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桑은 활엽교목으로 그 잎은 누에를 먹이는데 사용할 수 있다. 갑골문의 桑자는 상형자로, 한 그루 나무에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의 형태이다. 소전의 桑자는 나뭇잎과 가지가 분리되고 잎의 형태가 잘못 변형되면서 세 개의 “又”가 되어 상형의 의미를 잃었다.
[桑梓] 뽕나무와 개오동나무, 고향을 대신하여 가리킨다.
[桑榆暮景] 석양의 석양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끝부분을 비춘다, 연로한 시기를 비유한다.
文化
옛날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뽕나무가 가장 가치 있는 경제식물이라고 여겨 이미 5천년 전인 신석기 시대에 뽕나무를 심고 양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殷墟(은허) 갑골문에 이미 桑이라는 글자가 존재했다는 것을 통해 증명 된다.[1] 뽕나무는 중국 전역에 걸쳐 재배되었는데 천자와 제후들도 자신들의 뽕나무 밭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또한 뽕나무는 옛날 집 주변에 심어져 있던 보편적인 나무들로 ‘桑梓’은 고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뽕나무는 그 쓰임이 많아서 나뭇잎인 뽕잎은 양잠을 하는데 사용되었고, 열매인 오디는 달고 맛있어서 구황식물로 술을 담아 마시기도 했다. 이 밖에 10~15년 된 뽕나무로는 활을 만들었다. 또한 나막신과 칼 손잡이를 만들 수 있었다. 이외에도 땔감과 약재, 종이를 만드는 등에 다용도로 쓰여 일상생활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식물이었다.
소전의 桑자에는 손 세 개가 나무 끝에 걸려 있다. 양잠을 하기 위해 누에를 키우는데 누에의 먹이가 뽕잎이다. 그런데 누에는 밤낮으로 잎을 먹어 치워 매우 분주하게 손을 놀려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에는 손이 아니라 가지에 잎이 난 형태이다. 이는 見자에서 강조하는 의미에서 눈을 확대해서 그렸듯이, 각종 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이었던 뽕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잎을 강조하여 그린 것이다.
이동↑이혜정(2008), 「식물관련 중국 성어의 문화의미 연구」,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pp.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