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하양으로
강 정
역광 속으로 들어간 네 모습이
점점이 부서진 빛의 잔해로 수평을 수직으로 일으켜 세울 때,
그렇게 펼쳐진 하얀 벽 안으로4칼을 버린 무사처럼 그림자만 길게 늘여 걸어 들어갈 때,
사라진 너의 발자국이
벽 속의 문으로 열려 시간의 줄기를 더 깊은 동쪽으로 잡아끌 때,
빛을 끌어안은 벽 앞 풍경들이
스스로 색깔을 바꿔 오늘의 입체를 먼 날의 평면으로 바다 끝을 부풀리고 있을 때,
저무는 해의 꼬리가
물 속에서 부글대는 빛의 씨앗들을 예 이야기 속 산골짜기로 다시 땅 위에 드리울 때,
그렇게 너의 얼굴이
죽음을 산킨 섬의 형태로 지금 이 자리의 물질들을 액체로 흩뿌려 놓을 때,
오래전,
물 위에 뜬 달을 건지러 들어갔다던 사내에게서 기별이 왔다
주취(酒醉)였더라도 눈만은 초롱처럼 맑아
다만 달의 입술을 열고 온 세상을 삼키려 드는 죽음의 내장을 씹어 보려 했을 뿐이라고,
하얀 빛이 여직, 죽을 때까지 평평하다
나는 빛을 가득 끌어안으며 물속에서 물 바깥을 그린다
목탄 가루처럼 사라진 너의 윤곽 그대로
죽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아 있는 오늘의 빛으로 만년살이 물방울 속에 새기는 거다
강 정 시인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그리고 나는 눈 먼자가 되었다』, 『키스』 외 다수.
산문집 『콤마, 씨』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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