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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저자 부부가 출연하는 교육방송의 ‘집’이다. 건축주나 건축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집을 찾아가 건물의 구조와 공간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의미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아울러 유일하게 구독하는 신문에 가끔 건축과 공간에 대한 내용들을 소개하기도 해서, 건축과 공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나 역시 그 연재들을 흥미롭게 읽어보곤 했다. 우리 주위에는 그저 네모반듯한 몰개성적인 아파트가 건축의 주류를 차지한 지도 오래되었고,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이 가진 특성이 아닌 오로지 경제적 가치만을 따지는 시대라고 하겠다. 하지만 저자들처럼 건축물이 지닌 개성과 공간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건축가들과 이에 호응하여 개성적인 건축을 요구하는 건축주들도 적지 않다.
“건축가의 임무는 외관을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책의 앞머리에 기록된 네덜란드 건축가 베를라허의 말이라고 하는데, 그가 설계한 건축들에 어떤 특성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러한 철학으로 건물을 짓는다면 아마도 건축주 역시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들은 이러한 생각이 동의를 하기에, 이 책에 <공간을 탐하다>라는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저자들은 서두의 ‘책 머리에’에서 ‘나를 매혹시키는 장소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제시하고, ‘건축에 관한 매혹에 대해 그 공간이 주는 감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두 4장에 걸쳐 설명되고 있는 건축물과 ‘공간’들은 각각 ‘사람’과 ‘시간’ 그리고 ‘일상’과 ‘자연’을 주제로 설명하고 있다.
‘사람을 담다’라는 제목의 1장에서는 ‘도시의 공간’이라는 부제에 맞춰, 오랫동안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이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한 옛 ‘서울역’의 역사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난 정권에서 ‘촛불’이 거세게 타올랐던 장소 가운데 하나인 ‘헌법재판소’와 ‘광화문광장’이라는 건축물과 공간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고, 이제는 정쟁의 장처럼 인식되곤 하는 ‘국회의사당’과 경제적 가치만을 따지며 변모하는 여러 대학의 ‘캠퍼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2장에서는 ‘시간을 담다’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기억의 공간’들을 소환하고 있다.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이자 분단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철원 노동당사’와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인 ‘덕수궁 정관헌’ 등이 소개되고 있다. 이밖에도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과 이탈리아의 ‘산 카탈도 공동묘지’, 그리고 스위스의 ‘발스 온천’의 건축물과 공간이 지닌 의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일상을 담다’라는 제목의 3장에서는 그 특징을 ‘놀이의 공간’이라고 제시하면서, ‘서점’과 ‘골목’ 그리고 홍대 앞을 상징하는 ‘클럽’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건축 철학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예술과 문화가 넘치다’라는 제목으로 홍대 앞과 낙원상가를 소개하는가 하면, 오랫동안 고가차도로 이용되던 장소를 공원으로 꾸민 ‘서울로 7017’에 대한 의미와 아쉬움 등을 표출하기도 한다. ‘공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기보다, 그곳에서 살면서 느끼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마지막 4장은 ‘자연을 담다’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휴식의 공간’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가 설계한 듯한 홍대 앞의 ‘아미티스 가든’과 옛 정수장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선유도 공원’을 통해서,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와 특징이 정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본의 ‘무린암’과 중국의 ‘줘정원’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정원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기도 하고, 공간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부여한 일본의 ‘데시마 미술관’의 존재를 부각시켜 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초의선사와 정약용의 차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사방을 유리로 만든 일본의 ‘고안’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이 소개한 공간을 직접 답사하면서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편안하게 여기고 또는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가를 떠올려보았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이 익숙하기에, 내가 만든 공간 혹은 나개 편안하게 느낀 공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공간에는 건물이나 각종 구조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마련이고, 그곳을 거쳐 간 사람의 흔적과 켜켜이 겹쳐진 시간의 두께를 접하면서 우리는 공간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지기도 하고,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할 것이다. 건축이 단순히 공간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이유라고 할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공간을 통해서 그 특징을 탐색함과 동시에 그곳에 담긴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고 이해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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