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죽음에서 부활로 가는 그리스도교 신앙
17-18절 말씀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압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간다는 확실한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그 믿음을 굳게 잡고 항상 ‘아멘, 알렐루야’로 화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확신하지 못하고 자꾸 흔들리는 사람은 영적 진리를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으로 이해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진리는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죽음을 이해하면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실을 생각지도 못하고 더구나 믿지도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 철학, 윤리, 사상 등에 부활은 개념조차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종교나 학문이나 이론 등은 부활 이하의 것들입니다. 우리는 부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 앞에서 우리의 믿음 체계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이제 보통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죽는다는 것도 큰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미를 지닌 죽음이라도 그 자체로 끝나버리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이 부활로 바뀌지 않는다면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코린토1서 15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희망하지 않은 사람에게 꽃이 피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부활에 관한 것이고,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삶을 뒤바꿔 놓은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다음 말씀은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마르타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11,25-26).
4)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기쁨
부활은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데,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면 황당해질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가르침으로 이해하게 되면, 부활은 축복이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16,20)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믿는 사람들은 이 말씀에 대해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니 사람들은 곡하고 애통해합니다. 반대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은 너무 좋아서 기뻐합니다. 주님의 죽음이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는 곡과 애통이 되고,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으로 끝내시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죽음으로 끝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집트의 신앙은 죽음이 종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스핑크스를 만들고 피라미드를 만든 것입니다. 일평생 무덤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종교적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절망에 갇혀 있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왕 중의 왕께서 부활하셔서 독수리가 창공을 향해 날아가듯, 하느님의 세계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 후에 부활하시면 곡하고 애통해하던 제자들은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믿는 이의 본질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천국으로 향하게 되니 슬퍼하고 싶어도 슬퍼할 수 없습니다. 믿는 이는 어떤 험한 일을 당해도 그것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이고 예수님이십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16,21-22)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고 우울증이 생기는 바람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도 대부분 비관적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 민족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민족을 지켜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향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로써 궁극적으로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부활을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이나 바다나 감옥에서나 어디서든 항상 기쁨으로 찬양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아멘. 아멘.~~
"우리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민족을 지켜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