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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옛날이야기라고도 하는 ‘민담(民譚)’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흥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등장인물의 앞에 갖가지 난관이 닥쳐도 이를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로 재구성되기도 하고, 비슷한 소재에 다양한 상상이 덧붙여져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기도 한다. 민담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서로 대화를 하기도 하고, 죽은 영혼이나 귀신이 등장하여 등장인물의 앞날을 미리 알려주는 내용도 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동화적인 발상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행복한 결말로 귀결되는 것이 민담이 지닌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전래되는 민담을 기반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이 책은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꼬리가 아홉이나 달린 구미호가 사람을 홀리며, 때로는 여우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옛날이야기는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저자는 아마도 이러한 옛날이야기를 차용해서, ‘옛날 옛적에 하늘에서 정기 받고 땅의 기운 담아 천하무적 도력을 닦은 여우 요괴 한 마리’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요사스럼고 괴상하다는 뜻의 ‘요괴(妖怪)’라는 표현은 지극히 인간들의 관점만을 취한 용어이다. 여우가 ‘간 1000개를 먹으면 무슨 소원이든 이루게 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제이다. 그리하여 ‘귀신이고 호랑이고 나발이고’ 여우 요괴는 ‘만나는 것들의 간을 죄다 빼 먹고 살았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999개의 간을 빼 먹’은 여우 요괴는 마지막으로 사람 간을 먹고자 하여 ‘전국 팔도에서 간 크다고 소문난 김 생원을 찾아’간다. 여우를 보고서도 전혀 놀라지 않는 김 생원이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여우에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다양한 부탁을 전해 준다. ‘귀신과 도깨비가 들끓는다는’ 묘지에서 밤새우기나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드미는’ 것을 해보지만, 귀신과 호랑이가 여우 요괴를 보고 깜짝 놀라 실패하게 된다. 김 생원은 마지막 부탁으로 여우와의 혼인을 부탁하고, 둘은 혼인을 하여 함께 살게 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에는 여우인 줄 알고서 사람이 결혼을 하는 것보다, 사람을 속여 여우와 부부가 되어 함께 산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성은 저자가 새로운 소재를 끌어들여 만든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혼례를 치른 여우 요괴와 김 생원이 여느 부부처럼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이야기가 전개되며, 함께 산 지 ‘쉰 해’만에 죽음을 맞이한 김 생원이 자신의 간을 먹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여우 요괴는 ‘김 생원의 차가운 몸에서 간을 빼’내어 먹고, ‘드디어 간 1000개 먹은 여우 요괴 소원을 성취’하였음을 알린다. ‘그 간절한 소원대로 여우 요괴는 김 생원 옆에 누워 다시는 깨지 않았다’는 마지막 구절이 제시되어 있다. 아마도 여우 요괴의 마지막 소원은 사랑하는 김 생원의 옆에서 나란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여우는 ‘요괴’이었을 터이지만, 함께 살았던 김 생원에게는 그저 평생을 해로했던 배우자였을 따름이다. 처음 여우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지막 소원은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이해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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