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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성 윤가촌 여대 유적과 세형동검(좁은 놋단검) 문화>
기존 청천강을 기준으로 요령과 한반도 북부의 기원전 3-2세기경의 연화보 세죽리 철기문명과 그 아래로 세형동검문화를 기준으로 한다고 해서 이것이 요령 길림성등 만주일대가 세형동검문화의 공백을 의미하며 세형 동검문화가 청천강 이남으로 한 한반도내에서만 나타나는 전형적 양식으로 생각하는 고정 관념은 과감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
<요녕, 길림성등 요동 일대에는 지역적 특색이 가미된 북방 오르도스식의 영향을 받아 칼자루 끝 장식이 안테나형 즉 촉각식형태이면서 검신이 세형동검의 전형화 고정화되는 출토 유적들이 (4c후말엽~기원전 2c전엽)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서 위만 조선 성립 시기인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연화보 세죽리 철기 문명의 영향력이 광범위화 정착화 되면서 기원전 2c중엽~기원전 1c초엽에는 요령식세형동검이 서북한등 청천강 이남과 달리 지역별로 좀 더 이르게 쇠퇴, 소멸하게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을 뿐이며 서북한을 비롯한 청천강 이남은 생산도구류에서 철제의 도끼·낫·끌 등이 나오면서도 위만조선 멸먕기인 기원전 1세기에도 세형동검류의 문화적 색채가 강하게 지속 유지 되다 기원후 1세기 중엽에 가서 쇠퇴 소멸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즉 이 말은 요동과 한반도가 연화보 세죽리의 철기문명의 급진적과 영향력하에 시기적 존속시간에 따른 발전 변화의 양상 차이이지 요동이 세형동검문화의 공백이라는 기존의 고정 관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기존의 가설을 토대로 세형동검을 한국식(한반도식) 동검하에 고조선말기의 세력공간이 청천강 이남이며 나아가 위만의 중심지가 서북한 일대라는 기존의 고정 관념과 더불어 사기 조선열전의 위만 조선의 성격- 차후 구체적으로 설명-이나 문명수준이 한나라 철기대 위만조선 청동기수준이라는 식으로의 패망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고조선 동검인 비파형과 후대의 세형동검 과 중공식 동검의 특징에 대해 간략히 비교해 보겠습니다.
< 비파형 동검 > <중공식 동검(도씨검)> <세형동검>
고조선 동검의 가장 큰 특징
1. 중공식이나 오르도스식과 구분되는 큰 특징이 검신과 칼자루가 분리된 조립식 형태이며
2. 또한 가장 중공식과 구분되는 큰 특징은 그림에서도 보이는 검신 중앙 등대에 뚜렷하게 도드라지는 마디부분입니다.
3. 비파형 동검에는 아래 배가 부르고 검신 중앙에 돌출된 형태의 비파형 모양을 닮았슴.
4. 세형동검은 고조선 고유의 가장 큰 두 특징인 <1,2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검신이
시기별로 점차 곧게 정형화 고정화되어가며 검 중앙 마디가 더욱 뚜렷 굵어지며 날카로와지는
형태에 검신이 길어지는 양상화 됩니다.
이는 기원전 6세기경에 정형화되는 중공식 청동 도검의 곧은 살상용에 맞서 고조선 무기도 더욱 실용적 무기로 함께 보완 변천 된 것으로 보이나 비파형이 가지는 < 조립식과 중앙 마디의 도드라짐을 통한 강도 유지등의 장점과 고유성은 세형동검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고조선은 칼자루가 분리형이라 기능뿐 아니라 칼자루끝장식(검파두식)에 대한 무늬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입니다. 이 검파부에는 삼각문(三角文)·뇌문(雷文) 등의 무늬를 베푼 것이 많은데 이는 황해남도 신천(信川) 출토품으로 전하는 비파형 동검에도 Z자 연속 패턴이 시문되어 있는등 칼자루가 온전하게 남은 비파형 동검들을 보면 번개무늬가 세겨져 있고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번개무늬 거울인데 이후 다뉴조문경 및 현대에도 정밀함의 결정체이며 독보적인 한국적인 거울로 인정받는 다뉴세문경으로 이어집니다.
우선 앞서 잠시 언급한 요동 일대에서 발굴되는 세형동검의 변천 양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세형동검들은 한반도지역에서 출토되는 한국식세형동검과 대비하여 요령식세형동검이라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요령식세형동검은 중국 하북지역으로부터 한반도의 서북한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고, 세부형태 역시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요령식세형동검은 검신 하부 형태는 주형 속성을, 등대 마디 형태는 연마 속성을 각각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두 속성간의 조합관계를 통하여 다양한 형식을 설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요령식세형동검의 형식은 다양하게 분류된다.요령식세형동검은 요서지역에서 등장하여 주변으로 파급되는 과정에서 지역별로 다양한 형식을 파생시키면서 변천한다. 크게 보아 ‘과목수영자식→양갑산식,대청산-길상둔식→조가보자-유가초식→마가자-상보촌-박보촌식,오현리-왕둔식’으로 변천하는 계열과 ‘고비점식→윤가촌식→신송리식’으로 변천하는 계열로 양분된다.중국 동북지역의 세형동검문화는 요령식세형동검의 형식변천과 공반유물의 전개양상에 따라 크게 4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기(초기:기원전 4c전엽~후엽)에는 요령식세형동검이 처음으로 요서지역에서 등장한다. 요서지역에서 과목수영자식이 등장하여 유행하였으나 비파형동검이 여전히 사용된다. 요서지역 유적에는 전국연계 유물의 비중이 높아진다.2기(전기:기원전 4c후말엽~기원전 3c전엽)에는 요령식세형동검의 지역별 분화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요서지역은 점차 분포범위에서 탈락하게 된다. 천산산맥 이동의 요동동부지역에서 엽맥문 청동기가 출현하였으며, 비슷한 시점에 길림중서지역에서 촉각식세형동검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양식의 세형동검이 등장한다. 전국연계 철기문화도 요동지역으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3기(후기:기원전 3c중엽~기원전 2c전엽)에는 요령식세형동검의 형식이 몇몇으로 고정되고, 요동서부지역이 분포범위에서 탈락하는 대신 서북한지역에서 다양한 형식이 유행한다. 다양한 형태의 촉각식세형동검이 제작, 사용되며, 이와 함께 길림중서지역에는 다뉴성문경이, 요동동부지역에는 엽맥문 청동기가 유행하게 된다. 공반유물에서 전국연계 유물의 비중이 급증하고, 이와함께 연 이외에 조․제의 유물도 부장되며, 진․한초기 유물도 유입되기 시작한다.4기(말기:기원전 2c중엽~기원전 1c초엽)에는 요령식세형동검이 지역별로 쇠퇴, 소멸하게 된다. 요동지역은 분포범위에서 제외되나 촉각식철검이나 진․한대 동검의 영향속에 일부 세형동검문화의 자취가 확인되고 있다.>- 이후석-요령식 세형동검을 중심으로
요녕 여대 윤가촌 유적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67- 사진
1차조사는 해방 전 지역주민에 의해 우연히 칼[검
')">劍] ·청동도끼, 칼자루 각각 1개씩이 발견되어 이것이 조사가 계기가 되어 1964년에 2차 조사에서 총 280 m2에 달하는 지역을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많은 무덤과 동시기에 속하는 문화층을 확인. 여기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3개의 문화층이 알려졌다. 제일 윗층(제1층)은 현재의 경작층이었으며, 유물포함층은 2 ·3층이었으므로 편의상 이를 상하층으로 구분하여 부름.
이 요녕 유적에서 주목할 것은
1.청동단검의 몸체는 좁고 길며 비파형동검에서 볼 수 있는 날 좌우의 돌기부가 없는 유물로 이 유적의 단검이 이미 비파형동검에서 벗어나 좁은놋단검[세
')">細형
')">形동
')">銅검
')">劍]으로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BC 1000년기 전반기에 흔하던 미송리형(미
')">美송
')">松리
')">里형
')">形)토기는 보이지 않고 그 후기에 해당하는 나무그루모양 손잡이그릇이 새로 나타난다. 따라서 윤가촌 유적 아래층 2기문화는 유물갖춤새로 보아 BC 1000년기 전반기의 비파형동검 관계 문화를 계승 발전시킨 새로운 좁은놋단검 관계문화(BC 5세기∼BC 4세기)라는 것을 추정.
2.윗문화층에는 움무덤에서 나온 단지나 독무덤의 널로 쓴 토기 가운데는 한반도 서북지방 세죽리(세
')">細죽
')">竹리
')">里)유적에는 철기시대층의 토기와 같이 모래와 활석 가루를 섞은 등 이 같은 공통성은 두 유적을 남긴 주민들 사이의 깊은 문화적 연계를 말해 주며, 이는 고조선 주민집단의 분포나 세력범위와도 관련하여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형성 연대는 BC 3세기∼BC 2세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임.
3. 또한 이 상층 문화층에서 대형 토광묘가 발굴되었는데 모두 장방형의 토광을 수직으로 파서 만든 것으로 묘광바닥에는 나무관 또는 나무곽의 썩은 흔적이 발견되면서 <토광 목곽묘의 출현>을 이미 알리고 있습니다.-기원전 3∼2세기
요녕 여대 윤가촌 질그릇(단지)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1237 -사진
평안북도 녕변군 세죽리 세죽리유적 질그릇
http://roks821.egloos.com/8005096
기원전 2세기의 운성리토성에서의 질그릇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994
윤가촌 하층 제 2기에 나오는 화분형 단지 - 서북한 일대에 기원전 2-1세기의 목곽묘부터 귀틀묘 전축분의 기원후 1,2세기에도 계속해서 출토되는 고조선 재지형 고분 부장 출토 토기-한나라와 구분되는 고조선 고분양식의 특징.
윤가촌 하층 2기문화에서 출토된 나무그루모양 손잡이그릇
황해남도 신천군 명사리유적의 나무그루모양 손잡이 그릇
http://north.nricp.go.kr/nrth/kor/his/his_viw.jsp?cpsno=9
황해도 재령군 고산리 움무덤(載寧 孤山里 土壙墓) -세형동검은 칼날의 결입부와 등대의 마디가 없는 형식으로 요동반도의 旅大市 尹家村 12호 무덤의 예와 같으며 B.C. 4-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http://www.nrich.go.kr/kr/data/dic/dicview.jsp?id=770 -
요녕성 여대시 감정자구 누상무덤
요녕성 심양시 우홍구 정가와자촌 정가와자2호무덤 -기원전 5세기-기원전 4세기의 고조선시기 정가와자 2호 무덤에 서 드러난 세형동검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68
요령 관전현 조가성 유적-B.C. 3세기경의 세형동검
http://www.nrich.go.kr/kr/data/dic/dicview.jsp?id=13960
만주 길림성(지린성) 연길현 오랍가공사 왕둔대대 왕둔유적
http://north.nricp.go.kr/nrth/kor/cul/cul_view.jsp?cpsno=1110 -촉각식 세형동검
다시 한번 정리하며
1. 세형동검은 비파형 동검이 가지는 중공과 오르도스식의 동검과 다른 검신과 칼잡이가
분리된 형태 및 검신 중앙의 두드러진 마디가 더욱 두드려진 형태의 고조선만의 큰 특징을
유지하며 살상용의 기능성을 더욱 가미하여 시기별로 점차 곧게 정형화되어 집니다.
2. 세형동검은 청천강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한 일대 이하로의 국한된 고조선청동기 유물이
아닙니다.
3. 이는 만주에서 북방식 오르도스의 영향하에 칼자루의 장식이 가미되나 비파형 동검의 특
징을 그대로 유지하며 세형동검화 됩니다..- 촉각식 세형동검(일명 안테나 세형동검)
4. 요동은 촉각식형태이면서 검신이 세형동검의 전형화 고정화되는 출토 유적들이 (4c후말엽~기원전 2c전엽)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서 위만 조선 성립 시기인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연화보 세죽리 철기 문명의 영향력이 광범위화 정착화 되면서 기원전 2c중엽~기원전 1c초엽에는 요령식세형동검이 서북한등 청천강 이남과 달리 지역별로 좀 더 이르게 쇠퇴하여 서북한과 다른 시기별 존속과 철기가 더욱 광범위 정착화되는 발전상을 보입니다.
5.서북한의 세형동검은 빠른 시기 기원전3세기를 전후해서 기원전 1세기까지 계속해서 강한 세형동검류의 문화색채를 가지면서 기원후 1세기 중엽에 가서 쇠퇴 소멸합니다..
6. 이는 요령일대가 세형동검의 공백지대가 아님을 인식해야 하며 나아가 고조선 후기의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세형동검이라는 청천강 이남으로 국한시키는 견해는 지양되어야 하며 그런 견해하에 위만조선의 중심지가 서북한 일대라는 인식에 재고를 요합니다.-차후 사기 조선열전의 위만 조선의 성격이나 문명수준과 관련하여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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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입니다.다양한 자료와 사료등을 동원하여 대동강주변의 고조선설을 부정하시는 님의 글을 잘 읽고있습니다.건투를 빕니다.
제발 식민사학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요녕성 중에서도 요하 이동에서만 출토되지 않나요? 그거이 문제가 될 것 같은데... 결국 고인돌 분포와 같습니다.
동주식 동검이라 해야 할 듯...
요녕성 중에서도 요하 이동에서만 출토되지 않나요? 그거이 문제가 될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좀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최근 중공이 소수민족적 영토나 역사에 차별적 발언이라는 명목하에 중화적 단일 개념속에 포함시키려는 개념속에서 탄생한 조립식 부분에도 중국식동검의 분류로 만들어내는 상황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우리 입장에서 대단히 세심히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이런 식이면 결국 비파형이나 이후 초기 세형동검 분포지인 요서에서 요동과 한반도 북부 서북한 일대에도 거의 동시에 나오는 상황에 세형동검이라는 개념도 중국식동검의 한 연장에 불과해져버립니다.
그리고 이런 요녕 윤가촌이고 여기에 동반되는 유적, 유물에 대한 고조선계와의 연관성등도 함께 검토 고찰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주식동검 등의 경우 손잡이가 처음부터 검몸에 연결된 상태로 주조되어 있다는 점에서 완성식동검 또는 연주식동검으로 대분류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