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이탈리아는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늘 그리고 대개가 다 그렇지만, 전쟁을 일으킨 책임은 당시 정권을 장악하던 일부 기득권 세력에게만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일반 민중들에게 전가되었고, 오히려 하층민들일수록 뼈저린 고통을 맛보아야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 황폐화된 도시 기간시설은 도시에 근거해 생계수당을 찾아야하는 많은 노동자들을 민생고의 나락으로 밀어넣었고, 이 어려움은 영화산업의 패러다임을 필름 안과 밖 모두에서 바꾸어버린다. 제작자및 스폰서의 부재, 필름의 품귀현상 등이 필름 밖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이었다면, 필름 안에 끼친 영향은 한 마디로 '네오 리얼리즘의 태동' 이라 표현할 수 있다.
네오 리얼리즘이란 용어는 파시스트 정권 하 1942년 (이탈리아 패전 선언 한 해 전) 이탈리아 영화 비평가 안토니오 피에트란겔리와 움베르트 바르보로가 처음 쓰기 시작했다. 이렇듯 파시스트 정권하 예술적인 억압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영화 운동은 패전 직후 급격히 어려워진 이탈리아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어려운 시대 상황에 대한 영화적 대응'이라는 형태로 발전된다. 그리고 그러한 네오 리얼리즘의 정점에 서 있는 영화가 바로 흑백에서 컬러 필름의 전성기까지 꽤 오랜기간 활동한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의 초기 흑백영화 <자전거 도둑> 이다.
네오 리얼리즘은 기존 파시스트 정권 하 진행되었던 영화의 현실 외면적인 허구성을 날카롭게 비판, 그 반대편을 달리게되는 이즘(-ism)이다. 뭇솔리니 집권중에는 브르조아 부인 들을 주로 등장시켜 현실을 호도한 평온한 일상을 낭만적으로 그린 멜로(또는 로맨스) 영화들이 유행했다. (현실감 없는 흰색전화기-부유층 가정에서 주로 아녀자들이 사용한 전화기)가 영화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였기에 이런 부류의 영화에는 '백색전화영화' 라는 별칭까지 나중에 붙는다. 반면, 네오 리얼리즘의 영화들은 이같은 허구보다는 사실을, 고상한 영웅보다는 시대와 고통을 함께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예외 보다는 일상, 남다른 개인사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민중을 통해 이들은 당시의 사회적 현실과 희망없는 사회 구조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파괴해 나가는가를 그려내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 <자전거 도둑> 역시 당시 실제 철공소 노동자로 일하던 남자와 신문배달을 하던 소년을 캐스팅하여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단순한 연기를 넘어선 정서적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그래서인지 다소 어설퍼보이는 배우들의 연기 속에선 그 어떤 명작 고전영화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진실성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매력은 단지 보여지는데서만 있는게 아니다. 그 보여짐 이면과 주변을 통해 전달되어오는 '진짜'에서 느껴지는 울림이 오히려 더 크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슬프거나 비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감동적이며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