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시를 공부했는데, 내 전공인 물리학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물리학을 공부할 때는 익숙한 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는데, 그건 시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꽃이 아름답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주관적인 관념일 뿐이다. 꽃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송충이는 징그럽다”는 것도 선입견이다. 참새에게 송충이는 맛있는 먹이가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공부하든, 시를 쓰든 간에 기존의 관념과 선입견을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19세기 고흐가 하늘의 별들을 기존의 생각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면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명작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19세기 고흐가 하늘을 관찰하고 독자적으로 상상하면서 그린 별들의 모습은 20세기 과학자들이 허블 망원경으로 바라본 은하계의 모습과 비슷하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밝혀낸 우주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상상했던 것들을 뛰어넘는다. 우주에는 지름이 10만 광년이 넘는 은하가 수천억 개 존재하는데, 수천억 개 중 하나의 은하는 또 다시 수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터무니없는 세계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와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우주 연구를 통해 별의 일생을 알게 되고 태양의 운명, 그리고 지구의 생명력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 몸속의 모든 구성 성분은 지구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별이 농축되고 폭발하고 초신성이 되어 에너지가 우주에 퍼지는 과정에서 ‘헤쳐 모여’를 통해 태양과 지구가 생겨났다. 우리의 몸 성분도 그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즉, 우리는 별에서 왔고 우리 유전자 DNA 속 모든 정보 역시 우주로부터 온 것들의 극히 일부다. 셰익스피어가 “우주에는 너의 철학이 몽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네.”라고 했는데, 17세기 초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놀랍지만, 우주에는 철학자뿐 아니라 시인, 예술가, 과학자 등 모든 사람이 몽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놀랍고 신기한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우주의 극히 일부밖에 볼 수 없다. 그나마 우리에게 전달되어 오는 우주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이다. 빛의 속도는 1초당 30만km에 불과(?)한데 태양으로부터 지구까지의 거리는 1억 5천만km니까 우리가 보는 태양의 모습은 8분 전의 모습이다.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는 4광년, 지구가 속한 은하수 은하의 지름은 10만 광년, 안드로메다 은하는 250만 광년이므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안드로메다의 별들은 250만년 전의 모습일 뿐이다. 우주의 크기는 930억 광년으로 추정된다.
역사학자가 기록이나 유물로 과거의 일부를 보는 사람인 것처럼 천문학자는 망원경으로 우주의 과거를 보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별은 우주의 역사책이다. 별을 연구하다 보면, 현재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별은 우리에게 과거의 모습만 보여주는데, 따지고 보면 우주의 만물이 모두 그렇기 때문이다. 0.001초전 상대방의 모습도, 상대방이 내게 고백한 사랑의 말도, 모두 현재의 사실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그것이 현재로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많은 과거의 것들을 연속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치매는 참으로 무서운 병이고, 과거 기억의 연장선에 불과한 현재(?)의 삶은 허무해 보인다.)
우리는 우주에 대한 탐구를 통해 지구에 사는 인간이 매우 동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인 간에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근본은 물질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생긴 특이한 물질 중 하나다. 과거 천동설은 지구 중심적인 생각이었지만, 지동설이 등장하면서 지구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강화되었지만, 천문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자연과학도 인간과 자연, 우주가 결국 하나라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문학도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벗어나는 과정에 있으며, 문학과 예술 또한 과거 우리에게 주어졌던 일체의 관념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제대로 된 인문학과 문학을 위해서는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진화론 등 인간 중심적인 관념에서 탈피한 자연과학에 대한 기본소양이 있어야 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우주에 대한 고찰과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전혀 다르지 않다.
첫댓글 일목요연한 강의요약입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