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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문예 가을호 권두칼럼>
이건우의 예술혼과 그 삶의 여적(餘滴)
- 운명적인 인연(因緣)의 매듭 풀기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본지 고문)
1. 소월의 ‘엄마와 누나야’로 꿈을 수(繡) 놓다
어디까지나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 강원도 출신의 엘리트 작곡가인 이건우(李健雨, 1917~1998) 자신이 그 나름으로 견고한 고독 앞에서 고뇌하며 후학의 지도에도 열정을 쏟았음도 놀랍지만, 그 자신의 절박한 기대감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과 부모님과 자녀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절실한 인류에의 승화였음’도 못내 외면하고 지나칠 수 없다. 모처럼 그 자신이 민족적 정한(情恨)으로 구도 처리한 서정성의 율조와 리듬을 새삼 가늠하며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 까닭에 지극히 한국의 전통적인 리듬감을 한껏 서정성으로 살려낸 그 진정성은 끝내 책(冊)의 그늘은 넓고 크다.
비록 문화적으로 세계화를 지향하는 21세기 융·복합 추세일지라도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해법이 불투명한 영어몰입교육정책의 허망함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묵언으로「이건우 소원 프로젝트」 팜프렛의 빙그레 웃음을 짓는 이건우 작곡가의 사진을 응시하면, 한순간 인류가 감사드려 마땅한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린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가 클로즈업된다. 그 자신의 업적은 19세기 말 의학계와 생물학계에 큰 변혁과 전환을 이끌었음은 물론 필자 그 나름으로 40년 남짓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역설을 페러디(parody)하여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 조국이 있다.”라는 항변으로 즐겨 사용한 까닭이다.
그렇다. 절망의 끝 보이지 않아 불확실한 시간대에서 ‘모국어는 안녕한가?’ 모래톱 씻겨 적막한 겨울 해변의 어설픈 담론은 공허하다. 따라서 저토록 피가 뜨거운 젊은 날, 장엄한 태양 불끈 치솟는 황홀한 시각에 모국어의 속살 각인시킨『등대지기』를 읽으면 충격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잠시 미끄러짐의 침몰 경계하다 피곤한 항해 멈추고 낯선 포구에 닻 내리면, 역풍 가르는 파도에 날(刃) 푸른 스카빈스키의 처절한 독백. “아, 지금 그 모국어가 홀로 나에게로 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것이!” 투명한 눈물처럼 빛나는 기억의 편린(片鱗), “한 민족이 노예로 전락했을 때도 언어만 지켜내도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역설이다. 각론하고「이건우의 예술혼과 그 삶의 여적(餘滴)」을 서술하여 그 존재감의 확장이야말로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후학으로서 응당 담당할 시대적 몫이 소중한 ‘인연(因緣)의 매듭인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민족사적으로 짧지 않은 역사의 격랑에 몸을 맡겼던 작곡가 이건우를 그 나름으로 조명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의 삶과 예술창작에 힘이 되었거나 도움을 준 소중한 인연의 끈을 새삼 늦출 수 없음이 당연지사(當然之事)임은 무엇보다 자명한 사실이다.
이 같은 일면에서 시의 본말(本末)인 한국의 서정시를 주도한 본명이 김정식(金廷湜)인 소월(素月, 1902.~1934)은 본관이 공주(公州)이다. 그 자신은 평안북도 정주 곽산에서 출생하여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한 맺힌 삶을 마감한 이 땅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다. 그렇다. 대다수 그 자신의 시편은 민족의 전통적인 다정다감한 한(恨)의 정서를 여성 화자를 통해 따뜻한 감성에 담아 향토적 질료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民謠的) 기법으로 즐겨 담아낸 경향이 특이할 따름이다. 여기서 일찍이 부친 김성도(金性燾)와 모친 장경숙(張景淑) 사이에서 장남으로 외가에서 출생하였으며, 백일이 지난 후에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서동 본가로 돌아왔다.
특히 안타까운 가족사라면, 그 자신이 2세 무렵에 부친이 철도(鐵道)를 설치하던 일본인에게 폭행을 당해 끝내 정신이상의 질병으로 마침내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돌보게 되었다. 그 같은 계기로 조부(祖父)로부터 아득한 유년 시절 한문을 배우고, 또 숙모(계희영)로부터「심청전」,「장화홍련전」등의 고담(古談)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성장케 되었다. 그렇다. 1915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한 뒤 1916년에 홍단실과 부부의 연을 맺어 결혼하였다. 3·1운동 직후에 오산학교가 잠시 문을 닫게 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로 편입하고 졸업하였다. 또 앞서 1920년 2월『創造』에「낭인(浪人)의 봄」,「야(夜)의 우적(雨滴)」,「그리워」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뒤 같은 해에『학생계』7월호에「먼 후일」,「만나려는 심사(心思)」 등의 시편을 발표하며 점차 주위의 관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모처럼 그 자신의 가정사이지만 소월은 불행하게도 유년 시절에 부친이 일본인으로부터 불의의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고 끝내 사망하였기에, 광산업에 종사하던 조부의 돌봄에 의해 성장하였다. 또 그렇게 그 자신은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14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점차로 감수성이 점차로 예민해지던 오산학교 재학시절 심정적으로 의지하고 교제하던 여성이 사망하게 되는 불행으로 처연(悽然)한 아픔을 절감하기도 하였다. 그 같은 정황에서 1922년 4월에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는데, 그 당시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재학시절 민족사적으로 밝은 미래의 끝이 보이지 않던 일제강점기라는 그 절망의 깊은 터널에서 고통으로 무너져버린 가족, 그 삶의 우여곡절 끝에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된 해맑은 영혼과 지극히 메르헨(Märchen)적인 따뜻한 감성이 짙게 묻어 있는 정감(情感)의 시편이다.
2. 고정인식의 틀 깨기와 삶의 교시(敎示)
모름지기 소월의 대표 시격(詩格)으로 비중 있게 논의되는「엄마야 누나야」의 화자(話者)는 소년이다. 또 한편 여기서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소년은 강변에서 단란한 꿈을 꾸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에 따르면 그곳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한 폭의 담채색의 산수화가 펼쳐지는 환경임에 틀림이 없다. 까닭에 “엄마나 누나야!”라고, 소년의 호명(呼名)을 통한 그 목가적 삶에 엄마와 누나를 콕 집어서 언급함은 호흡을 가다듬고 묵언으로 잠시 지켜볼 점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왜 아버지와 형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주어질 수도 있으나 전체적인 틀에서 불행하게도 작고하기 1년 전인 1997년 이건우 작곡가가 가곡집 『해당화』 간행하고 평양에서 기념 음악회를 준비하던 중 1998년 2월에 작고한 사실을 통해서도 한층 더 명백히 입증될 것이다.
이 같은 보편적 의문점에 관해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그 역시 마지막 유작이랄까? 평론집『우물을 파는 사람』(두란노 서원, 2012)을 묶어낸 이어령 평론가가 ‘남성과 문명, 여성과 자연’의 대립이 이 시의 골격임을 비중 있게 지적하면서, “강변 살자.”라는 소년의 그 소망 “여성 공간의 희망적 메시지 속에 ‘강변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남성 공간의 절망적 언어가 깔려 있다.”라고 해석하였음도 심사숙고할 바다. 모름지기 안타깝게도 문학의 꿈을 눈부시게 꽃 피울 시맥(詩脈)이 한창 물오른 시간대에 김소월 시인은 가업인 광산업이 실패하자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옮겼고, 당시 소유한 땅을 팔아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했으나 실패했다. 그 뒤에 한층 더 생활이 어려워져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술만 마시다가 1934년 32세 때 곽산에서 음독자살을 하였다. 일단 참작할 일이나 1968년 3월 『한국일보사』에서 다소 뒤늦게나마 기념비적으로 서울 남산에 소월의 시비(詩碑)를 제막하여 주었다.
비교적 소월의 대다수 시편이 한국의 전통 시에 해당하는 민요시라는 견해는 형태론적인 근거와 소재론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다. 그 같은 이론적 근거는 음률 상의 2음보, 3음보, 후장 3음보, 3·3·4조 등의 리듬을 빌려 발전시켰는데「진달래꽃」,「山有花」,「가는 길」등에서 이런 특징을 찾아볼 수 있음도 그렇거니와 그 자신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시편「진달래꽃」은 그리운 임에 대한 나뉨의 아픔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3·3·4조에 맞추어 읊었다. 그 같은 일면에서 역설적(逆說的)인 표현이나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등에는 순종의 미덕보다 미련과 원망, 자책과 갈등이 숨겨져 있다. 한편 "고이 보내드리우리다."에서 비록 임은 떠났지만 끝내 체념할 수 없다는 들뜬 감정이 시적 형사(形似)를 수용하고 있기에 이 같은 정감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로 마무리 짓고 있다.
특히 작곡가 이건우의 탄생 100주년 기념 음반『다시 부르는 노래 이건우 가곡』이 한국가곡연구소 설립 10주년 기념사업으로「드림쉐어」에 의해 기획, 제작된 음반이 2020년(6월 19일)에 출시되었다. 따라서 메인 타이틀「다시 부르는 노래 이건우 가곡」의 그 작곡자는 강원도 삼척태생으로 국권을 상실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 유학 후인 1943년 8.15해방을 2년 앞두고 귀국하고 해방공간(1945. 8. 15~1948. 8. 15)을 전후로 명실상부 조선 제1의 작곡가로 칭송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벌인 실체이다. 또 한편 전형적인 클래식 디지털 레코드가 한국가곡연구소와 주) 디지털 레코드사의 공동 작업으로『다시 부르는 노래 이건우 가곡』이 출시되었다, 이 음반에는「붉은 조수(Red Tide)」를 포함하여 월북 이전에 남긴 14곡의 가곡과 월북 후에 작곡한「동백꽃」 등이 포함된 15곡이 수록되었다.
3. 도전적 삶과 예술혼의 잔상(殘像)
이 같은 동일의 시간대에 한국의 전통적인 서정시의 천재 시인 소월을 자신의 심장에 깊이 간직한 이건우는, 김순남(金順男, 1917~?)과 함께 비로소 한국의 가곡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곡가로 평가받아 마땅한 실체이다. 아울러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으로 1950년 한국전쟁 무렵, 시대적 상황에 이끌려 자진 월북하고 1998년 79세를 일기로 북한에서 불우한 삶을 마감한 예술가다. 따라서 한국가곡연구소는 그 자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월북 이전 남긴 이건우 가곡 전곡을 마침내 성공적으로 국내 최초로 녹음·복원된 또 하나의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다. 여기서 문화의 다양화를 위한 열린 21세기 참조할 사항이라면, 정보의 공유 차원에서 근간에 무엇보다 뜻있는 시대가교(時代架橋)랄까? 『시사 ON』의 이병도 주필이「민족시인 김소월과 국제화」의 논설에 뒤이어 국내 최고의 서정시인이자 민족 시인인 소월의 국제화 논의가 관계 부처의 지대한 관심사에 각별한 기대감을 지녀볼 일이다.
특히 국민 애송시「진달래꽃」발표 100주년을 맞아 전용 문학관 현안을 놓고, 2023년 6월 소월 시작품과 시 정신의 세계화 추진할「국제 소월협회」발족과 때맞춰 일차적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인문대, 사할린 국립대, 이르쿠츠크 철도대, 카자흐스탄 국제관계와 세계언어대 등 세계 7곳 대학과 기관에 협회 해외지부를 두기로 했으며 향후 유럽·중남미·아시아 등에도 각각 소월의 해외지부 설립 추진과 갖가지 사업의 추진으로 ‘시의 외국어 번역, 시 교재 해외보급, 소월기념사업이 다각도로 모색되는 추이(推移)는 못내 희망적이다. 모처럼 정보의 공유 차원에서 계간 시전문지『시인세계』창간호가「한국 현대시 100년, 100명의 시인」에 관해 평론가에게 설문 조사를 의뢰한 결과 소월이 87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그의 정체성이 확정되었듯 그만큼 우리 민족 최대의 시인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시로 가장 잘 드러낸 인물로 평가받았음도 그렇거니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서울대학교의 권영민 명예교수도 ‘민족 문학사에서 근대시 형성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시인’으로 소월을 꼽았다.
모름지기 그간에 그 자신의 공적에 견주어 전용 문학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세계적으로 한류와 한국학 열풍이 일고 있지만, 기실 소월의 경우 그 존재감은 해외에서 매우 낯선 아웃사이더(outsider, 局外者)일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제소월협회측은 “진달래꽃·산유화·금잔디 등 주옥같은 작품 200여 편과 그의 시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협회를 창립한 것임”을 밝혔다. 특히 본협회의 이재혁 이사장은 “러시아 푸시킨과 독일의 괴테, 스페인 로르카, 칠레 네루다, 아일랜드 예이츠처럼 한국에는 김소월이라는 자랑스러운 국민 시인이 있다.”라며 한민족을 대표하는 시인이 전용 문학관 하나 없어 소홀히 취급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소월협회와 소월기념사업재단 설립을 추진하게 된 설립 취지를 역설하였다.
일단 여기서 해결할 주요사업으로 “시집『진달래꽃』초판본(매문사, 1925)의 유라시아 외국어 번역, 중앙아시아 한국학 교수협의회와 연계한 소월 시 교재 개발, 소월 학술대회, 국제 청소년 소월시낭송 대회 등”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있을뿐더러 전국 자치단체·기업과 연계해 가칭 소월기념사업재단을 발족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소월 국제 음악 축제, 소월 시 대중강연회, 북한에서 소월 시 보급과 학교 교육 실태조사, 소월 청소년 문학상 시상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 추세라 관심 있게 지켜볼 점이다. 까닭에 소월의 존재감이 새롭게 조명받는 현상에 비춰 작곡가 이건우가 그처럼 소월의 미적 감각과 담백한 시격(詩格)에 한껏 취했던 그 매혹(魅惑)을 따뜻한 감성과 예감을 지닌 이 시대의 우리 또한 사려(思慮) 깊게 분별할 일이다.
* 약력 : 강릉출생,『華虹詩壇』(1965) 발행인,『시문학』출신, 한국시문학학회 및 김동명학회 회장, 관동대학교 대학원장(총장대행)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학 명예교수, 한국기독교문협, 아태문협 및 문화앤피플 매거진고문, 월간『모던포엠』주간, 사) k 정나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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