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살고 있는 8살 소녀 ‘진미’에게 ‘행복’을 묻는 영화 ‘태양 아래(Under the Sun)’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27일 한국에서 첫 개봉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 ‘북한’의 실체가 궁금했던 탓일까. 상영관이 많지 않음에도, 영화는 개봉 이래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들었다.
잔잔한 인기몰이 중인 ‘태양 아래’를 향한 네티즌 반응은 뜨겁다. 평론가들 사이에선 “별로 놀랍지 않은 폭로”라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관람객들은 달랐다. 영화를 관람한 시민들은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라는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혹평과 호평이 공존하는 이 영화를 남북 대학생 기자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2008년까지 북한(무산출신)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박성애 인턴기자는 한마디로 “소름 돋았다”고 표현했다. 17년간 북한에 살면서 세뇌를 당하는지 인식하지도 못했다는 박 기자는 “북한 주민들이 어릴 때부터 어떻게 세뇌를 당하며 살아가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김혜진 인턴기자는 ‘세뇌’의 실체를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에 집중할수록 스스로 무언가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위대한 수령, 경애하는 대원수 등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말들이 내내 귀에 맴돌았다. 진미가 외워대던 선서문을 몇 번 더 들었으면 아마 다 외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장면은 ‘조선소년단’ 입단식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인민으로서 첫 공식 조직생활을 시작하는, 즉 세뇌교육 시스템에 본격 진입한다는 의미다.
부모들이 찾아와 카메라의 플래쉬를 연신 터뜨리는 모습을 보며 김 기자는 “한국의 입학식이 연상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박 기자는 입단식을 치르는 아이들의 설레는 표정을 보며 되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진미는 아마 교복위에 반짝 빛나는 소년단 휘장과 붉은 색의 스카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년단 선서’를 열심히 외우면서 입단식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 뒤에 우상화 교육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건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김 기자는 영화를 통해 보이는 진미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한다. “왜 항상 노래를 부르며 다니느냐” “꼭 줄을 맞춰 걸어야 되나” “저렇게까지 절도 있게 손 인사를 해야 하나” 등의 질문을 수도 없이 쏟아낸다.
이에 대해 박 기자는 북한식 ‘집단의식 형성’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조직생활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규칙적인 행동을 통해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고, 이를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가 끝나갈 때쯤엔 제작진과 진미의 은밀한 인터뷰가 나온다. “조선소년단 입단 후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라는 질문에 진미는 “조직생활을 할 때 잘못도 느끼게 되고, 경애하는 대원수님(김정은)을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 지 느껴지게 됩니다”고 한 뒤, 돌연 눈물을 흘린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두 기자도 동시에 진미의 그 모습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았다.
이후 진미를 달래기 위해 제작진은 좋은 것을 생각하라고 말하지만 진미는 “잘 모른다”고 답한다. 시(詩)를 생각하라는 말에 대한 진미가 내놓은 답(스포일러 가능성 때문에 비공개)에 김 기자는 할 말을 잃었지만, 박 기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국이 시키는 대로, 지시한대로만 따르던 어린 진미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자 덜컥 겁이 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 기자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생각나는 건 그동안 수도 없이 외웠던 그 문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진미를 비롯한 북한주민들이 항상 통제돼있는 삶 때문에 힘들고 고달플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김 기자도 “암혹한 세상에서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점”을 느꼈다고 동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