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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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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묵상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풍성하게 임하여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긍휼
오직 복음
오직 말씀의
그 명쾌한 기독교가 우리에게 전해지도록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히브리서 9장 25부터 28절까지 제가 봉독합니다.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아멘
'심판' 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심판의 근거가 뭐예요?
뭘로 우리가 심판을 하죠?
심판이라는 건 여기서 뭐 재판하여 선고를 내린다 라는 의미보다는 '구별' 의 의미가 있어요.
성경에서 '심판' 그러면 '구별' 이렇게 정의가 되는데
마지막에 이제 구별이 일어날텐데 그 구별이 뭘로 구별이 될까요?
'산 자 죽은 자' 이렇게
마지막에 그 마지막의 모형으로 구약에 나타난 게 출애굽사건이죠?
출애굽.
애굽이라는 건 열심히 종노릇만 하면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곳이죠.
애굽이 뭐의 모형이냐면 나의 욕망의 종이 되어 사는 자들의 나라를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의 욕망에 (그래서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굳이 애굽에서 먹던 것들을 들이대면서 이거 이거 먹고 싶다고 그런 거예요)
그리고 우리를 죽일려고 데리고 나왔냐? 하죠.
그러니까 살려고 이 육의 몸이 살려고 애를 쓰며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곳을 애굽이라 그러죠.
그래서 출애굽 그러면
우리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걸 출애굽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단순히 우리는 자꾸 '나' 라는 존재를 너무 신뢰하고 가치있게 생각하니까
자꾸 마귀라는 존재를 내 밖의 어떤 객체로 밀어내고 그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되는 그 놈의 종
걔가 나를 이미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모양이지 걔만 없어지면 나는 괜찮은 존재일거야 라고 자꾸.
이게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마귀의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기독교의 마귀관은 그게 아니예요.
마귀는 분명히 '실재' 하는 존재지만 하나님은 어떤 메세지를 던지기 위해 원형을 설명하기 위해
항상 모형들을 두시듯 마귀도 실존하는 존재지만 바로 그러한 어떤 것을 모형하는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모형 뭘 모형하려고 하냐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자 인척! 하려고 하는 그런 없음인 존재들의 발버둥.
이게 이제 마귀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하던 찬양대장 뭐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를 하고 하는건데 원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어 있는
(왜냐면 없음에서 생겼으니까 당연히 이거 어떻게 된거야? 나는 누가 만드셨지? 야 감사하다 하나님과 동등한 이런 자리에까지 올리셔서)
원래 없었던 이 자를 대우해 주시는 이게 찬송이란 말이에요.
그러한 찬송을 해야되는 그러한 자가 자기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자기를 찬송하는 자가 되는 게 마귀란 말이에요.
그게 우리란 말예요 우리잖아요 지금 그죠? 그게 애굽이라고요.
내 몸의 종이 되어서 사는 것.
내가 찬송 받을 거야! 라고 하는 거요.
그런데 뭐 마귀가 찬앙대장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에도 마귀가 문화로 세상을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도 문화로 마귀의 그 세력에 대적해야 된다고 지가 마귄줄을 모르고 절대 이 세상은 인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마귀가 자꾸 뭘한다고.. 프리메이슨이니 뭐니 하면서 뭐 록펠러 재단이 세상을 지금막 어떻게 해 먹을려고 하고 있다...
해 먹으라고 그러세요~ 뭐 뭐가 그렇게.
그런데 관심 좀 갖지 마세요.
프리메이슨이니 어쩌구 저쩌구 저도 옛날에 하도 사람들이 그래서 진짜 열심히 공부해봤거든요?
다~~공부해...정말 한달을 그렇게 그때 제가 설교를 할 때 잠시 인용도 하기도 하고 했는데 그런데 나중에 남는 결론은 근데 뭐?! 예요. 근데 뭐..?
원래 이거 내 모습이네? 이거지..
무슨 그 놈들이 세상을 다 망하게 만드는 것처럼...
아니라구요.
바로 그 우리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뭐 무슨 문화로 응 악으로 미술로 연극으로 영화로 사단이 이 세상을 망하게 한다구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독교영화 기독교음악 ㅎㅎ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노래방 가서도 꼭 그런 걸 불러서 숱한 마귀의 노래를 한 저들을 무찔러야 한다...
( )이가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형 나가수에 한번 나가서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ㅎㅎ
그럼 정말 히트할거라고 저한테..
저만한 가수가 없다구~ 가수가 인정하는 가수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말이야 예? ㅎㅎ
그렇게 해서 문화가 문화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단 말이에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저는 오히려 가요가사 안에 복음을 많이 발견해요 그 안에..
여러분 그 혹시 예전에 자명고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를 그린 자명고라는 드라마 보신 적 있으세요?
거기에서 사랑이 죄인가요? 라는 백지영의 노래를 보면 '아 나는 죄인이 되더라도....'
낙랑공주가 낙랑국의 공주인데 호동왕자가 낙랑국의 자명고를 찢으러 파견되어서 가서 낙랑공주를 꼬셔가지고 니가 저 낙랑의
(거의 수호신이죠? 위기 때마다 우는 스스로 우는 북이니까)
찢어라! 그랬더니 찢잖아요 가서. 그러니까 나라를 팔아먹는 이.. 저기가 된거죠 응?
완전히 낙랑공주이야기는 기생 라합 이야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러니 가사가 '내가 죄인이 될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죄인이 되어도 좋아요' 이게 라합이거든요?
나라를 팔아먹는 죽을 죄인이 된다 할지라도 이 나라를 팔아 나는 당신에게 가야 비로소
살 수 있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나라를 팔아버린 거란 말이에요.
그런 아니 뭐가 무슨 문화와 문명이 우리를 죽여요?
우리 자신이 세상을 멸망케 하고 있는거지..
그러니까 보세요.
출애굽.
이게 이제 이 세상 종말의 모형이에요.
세상 전~체가 나만 나를 위해서 살잖아요 역사가.
인간만 위해서 사는데 자기의 욕망만을 위해서 사는데 거기에서 건져낸다라는 건 이제 니 맘대로 못 살게 하는 게 구원이라 그래요.
그래서 그거를 성도의 이 역사 속에서의 삶을 이제 전~체가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에서
나만을 위해 못살게 하니까 이거 환란 이라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고난이라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그리로 끌고 가는 게 구원인데 그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마지막에 애굽에 있으면 사망이고
거기서 나오는 게 구원이라면 무엇으로 그들을 갈라냈냐구요?
애굽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못되게 사는 사람들 다 악마 머리에 뿔난 악마들이고 거기서 건져낸 이스라엘은 다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뭐예요? 그게 마지막 종말의 모형인데 그게 뭐예요?
어린 양의 피란 말이에요.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려져 있는 그 집에 있는 사람은 다 살았는데
그 생각을 해 보시라고요.
그 이백 만이 넘는 그 사람들의 집에 그날 저녁에 술 처먹고 꼬장피우는 놈 없었겠어요?
남의 것 도둑질하는 놈이 없었겠어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피가 발라진 집 안에 있었단 말이에요.
다 착한 사람들 집에만 발린 게 아니라 이걸 바르면 산다 라는 걸 믿은 사람의 집에 발린 거란 말예요 그게요.
그런데 그 집안에 들어있는 자는 그 집안의 내용물이 어떤 내용물이 어떤 거라 할지라도 그 피를 보고 넘어간 거란 말이죠.
그러면 지금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이 심판의 근거가 뭐냐고요.
피란 말입니다 피!
그래서 지금 어린 양의 피 대제사장의 피를 쭉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심판의 이야기를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시란 말예요.
여러분 그 히브리서 보면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는데 두려워하지 않고 갔다 그러죠.
믿음에 의해 그랬다 그래요.
고대시대에는 거의 뭐 씨족사회 부족사회 이런 거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지역에서 떠나는 거라는 거 자체가 죽음이에요 죽음.
그리고 그 무리를 떠나 울타리를 떠나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울타리 밖의
다른 사람들이 이사람을 죽이거나 빼앗거나 해도 법적으로 제재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고요.
그런데 거기를 늙으신 아버지와 조카 하나 데리고 떠나가는데 두려움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런데 왜 성경에 그런 말을 하냐면 믿음에는 두려움이 있어선 안된다라는 요한1서 4장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나를 보잖아요 내가 나를 자꾸 보면 내가 진짜 과연 애굽에서 나갈 자격이 있는 잔가 없는 자인가로 자꾸 돌아가게 돼요
나의 자격을 그런데 내가 나는 가장 잘 알잖아요.
불완전하고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두려운 거예요 이렇게.
그런데 뭐에 대한 두려움이냐면 사망이라는 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란 말이에요 이게.
그런데 내가 '나' 라는 존재를 근거하지 않고 구별 심판이 오직 나에게 발려진 그 피에 의하여 구별이 된다라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이제 그리고 내 삶의 경험을 통하여 끊임없이 알게 되면은 결국 예수의 피 의지하고 면목없지만 그 두려움 다 날린 상태에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에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두려움이 있는 자는 뭐예요.
율법주의잖아요?
두려움이 있다라는 거 자체가.
그래서 그 자는 멸망에 처해질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결코 이게 막 살아도 된다라는 말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이꼴이 되고 내가 진짜 믿음이 있다면 지금 내 모습을 근거로 해서 자꾸 하나님 앞에 내가 자격이 있나 없나 이리로 가면 안되는 거예요.
아빠가 애기한테 두세살 먹은 애기한테 아가 아빠만 믿어 라고 했을 때 그 애기한테 무슨 어떤 행위를 요구를 하겠어요 뭘 하겠어요.
아빠가 지켜줄게 가 아빠만 믿어~ 지 너 아빠만 믿어~ 그런데 믿는데 똑바로 안하면 죽여버릴거야 이거 이게 믿음이냐고요.
아빠만 믿어~라는 그 믿음의 내용은 아빠가 다 지켜줄게 너는 아빠 뒤에 서 있어 이거란 말입니다.
이게 십자가란 말입니다.
그 믿음을 우리는 엉뚱하게 자꾸 행위로 다시 되돌려 놓고 있는거죠.
그러니까 자꾸 '하나님 진짜 저 사랑해요?'
또 쪼금있다 '진짜 저 사랑해요?'
아니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한다는데 삼십 분에 한번씩 자기 진짜 나 사랑해?
자기 진짜 나 사랑해? 그러면은 처음에 대답해주다가 나중에는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이게 진짜 내 사랑을 뭘로 보고 계속 물어봐? 그럴 거 아니예요.
우리가 하나님한테 그렇게 그런 짓을 하고 있다니깐요?
그렇게 이 세상 애굽에서 건져 내버리는 그게 뭐냐면 이 율법주의
그러니까 율법주의 안에서 건져내는 거죠 그죠?
그래서 보세요.
구약의 옛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이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언약이 뭐냐면 내가 니 백성들을 사백삼십 년만에 애굽에 넣었다가 다시 뽑아낼거야.
그런데 어떻게 뽑아 낼거냐?
'내가 쪼개짐으로 말미암아 뽑아낼거야.
너희들은 분명히 오해할거다.
왜 내가 어린 양의 피 내가 쪼개짐으로만 구원해 내는지 너희들은 모를거야'
왜?
그냥 황망하게 멍하니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나온거기 때문에 모를 거란 말이죠 그죠?
그러면 우리는 왜 어린 양의 피로만 이렇게 구원을 받아야 되지?
이걸 알려주기 위해서는 니들은 니들의 힘으로 여기서 나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잖아요 그죠.
그래서 이걸 가르쳐주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게 뭐예요.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이란 말예요.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니들은 왜 어린 양의 피로만 구원 받아야만 하는지를 내가 가르쳐 줄게 하고 율법을 주셨는데 그러면은
'아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거를 절대 지켜낼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아 우리는 스스로 존재성을 챙겨 가질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로만 어린 양의 피로만 거저 구원받을 수 없는 거구나'
를 배우는게 율법이죠?
그게 옛 언약이라면 나중에 예수님이 뭐라 그래요? 요한복음에서
이젠 어린 양의 피가 아니라 떡과 포도주를 갖고 이게 내 피다! 그러면서 이게 새 언약의 피다 그러죠.
새 언약의 피!
그러면 이제 새로운 유월절이 예수님에 의해 재정이 되는거란 말이죠.
이제 이게 원형이다 라고 그래요.
그럼 옛날에는 유월절을 너희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반드시 지켜야 된다라고 했는데
이제 새로운 유월절이 그들에게 주어지면서 이제는 어린 양의 피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의 피가 뿌려졌다는 걸 믿는 것이 새 언약이다 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들을 율법주의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끌어내는 새로운 출애굽이란 말이에요 이게요.
애굽에서 광야로 끌어내어 가나안으로 들여보내는 게 첫번째 출애굽이라면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그들을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자유의 은혜의 복음으로 끌어내는 걸 새로운 출애굽이라 그래요.
그래서 변화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예수님의 엑소더스 출애굽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별세' 라고 했잖아요.
별세..이게 출애굽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의 출애굽! 이란 말을 하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율법에 묶여서 왜냐면은 인간이 자기의 이 자아가 배제되거나 부정되는 걸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 그리로 돌아가는 거예요. 계속..
그러니까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그러니까 계~속 야곱처럼 아브라함처럼 무슨 증거를 만들어 내야 되는 거예요.
불안해서 안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이게 약속이 성취될까? 불안해 가지고.
억지로 휴가내서 아프리카 선교가고 집 팔아서 헌금도 해보고 하는 거죠.
그러면은 고때 당시에는 내가 뭔가 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여러분 굉장히 마음이 편합니다.
아무리 선교가서 고생을 해도요 올 때 되면 마음이 뿌듯하고 내년에 또 와야지 이 생각 들죠?
그런데 정작 거기가서 뭐하고 왔냐고요.
생각해 보세요.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온 거예요? 착한 일하고 온 거예요 가서?
우물 파 주고 얼굴 뺏겨주고 맛있는 거 많이 가져가서 감동시켜주고 온 거 잖아요.
그걸 복음이라고 하냐구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종교인들이 성경을 봤을때 여러분 라즈니쉬가 인도의 라즈니쉬가 4복음서 강해를 한 거 아세요?
저는 그 예전에 4복음서 강해한 거를 읽고 깜짝 놀랬어요.
라즈니쉬가 어떻게 4복음서 강해를 했나?
박영선 목사님의 성경강해하고 똑같애! (죄송합니다)
윤리 도덕 지켜서 잘살자 예요.
그런데 라즈니쉬가 성경을 그렇게 해석했더라니깐요?
그러니까 보세요.
석가모니가 성경을 봤을땐 어떻게 보겠어요?
자비한 마음갖고 세상을 품어 안으며 열심히 가난한 이들을 돕고 보시에 힘써서 그리고 열심히
너희의 공덕을 쌓아 성숙하고 변화하여 너희 내생에 유익을 얻어라 그럴 거 아닙니까.
이게 오늘 성화론 아닙니까?
부처가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본다니깐요?
여기서 예수를 못 발견한단 말입니다.
공자가 성경을 보면 어떻게 볼까요?
야 '윤리 인의예지신' 이게 중요한거야.
그게 회복되면 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되는거야.
그러니까 똑바로 살어.
도덕 윤리 잘 지키고 부모에겐 효도하고 상위 권세에 복종해.
이게 유교 아닙니까.
공자가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볼거라구요.
그런데 우리는 라즈니쉬나 공자나 석가가 성경을 보는 그 관점으로 오늘날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다니까요?
기독교인이란 사람들이.
그러니까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시라고요.
나는 진짜 예수 믿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시라니깐요?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사람만 듣는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 율법주의는 제가 주일날 말씀드렸지만 기복주의를 항상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는 거라 그랬죠?
율법이 떨어질 때마다 복준다 복준다 그랬단 말이에요.
하나님 거기다 미끼를 던져놓으신 거라구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그 복을 위해서 율법을 아주 목숨걸고 지켜요.
뒤에서 칼을 들고 쫓아오는데 뛰지를 않아.
율법 지킨다고.
목숨걸고 지킨거죠 그야말로.
목숨걸고 지켜서 뭐하겠다는 거예요.
내 천국 내 구원 내 자존심 내 체면 내 선민됨의 확인 뭐 이런 거 이게 복이란 말이에요.
인간이 추구하는 복.
여러분 가난한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뭐 요즘 진짜 다이어트 한다고 풀만 먹고 이런 초근목피 이거이거 요즘하고 있잖아요.
다이어트한다고.
그 그거 뭐 이거랑 완전히 6.25때나 일사후퇴 때처럼 먹고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내 가치나 명예훼손이 되는 거는 절대 못참아요.
그건 진짜 목 매단다니깐요 인간들이..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서 끄집어 내어 버려갖구 우리의 주체성과 존재성을 아주 박살을 내고 말살을 시켜버려요.
아니라고 니들 아니라고.
내가 피로 덮지 않으면 니네는 죽은 거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고난으로 우리에게 감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고난 속에서 내가 완전히 그렇게 처절하게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십자가 밖의 세상을 보면
'야.. 나 진짜 살 뻔했네?' 이 말이 나오는 거예요.
우린 간혹 그러죠?
'아 죽을 뻔했네...'
성도는 그 입에서 아..살 뻔했네 진짜아? 이 말이 나와야 돼요.
다니엘과 세친구가 풀무불 안에 들어갔어요.
십자가입니다 고난이에요.
그랬더니 그 안에 예수님이 계세요.
그 들이 풀무불 밖의 사람들을 보면서 뭐라 그랬겠어요.
'어유.. 저기서 살 뻔했네?' 그럴 거 아닙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풀무불 안에 있는 그들을 보고 뭐라 그랬을까요.
'그러니까 임마 똑바로 왕의 말을 들었어야지 으이그 불쌍한 것들..'
이게 갈라디아서 6장 14절이에요.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세상과 성도가 서로 죽었다 라고 손가락질하는.
스데반 보세요.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그러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죽었네요?' 그런거죠.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을 보면서 유대인들이 뭐라 그랬을까요?
'그러게 왜 율법주의를 공격해~ 안 그랬으면은 입닫고 앉아 있었으면은 그렇게 돌에 맞아 안 죽었을거 아냐' 그런단 말예요.
스데반이 한 말은 딴 거 없어요.
'예수 믿어라' 였어요.
율법 열심히 지켜서 착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아니야~ 예수 믿어! 니들이 그 예수 죽였잖아 예수 믿어'
한 마디 했는데 돌로 막 때려 죽였어요.
그러더니 에유~ 율법주의 공격하더니 참~ 꼴좋다 그랬단 말예요.
그런 걸 보시라구요.
올바른 복음을 전했더니 율법주의자들이 때려 죽인다고.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서머나교회도 이렇게 지리멸렬 맞아 죽어갈 겁니다 점점.
지금도 여기는 너무 많은 거예요 사람이.
한국에서 오신 교인 그 거기서 설교를 듣고 오신 분이 지난 주 밥 먹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뒤에 앉아 있는데 이것 같은 기적이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저렇게 불편한 설교 그리고 인간의 존재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저런 설교
거기다가 한시간 반이 넘는 설교를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듣고 있냐.. 가 자기는 기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앞에서 도대체 어떤 표정으로 그들이 듣고 있는지 자기가 너무 보고 싶어갖고.
그런데 저는 보잖아요
멍한 표정 ㅎㅎ
그러니 저도 기적인 거예요 어떻게 그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죠.
각지에 숨어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그냥 하나하나 모여서 여기 이렇게 이렇게 모여 있는 거라고 믿고 싶은데...
아니요.
대부분이 못 알아듣고 있는 거예요.
그냥 소문이 좋게 나 있으니까 그냥 와서 앉아 있는 거라구요. ...
그러니까 그 말씀과는 상관없이..
여기에서 자기들이 인간들의 자존심이 훼손되는 일이다 라고 판단되는 어떤 일이 보여지면 금방 튕겨져 나갈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이 시대가 이게 큰일 난 거예요 지금.
예수님이 그래요 '나 곧 간다' 오늘 본문에서 그러죠?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나 곧 간다.
그런데 지금 똑~같이 예수님 첫번째 오셨을 때와 똑같이
온~~ 모든 하나님을 목숨걸어 섬긴다고 하는 모든 교회가 바리새인이 되어 있는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회개하라! 그랬어요 그들한테.
아니 우리 살았는데 왜 죽었다고 그래요? 사데 교회처럼
아니야 죽었어 회개해! 나를 믿어! 그래보세요.
뭐라 그러겠어요 우리가 그동안 한 거 예수님 하늘에서 졸다가 못 본거 아녜요? 이럴 거예요.
너무 해논 게 많아서 지들끼리.
너무 해논 게 많아서 지금 예수님 뭐 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 아녜요?
너무 연로하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신 거 아니에요? 이렇게..
여러분 그게 예수 죽이는 거예요.
우리는 그러고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거죠.
여러분 강아지가 여러분 말 안 듣는다고 강아지하고 막 싸우세요?
강아지가 전봇대에다가 오줌눈다고 세워놓고 앉혀놓고 훈육하면서 야 넌 마 도덕과 윤리가 이런 건데 어디 짜식아 길거리에다 전봇대에다가...
주인은 개하고 안 싸워요.
그러면 주인이 개되는 거라고요.
그 강아지처럼 사는 그 강아지에게 강아지의 삶이 얼마나 그렇게 니가 밖에 거기 오줌싸고 다녀봐라 니가 나중에..
(지들두 나중에는 그 냄새에 그냥 ㅎ... 그렇게 만들어 놓구~) 내가 너 새사람으로 만들지 않으면 큰일 날 뻔 했지? 이걸 가르쳐 주는 거지
그 강아지의 몸을 갖고 있는 그 상태에 거기다 대놓고 파티트레닝(potty training) 시킨다고 개를 나는 요즘 개들 불쌍해 죽겠어요.
오줌이 마려워도 애들이 화장실 문이 잠겨 있으면 그걸 긁느라고
그건 개 답지 못한 거예요ㅎㅎ 개가 개다워야지
왜냐면 주인한테 뚜들겨 맞을까봐..
어우 두려움과 공포를 보면서 난 이 시대의 이 세상의 개들을 보는 것 같애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라요
그러니까 자기수준으로 인간 눈의 개의 수준으로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들의 그 모습을 미루어 추측해보는 거
그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보라 그래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어떻게 이 세상이 끝나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 제자들에게 뭐라 그랬어요.
두 사람이 같이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데리고 가고 한 사람은 거기 있을거다.
두 사람이 같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불려가고 한 사람은 남아 있을거다 그랬어요.
잘 보세요.
두 사람이 뭘로 갈라져요.
그들이 한 일로 갈라집니까?
왜 예수님이 함께 밭을 갈고 함께 맷돌을 돌린다고 했겠어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선택한 예수 믿는 자는 데려간단 뜻이에요.
똑같이 등불을 준비했는데 그 신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똑같이 졸고 있었다니까요 열 처녀가.
그니까 신랑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기름을 준비 안한 거예요.
행위는 똑같이 했다고.
열심을 부렸어요.
나와서 기다렸다니깐요?
그리고 잤어요.
그런데 이 육이 여전히 옛 몸을 갖고 있으니까 졸 수 밖에 없어요.
나는 그런 대목을 읽을 때마다 너무 부러워....어떻게 그 한 데서도 이렇게 졸죠?
나는 집에서도 그렇게 잠을 못 자는데....너무 부러워요 잠 잘자는 사람들.. 웬수들이 거기서도 자냐 밖에서?
똑같이 조는데 다섯 명만 살짝 끌어 들이더니 문을 콱! 잠궈 버렸어요 이게 선택이에요.
기름을 준비한 게 뭘 잘해서가 아니라니까요?
그 신랑에게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런 비유를 갖다 붙이신 거예요 오히려
똑같애 니네는 다 똑같애 그런데 내가 하나만 데리고 갈거야 내가 택한 자 그들만.
그런데 그들만 알아요 우린 예수 안 믿으면 큰일나는구나.
그러니까 예배당에 전부 부처 공자 간디 슈바이처가 가득해요 ㅎㅎ
예수믿는 성도는 없고 전부 그냥 집 팔아서 아프리카로 가겠다는 슈바이처들과
산상수훈을 목숨걸고 지키겠다라는 우리 간디들과
자비한 마음으로 세상을 건져내겠다는 지옥에 까지라도 가서 하나님이 버린 자들을 구원하여 내겠다라는 이 법정들과
아..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아요.
요즘 제가 하도 거기에 대해 원색적으로 이제 두들겨 패니까 이제는 진짜 살살살살 빠져나가는 게 보여요.
아휴 아닌거 같다.. 이렇게..
그런데 그게 맞아요.
점점점점 여러분 여기서 서머나교회가 부흥하면 안돼요
아니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이 만드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게 진짜 부흥이 아니다 라는 걸 하나님은 반드시 보이실 거예요
여기가 진짜교회가 아니다 라는걸
여러분 그런 걸로 기뻐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주 예수를 믿어라 그랬어요.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랬지 뭐 하면은 내가 영생줄께 안그랬어요...
여러분 우리가 '나' 라는것을 규정할 때 항상 우리는 '나' 이외의 어떤 대상이 없잖아요?
이 죽은 흙들이 '나' 이외의 대상이 없으면 '나' 를 규정할 수가 없어요.
죽은 흙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들은 반드시 이 죽은 흙은 반드시 어떤 대상과 관계가 맺어져야 비로소 '나' 가 돼요.
아들이 있어야 나? 엄마
내 직장이 있어야
나? 과장 나 사장 이렇게.
일이 있어야?
나 청소부.
뭐 이렇게 나라는건 항상 외부의 나 이외의 내 밖의 어떤 것에 의해 규정이 되게 돼 있다고요.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나를 강력하게 '나' 라는 것을 규정하는 데에 가장 강력한 힘을 작용했던게 그게 그 사람의 '나' 의 생명이 돼요.
그래서 내가 내 아들의 엄마 이게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으면 그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여자는 살 소망이 끊어지죠.
그걸 '생명'이라 그래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집착하고 있었을 때 이삭이 죽는 건 아브라함의 죽음이에요.
그게 나의 생명이에요.
돈이 나의 이 생명 '나' 라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돈이 다 날라갔어 죽는 거예요.
명예!
아 재벌그룹 회장들이 뭐가 부족하다구 목매달아 죽어버려요?
며칠 전에 또 저축은행장이 목매달아 죽었다고.
명예!
나 옛날에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는데 야 이거 몇번 해 먹은 거 이거 들통나게 생겼네? 어떡하지?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져 내려 죽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내 생명이었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줬는데 여기에 흠집이 가니까 그 '나' 가 죽는 거예요.
그건 이미 그 사람들이 자살하기 전에 이미 죽은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걸 싸악 긁어내요 인생 동안에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 그걸 신앙생활이라 그래요.
그게 광야 란 말이에요.
그 요게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나는 뭐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게 사랑했던 내 자식이 어느 순간 여자친구가 생기더니 날 대면대면해.
어 그러더니 뭐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밤마다 걔랑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화상통화하고 막 이러면서 엄마아빠는 본 척도 안해.
그럼 나는 뭐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얘 대학가고 기숙사가면은 끝나는 거예요 그건요.
뭘 대단하게.. 추석이나 설날 한 번씩 보는 거지
그래놓구 마음 속으로 아니야 쟤는 날 사랑해 분명히 사랑하고 있을거야 ㅎㅎ
우리를 생각해보라구요.
우리가 진짜 그렇게 부모를 생각해요?
아니 근데 자기는 아냐 그래도 내 자식은 나를 생각할거야.
말씀 안에서 그 관계들이 끊어져 나가죠.
그러면 나는 뭐야?
뭐를 보람으로 여기며 살아야 되지? 어디서 살 맛을 느껴야돼? 이렇게 되는 거예요.
돈이 내 생명인 줄 알았는데 이거 갖고 뭘 대단하게 이뤄낼 수도 없고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도 굉장히
그 돈으로 우대도 받고 존경도 받는데 뭐 이거갖고 날 별로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이래요.
여기 어떤 마켓주인은 집에 큰 방을 현찰로 차곡차곡 쌓아서 살고 있다며요? ㅎㅎ
거기서 돈덮고 자고 깔고 앉고 막 그렇다는데.. ㅎㅎ
그런데 아무도 안 알아줘 난 그 사람 얼굴도 모르니까아..그럴 거라고요.
내가 그 사람이야~ 그 소문의 주인공~ 그런데 아무도 안 알아줘.
성도의 삶에 그게 나타난다니깐요?
그렇게 끊어져 나갔을때 그럼 난 뭐야?
엄마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고 위인도 아니고 그럼 난 뭐야.
그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이 (우리가 성도라면) 나를 '덥썩!' 붙드는 거예요.
그때 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한 자! 가 되는 거예요.
그럴라면 반드시 내가 나를 규정하고 있던 걸 다 차압당하는 과정을 겪게 되어있다고요.
그래야 하나님이 창조한 '나' 가 비로소 이걸 거!듭!남!이라고 하는거에요.
'나' 가 몸이 죽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관계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창조한 '나' 가
비로소 '나' 가 될 때 이걸 '거듭남' 이라 그러고 역사는 바로 그걸 증명해 내는 장이란 말입니다.
그게 거듭남이에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뭘 선하고 착한 일들을 많이 해논 게 거듭남의 증거가 아니래니깐요?
오히려 그게 죽고 쓰레기가 되는 걸 경험을 하는 걸 거듭남이라 그래요.
그 착한 일을 한 '나' 를 끊임없이 붙들게 돼 있어요 인간은요.
그 성숙해진 나를 끊임없이 붙들게 돼 있다니까요?
그런데 그게 어느날 가치없는 게 될 때 그럼 나를 규정하고 있는게 다 하나님에 의해 배설물로 규정될 때 그때 그 사람이 뭐가 되는 거예요?
나를 규정하고 있던 게 싹 사라지고 배설물될 때 그걸 '사망' 이라고 하는 거예요.
뭐 살려주는 게 없잖아요 나를..
그런데 영원한 생명.
영원히 존재하는 예수가 나와 관계되어 있을 때 그 예수에게 내 마음이 가 있고
그 예수와만 관계있는 '나' 로 이제 완전히 무장해제 당했을 때 그걸 '영생' 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관계하고 내가 생명으로 생각하는 그 분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래서 영생은 예수를 아는 거.
예수를 아는 거.
거기서 안다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매' 에서의 그 '동침' 이에요.
'신랑과 신부가 되는 거예요 한 몸이 되는 거'
그 삼위일체라는 말을 교부들이나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거지만 그거에 빗대어서 이야기하면 성도의 구원이란
'사위일체' 가 되는 거죠.
생각해 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창조하기 전에는 삼위하나님의 영광 밖에 없었어요 그죠?
그게 하나님의 처소요 하나님의 영광이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보고 처소가 되게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의 처소 내가 너희를 처소 삼겠다 그러죠.
그러면 그 삼위의 영광 안으로 우리를 끄집어 당기겠다는 거 아니예요.
그런데 우리는 원래 '그런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니었다 이걸 알고 들어와라' 가 역사의 역할이란 말입니다.
요즘 아주 그냥 코피터지게 제가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 점점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
그런데 그럴수록 신기하게도 진짜 살아나는 사람들이 진심에 어린 생명의 부르짖음으로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로 호주에 뉴질랜드에 뭐 깡촌에서 지금 뭐 영어공부하고 있다는 어떤 사람
지나가다가 홈리스한테 돈을 줬는데 홈리스가 뭐를 들고 있었는데 그게 한글로 써 있는 설교씨디를 들고 있더라는 거죠.
주워서 뭐를 할라 그런건지 하여튼 그래서 그거를 그거 뭐냐 그래서 (호주 홈리스가)
하도 신기해서 받아서 집에 가서 하도 신기해서 들어 봤는데 듣구 깜짝 놀래서 그냥 아무 것도 몰랐던 사람이에요.
뭐 그런~ 이게 신비예요 (신비주의는 안되지만)
하나님이 어디에 숨어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건져 올리는 거예요.
나는 그 박강성 선배가 그렇게 진짜! 그렇게~
우리교회 설교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라는 것을 보고 소름이 싹 끼쳤어...
어떻게 그거 알았냐 그랬더니 어디서 듣고 안게 아니라 예수전도단에서 DTS하면서
거기 가수니까 뭐 얼마나 사람들한테 불려다니면서 여기저기 다녔겠어요.
캐나다 DTS 하와이 DTS 다 하고 6개월 3년씩 가 갖고요 행사비가 2,500 에서 3,000 이래요.
행사를 한달에 30회에서 40회를 하는데 그러면 그 돈이 얼마냐구.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6개월 삼년을 DTS를 갈 정도면 얼마나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온누리교회에서 하용조 목사님의 그 그냥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 여기저기 간증하러 다니면서 하여튼 그랬는데
어느날 이거는 아닌 거 같더라는 거예요.
성경을 계속 보다 보니까 ...그렇게 열심히 있었으니까 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봤겠어요.
근데 로마서 8장 1절을 읽다 보니까 그러므로 이제 너희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가 딱 걸리는데
'그런데 내가 왜 그동안 그렇게 불안해 했지? 왜 내가 삼년씩 DTS를 가고 육개월씩 DTS를 가고 도대체 뭘 한거야?'
라는 데 미치니까...
그러면 이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는 말이 뭐냔 말이에요.
이걸 갖다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서 성경을 보는데 자긴 로마서를 다시 보면서 이게 보면은 이건데 왜 그동안 난 잘못 배웠어
이렇게 배웠나?... 라고 깨달아 지더라는 거예요 자기가요.
그래갖구 온누리교회 부목사들이 거의 한 백명 된다 그래요.
수시로 그 사람들을 식당을 하나 아예 빌려갖구 부목사들을 수시로 불러서 돈이 많으니까 하는
아 옛날에 같이 거지였거든요? 맨날 방배동 포장마차에서 우리
그런데 한 사람은 그렇게 되고 한 사람은 여전히 거지고 이게 뭐냔 말이에요 도대체가
그런데 모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설명을 했대요 설교를
그랬더니 밥만 먹더래요~ 듣지를 않고.
야 딴따라가 뭘 안다고 감히 대온누리교회 부목사들 백 명을 모아놓고 그따위 은혜를 운운하면서...
자기는 죽겠다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는지..
그런데 우리교회의 어떤 영커플 부부가 한국으로 영구귀국을 해서 그리고 만나서 무슨 성경공부를 했는지..
말을 나눴는지 골프 프로라니까 아마 골프장에서 만난 거 같애요 내가 보니까.
그런데 얘기하다가 또 자기가 북받혀서 이 은혜 예수 믿는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십자가에 대해서 막 이야기를 했대요
그랬더니 '어? 미국에 있는 우리 목사님도 똑같이 그렇게 말씀하시든데?' 그러더래요.
'요즘 그런 목사님이 있어요?' 그리고는 들어온 거예요 우리 웹사이트에.
그런데 예전에 같이 만날 술먹던 바로 그 동생이 ㅎㅎㅎ 잠이 안와 가지고 메일을 보냈는데 이 손이 떨려서 ㅎㅎ
하비루엘 이렇게 보내갖구..그러니 뭐 내가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안받냐구~ 김--집사님한테 이메일을 해가지구ㅎㅎ
저한테 와가지고 막 흥분을 해갖고 어쩔줄을 몰라.
어떻게 그 교회있는 교인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냐고.
또 철렁.. 아닌데... 또 온다 그럴까봐..당장 오겠다는 거예요 여기를
그래서 오지 말라 지금 와 봐야 할 것도 없고~
내가 가서 찬양으로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그래서 아이 괜찮다 내가 여기서 다 하고 있으니까 오지 말라고.
아 그러고 당신 노래는 내가 콘서트 때도 불렀고 와서 직접 안해줘도 내가 다 하고 있으니까..안와도 된다구..
그러니까 2월인가 내쉬빌에 녹음하러 온다니까 꼭~ 오겠다고 만나고 싶대 너무 만나고 싶대요 ㅎㅎ
이 불안한 마음 어떡하면 좋아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누가 온다고 그러면 불안해 죽겠어 아주ㅎㅎ 어 여기도 아니네? 이럴까봐.
그런데 있어요 그렇게 있더라니깐.
아니 파주 문산에서 갑자기 이메일이 와서 목사님 여기도 듣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도 책임져주셔야지 왜 거기에만 신경쓰냐고 빨리 나오라고..
그러니깐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저는 그동안의 기존의 기독교 그 어마어마한 교세를 갖고 있는 그 기독교를
저 혼자 지금 두들겨 부수고 있는데 그러면 누가 봐도 이건 안되야 돼요.
'저 미친 놈' 이렇게 되어야 된단 말이죠.
근데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설교가 하나 올라가면 오천 회 육천 회 클릭이 되고 어떻게 이게~
수만 장의 시디로 전달되어지며 어떻게 그중에 그걸 듣고 심지어 홈리스에게 전달받아서 그걸 듣고 살아 올라오는 사람이 있냐구요.
상식과 논리로는 안맞는 거잖아요 이거는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가 다시 세상에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한거 라구요.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이들은 반드시 들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예수를 믿어야 돼요.
심판은 십자가 피로만 구별되는 거예요.
예수의 십자가
그 보혈의 그 가치만 꼭~ 붙드시면 돼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이렇게 하늘의 묵시를 이해할 수 있는 눈과 귀를 주셨으니
그게 얼마나 가치있고 얼마나 위대하고 엄청난 것인지
하나님
우리의 육이 살아 있을 때는 모를겁니다
아버지하나님
계속 그렇게 나를 규정하고 있는 내 밖의 '너' 들을 죽여 주시고
그 '너' 의 자리에 하나님만 오롯이 서는 그 날이 속히
우리의 인생에 닥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