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 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의 ‘소주병’ 전문>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늘 빈 소주병을 생산해내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인이 대천해수욕장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착상하여 완성한 시라고 한다.
술꾼들은 연신 소주병을 기울이며 체내 알콜 함량을 높여가지만, 그에 비례해서 술병은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그리고 다 마신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이제는 소주병에 보증금이 붙어있어, 다 마신 빈병을 알뜰히 모아 돈으로 다시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비워지던 소주병을 보면서, 화자는 문득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무슨 속상한 일이 있으셨던지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던 까마득한 기억.
그 소리에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 덜렁 놓여있을 뿐이었다.
소주병을 기울이며 술을 마시다가 문득 생각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내용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라고 하겠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