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빈둥빈둥 치료법이 필요합니다
- 몸은 영혼의 성전
지방에 내려갔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새내기 신부 시절에 인연을 맺었던 신자를 만났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데 그가 자신의 본당 신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희 본당 신부님은 너무나도 좋은 분이세요. 정말 성인 신부님이세요. 다만 당신 몸을 돌보지 않아 걱정이에요.”
몸을 돌보지 않는 성인 신부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 본당에 나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조그만 본당으로 첫 주임 발령을 받고 가난한 삶을 살자는 결심을 했지요.
‘우선 먹을 것부터 검소하게 하자.’
그래서 주방 일을 하는 자매를 두지 않고 직접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마치 자취생 같은 식사였습니다.
‘연료비도 아껴야지. 신자 분들은 살림이 어려운데 본당 신부가 연료비 펑펑 쓸 수는 없지.’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보일러를 켜지 않고 옷을 두껍게 입고 덜덜 떨면서 지냈습니다. 사제관 바닥이 냉골이 된 것은 물론이지요. 그렇게 한 달을 보냈는데 사제관 2층의 수녀원에서 원장 수녀님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조금이라도 좋으니 보일러를 틀면 안 될까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보일러 틀면 될 것을 왜 저한테 허락을 구하고 그러시나요?”
“사제관의 스위치를 끄면 수녀원에도 보일러가 켜지지 않아요.”
“이런, 진작 말씀하시지 않고요. 앞으로 보일러를 켜겠습니다.”
겉으로는 미아한 체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수도자가 그깟 것 하나 못 참나.’
참으로 무지한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그 수녀님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 몸이 부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밥하기가 귀찮아서 라면만 먹고 거의 매일같이 술만 마시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몸이 무너지니 마음도 덩달아 무너져 내리더군요. 신자들에게 잘해야 하는 결심은 어디 출장 가고 자꾸 짜증만 늘어났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피하고 싶고, 싫은 사람들은 단점만 자꾸 보였습니다. 그런 스스로가 너무나 싫었지만 점점 더 그런 생활이 고착화되어갔습니다.
그대는 왜 그런지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아직도 가난한 삶을 덜 살아서 그렇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몸을 더 혹사해야 한다는 자학적인 방법만이 생각날 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가 영성심리학 책에서 이런 글과 마주쳤습니다.
“몸은 영혼의 성전이고, 영혼은 하느님께서 머무르시는 성전이다.”
그 순간 퍼뜩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영혼을 위한답시고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영적 독서도 했는데 정작 영혼이 쉬는 몸을 돌보지 않았구나. 아,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몸을 잘 돌보아야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인데, 몸을 돌보지 않았으니 영혼이 건강해질 리 없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구나.’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풀렸습니다. 그동안 사제 생활이 괴로웠던 것은 몸을 소중히 다루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하느님도 사람들의 영혼 구원에만 관심을 갖지 않으시고,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은근히 육체를 폄하하고, 몸을 돌보는 일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이 몸이 욕망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풍조입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영향 받은 강박적 성향의 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류 신학일 뿐이었습니다.
육체가 영혼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그에 관한 책들, 동서양의 간단한 의학서적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 몸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때늦은 자각이 들어 부끄러웠습니다. 몸은 마음만큼이나 예민하고 대화를 원하는 존재인 것을, 그 후부터는 ‘아무거나 먹자’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소박한 식사라도 몸에 고마움을 표하는 마음으로 먹습니다. 몸이 아프면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사과를 합니다. 몸을 함부로 다루어서 아픈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몸이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픈 것은 쉬어달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럴 때는 빈둥빈둥 치료법이 약입니다.
육체는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하는 동반자입니다. 아무리 홀대해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가족입니다. 그런 몸을 귀찮아하고 아무거나 먹이고 학대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며, 그것이야말로 죄를 짓는 일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신자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신부한테 이렇게 전해주세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신자들의 가난함을 생각하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신자들이 늘 건강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죄를 짓는 거라고요. 하느님을 생각할 시간에 신부 걱정하면서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드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미성숙한 행동이기도 하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의 염려를 받고 싶은 응석받이 콤플렉스가 작동할 수 있거든요. 건강해지면 사람들이 걱정해주고 살펴주지 않을 거라는 걱정일랑 하지 말고 당장 건강부터 챙기라고 전해주세요. 운동 열심히 하고, 담배니 술이니 몸에 안 좋은 것들은 자제하고, 신자들 업고 뛸 정도의 체력을 키우라고요. 그래야 사제 생활도 오래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육체는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하는 동반자~
“몸은 영혼의 성전이고, 영혼은 하느님께서 머무르시는 성전이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