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목요일 오후 2시쯤에 무안을 출발했다. 남편이 전날 모임을 오랫동안 하느라 다소 지체되었다.
이번 여행은 통영을 여행하기로 했다. 미리 숙박시설과 가볼만한 곳을 검색하여 두었다.
통영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안에서 약 3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통영관광호텔에 짐을 풀었다. 통영관광호텔은 생각보다 낡고 허름했다.
통영에 있는 각종 리조트는 이미 예약이 다 차버려서 예약하지 못했다. 그래도 통영관광호텔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갔었다. 통영관광호텔은 허름한 시가지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과거에는 호텔이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 추억만 가지고 서있는 허름한 모텔급에 불과하다. 쾌쾌한 냄새와 더러운 시트로 인해 기대감을 져버리고 있었다. 이틀을 예약했지만 우리는 하룻밤만 자기로 했다.
저녁에 통영중앙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시장은 거의 장사를 접은 상태이고 활어시장만이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해삼종류로 식사를 하기로 하고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단체로 와서 앉아서 먹고 있었다. 우리는 멍게비빔밥과 물회를 주문했다. 결단코 우리는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이 수저를 들고 싶지 않은 모양새로 나왔다. 정말 실망이 컸다.
내가 통영으로 여행하자고 해서 간 여행인지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차 올랐다. 여하튼 우리는 내일을 기대하고 숙소에 와서 잠이 들었다.
통영에서 유명한 곳은 통피랑 벽화마을과 통영 해저터널, 이순신공원, 욕지도와 박경리 기념관 등이다.
우리는 29일 금요일 아침 일찍 짐을 싸서 나와 동피랑 벽화마을로 향했다.
동피랑은 ‘동쪽’과 ‘비랑’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비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이다. 통영 시가지 동쪽에 동호동과 정량동, 태평동의 경계를 이루는 이루는 산의 바위 피랑지대에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이다. 옛 통영성의 동포루가 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푸른 통영21 추진협의회는 2007년 10월 도시재생의 색다른 시선 ‘통영의 망루 동피랑의 재발견’이라는 사업을 시행했다. 이는 통영시가 동포루 복원과 공원 조성 목적으로 마을을 철거하려고 하자,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살리기 사업이었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과 강구안 바다 풍경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통영시의 명소가 되었다. 2008민관포럼 최우수상, 2008전국 마을만들기 대회 우수상 등을 받았다.
실제로 가보니 가난하고 허름한 가파르게 자리잡고 있는 동피랑 벽화마을은 통영 바닷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사실 어제 통영에 들어서면서 시가지에 자리잡고 있는 주택과 이미지가 다소 가난에 찌든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몇개의 카페와 포토존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장 높이 자리잡고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면서 그림구경과 다리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통영바다를 둘러보았다.
어찌하여 대통령 출신들이 거의 경상도 출신들인데 이렇게 개발을 해놓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외에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온 듯하다.
우리는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내려와 통영해저터널을 방문했다. 통영해저터널은 길이 461m, 너비 5m, 높이 3.5m. 통영반도 끝의 통영일대의 해안선은 출입이 복잡한 위에 섬이 많은 다도해를 이루고 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彌勒島) 사이는 ‘판데목’이라고 부르는 좁은 해협인데, 그 해협을 건너 미륵도로 가기 위해 메웠다가 다시 파내어 운하를 만들고 그 밑을 파내어 당시에는 동양 최초이고, 우리 나라에서 오직 하나인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이 공사는 1927년 5월에 시공하여 1932년 12월까지 5년 동안 걸린 대공사였다. 인마(人馬)와 차량이 통행할 수 있었고 관광성(觀光性)이 높아 한때 통영지방의 명물로서 유명하였다. 이 터널은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고 낡은 공법(工法)으로 만들어진 관계로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노후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1967년 해상에 운하교(運河橋)인 충무교가 완성된 뒤로는 차량의 통과가 금지되었다. 통영일대의 많은 사적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사실 통영해저터널은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침탈의 기반 시설로서 건립되면서, 터널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일본인 통영 군수 야마구찌의 자작 휘호로 전해오는 “龍門達陽”이란 글씨가 남아 일본의 침탈의 역사를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일본 어민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지역 간 거리 단축을 위해 건립되었다.
일본의 침탈이 눈에 보이듯 터널은 굉장히 넓고 길었다. 일본은 하옇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나라를 속국을 만들어 배를 채운 나라임을 알 수 있다.
통영해저터널을 빠져나와 박경리 기념관으로 향했다. 예전에 자미에서 박경리 문학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박경리 기념관은 박경리 선생님이 통영출신이기 때문에 기념관을 만들어 그분의 공적을 기리고 통영을 빛낸 사람으로 통영은 기억하고 있었다.
왠일!!! 정기휴일이다.
우리는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기념관 벽에 박경리선생님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너무 정감이 가고 자연스러웠다. 항상 이런 곳에 오면 느끼는 것이지만 어떻게 하면 소설을 쓰고 시를 쓰게 되는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우리는 통영을 여행하는 것을 이것으로 마감하고 순천만정원박람회를 가기로 했다.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을 향하는 내내 몇년전에 가본 기억이 떠오르면서 볼 것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에는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약간의 기대감을 가졌다.
사실 이제 우리는 일일이 걸어서 관광을 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관람차 표를 끊어 관광을 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모여있다. 한시간은 너끈히 걸리겠다.
마침내 우리가 탈 관람차가 왔다. 약 20분간 순천만국제정원을 둘러보게 된다. 남편은 관람차에 타자마자 눈을 껌벅이기 시작하더니 간간히 졸다가 눈을 뜨고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기대하며 계속해서 주의깊게 관람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주요시설로는 세계정원 즉 프랑스, 중국, 네덜란드, 미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일본, 태국, 멕시코 세계 11개국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작가, 시민, 기업체 등이 공모를 통해서 참여하였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30여개의 다양한 정원이 조성되어 박람회장의 풍성함을 더하고 박람회 기간 이후에도 참가자들이 정원에 관심을 가지고 꾸며나갈 수 있다고한다. 박람회장에는 정원과 호수, 연못, 계곡 습지 등 물이 가지는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10개의 물의정원과 상수리나무숲, 메타세콰이어 숲, 소나무숲, 편백나무 숲 등 숲의정원이 박람회장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건강과 웰빙’실현의 장으로서 약초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효능을 테마로한 감상과 체험 공간인 ‘한방약초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정원은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에 따른 난대수종의 식생 변화 모습을 관찰 할 수 있는 난대수목원과 순천시의 대표 수종인 철쭉을 대규모로 조성한 철쭉원으로 구성되는 남도 숲 탐방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습지센터는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군락을 이루어 생태환경교육을 위한 최적의 습지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이며 비오톱 습지는 수생 동식물 및 조류를 관찰하는 생태 학습장으로 활용됨과 더불어 습지의 정화기능을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째 그렇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한데다 아예 몇년전에 본 때보다 덜 꾸며진듯한 기분은 무엇일까?
다소 실망이 컸다. 나오면서 기념으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다녀왔다는 사진 한장 찍었다.
우리는 다소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수로 향했다.
숙소는 도착해서 잡기로 하고 우리는 여수밤바다로 유명한 이순신장군로에 도착했다.
호텔과 펜션은 관광객으로 이미 만석이고 우리가 숙박할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는 다소 누추하지만 깨끗한 모텔을 방으로 잡았다.
여수밤바다의 풍경은 활기에 차 있었다. 많은 관광객 가족들이 부두를 거닐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즐거운 여행을 온듯하다.
저녁에 남편과 술한잔을 하면서 여수 밤바다의 정취에 취하고 싶어졌다.
손을 잡고 다니면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기 위해 여수 낭만 포차에 들어갔다.
여수 삼합에 맥주 한잔을 마시고 남편과 낭만을 즐겼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늦은 저녁까지 남편과 여수 밤바다를 돌아다니며 시원한 갯바람을 즐겼다.
다음날(30일) 우리는 오동도와 송광사를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니 밖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오동도와 송광사는 못가겠구나 싶어졌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우리는 오동도와 송광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항상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지도 여행지지만 마음편한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는 것을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참 복된 일인 것 같다. 남편은 피곤한지 집에 와서 맥주 한병을 마시고 그대로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나는 여행지들을 일일이 생각하며 그래도 만족스럽게 보고 즐기며 보낸 여행이었다는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