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원준이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원준이는 말도 안되는 기사 하나를 읽었다며 내 옆에 앉아 그 내용을 요약해 주면서 분개했다. 나는 그걸 들으면서 기사 내용이 아닌 원준이의 그 ‘분개’가 더 비논리적으로 느껴졌다. 원준이의 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원준이의 말이 어딘가 날 거북하게 했다. 아래의 글은 원준이의 주장이 왜 논리적이지 못한지, 그리고 내가 느낀 거북함의 정체를 분석하는 글이다.
원준이를 통해 들은 기사 내용은, 정부가 최근 일어난 텔레그램 성범죄 사건(일명 박사방 사건) 피해자들에게 최소1500~ 5000 만원의 피해 지원금을 현금으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때, 원준이는 해당 기사를 심각하게 잘못 읽고 내게 전해 주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에서 오독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부분을 오독했는지는 뒤에서 밝히겠다.)
원준이가 분개했던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1. 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것
2. 5000만원이라는 과한 액수.
1에 관해서 원준이는 모르는 게 있다. 이건 분개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의아해 해야 하는 일이다. 목표 달성을 치하하는 장학금 같은 게 아니고서는, 나라가 사람들에게 돈을 그냥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영수증 따위로 목적에 맞게 썼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쓴 돈을 돌려주는 식으로 지원한다. 원준이는 공금이 돌아가는 방식을 접해 본 적이 없으니, 의아해 하지 않고 분개부터 할 수도 있다고 치자.
중요한 건 2이다. 원준이는 텔레그램 피해자들의 피해 사례를 단 한 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본인의 입으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천만원은 과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피해를, 얼마나 심각하게 입었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들이 받는 지원금이 많다 적다를 판단할 수 있지? (누군가한테는 치료비로 5000만원도 적을 수 있다.) 2에 대한 원준이의 유일한 근거는 군 복무 중 당한 지뢰 폭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병사가 받은 피해 지원금은 고작 800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원준이는 텔레그램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는 사지 일부가 절단되는 수준의 신체적 피해보다는 덜 심각할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는 듯 했다. 혹은 모든 성범죄의 피해 수준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피해 상황은 성착취 영상물 제작과 유포뿐만 아니라 나체 사진 합성부터 강간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성범죄를 아우른다)
나는 원준이가 다리 잃은 ‘군인’의 예를 드는 순간 인상이 절로 찡끄려졌다. 내 얼굴에서 거부감을 읽었는지, 원준이는 내가 모르는 게 있다며 ‘일탈계’라는 것에 대해 검색해 보라고 했다. 굳이 검색해 볼 필요도 없이, 원준이가 얘기하는 파편적인 정보들만으로도, 일탈계가 무엇인지, 왜 그것에 대해 알아보라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일탈계는 대부분 중고생들인 몇몇 여성들이 ‘스스로’ 촬영한 (얼굴은 제외한)신체 일부 노출 사진들이 전시되는 온라인 공간이고, 이 일탈계 여성들은 조주빈의 범죄 타겟 중 하나였다. 조주빈은 신상 정보를 유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그들의 성을 착취하였다.
나는 원준이랑 했던 이 날의 대화를 여러 번 곱씹으면서 내가 거북함을 느꼈던 지점이 바로 여기, 원준이가 ‘일탈계’ 이야기를 꺼냈던 지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원준이가 왜 단 하나의 피해 사례도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5000만원이란 액수는 과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는지. 왜 하고 많은 비교 대상 가운데 군인의 예를 들었던 것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다친 군인은 순결한 피해자의 전형이다. 사욕 없이 오직 선의로 맡은 바를 다할 뿐이었던 무고한 군인은 다리 하나가 날아갔는데도 고작 800만원 밖에 받지 못했는데, (원준이가 일탈계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텔레그램 성범죄 피해자들이 5000만원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왜 SNS에서 자신의 벗은 몸 사진을 찍어 올리고 ‘좋아요’를 모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는 얼마나 심각한 수준의 범죄를 당했는지에 대한 관심조차 아까워 하는가? 왜 피해지원금까지도 아까워하는가?
원준이가 실수로 내뱉었다가 취소했던 단어 하나에 그 답이 있다.
‘누나야는 걔네들이 했던 짓이 그런 범죄를 당할 만한 소지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소지’라는 말에 내가 반응하자, ‘확률’로 고쳤다)
원준이가 범죄의 책임이 피해자들에게도 있다고 말할 목적으로 강조한 ‘일탈계’ 이야기는 내게 아주 익숙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매번 아래의 말과 비슷한 것들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거부감이었다.
‘강간은, 그런 짓을 당할 만한 옷차림을 한 여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나는 여성의 성적 능동성을 부정하는 다수의 노년층과 남성층이 습관적으로 뱉어대는,
‘여자는 몸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된다’로 압축되는 관습적이고 도덕적이고 ‘주제넘은’ 그 생각에
논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그녀들이 당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때문에?
(까놓고, 정말로?)
그건 여자로서 할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도리’란 무엇인지, 법도 아닌 그것을 무슨 이유로 따라야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줄 수 있는가?)
사회의 질서를 흐트리기 때문에?
(성범죄를 일으키는 직접적 행위자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나에게는 이 문제는 내 ‘돈’을 가지고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처럼 너무나 자명하고 간단한 문제이다. 내가 내 돈을 통장에 넣든지, 가방에 넣고 다니든지, 손에 쥐고 다니든지 그건 나의 자유다. 만약 내가 돈을 손에 쥔 채로 길거리를 활보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한다면, 집 안에서야 딱 엄마 등짝 스매싱 각이지만, 감히 누가 함부로 내게 ‘니가 소매치기 당할 만한 짓을 했으니, 너는 그 돈을 다 돌려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이야기 할까?
왜냐하면 이 문제는 생계형 범죄를 멸종시키지 못하는 국가 복지 정책의 문제이고, 우리 마을 치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물론, 남의 돈을 훔쳐서 이익을 보겠다는 심산으로 평화롭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빈틈만을 노리고 다니는 범죄자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면 결과적으로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고 좋았겠지만, 그 이유로 내가 비난받거나 경찰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돈은 내가 (남이나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중고등학생들의 일탈계 활동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그 아이들이 인터넷 상에서 성적 일탈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조주빈과 같은 성범죄자에게 걸려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원준이의 말대로, 인터넷 상에서의 중고생들의 자유로운 성적 자기 표현을 방조하는 것은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성범죄율을 높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아이들이 혹여나 성범죄의 타겟이 될까 걱정이 되어 일탈계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아이들의 일탈행위로 청소년 성범죄를 조금이라도 정당화한다거나 도리어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숨 쉴 구멍조차도 주지 않는 도덕적 틀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눈으로 여성이나 아이들 또한 성적 욕구가 있다는 걸 (이제는 제발) 직시하고, 과연 어떤 억압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적 표현의 장소로 일탈계와 같은 은밀한 공간을 선택하게 하였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독문학과 김누리 교수가 나와 ‘독일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한 강연을 인상 깊게 보았다. 강연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의 교육이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생산 시스템에 불과한 것이라면, 독일의 교육은 한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진짜 교육이었다. 그런 독일 교육에서 ‘성’이란, 인간이 스스로를 긍정하게 하고 나아가 모든 인간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중점 교육 사항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성교육은 그 존재 이유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 또한 남성과 같은 성적 욕구와 자유권를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이들이 성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게 이야기하고,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더 많은 성적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요즘 세계적인 코로나 재난 위기 상황에서 군계일학처럼 선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방역 시스템 덕분에 국뽕에 취해 있는 분들이 좀 있으신가? 사실 나도 그랬다. 오늘 저녁 엄마랑 산책하기 전까지는.
산책하면서 그 때 김누리 교수 강연이 생각나서 거기에 대해서 엄마랑 얘기를 좀 하게 됐다. 엄마랑 나는 강연을 들었던 당시에 내렸던 것과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란 아직 선진국은 아니라고. 물론 잘 살고, 민주 정치 체제가 자리잡았고,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김 누리 교수는 '차이나는 클라스'에 세 번 출연해서 총 세 차례에 걸쳐 '훨씬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김 누리 교수의 강연은 인상깊은 정도를 넘어 충격적일 것이다. 강연의 파급력이 엄청났다는 것은, 강연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에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여 전체 강연 내용을 엮은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만을 봐도 알 수 있다.
당신이 교육자이든 예비 부모이든 비혼주의자이든 상관없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 그 사회에서 보호받되 가질 수 있는 모든 주권을 누리고 살고 싶다면, 이 강연을 들어야 한다. 한 번 강연을 듣고 나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비정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아주 유익한 좌절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 제목처럼 '우리의 불행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될 것이다.
*관련기사 :
https://news.joins.com/article/23745979
*정부는 피해자들의 피해 상황에 따라, 한도가 연간 1500, 총 5000만원인 지원금을 현금이 아닌 ‘실비’로 지급해주고 치료비 뿐만 아니라 생계비와 학자금, 이사비 등도 지원해 준다.
이 모든 것은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다.
*난 솔직히 이 기사를 읽고, 성범죄의 피해뿐만 아니라 발단에도 주목하여 재발 방지를 위해서 다각도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의 세심함에 좀 놀랐다. 특히 이사비와 임대비 지원에서.
첫댓글 저 국민일보 르포기사 충격이야. 내가 알지 못했던 얘기들인데 토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