제가 워낙 잠이 많아요.
너무너무 졸리니까 또 너무너무 추워지더라고요.
덜덜 떠니까,
형규가 상복 윗도리를 벗어주면서 걸쳐주고(야, 좋더라, ㅎㅎ)
담요도 가져다 덮어주어서, 저렇게 앉아서 꽤 잤습니다.
저희는 이번에 한국 나가면서 소문 내지 않고 나갔어요.
고운아빠는 정말 아무 데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나갔습니다.
아버님과 집에서 주로 시간 보내고 병원 모시러 다니고 가족들과 같이 시간보낸다면서요.
그래도 우리 가족끼리 꼭 영광 시골에 가보고 싶어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그럴 필요 없이 모든 친척들을 다 한 곳에서 만나뵐 수 있었다고 대단히 의미있어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영안실에서 보낸 시간이 2박3일이라고는 하나, 아버님이 4시 30경 돌아가시고,
발인을 위해 영안실을 5시 경 떠난 것을 생각하면 영안실에서 보낸 시간은 짧은 편입니다.
짧지만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고,
그래서 아버님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았고,
상주들도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고운아빠와 저는 아버님 덕분에 너무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첫댓글 매일 하나씩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막내외숙모! 최고입니다^^b
아이들과 더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외숙모 글을 보면서 위로가 되고, 또 만족?이 됩니다.
다음 황금알이 무쟈게 기대되지만 거위 보호 차원에서 재촉하지는 않을 테니 거르지 말고 연재해주시고 글 올리시면 바로 카톡에 링크 서비스 부탁 드려요.
감사합니다(__)
그래, 글 올리면 카톡으로 계속 서비스할께. 실은 반응들이 없어서 다들 읽고 계시는건지, 이거 괜히 귀찮게해드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좀 주저스럽기도 하더라고. "위로가 되면서도 또 만족이 된다"는 네 말이 나로서는 제일 고맙다. 사실 내가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원한 것은 그런 거였거든..
현아 외숙모 제목 7월이 아니고 8월이 아닌가요?
그러네, 집에가서 수정할께 고마워
아래 롯데월드에 간 날 리플글 달았습니다.
이뿐 동서들! 이뿐이 조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