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 이발소 / 심찬용
오늘은 고향에서 친목회가 있는 날이다. 객지에 사는 나는 고향사람을 한꺼번에 여럿이 만날 수 있는 모임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다. 고향을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내 볼일로 고향에 가서 바쁜 사람 불러내어 몇 분 간 내 용건만 말하고 헤어진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오늘 내가 그런 경우다. 열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 이상 남아 있다. 이럴 때 찾아가기 편한 곳이 있다.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만복 이발소로 발길을 옮겼다. 이발소 창문 옆에 매달려 빙빙 돌아가던 사인볼이 멈췄다. 어찌 된 일일까. 까치발을 하여 유리창 너머로 구석구석을 살폈으나 인기척이 없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책가방을 들고 학교 갈 때, 친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발소로 향했다. 추우나 더우나 그곳으로 매일 같이 출근하였다.
어느 날, 내가 이발하러 갔었다. 친구는 초등학교 때 늘 입고 다니던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갔지만 대꾸도 하지 않고 피했다. 자기 자신을 원망하듯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을 쓸어내며 세면대 이곳저곳을 닦기만 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다시 친구가 있는 곳을 찾았다. 흰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나를 보고 눈인사를 하지 않는가. 나도 기쁜 마음에 이발하는 사이 친구의 동태를 살폈다. 청소를 빨리 끝내고 내가 일어서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머리를 빡빡 깎고 일어서서 세면대로 걸어가니까 친구가 둥근 나무의자를 내밀면서 앉으라고 했다. 내 목에 앞가리개를 둘러주고 고개를 숙이라고 하더니 머리를 시원하게 감겨 주었다. 전에는 주인이 해 주었는데 친구가 하니까 부족한듯하나 어릴 때 어머니가 감겨주듯 정이 묻어났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기 전날 친구들과 함께 이발소로 간 일이 있다. 친구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예전에는 부끄러워 말도 잘 하지 않더니만 이날은 당당하고 자신이 차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의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잘못 깎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천만에 말씀 친구들 머리를 주인 못지않게 거뜬히 이발을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야! 너 이발을 잘한다.”하면서 칭찬을 했더니 쑥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세월이 흘러 대학 진학을 하고 한참동안 만나지 못했다. 대학 졸업 무렵에 친구 얼굴도 볼 겸 이발소에 들렸다. 친구는 가까운 친척 맞이하듯이 반겨 맞아주었다. 그날은 잘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흰 가운을 입고 주머니에 빗과 가위를 꽂고 있는 친구 모습을 보니 주인 같이 멋져 보였다. 머리를 손질하고 면도하는 친구의 모습은 프로가 다 되었다. 나를 보더니 머리 손질을 해 준다며 의자에 앉으라는 것이 아닌가. 요사이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라고 하면서 나의 머리 모양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늘 하던 모양 보다 엄청 보기가 좋았다. 친구를 다시 한 번 더 쳐다보면서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친구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다.
이발소를 개업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축하해 주고 싶어서 단걸음에 찾아갔다. 간판은 만복 이발소였다. 친구, 일가친척, 지인들 많은 축하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발소 앞에 화환도 여러 개가 줄을 섰다.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고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는가. 친구 모친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꿈만 같다고 눈시울을 적시면서 아들 등에 업혀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이렇게 평생을 바친 만복 이발소가 문을 닫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 이발소 안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손님들이 이발하기 위해 앉았던 의자도 없다. 의자 앞에 머리 모양을 비추어주던 여러 개의 큰 거울과 가위, 면도기 등 이발 도구도 없지 않는가. 또 거울 옆에 높이 자랑스럽게 걸려있던 흑백 사진 같은 이발사 면허증도 보이지 않았다. 또 면허증 옆에 만복을 상징하며 달아놓았던 새끼 돼지 여러 마리가 어미젖을 빨고 있던 복돼지 그림도 사라지고 말았다.
친구와 함께 차 마시고 앉아 동기들 소식과 고향 소식 등 이야기를 나누었던 접대용 의자, 신문, 잡지도 보이지 않았다. 세숫대야, 비누, 타월 등 세면도구 하나 없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낡은 세면대만 휑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다. 만복 이발소 이곳저곳을 다시 둘러본다. 만복 이발소는 내게 고향 소식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 소식을 알려주는 따뜻한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이발소 안으로 통하는 방에서 친구가 커피 잔을 들고 빙긋이 웃으며 나올 것만 같다.
얼마 전 만복 이발소에 들렸을 때였다. 커피를 타 주면서 우리 친구들은 모두 직장에서 퇴직하였지만 자기만은 이렇게 소일거리 삼아 일을 하고 있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또, 한복집을 하고 있는 부인과 슬하에 남매를 두어, 아들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고 딸도 취직을 했단다. 요즘은 연세 많은 노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산다고 환하게 웃음까지 보였다. 정말 알뜰하게 살았던 친구 모습을 보고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 정한 이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일이 뇌리를 스친다.
내가 정신없이 만복 이발소 안을 살필 때, 끽하는 자전거 급정거 소리가 들렸다. 젊은 사람이 나를 보더니 “오늘 이발 안합니까?”하고 물었다. 내가 이발소 문을 닫은 것 같다고 하자, 손님은 서운한 듯이 자전거를 되돌렸다.
친구의 만복 이발소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리려다가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왜 그만 두게 되었느냐고 당장 달려가서 물어 보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옆집 가게 주인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수전증 때문에 문을 닫았어요.”
나는 자식 사고 소식을 듣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이 묻어나는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휴식처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손질을 해주면서 평생을 살더니만, 정작 자기 손이 떨고 있는 것조차 몰랐단 말인가.
부모와 자식을 위해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 온 울타리같은 친구의 삶이다. 이제는 자기 건강도 돌보면서 부부 동반하여 해외여행도 다니고, 인생 2막을 즐기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하지만 친구는 아마 오늘도 어디선가 마음속으로 이발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