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아찌 만들기
윤인자
강원도에서 지인이 곰치와 산마늘 한 상자씩 보내왔다. 봄 날씨처럼 따스한 마음이 풋풋하다. 고맙게도 해마다 잊지 않고 꼭 봄이 되면 보내 준다. 나는 드릴 것도 없는데 은혜만 입고 부담스럽다.
보낸 이의 따스한 마음이 깃든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장아찌를 담궈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잘 씻어 물기를 빼고 간장소스를 끓였다.
담근 김에 제철 맞은 풋마늘, 상치, 양파 등 여러 가지, 장아찌를 담을 준비를 하고 텃밭에서 뽑아다 다듬고 씻었다.
가끔 집 일을 도와주면서 장아찌 담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친구를 불렀다. 아니 도움을 요청했다. 너무 좋아 한걸음에 달려왔다.
잠시도 내가 하는 몸짓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유심히 보며, 물어보고, 신기해하며 맛을 보고 음~ 역시 맛나네. 이 맛이지, 하면서 손가락을 쪽쪽 빨며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이 귀엽다. 친구를 잘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장, 식초, 설탕 배수를 맞추고 거기에 맛을 가미할 표고버섯, 다시마, 양파, 사과 등을 넣어 팔팔 끓여 식히고 간장소스를 넉넉히 끓였다. 한 김 나간 후에 통에 담아 준비해 둔 재료에 간장소스를 부어 누름돌로 눌러 마감했다. 끝내고 돌아가는 친구에게 오늘 담근 서너 가지 장아찌를 조금씩 나눠줬다. “고마워. 잘 먹을게”. 흐뭇해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백번쯤 한 것 같다. “아니지 내가 감사하지! 바쁜 일손 도와줘서 빨리 끝냈으니까”, 다음에도 불러주라며 엄지척하며 “전통음식 명인의 손맛이야 역시 윤장금이야”! 한참 나를 비행기 태우며 수다를 떨다 돌아갔다.
감, 말랭이는 고추장에 무쳐 담고 겨울에 먹다가 남은 제맛을 잃은 겨울 동치미 무는 건져 반으로 갈라 볕에 빼들빼들 말려서 된장에 쑤셔넣었다. 여름 반찬 준비를 넉넉하게 하고 나니 어느 부자 부럽지 않다. 갑자기 손님이 와도 반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각종 장아찌에 국만 한솥 끓이면 진수성찬을 차릴 수가 있으니 든든하다.
장아찌는 간장, 된장, 고추장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우리의 전통음식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음식이 바로 장아찌다.
오늘날에는 하우스 재배로 사철 계절을 잊고 모든 작물이 흔하게 나오지만, 옛날에는 철이 지나면 없으니, 각종 채소를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염 절임, 당절임, 초절임)에 절여 저장했다가 밥반찬으로 상을 차려냈던 할머니, 어머니들의 지혜가 존경스럽다.
장아찌만 있으면 맛깔스러운 밥상을 뚝딱 차릴 수 있다. 지루한 장마철이나 무더위로 입맛을 잃었을 때 다양한 장아찌로 소박하지만, 맛깔스러운 밥상을 차려냈다. 입맛 없는 여름날 달콤하고 뒷맛 개운한, 짭조름한 장아찌 한 접시와 찬물에 만 밥 한 그릇이면 충분히 한 끼 식사 해결. 기름진 고기반찬에도 장아찌가 곁들여진다. 완전식품이다.
장아찌는 ‘장지’ 또는 ‘장과’라고도 하며 무, 오이, 깻잎 등의 채소류와 굴비, 전복 등의 어패류, 김, 파래 등의 해초류를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식초, 술지게미 등에 담궈 독특한 풍미로 입맛을 돋우는 우리나라 전통의 발효 식품이다.
촌스럽고 단순한 장아찌. 하지만 알고 보면 은근히 섬세한 손길이 많이 가는 음식이며 고급스럽고 맛깔스러운 반찬이다.
건강에 이로운 발효 식품이 주목받으면서 잊혔던 장아찌가 다시 각광받고 있어 반갑다. 고급 음식점일수록 다양하고 귀한 장아찌를 선보이고, 미식가일수록 맛깔스러운 장아찌 맛을 밝히는 시대인 걸 보면 장아찌는 더 이상 가난한 시절의 추억을 향수하는 반찬이 아닌 듯하다. 한창 채소가 풍성한 때, 다양한 장아찌를 담가두고 갑자기 손님이 왔을 때 여유롭게 상을 차려내고 찬거리 없을 때, 입맛 없을 때 정말 유용한 밥반찬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우리의 추억 음식 장아찌는 우리 밥상에서 큰 호응을 얻고 대접받는 건건이 반찬이다.
엊그제도 세 부부 지인이 배꽃 구경을 와서 집에서 있는 반찬으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냉동고를 털어 생선 찌고 텃밭에서 시금치 캐서 나물 무치고 갈파래 된장국에 상추며 쑥갓을 뜯고 대패 삼겹살 굽고 작년에 담아 저장해 둔 몇 가지 장아찌를 꺼내니 진수성찬이라며 맛나게들 먹었다. 후식은 엊그제 만든 단호박 식혜와 들깨강정으로 준비했더니 이 집은 후식도 전통이라며 감탄사가 연발이었다. 남편들은 은근히 우리 남편을 부러워하는 눈치다 이렇게 맛난 음식을 날마다 드시는 분은 무슨 복을 타고났을까 라며 은근슬쩍 부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별로 준비한 것도 없는데 잘 먹었다니 기분이 좋았다.
윤인자
2011년 《 리토피아 》 시, 2024년 《 시와사람 수필 》 로 등단
시집, 『 에덴의꿈 』, 『 스토리가 있는섬 신안島』, 『 시가 열리는 과수원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