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그립다. 산(山)이...
요놈의 달리기에 맛들이기 전엔 자주 거닐던 산야(山野).
어느덧
그 좋은 단풍 다 지고 낙엽만 푸울풀 푸울풀 날리네.
이름 모를 야생화(野生花)가 무더기로 피어 있던 길가엔
앙상한 찔레나무 줄기에 빠알간 열매만이
사랑의 결정체로 수정처럼 빛나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그 인적미답(人跡未踏)의 오솔길을
이제라도 너와 나, 둘이서 거닐어 보세.
슬픈 고라니의 울음소리 계곡 가득히 들려오는 그 길로
새로운 가을 동화를 위하여...
친구야! 우리 한번 모든 것 다 후울 후울 털어버리고
가세나 산으로...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하며 천천히 올라보세나.
가파른 산등성이에서는 쉬엄쉬엄 숨을 고르며,
완만한 산마루에서는 가볍게 팔딱팔딱 뛰어보며,
봉우리에라도 오르면 대호(大虎)처럼 포효하며,
그러다 지치면 마당바위에서 한 숨 늘어지게 잠자며
간단한 배낭에 약간의 과일과 물을 넣어 가지고
가세나 산으로...
상봉에 올라, 그리고 상상봉에 올라
발아래 엎드린 봉우리들을 굽어보며 작아진 마음 활짝 열어 보세나.
풍상에 엎드린 고사목 바라보며 기고만장했던 마음 달래어 보세나.
병풍같은 바위 오르며 나약해진 마음 다잡아 보세나.
아스라이 닥지닥지 명멸(明滅)하는 도시(都市)의 불빛을 뒤로하고
가세나 산으로...
지난 일요일 새벽,
그러한 마음으로 만사 제치고 친구와 저는 입산금지(入山禁止) 구역의 길로 인적미답의 계룡산 일부 구간을 종주(縱走)하였답니다. 그러나 함부로 무단 입산하였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와 군부대에 문화유적답사 사전신고 하였고 더구나 친구는 산불감시요원이랍니다.
아무튼 대단해요. 제친구는...
직장생활에, 마라톤에(그것도 sub3), 산불감시에, 암벽등반에, 테니스에...
2. 계룡산(鷄龍山)은 어떠한 산인가?
200여 년전 작성된 산경표(山經表)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숨가쁘게 치달려온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태백산(1,567m)을 지나 소백산(1,421m), 속리산(1,058m), 덕유산(1,614m)을 거쳐 대간의 끝자락인 지리산(1,195m)까지 흐른다. 그러다 전북과 경북 경계에 있는 육십령(六十嶺, 1,734m)아래 영취산(靈鷲山, 1,076m)에서 산줄기 하나가 갈라져 서진(西進)하다가 마이산(667m)에서 남진(南進)하는 줄기가 호남정맥(湖南正脈)이요, 북진(北進)하는 줄기가 있으니 바로 금남정맥((錦南正脈)이다.
금남정맥의 시작은 어디이며, 끝은 어디인가?
산경표(山經表)에는 금남정맥의 시작을 전북 진안의 마이산(馬耳山, 667m)과 주화산(珠華山, 560m)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부여의 조룡산(釣龍山)과 부소산(扶蘇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금남정맥은 충청의 젖줄 금강을 두고 그 남쪽에 형성된 줄기이다. 이 정맥을 이루는 주요 산은 주화산을 시발(始發)로 연석산(925m), 운장산(1,126m), 인대산(666m), 대둔산(877.7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6m)등으로 총 길이는 약 250㎞에 이른다.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별로 높지 않으면서도 대전광역시, 공주시, 논산시등의 평야 지대에 솟아 있어 상당히 높게 보이며 금남정맥중 가장 기(氣)가 모여있는 곳으로 능선이 닭의 볏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계룡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도하고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와 신도(新都)를 물색하던 중 여기에 와보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 한편으론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니 마땅히 계룡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하여 계룡산으로 불리우게 됐다는 전설이 있기도 한데 어쨋튼 풍수지리 면에서도 명산이며, 무속신앙과 관계 깊은 신비스러운 산이다. 주봉(主峰)인 천황봉(845.1M)을 비롯하여 삼불봉, 연천봉, 관음봉, 수정봉, 장군봉, 황적봉등 200여개의 봉우리, 기암괴석과 서쪽에 용문폭포, 동쪽에 은선폭포, 남쪽에 암용추, 숫용추 폭포를 어우르고 있는 명산 명소이다. 봄에는 동학사 진입로변의 벚꽃터널, 여름에는 동학사 계곡의 신록, 가을에는 갑사와 용문폭포 주위의 단풍, 겨울에는 삼불봉과 자연성능의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3. 산행 개요
① 매표소-동학사(2001:11:18:일:새벽:05:50-06:05, 1.1km)
오늘의 산행은 금남정맥중 일부구간(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쌀개봉-천황봉-석문-용천령-멘재-국사봉-도곡리)이 될 것이다. 아내는 우리를 동학사 매표소 입구에 부려놓고 빨간 후미등 두 개만 조그맣게 조그맣게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칠흑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일찍 산에 오르는 사람들 몇이 보인다. 제법 쌀쌀한 날씨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쌀개봉에서 일출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동학사를 지난다. 이른 새벽, 새벽 예불을 드리는지 대웅전에 불이 훤하다. 은선폭포 쪽으로 향하다 보니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난다. 오솔길을 친구와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가다보니 어느덧 오르막이 시작된다. 사방이 아직은 깜깜하다. 희미한 손전등을 비춰가며 가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총총하고 별빛이 강렬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별빛이다. 차가운 새벽공기가 덮혀진 나의 육신에 부딪히니 오히려 상쾌하다.
② 동학사-은선폭포(06:05-06:30, 1.6=2.7)
동학사(東鶴寺)는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상원선사의 발원으로 회의화상이 창건하였으며 고려초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고종원년(1865년)에 크게 개수(改修)된 계룡산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먼 곳에서 계룡산을 보고 가까이는 동학사를 본다. 그런데 이 동학사는 예사로운 절이 아니다. 고려의 세충신을 모신 삼은각(三恩閣)이 있다. 어디 이뿐인가? 조선의 충신을 모신 숙모전(熟慕殿)은 지금도 매년 초혼제를 올릴만큼 역사와 함께한 절이다. 지금은 여승의 대표적인 강원(講院)으로 매년 수 십명의 비구니들이 불도에 전념하고 있다. 학창시절 이 동학사에서 남매탑을 지나 금잔디 고개를 넘어 갑사(甲寺)까지 구두신고 산행하던 기억이난다.
남매탑(男妹塔, 오뉘탑)하면 생각나는 전설 - 계룡산에 명물 남매탑은 98년 보물로 승격한 백제계 석탑 양식과 신라계 석탑 양식이 섞인 탑파이다. 7층탑이 오라비탑, 5층탑이 누이탑인 이 석탑에는 전설이 얽혀 있다. 백제 멸망 후 왕족 한 사람이 이곳에서 수도 중이었는데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몸부림치기에 살펴보니 목에 뼈가 걸려 있어 그것을 빼 주었는데 그 며칠 뒤 눈이 내리는 겨울밤에 호랑이는 젊은 여자를 업고 와 내려놓고 갔다. 여자는 결혼식을 올리고 신방에서 자다가 잠깐 밖으로 나온 사이 호랑이에게 업혀 왔다고 했다. 해동(解凍)후 그는 이 여자를 고향에 돌려보냈으나 여자의 부모는 죽은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데리고 살기를 권해, 이에 두 사람은 함께 살되 서로 범접치 않으며 구도(求道)에 몰두, 깨달음을 성취했다 하여, 이에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후대인들이 석탑 2기를 쌓았다고 한다.
③ 은선폭포(隱仙瀑布)-보살너덜이고개(06:30-07:00, 0.8=3.5)
몇 개월 째 가뭄이 계속되어 몇 방울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으로는 여기가 폭포라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게 한다. 사실 여기서 쌀개봉을 보면 그 형상이 떡을 찧는 디딜방아의 쌀개같다는 쌀개능을 잘 볼 수 있지만 어둠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은선폭포에 이르니 산장 할머니께서 이제 막 문을 열고 계시다. "참 일찍 나섰수다." "예, 일출 좀 보려구요" 물 한모금을 마신다. 친구는 안 마신다. 친구는 하프에서는 한 모금의 물을 안 마신다. 풀에서도 20km넘어서야 몇 모금을 마시고 다만 사탕을 빨고 갈 뿐이다. 난 유독 땀이 많다. 그래서 마라톤이건 등산이건 물을 많이 마신다. 계곡에서 맑은 물 2병을 채우고 다시 오른다. 이제 손전등도 불필요하다. 주위가 점점 밝아오고 별빛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 가는 양쪽 계곡 사이에 빠끔히 보이는 조그맣게 째진 하늘 사이로 칼능이 위의(威儀)롭게 쌀개능을 향해 뻗어 오르고 있다. 점점 고개가 가파르다. 점점 속도가 떨어져간다. 이제 아예 절벽이다. 올 정월 초하루 아들놈과 여기를 오르던 생각이난다. 일출을 보려는 행렬의 손전등이 마치 끊임없이 이어진 봉화처럼 상봉(上峰)을 향하여 끝없이 이어 졌는데 눈은 무릅까지 빠질 정도로 내려서 아이잰을 착용하고 올랐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투혼을 다하여 보살더덜이 고개를 올라서니 여기가 바로 관음봉아래 쌀개능선, 문필봉, 연천봉의 갈림길이다. 올 정초 아들놈과 여기서 일출(日出)을 보았다.
④ 보살너덜이고개-쌀개봉(07:00-07:15, 0.8=4.3)
보살더덜이 고개를 올라 간이의자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문득 천황봉 방향을 보니 입산금지구역이란 푯말이 고압적으로 서있다. 그러나 사전신고를 하였으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표지판에는 좌측 동학사 1.8km, 우측 신원사 2.7km 라고 적혀있다. 이제 주위의 사물이 완전히 식별된다. 서둘러야 쌀개봉에서 일출을 볼 것같다. 쌀개능선 방향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관음봉(816m), 그리고 삼불봉(775.1m)까지 연이어진 자연성능(自然城稜)은 아침 햇살에 "로즈스톤"처럼 웅장함을 자랑한다. 그것은 계룡산 최대의 절경을 연출하는 거대한 자연장벽이요, 성릉인데 용트림치는 비룡(飛龍)의 등줄기 같다. 그리고 날씨가 맑아 작년가을 8시간 종주한 장군봉(將軍峰, 540m), 신선봉(神仙峰, 481m), 삼불봉(三佛峰,), 관음봉(觀音峰,), 천왕봉(天王峰, 605m), 미륵봉(彌勒峰,), 마안봉(馬鞍峰,), 황적봉(黃積峰, 664m), 치개봉, 밀목재가 뚜렷이 다가오고 발아래 납작 업드린 동학사 지붕은 한발만 디디면 뭉개어질 것만 같다. 또한 수정봉(水晶峰, 662m), 문필봉(文筆峰, 756m), 연천봉(連天峰, 738.7m)은 지척에 있어 반 팔만 뻗어도 손아귀에 잡힐 것 같다.
그리고 저 멀리 논산평야와 경천저수지, 양화저수지의 흰 빛 물결이 아름답다. 갑사와 신원사는 안보이지만 그것을 가리고 있는 수정봉, 연천봉 사이로 보이는 그 근방은 천혜의 명당임을 짐작케 한다. 연천봉에는 빠트릴 수 없는 것이 하나있는데 바로 정상에 새겨놓은 암각(岩刻)이다. 이 암각은 지금 시중에서 화제가 되고있는 「方百馬角 口或禾生」이란 여덟 글자이다. 언제 누가 이 글을 새겨 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인(世人)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이 글자의 뜻은 「4백82년후에 나라가 망한다」란 뜻인데 이씨조선의 멸망을 예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 당시 민초들이 얼마나 이씨조선에 대해 원망과 한(恨)을 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그런데 이 예언과는 달리 조선은 5백년을 넘기고도 19년이나 더 지속됐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연천봉아래에 압정사를 세운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신원사 경내에다 중악단(中嶽檀)을 세워놓고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지낸 것도 한 이유로 해석된다.
⑤ 쌀개봉-석문바위(07:15-07:40, 1.2=5.5)
깍아지른 능선을 가느다란 밧줄을 잡아가며 오르락 내리락 하며 쌀개봉으로 향한다. 디딜방아의 쌀개에서 연유된 이 봉은 금남정맥의 수많은 봉우리중 가장 어려운 코스다. 봉 자체가 전부 암반으로 되어있고 길도 밧줄이 아니면 오르기가 어렵다. 한 여름을 견뎌온 잎사귀를 떨구고 서 있는 고산목, 하얀 솜털같은 꽃술마져 대부분 떨구고 서있는 억새풀은 자연의 참모습이다. 왜 우리가 산에 오르는가를 알려주는 아름다운 것들이다. 급사면을 올라 능선 마루에 올라서니 천황봉을 뒤로 통신 시설이 있는 바위봉이다. 쌀개봉을 향하는 좁은 암릉을 통과하는 바윗길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다. 통천문을 통과하여 쌀개봉으로 오른다. 쌀개봉(827.8m)에 오르니 이미 해는 조금 솟아 있다. 붉은 해가 불끈 천지사위(天地四位)를 빛내며 솟아오르고 있다.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둘이서 힘껏 포효해 본다. 메아리가 자연성능과 봉우리들에 반향되어 길게길게 계곡마다 잔잔하게 스며든다. 속이 트이고 시원하다. 막혔던 응어리들이 산산히 부숴져 나간다.
예전에 지나간 산악회에 매달아 놓은 빨간색 리본을 따라 작은 돌들이 길게 쌓여 있는 돌무더기를 기어올라 잡목사이로 좁게 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 주위를 살펴보니 왼쪽으로 희미하게 잡목 사이로 발자취가 보인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니 천황봉 쪽이 아니고 천황봉 아래 능선 옆구리 소로(小路)이다. 통신시설, 군부대시설이 즐비한 상봉은 씩씩하다기 보다는 무거운 철탑을 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좌측에 천황봉이 보이나 송신시설 때문에 통행을 금지하고 있어 우측으로 돌아가야 된다. 지키는 초병들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가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왜 우리나라 명산의 정수리마다 송신시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철탑을 철거한다고 몇 번 보도가 되었는데 철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하늘 중앙까지 치솟은 당간지주같은 돌기둥이 나타나는데 석문바위다. 석문바위를 내려서니 천황봉 아래 머리봉이 지척이다. 머리봉은 옆에서 보면 사람 얼굴 같다하여 "큰바위의 얼굴" 혹은 "정도령 바위"라고도 하는데 닭의 벼슬를 닮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⑥ 석문바위-십자로안부(07:40-08:20, 1.5=7.0)
석문바위를 지나 사면(斜面)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이키며 앞을 보니 444m봉 너머로 봉과 봉으로 연결된 산줄기가 통신 시설이 설치된 향적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서 보기에 좋다. 그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와작와작 요란한 발소리에 산짐승들이 놀라 달아난다. 산골짝엔 옷을 벗은 채 황량하게 변한 나무들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⑦ 십자로안부-朝食(08:20-09:10, 0=7.0)
이름 모를 묘지옆을 지나는 오솔길이 나타나는데 바로 십자로다. 오른쪽은 신원사 방향이요, 왼쪽은 숫용추 방향, 앞은 향적산 방향이다. 신도안은 옛부터 수많은 신앙인들이 모여들던 유명한 곳이었다. 옛날 옛적 그 오솔길을 통하여 토속의 애니미즘의 통교(通交)가 있었으리라. 조금 가니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마당바위에서 친구와 베당을 풀고 아침을 요기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본다. 갖은 반찬에, 찰밥에, 과일에 진수 성찬이다. 그 가운데는 친구가 지난번 강화대회 가서 사온 강화 순무로 담근 김치가 있었는데 그 김치를 먹으니 거기서 길라잡이 했던 고 재봉님이 생각난다. 평소 술을 안 먹지만 친구가 가져온 소주 한 병을 안먹을 수 없다. 알딸딸하다. 숫용추로 가는 길다란 계곡, 거기를 굽어보는 머리봉 모두 좋다. 더구나 사람의 흔적이 없어 꼭 연변 백두산 기슭에 온 것 같다.
⑧ 십자로안부-용천령(09:10-09:45, 1.5=8.5)
십자로 안부에서 억새 밭을 지나 잡목 숲에 들어서면서부터 낙엽이 쌓여 희미한 산길이지만 간간이 눈에 띄는 리본을 확인하며 능선을 따라 서서히 가다보니 444m봉이다. 좌측 공주시 계룡면, 우측 논산시 상월면, 두마면의 경계인 444봉에 이른다. 방향을 남서쪽으로 틀면서 내려서는 길에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쳐 놓은 작은 흙더미로 변한 묘를 보며 지나가다 보니 또 하나의 소봉이 나타나는데 423m봉이다. 봉에서 바라보니 우측 아래로 용화저수지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경지 정리로 반듯한 논들과 마을들이 내려다보이는데 바로 상월리 들판이다. 등산로 주변에 군인들이 역사한 수많은 개미집 같은 피라밋 모양의 진지가 계속된다.
⑨ 용천령-504봉(09:45-10:10, 1.6=10.1)
용천령을 통과한다. 왼쪽으로 서문다리와 머리봉을 지나 계룡산 남능(南綾)과 연결되어 있고 오른쪽으로 용화사를 지나 상월면 상도리로 내려설 수가 있는 용천령에는 명감 덩굴에 빨간 열매가 아직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어서 잠시 후 464m봉을 도착한다. 464봉에서 상월 들녁을 바라보니 구릉지대와 사이사이의 전답, 모두모두 정겨운데 그 들녘 한가운데 야산에 자리한 백제시대 쌓은 노성 산성을 바라보니 처절한 싸움의 소리가 환청(幻聽)되어 들려온다. 이때 국사봉 방향에서 오시는 등산객 한 분 만나다. 천황봉을 넘고 관음봉을 거쳐 자연성릉을 타고 삼불봉을 거쳐 남매탑으로해서 동학사로 하산할 예정이라 함. 홀로 나서신 분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해보며 헤어진다.
⑩ 504봉-멘재(10:10-10:40, 2.2=12.3)
억새풀이 바람에 휘날리는 504m봉에는 밀양 손씨묘가 한가운데 넓게 자리잡고 있다. 왼쪽으로 헬기장이 있는데 거기서 바라보니 신도안(新都安)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한 묘사는 군 기밀 사항이므로 생략하기로한다. 그러나 산아래 주변의 허리를 잘라내어 만든 골프장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굳이 무학대사의 안목이 아니더라도 여기서 보니 과연 천하의 명당(明堂)이다. 상봉인 천황봉(845.1m)을 중심으로 동측으로는 도덕봉534m), 백운봉(536m), 관암산(525m), 시루봉, 조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있으니 좌청룡이, 서측으로는 국사봉을 정점으로한 향적산 줄기가 있으니 우백호요, 중앙의 숫용추, 암용추 사이의 대궐평은 시루봉 아래 새동 동문다리, 용천령 아래 서문다리를 거느리고 있어 편안하고, 중봉을 앞세우고 안평산이 안산(安山)으로 자리하고 있는 품이 지금 이곳에 꽃게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한 태조 이성계가 도모하던 일국(一國)의 수도였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상상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하던 시조가 생각난다. 대궐평 좌우에도 노적봉, 재석산, 백암동 계곡, 신털이봉(궁궐터를 닦던 인부들이 쉬는 시간에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서 생겨났다는 작은 봉우리), 제자봉, 종로터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아쉬움을 더해준다. 지금 그 유일한 흔적은 109개의 주초석(柱礎石)으로 잡초 속에서나마 남아 전설만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그 어간이 약간 좁은 느낌도 들지만 중봉 앞에 펼쳐진 두계, 엄사 들녁, 그리고 빈계산 너머 학하리 들녁, 향적산 너머 상월 들녁을 생각하면 좁은 것도 아니다. 여기 밀집했던 500여개의 신앙촌을 몰아내고 1984년 620사업으로 오늘의 저 육해공군이 집합한 계룡대로 자리하고 있으니 그 때 만일 그 신앙촌을 살려 두고 문화 관광단지로 하였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상상으로나마 달래본다. 그 500여개의 교단(敎團)은 흩어져 향적산으로, 대전시내로, 논산방향으로, 제주도로 산개(散開)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기도 하고 아예 없어진 교단도 많다니 애석할 뿐이다.
⑪ 멘재-460봉(10:40-11:10, 1.7=14.0)
얼마 남지 않은 흰 꽃술이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풀이 우거진 멘재에는 통나무 의자가 있고 왼쪽으로 길이 선명하게 나 있다. 뒤를 돌아보니 천황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앞을 보니 국사봉이 약 1km에 있고 그 아래 TV송신소가 볼상스럽다. 북으로 계룡산 천황봉이 우뚝 서있고, 동으로 계룡대, 서로는 논산 상월면의 들녘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범한 능선들이 보기에 좋다. 여기서 금남정맥은 향한리 방향으로 꺽여 나가다 양정 고개를 넘고 천마산(287m), 개태사 천호산(340m)을 지나 바랑산, 월성봉, 대둔산으로 이어져 나가지만, 오늘은 성지 국사봉을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대둔산 서측 자락인 안심사, 법계사를 품고 있는 바랑산, 월성봉은 아내와 예전에 자주 가던 산이다. 거기도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천연(天然)이 잘 보존된 곳이다.
⑫ 460봉-국사봉(11:10-11:35, 0.8=14.8)
460봉에서 보는 멘재골엔 아직 단풍이 약간은 남아 있어 서운함을 달래주고 멘재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두어둔 종평지는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460봉을 내려서 향한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을 무시하고 키 작은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평탄하고 선명한 능선길을 따라가노라니 국사봉 정상이다. 아내와 향한리에서 종평지를 거쳐 귀룡정사, 거북암, 산제당을 거쳐 여기 460봉을 지나 국사봉까지 몇 번 와 본 기억이 새롭다. 종평지 위에는 외국인 승려들의 도량이 있고 계곡 곳곳에 무속인들이 수도하며 거쳐하던 살림집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 신앙이 들끓던 곳은 잡초에 뒤덮혀 있다. 산제당은 일부(一夫) 김항(金恒)선생이 정역(正易)을 연구하던 곳이다. 참으로 오묘한 우주의 원리인 정역(正易)에 대해서는 후일을 기약하기로 한다.
⑬ 국사봉-도곡리(11:35-12:10), 1.2=16.0)
國事峰(574m)정상에는 심하게 훼손된 비석 2기가 서있다. 그 하나는 오행비(五行碑)로 「五, 火, 聚, 一」의 네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또 하나는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로「天鷄黃地, 佛, 南斗六星, 北斗七星」이란 글씨가 각각 새겨져 있다. 이 碑엔 한반도가 천년 이상 동방예의지국이 유지 되도록하는 단군 성조의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거기서 친구와 히말라야라도 오른양 우렁찬 포효를 하고 남측에 보이는 칼날 같은 몇 개의 봉우리를 넘는데 여기서부터는 희미한 오솔길마져 있는 듯 만 듯 하다가 종국에는 낙엽이 무릅 까지 올라오는 산등성을 타고 내려온다. 그야말로 원시 자체다. 8부 능선에서 내려다보니 언젠가 와 봤던 도곡리다.
⑭ 도곡리-주유소(12:30-13:00, 2.0=18.0)
도곡리 마을 회관 뒤로 동양화같은 민가 몇채와 산자락 아래 사강대는 대나무 숲은 우리를 옛 추억으로 인도한다. 자치기, 빠치치기, 팔방놀이, 늘이개, 팽이치기등등... 산록을 내려서니 시조묘(始祖墓)인 듯 으리으리하게 석물을 배치한 묘지가 나타난다. 마을로 들어오는 농로길도 잘 포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시조묘의 후손이 번창함을 알수 있으나 흙길을 밟는 정취는 어디서고 느낄 수 없다. 한참가니 때마침 통과하는 호남선 열차가 성냥곽을 연결한 장난감처럼 아련하게 통과하는 굴다리가 나타난다. 거기를 통과하니 대전-논산 1번 국도이다. 주유소에 이르니 13시인데 이제 제법 시장기가 돈다. 주유소에서 식수를 얻고 언덕 빼기에서 배낭을 풀고 먹다 남은 반찬과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본다. 마지막 남은 과일 한 알까지 깨끗이 치운다. 주유소 주인이 후줄그런한 중년 둘이서 거지처럼 쭈그리고 부실하게 요기하는 것을 보고 안쓰러운 듯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 야기기 저 이야기하다 나중에는 부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 주유소로 돌아간다.
4. 후기(後記)
① 산행시간
05:50-13:00 총7시간10분(마당바위 휴식 50분 포함)
② 산행거리 18km로 추측
동학사에서 천황봉 석문바위 까지는 정확한 거리이나 기타는 추측 거리임.
③ 등산 난이도
천황봉까지는 오르막이어서 힘들지만 천황봉을 지나면 국사봉 까지 중간 중간 소봉(小峰)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내리막이어서 마라닉하기에도 아주 좋음. 만인-식장 능선보다 쉬움. 전문 산악인들은 우리가 간 역(逆)코스로 등정함. 실제 이번 산행에서도 그런 분을 몇분 만났음.
④ 달리기 일지, 산행일지, 달리기 참가기, 산행기 왜 쓰나?, 왜 발표하나?
나중에 알리겠슴
⑤ 직장인으로 엄청나게 바쁠텐데 언제 시간을 내어 글을 쓰나?
나중에 알리겠슴
⑥산경도(山經圖)로 본 대간(大幹)과 정맥(正脈)
산경도(山經圖)에 대하여 어느 한의학자가 말하길...
『한의학(韓醫學), 풍수(風水), 지리(地理)등 경락(經絡)을 표현해야 하는 학문에서는 경(經)과 혈(血)의 개념이 아주 중요하지. 혈은 하나의 지점을 얘기하는 것이요, 경은 끊기지 않는 흐름을 말하지. 그러니까 산경은 산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흐름, 즉 산줄기를 말하는 것이지.』라 하였다. 산경표를 이해 했다면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금방 알 수있다. 태백산맥은 산맥도(山脈圖)이고 백두대간은 산경도(山經圖)이라는 것을. 우선 산맥도를 보자. 산맥들이 엿 조각처럼 뚝뚝 끊겨있는 것이 눈에 뛴다. 그리고 거의 직선형태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산맥들이 거침없이 강을 건너 달린다는 사실도 목격된다. 이번엔 산경도를 참고하자. 대간(大幹)과 정맥(正脈)들이 구불구불 달린다. 한반도의 큰 강 10개를 절묘하게 피해간다. 어느 산줄기도 강과 만나지 않는다. 산줄기들이 모두 한 몸처럼 연결된다. 나무를 뽑았을 때 뿌리까지 쑥 따라 뽑히는 느낌을 준다. 이리하여 산경도는 이 땅의 지형을 자연 그대로 그린 그림이다. 산이 솟아있는 자리에 산을, 물이 흐르는 자리에 물을, 마을이 있는 자리에 마을을 그려 넣었다. 그러면 우리가 배웠던 산맥도는 무엇인가? 한 일본인이 땅속의 지질구조를 그린 것에 불과하다. 생성연대가 비슷하면 같은 산맥이라 했고 생성방법이 같으면 또 같은 산맥이라 표시했다. 요컨대 얼굴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 얼굴을 구성하는 세포에 따라 다시 그린 그림이다. 산경도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산경표를 알아야 할 이유는 자명(自明)하다. 산경도는 이 땅의 지형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주는 소중한 도구이자, 증거이다.
산경표를 근거로 한 우리의 옛 지도는 무궁무진하다. 이 가운데 1557년경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 국보제284호)」는 가장 오래됐다. 그 이후에 제작된 「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를 비롯 군현도(郡縣圖)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맥락을 이뤘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로 유명한 김정호(金正浩)도 지형 표현의 전통기법을 계승하여 「청구도(靑邱圖)」와 「동여도(東輿圖)」를 제작했다. 나중에 이같은 산줄기 지도를 정리한 것이 산경표(山經表)이다. 산경표는 전국의 산줄기를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正脈)으로 분류했다. 모든 산맥의 연결은 자연지명인 산 이름, 고개 이름등으로 하고 족보처럼 만들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굵게 표시된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다. 대간이라는 격(格)을 주어 한반도 모든 산줄기의 기둥으로 삼았다. 정간은 장백정간(長白正幹)으로 역시 하나뿐이다.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의 고두산(高頭山, 1988m) 에서 시작해 두만강 끝부분으로 이어진 산줄기이다. 나머지 13개 정맥이 있는데 이는 한반도 10개의 큰 강을 각각 구획하는 울타리이다. 정맥은 강의 울타리, 즉 분수령을 말한다. 어느 정맥에 서거나 내려다 보이는 좌,우 물길은 「별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15개의 대간·정간·정맥은 강과 분수계를 기준으로 삼았다. 장백정간은 두만강, 청북정맥(淸北正脈)은 압록강, 청남정맥(淸南正脈)은 대동강과 함께 하고 있다. 해서정맥(海西正脈)은 대동강을,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은 예성강을 끼고 있다. 또 한북(漢北)·한남(漢南)정맥은 한강을 돌고 있으며, 금북(錦北)·금남(錦南)·금남호남(錦南湖南)정맥은 금강과 함께 마주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호남정맥(湖南正脈)은 섬진강, 낙동(洛東)·낙남정맥(洛南正脈)은 낙동강과 긴 인연(因緣)을 맺고 있다. 백두대간은 이름에 걸맞게 총10개의 강(江)중 두만·압록·대동·임진·한·금·섬진·낙동강등 8개의 강과 직간접으로 연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