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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일렛」을 본 소감
며칠 전에 우연찮게 영화「토일렛」을 보게 됐다. 아무런 사전지식이나 편견이나 기대도 없이, 순수하고 즐거운 마음만 가지고 보게 된 영화이다. 그날은 하하씨네 모임이 있던 날로, 비디오방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우리가 선택한 영화를 보는 오붓한 시간이 계획된 날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리고 경은씨 덕에 광주시청에서의 토일렛 감상에 만장일치 의견이 통일되어 시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토일렛, 제목도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본 이 영화는 초반부는 아주 지루하리만큼 느리지만 볼수록 서서히 빨려 들어가더니 결국에는 흐뭇한 웃음 띈 얼굴로 긴 여운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일렛」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만든 영화로 캐나다 토론토의 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동양인 할머니와 서양인 손자손녀라는 독특한 설정 하에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남긴 아담한 집 한 채에서 문제 많은 캐나다인 세 남매와 말도 통하지 않고 피부색도 다른 정체가 묘연한 이상야릇한 일본인 할머니가 함께 살아가며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가슴 따뜻하게 그리는 영화이다. 늘 같은 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연구실에 출근하여 묵묵히 실험에만 열중하는 레이, 어떤 대인관계도 없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로봇 프라모델을 수집하는 것이고, 과거에는 피아노 천재였지만 4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앓게 되면서 혼자서는 집 밖 출입도 할 수 없이 늘 징징거리는 형 모리, 발랄하다 못해 드세기까지 하면서 제멋대로인 여동생 리사,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일본에서 어렵사리 찾은 미심쩍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외할머니까지, 「토일렛」은 독특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야릇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그리며,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이 마음으로 소통해나가는 과정을 가슴 따뜻하게 그려낸다.
나는 이 영화에서 느끼고 공감했던 부분을 같이 공유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준다는 점이다. 「토일렛」은 가족 안에서도 소통 불가능해 보이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개인들이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진정한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해나가는 모습을 그려내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영화이다. 문화도 다르고 피부색과 나이도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 레이는 귀찮아진 할머니가 자신의 친할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거금 3000달러를 지불하고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는데, 그 검사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이 가족의 친 혈육이 아닌 사람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매일 귀찮은 일로 전화나 하는 사고뭉치에 골칫거리로만 여겨왔던 동생과 형 그리고 할머니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가족으로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품어왔다는 사실까지도... 유난히 피, 즉 혈육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짚게 하면서 통념적인 가족의 의미에서 한 발짝 나아가게 만드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이 영화는 재미 내지는 유머, 잔잔한 감동이 있다. 영주씨 말마따나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유머는 박장대소, 포복절도, 파안대소 류의 웃음 코드는 아니다. 이 영화에는 헐리웃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크라이맥스나 스팩타클한 사건사고도 없이 단지 재봉질, 교자, 에어기타 같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면면에 얽힌 단조로운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유쾌한 재미와 은근하고 잔잔한 유머를 연출함과 동시에 가족 간의 관계맺음과 애정을 차분하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낸다.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한, 레이가 소망하는 프라모델의 가격 3000달러와 유전자 검사 가격 3000달러의 비교 장면에서 잔잔한 웃음이 새어 나오더니 프라모델 가격과 할머니를 위한 위즐렛 가격 3000달러의 비교 장면에서는 여타 좌석에서도 행복하고 가슴 따뜻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세 번째로 느껴지는 진한 감동은 소통이라는 용어이다. 진정한 소통은 꼭 말로써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티격태격 싸우기 일쑤인 세 남매는 말은 통하지만 도통 소통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반면 할머니는 자신만의 소통 방식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세 남매와 교감해 나간다. 레이와는 엄마의 그리운 맛을 내는 만두로, 모리와는 엄마가 사용하던 재봉틀로, 그리고 리사와는 에어기타 대회 출전에 거금의 참가비를 지원해줌으로써 진정한 교감을 이루면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문화와 피부색과 나이, 그리고 언어를 초월한 소통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언어가 같고 피부색도 민족도 같은 작은 땅덩어리 안에 살면서도 한번쯤의 시원한 소통을 꿈꾸게 되고, 때로는 한 집에서 같은 언어로 수십 년 동안 살면서도 소통의 문제에 맞닥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일인데 말이다. 피아노 대회에서 공황장애를 앓고 있던 손자 이름을 부르면서 Cool이라고 외치는 단 두 마디 대사만으로 일본인 할머니는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따뜻한 식탁이 있다. 교자만두는 엄마의 추억과 가족의 화합을 느끼게 만드는 매개로 작용하는데,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정성스레 빚어내 함께 먹는 만두는 가족의 유대감을 나타내준다. 레이가 혼자 식탁에 앉아 과자와 맥주를 먹고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정성스레 만든 만두를 차려주는 할머니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한 식탁공동체로서 진정한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정원에서의 평화로운 만찬 장면은 하하의 모습과 많이 닮아 보인다.
또 이 영화에는 힐링이 있는데. 개성 충만한 주인공들이 함께 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엄마를 병으로 읽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오래된 재봉틀을 발견한 모리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천을 구입하기 위해 4년 만의 외출을 시도하고, 결국 알록달록한 치마를 만들어 입은 모리, ‘형 게이야?’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걸 하는 데는 이유가 없어’라는 답을 한다. 그렇게 재봉질을 하던 모리는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고 피아노 대회에서 리스트의 ‘전설’을 훌륭하게 연주해 내는데, 과연 무엇이 그를 치유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진한 할머니의 추억을 느낀다. 영어를 할 수 없어 손주들과 언어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충분하게 그들의 응원군이 되어주는 할머니를 통해서 어린 시절 같이 살았던 나의 외할머니의 기억에 눈시울이 불거진다. 독특한 모습의 형제들 속에서 처음에 느꼈던 외롭고 힘겨워 보이던 할머니는 오히려 이 가족 간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면서 이 가족에게 안정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핵 내지는 무게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핵가족이 상식이 된 사회에 사는 나에게는 이 모습이 왠지 정겹게 다가오고 할머니의 모습에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따뜻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한계를 벗을 수 없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럽기도 한 측면도 있다. 일본에서 온 할머니가 화장실을 나올 때마다 내쉬는 한숨의 의미를 추측하던 레이는 사무실 동료에게 ‘워시렛’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워시렛’이란 ‘워시(Wash)’와 ‘토일렛(Toilet)’의 합성어로, 최근 한국에서는 널리 확산되고 애용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획기적인 기능으로 설명하는 몇 가지 첨단 기능들이 추가된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비데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일본의 위대한 발명품인 위즐렛 즉 비데는 한국에서도 일본에 뒤지지 않게 기술력이 탁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한국의 비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일본의 기술력만 찬양하는 점에 아쉬운 마음이드니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모양이다.
모래알 같이 흩어진 현대의 인간들이 서서히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상호 위로받고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를 통해 광주에서 보기 드문 추운 날씨 속에서 마음만은 따뜻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한 가족의 의미는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는 식탁공동체인 동시에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비데공동체(?)는 아닌지 생각하면서, 물론 지금은 한 집에 여러 개의 화장실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 한 집에 단 한 개의 화장실만 존재했던 먼 과거를 상기하면서 화장실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떠올리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첫댓글 내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가족인데 우린 가족에 너무 무관심하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팝콘은 드셨어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좋은 영화 함께 보지 못해 많이 아쉽네요. 다음에는 더 좋은 영화 보며 즐거운 시간보내게요.
Toilet을 매개로 공동체의 따뜻함을 끌어 내 주시고,정원에서의 평화로운 만찬 장면에서는 '하하'의 집밥을 그려내 주시는 등 곳곳에서 연재씨의 섬세한 안목이 한 줄 한 줄 놓치지 않게 하였습니다.자동 영상화 되었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