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이 그리는 사극>
이준익이 그려내는 사극은 언제나 그랬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거대한 사건과 역사의 흐름이라는 자장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희미하게 존재하는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린다. 단순히 뼈만 남은 이야기에 살을 붙이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이면 혹은 누구도 보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논쟁 대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그것이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고민하게 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선 한 인물을 중심에 두고 사건을 전개해 나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자산어보” 역시 그렇다. “동주”에서 윤동주와 송몽규, “박열”에서 박열과 후미코를 통해 혼자 무언가 해내는 존재는 역사라는 자장 안에서 있을 수 없다고 말하듯 정약전에겐 창대가 있었다. 실제로 창대라는 인물은 자산어보 서문에 짧게 서술되지만 이준익의 이야기 안에서 선명하게 살아난다.
<이상과 현실, 창대 그리고 586>
영화는 정조와 독대하는 정약전을 비추며 시작한다. 정조는 약전에게 새로운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는 말을 당부를 전하지만 임금이 붕어하고 집안은 서학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멸문지화를 당한다. 삼 형제 중 약종은 참형을 당하고 약용과 약전은 남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약용은 강진으로, 약전은 흑산도로 형제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유배지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매진을 한다. 서학을 함께 공부했지만 향해있던 방향은 달랐다. 약용은 흠흠신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같은 정치와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지만 약전은 자산어보와 송정사의 같은 실용성이 있는 저술을 쓴다.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영화는 지긋이 보여주고 그 사이에 창대를 넣는다. 그는 역사 속 실존하는 인물인 동시에 감독의 생각을 전달하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그는 약전에게 흑산에 모든 섭생에 관한 지식을 전하고 그에게 유학을 배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약용이 그리는 이상적 존재인 목민관을 꿈꾼다. 영화를 보면서 현시점으로 무리하게 대입해 본다면 어쩌면 창대는 흔히 말하던 586세대를 투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다 현실에 벽에 산산이 부서진 이들이 보였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변화를 바라던 이들의 허탈한 심정은 우리가 아닌 내가 바꿀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갑오징어 버릴 것이 없다.>
영화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장면이 나올 때 가장 중요해 보이는 말한다면 갑오징어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갑오징어의 먹물은 종이에 쓰면 윤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나 물에 넣으면 원래 색을 찾는다. 살은 두텁고 부드러워 먹기 좋고, 뼈는 갈아서 약으로 쓰는데 상처에 쓰이는데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두루 쓰인다고 기술한다. 이는 약전이 창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세상 모든 것은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이준익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식 중 하나 일수도 있다고 느꼈다. 창대는 약전에게 어보는 뭐하러 쓰냐 물었고 약전은 창대에게 글공부는 왜 하느냐 물었다. 창대는 입신하여 목민관이 되겠다 했지만 약전은 임금도 양반도 상놈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약전은 천주교도로 살다 자신의 사람들을 살리고자 배교했고, 유교의 나라에서 주자의 힘에 개탄하였다. 창대는 몰랐겠지만 약전에게 창대가 전해주던 지식은 공자님 말씀 이자, 천주님의 복음이었다. 지구의처럼 둥그런 세상에서 발붙이고 사는 이들이 배부르고 웃으며 살아간다면 그래서 목민관도 다스릴 임금도 없어도 되는 세상을 약전은 어보에 담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산과 흑산>
‘자’는 어둡고 깊고, 흑은 캄캄하다. 약전은 흑산을 자산이라 고쳐 부르며 자산은 여기, 지금 같은 부사어 개념도 같고 있으니 자산이라 부르는 것이 좋지 않냐 한다. 그는 흑산에서 유폐를 당했지만 자산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에 자신이 있고 살아가는 사람과 생명이 있는 곳으로 바꿨다. 김훈이 흑산에서 그려낸 약전은 현실을 극복하는 중년이었다. 이준익의 역전은 흑산에서 자산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유구한 시간은 사람과 사람은 모두 땅과 바다라는 터전에 기대어 산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약산이 떠난 지 이백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물음은 아직 유효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첫댓글 괜찮게 보신거 같아 다행이네요 ^^
피디님들 감상평도 기대되요
훈종피디님 취저일거 같은데요 ㅎㅎ
훈종 피디님은 3.5개 예상해 봅니다. 사유도 있고 미장센도 좋은데 내러티브 마무리가 약간 미흡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수 없어서리.... 식상한 부분이 좀 있기는 했어요. ^^
@소고기 그 정도 식상함은 상업영화의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 정도 만듦새의 한국 영화가 일년에 5편만 나와도 행복할거 같아요~
와!
평 잘봤습니다. 어제 영화보고나서 오늘 감상평에 가슴이 한번더 울리네요^^
남겨주시는 고퀄의 영화 리뷰 잘 읽고갑니다~~
덕분에 자산어보는 챙겨 봐야겠다 생각했네요~~^^
소고기님
혹시 전문 평론가 아니신가? 하는 생각도^^ ㅎㅎㅎ
저도 이 생각했어요 전문 평론가이시거나 그보다 낫거나 ^^
@소울 고퀄의 리뷰어 몇 분 계시죠~
소울님 포함~^^
글 잘쓰시는 분들 진짜 부럽네요~~ ㅎ
잘 보고 갑니다~^_^
잘 보고갑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