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 류영택
선을 긋는다. 꼬챙이로 마당을 가로질러 둘로 나눈다. 전위를 불태우듯 선을 경계로 나란히 선 사람들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마치 적을 바라보는 듯하다.
인간은 선을 긋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 나라와 나라를 갈라놓은 국경선, 남과 북을 갈라놓은 삼팔선, 도와 도를 갈라놓은 경계선,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윗담과 아랫담으로 갈라놓는다. 어쩌면 그 선이 나와 우리를 보호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지만, 선을 경계로 서로 간에 적의를 품게 만든다.
'나'라는 존재를 깨닫고부터 세상의 모든 것은 적이었다. 가까이는 형제자매였다. 맏이는 위엄으로 바로위에 형은 주먹으로, 그리고 위로부터 당한 분풀이는 동생들이었다.
집안에서는 찌기고 볶아도 삽짝을 나서면 상황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형들은 주위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었고, 나 역시 동생들의 바람막이가 돼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편을 갈라 게임이라도 하는 날에 또 다시 적으로 돌변했다. 편을 가르는 것은 싱겁기 짝이 없다. 빙 둘러서서 저마다 손을 내민다. '편나, 편나 편' 마지막 손을 내미는 순간 손바닥을 내민 사람과 손등을 내민 사람이 갈라지고 만다. 그리고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작전 회의를 연다. 게임에 이기기위해서는 형제도 없다.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
그러다 범위를 조금 넓히면 편 가르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손으로 편을 가르던 것을 골목이 대신해준다. 이젠 닭싸움이 아니다. 잔치 집 돼지오줌통을 몰고 골대를 향해 돌진할 때면 상대와 몸싸움을 벌이며 정강이를 걷어찬다. 윗담 아랫담, 한동네 아이끼리 전투를 벌인다.
그것도 지겨운지 아이들은 강가에 몰려든다. 강을 사이에 두고 투석전을 벌인다. 위협사격이 아니라 정조준이다. 우러러 몰려 밀고 갔다 밀려오는, 쫓고 쫓기는 전쟁을 벌인다. 그래도 그것은 지극히 순진한 전쟁놀이에 불과하다. 그저 우리라는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싸움이다. 정말 무서운 전쟁은 몸싸움이 아니다. 머리에 먹물이 들면 그런 싸움은 유머러스하기 짝이 없다. 생각할수록 미소를 지을 뿐이다.
몸싸움은 논쟁으로 변한다. 나이에 어울리게,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갑론을박 논쟁을 벌인다. 상대의 말끝마다 그게 아니고 언성을 높인다. 서로 자기의 주장이 맞는다며 핏대를 세우다 자리를 뜬다. 말싸움은 당사자들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주장에 패가 갈리고 만다. 말싸움할 가치도 없다며 양 무리는 서로를 소 닭쳐다보듯 한다.
서로에게 마음의 담을 쌓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틀을 갖춘다. 이쯤 되면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고 종교가 된다. 주먹으로 코피를 내고, 투석전으로 박을 깨는 전쟁은 전쟁도 아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사상의 이름으로 정신무장을 시킨 후 상대를 몰살시키려고 한다.
정말 무서운 건 눈에 보이는, 그어 놓은 선이 아니라 마음에 쌓아놓은 담이다. 선에 길들여진 사람이 마음의 담장을 허문다는 것은 까마귀가 백로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