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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00포럼 2013. 11. 20 조찬 세미나 발표문
제목 :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사회 정착 실태와 과제
찬 새벽바람 헤치며 오셨는데, 포럼과제가 “ 북한 운운” 이라는 제목이어서 조금은 실망하셨을 겁니다. 사실, 요즘처럼 북한이야기가 식상하고 짜증나는 시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통일, 북핵, 금강산, 개성공단, 잠수함, NLL, 종북” 어느 하나 시원한 답이 없는 단어들입니다.
게다가 이야기 몇 마디 주고 받으면 바로 ‘니편, 내편’이 되고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범위를 아주 좁혀서,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사회 이주생활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로 설정하였습니다. 이념이나 정치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단순히 사회문제, 또는 사회복지문제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제에서 일탈하지 않기 위해서 원고를 아예 준비하였습니다. 그것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하겠습니다.
<문제의 발견>
-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입국 숫자를 보면,
1953년 정전 이후 60년이 지난, 2013년 8월말 현재로 남한입국자는 25,560명입니다.
최초 45년간에는 ‘98년까지 전체 947명으로 1년에 20명 꼴로 귀순했습니다. 그 후 2002년부터는 지난 12년간 매년 1천명에서 최고 2,930명까지 증가하다가 작년부터 다시 줄어들어 작년 1,500명, 금년도 1,500명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됩니다.
- 남한입국 증가의 과정을 보면,
1989년 동유럽사회주의와 소비에트연방(USSR)의 붕괴라는 북한의 우방국 몰락과 더불어,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은 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이 시작되어, 두만강이 있는 함경북도, 양강도 지역 주민들이 국경 넘어 친지들에게 식량을 구하려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지나면서, 밀반입 상거래, 중국가정에의 결혼, 연변지역 등에의 대량 탈출이 확대되어, 고난의 행군이 있었던 2000년 전후에는 이미 30만 가까운 북한동포들이 중국에서 불법체류를 하였습니다. 그 수가 중복계산 되었다 치고 그 절반이라 하더라도
0.5% 국민이 이미 국경을 탈출하였다는 사실입니다. 1995년에서 2002년까지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의 상징적 통계는 30만 불법체류, 200만 아사자 라는 숫자입니다. 200만 아사자의 숫자는, 북한에서의 정확한 통계는 사실상 입수가 불가능하며, 유일하게 북한이 식량난 해결을 위해 국제식량기구(IFC)등 국제기구에 보고한 숫자만이 공개되어, 북한의 평균 인구증가율을 근거로 추산되는 인구수와 실제 국제기구에 보고된 숫자의 차이가 200만에 가까워 결국은 그 기간 중에 늘어나야 할 사람이 그만큼 안 늘었다는 것 입니다.
국경탈출이 급증하자 중국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되돌아 가지 못하는 그들이 해외공관 진입을 통한 남한입국, 그 다음 공관경비가 강화되자 중국, 라오스, 버마, 태국 등으로 밀입국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남한선교사, 조선족교회 중심으로 은신처와 보호를 많이 받았고 그들은 이미 4~5년 이상의 장기 체류가 되었습니다.
남한입국 사태가 중국체류 탈북자들에게 알려짐과 동시에 입국브로커가 등장하고 그 동안 중국에 머물던 많은 사람들이 비밀루트를 이용하여, 한때는 버마 한국영사관 임시보호소에는 입국대기기간이 6개월이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용소 방도 선입선출이라 화장실입구 자리가 너무 힘드니까 좋은 자리 매매가 생기고, 그 대가는 한국에 입국하면 지급하는 조건입니다. 그러면 실제 자리 산 사람이 하나원 3개월 교육훈련 마치고 나오는 날이면 선임자가 정문 앞에서 기다린다는 겁니다.
근래에는 확실히 국경경비의 강화도 있고 그 당시처럼 아사를 피한 필사의 탈출은 줄어들어
최근에는 많은 경우가 이곳에서 보낸 경비로 기획 입국하여 북한을 떠난 지 2달, 심지어는 일주일 만에 입국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현재는 1천만원이 공정가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여성이탈주민들의 경우, 아주 열심히 일거리 찾고 돈을 모으는 사람은 많은 경우 가족을 불러올 계획으로 일합니다. 남.여 입국자 비율은 여자가 평균 70% 이므로 여성의 모성애와 가족사랑은 남성보다 훨씬 강하지요.
모성애라 하면 저로서는 인상적인 이야기는 어느 한 탈북청년이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울먹이며 하는 이야기가,
“엄마와 같이 두만강을 건너는 순간, 갑자기 물길이 깊어져 엄마가 자기 목을 잡고 허우적거리는데 ‘오매 나 죽소’ 하니 엄마는 자기 목을 놓고 스스르 물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상처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치는 일입니다.
엄마의 자식 사랑에 못지 않음은 자식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큽니다.
몇 년 전 저희 대안학교 학생의 형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의정부 방면 조그만 병원에 안치된 형의 영정 앞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아버지와 우리학교 동생, 그리고 우리학교 학생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 며칠 전, 동생에게 형이 저녁에 전화를 했답니다. 전화도중 울면서 오마니가 보고 싶다고 하고 전화를 마쳤습니다. 그게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이틀 후 독방에서 형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혼자, 형은 의정부 부근에서 공장에 다니고, 동생은 따로 대안학교에 다녔으며, 엄마만 혼자 북한에 있었습니다. 화장을 마치고, 임진각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있는 연못에 유골을 뿌리려 갔습니다. 엄마에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 말입니다. 상자 속에 담긴 형의 뜨거운 재. 동생은 끝까지 제 차 속에서 안고 있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 가는 길에 장대비가 앞을 가려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도착 순간 하늘은 맑았고, 한시간의 이별행사 후 돌아오는 길은 또 다시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엄마의 눈물이었습니다.
가족 관계에 있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한 가장 두부인, 한 부인 두 가장의 경우 중국에서 낳은 아이들의 입국사태입니다. 이들을 비보호자라고 부릅니다. 중국에 인신결혼으로 낳은 아들을 엄마가 여기오면 아버지가 잘 키울 리가 없지요. 결국 엄마는 북한의 아이가 오고 나면 중국의 아이를 데리고 오게 되는 겁니다. 그들의 숫자는 지금 입국 숫자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초창기에는 기아피난 이탈자들이라면, 이제는 북한에서의 직접입국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입국자 규모는 최근 몇 년간 남북간 경색의 영향을 받아 현상유지거나 아니면 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 북한이탈 주민을 보는 시각이랄까 남한 사회와의 관계를 살펴 봅니다.
첫째,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호칭부터 서로 불편합니다. 국가유공자, 월남귀순용사, 귀순동포, 탈북자, 새터민, 최근에는 북한이탈주민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북한사람’인데 어떤 용어도 그들에게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경상도, 충청도 사람을 일상에서 구분하지는 않지요. 탈북자라 하면 구분한다는 거지요.
둘째, 이주의 성격입니다. ‘난민’ ‘이민’ 어느 용어도 아닙니다. 실제 난민의 성격이 짙은데 같은 민족을 두고 난민이라 할 수도 없고, 이민은 더구나 아니고, 그래서 이탈주민이라 합니다.
난민은 법적 지위와 거주의 제한이 많고 절차가 까다롭고, 이민은 자의에 의하여 타국에의 생활을 지원하여서 자기 책임성이 강한데 비하여, 이탈주민은 북에서 남으로 단순이 주거지를 바꾸어 사는 동일한 동포이며 법적으로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자입니다. 그들은 입국순간부터 같은 국민이나, 남한사람들은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사실,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자기들의 정체성입니다. 자기들도 실제로 느끼는 거지요. 전연 같지 않다는 거지요. 그들의 항변은, 자기들은 조선족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는 겁니다.
셋째, 남한사회 “안정적” 정착이라는 과제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에서 거주지를 이탈하여 남한에 왔으면 그냥 잘 살면 문제가 없는데, 오는 사람 모두가 잘 살지 못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탈주민을 받을 텐데 그러면 점점 더 큰 사회적 부담을 남한주민들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한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남한에도 돌보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그들도 방치하는데 북한사람에게 특별히 평생을 보호대상자로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 거기에 더하여 남한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인식입니다. 70대 중반을 넘는 사람들은 6.25 빨갱이 치를 떱니다. 50대 이상은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데다가, 일반적으로는 북한사람들은 뿔달린 괴물, 무식하고, 더럽고, 폭력적이고, 믿을 수 없고, 지독한 공산주의자. 거기에 백보 양보해서 그런 면은 이제 그렇지 않다고 치자.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친구가 된다? 집에 초청한다? 거래를 한다?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교회에서 그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고, 간혹 눈물겨운 간증을 듣고 아픈 마음에 일회성 헌금하는 일 정도일 뿐, 실제 우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요. 개인적으로 우리가 고민하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될 남북문제도 갈등과 대립의 관계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우리가 북한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인식은 사실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 정보에 의한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통일문제는 남과 북의 투쟁이나 전쟁이나 힘의 우위에 의하여 이루어질 가능성보다, 더 큰 국제 질서와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북의 위협에 국가가 위기에 처할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남과 북을 멀리하게 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열은 다른 국가들을 더욱 즐기게 만드는 면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과 달리, 한반도는 동서 강대국의 이데올르기의 대결장 이었고 지금은 세계 패권국인 미국과 이에 도전장을 던지는 중국, 양대 세력의 이해관계가 너무나 커서, 양국의 협상에 이르지 아니하고는 통일은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엄연한 현실을 앞에 두고 우리는 남과 북이 대리전쟁을 하고 있는지는 않는지요. 북한이 뿔달린 괴물인데 거기에서 온 이탈주민도 작은 괴물에 불과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 인식의 출발점에서 서있는 우리가 그들을 우호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북한에 가서 더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은, 6.25 전쟁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우리의 통일이 불발되었지만, 정전 후 북한에 상륙한 국가는 러시아였습니다. 20세기는 미. 소의 이념대립 시대였으며, 중국은 국제정치의 장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였지요. 그래서 평양 시내를 보시면 바로 러시아의 도시와 같습니다. 넓은 거리 양 옆으로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 지금 보아도 외견상으로는 평양은 부자도시처럼 보이지요. 신포에 건립하던 경수로발전소도 이미 훨씬 전에 러시아가 그곳에 발전소를 건립하기 위하여 부지로 선정하였던 곳이고, 그곳에 러시아인들을 위한 초대소가 있어 나중에 우리 건설 팀이 들어가서 그 마을을 사용하였고 나중에는 식당 등 부대 시설로 사용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분쟁으로 갈등이 심하여 북한이 양다리를 걸칠 수가 없고 아예 러시아에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붕괴가 바로 북한의 몰락으로 연결되어 진 것입니다. 원유공급이나 기술원조 등 모든 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그래서 중국이 상당기간 동안 북한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원조를 받기 위하여 수 차례 중국을 찾아 갔지만, 푸대접 받다가, 김정일 죽기 얼마 전인 불과 3년여 전에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 성지라고 하는 연변 도시를 거쳐 기차로 중국에 갔을 때 처음으로 중국이 red carpet를 깔고 후진따오 주석을 위시하여 총리 등 전 간부가 환대하는 행사를 하였다는 겁니다. 그것은 일견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요. 비로소 중국이 북한의 종주국으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생활 정착 현황을 봅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은 탈남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 영국, 독일, 불란서, 기타 등등에서 전전하고 있습니다. 모은 돈 다 털어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남한에서 살기 힘드니 차라리 설움 받지 않는 이민이 낫다는 판단을 자연히 하게 되고, 그곳에로의 유혹은 모두가 받게 됩니다. 제3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결코 여기에 있는 사람보다 불성실하거나 뒤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북한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대변하면, 이렇게 사느니, 북한엔들 못 갈 거 뭐 있냐 이런 식이지요.
50대 이상 남자들은 거의 일을 못하는 형편입니다. 청장년들은 한군데 정식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극히 적다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기술을 습득하거나 능력을 구비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다니는 수 밖에 없는 겁니다. 70% 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갖가지 일로 바쁜 생활을 합니다. 아이들 돌보기, 가정의 취사, 그리고 돈벌러 다니는 일 등등. 젊은 여자층에서는 힘든 일 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결국은 위험한 일, 쉽게 돈 버는 일에 모이게 됩니다. 남자들과의 만남, 헤어짐 이런 과정도 대단히 쉽게 이루어 집니다. 30세 이상 된 여성이 이곳에 와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란 몸으로 직접 노동하는 일이거나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온전한 가정이 거의 없는 가정의 부재, 남한에서의 가족 분열과 파탄, 이탈주민 사이의 불신과 갈등, 고립, 현재의 경제적 결핍, 희망이 없는 미래,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염려, 신체 허약과 부인병, 왜소한 체격에 대한 콤플렉스, 지적 수준의 열세에 대한 고통, 하루 순간 순간마다 남한사람들에 의한 차별과 피해의식,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열거한 내용의 절반이상을 자기에게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가장 문제가 적은 계층은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이제는 정규학교에 거의 다닌다는 점입니다. 공부를 잘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부족한 상태에서나마 또래의 집단속에서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25,000명을 분류하면 15%에 해당하는 청소년층, 15%에 해당하는 노동력 아예 불가능한 장년층,
나머지 70%에서 30% 인 5,000명은 20세에서 50세 사이의 청장년 남자 이며, 노동가능 그리고 재가노동 하여야 할 여성 12,000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석해보면, 규모면 에서나 남한 사회 전체 부담능력에서 보면 그리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분명한 것은, 지난 10년간 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부담한 직. 간접비는 대단히 크다는 사실, 그러고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1인당 비용이 줄어든다든가 아니면 조기 정착비율이 높아진다 든가 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계속 해서 이런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내일 당장 철조망이 철거된다면 이천오백만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불정착의 유형을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왜 어렵냐 하는 점은 알아야 한다
북한에 가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남한사회와 외양은 똑 같습니다. 첫째는 언어입니다.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와 전혀 다른 바가 없습니다.
다음은 문화입니다. 문화는 오래 보존됩니다. 분단 이전의 세대인 70~80 년령대 사람들의 힘으로 이끌어진 사회가 아닌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60년간 안으로 안으로 닫혀지고 억압되어지고, 남한 사회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사회, 이천오백만 인구가 처절히 굶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회, 다시 말해 절대빈곤 영농사회와 경찰국가, 독재체제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남한으로 온 겁니다.
그들의 남한사회 부정착의 원인은 이 사람들 개인의 책임이 전혀 아닙니다. 이곳에 온 북한사람들 이라는 총체적 집단의 남한사회 정착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떤 지역의 인류학을 연구하고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 집단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의 이탈주민들은 바로 북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기에는 이 사회가 너무나 짜여져 있고 촘촘한 사회입니다. 남한 사회는 이미 북한 사람들이 모방하기에는 전연 불가능한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말, 같은 모습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은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북한을 연구하는 유수한 인류학과 교수는, 현재의 상태가 얼마만 더 지속되면 남한과 북한의 종족이 달라질 것으로 우려하였습니다. 신체적, 영양학적 차이가 다른 민족화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다른 지역집단이 온다고 해도 지금 모습보다 나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함경북도, 양강도 출신의 이탈주민은 평양보다 세련되지 못하지만 훨씬 자연친화적입니다. 그리고 순박합니다. 평양에서 온 사람들은 더 세련되고 지적수준이 조금 더 높지만, 그들은 이 사회에 대한 저항감이 더 큽니다. 젠체하고 영악하여 이 사회적응이 더 쉽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곳의 2만5천명은 북한의 2천 5백만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통일된 한국의 미래를 쉽게 그려볼 수 있는 거지요. 혹자는 독일의 경우로 보아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독일의 경우, 속을 들여다 보면 많이 다릅니다. 첫째, 분단 독일시대에도 동독인의 서독출입은 허가만 받으면 비교적 쉬웠으며 독일 주위의 모든 동구국은 독일인과 친인척이 많이 산재해 문화나 물질적 교류가 우회적으로 이루어져 우리와는 단절의 역사가 비교가 안된다는 사실, 동독과 서독의 문화, 사회, 경제적 격차가 우리보다 현저히 적다는 사실, 독일 통일은 벌써 23년 전이라 지금은 훨씬 더 복잡한 사회라는 점에서 통일된 한국의 사회통합 과정은 독일과 비교할 수 없는 난제라 할 것입니다.
23년 동안 북한은 절망적으로 퇴보하였고 남한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발전을 거듭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얼마나 차이가 벌어졌을 것인지 짐작이 갑니다.
이탈주민에 관한 세미나나 발표회에 가면, 현재의 이 과정을 ‘통일연습’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연습을 잘해서 앞으로 통일시대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북한이탈주민들의 개인적 적응책임으로 돌리지 아니하고, 북한인들의 총체적 통합능력이 이 수준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토대로 우리가 북한이탈주민을 보는 시각을 많이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통일미래를 본다고 생각하고, 그때 닥칠 어려움에 대비하는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공감대를 생각할 때라고 믿습니다.
지금 25,000명은 우리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여력이 있고, 매년 1,500명씩 10년이라 해도 15,000명에 불과하지만, 10년 후 통일시점에서는 극단적 자본주의, 개인주의 남한사회와, 철저한 경찰국가 체제에서 굶주리고 무기력한 무정부 사회가 만날 때, 그때에 우리가 당해야 하는 후폭풍은 대단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이탈주민 집단이 도저히 적응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그들을 수용하지 않던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이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지만, 사회적 부담 비용이 대단히 큽니다. 비교가 안될 만큼 다른 집단에 비하여 물적, 인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효과가 적다는 사실입니다. 관심이 있는데 안 되는 것과 관심이 없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분명히 관심이 많습니다만, 제가 관찰하건 데는 우리 사회의 역량이 이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행정당국이나 관변 단체의 수준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그들을 도우는 사람들도 본질에 접근한 근본적 처방과 문제해결 능력은 역부족입니다. 일천한 역사에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능력이 축적되어 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적응할 능력이 모자라는 북한이탈주민, 그들을 치유하기 역부족인 남한사회, 그리고 북한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나쁜 남한 시민, 3자가 모두 취약하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두번째에 해당하는, 치유에 일조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본질에 충실한 노력으로 조그마한 결실을 이루도록 노력할 것 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외환은행 근무시절인 1997년 가을에서 99년 봄까지 함경남도 신포 경수로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국제기구 KEDO 가 선정한 금융기관 초대지점장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기아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고, 비교적 많은 곳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퇴임 후 2004년 10월부터 북한이탈청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셋넷학교 운영위원장, 교육연구기관인 남북문화통합교육원 이사장, 청소년방과후 학교 한누리학교 대표, 여성부 산하 무지개청소년센터 감사 등 이탈청년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였고, 금년에는 강원도 지원 하에 춘천시에 두드림 아카데미라는 교명으로 25세에서 35세 무직청년들을 위한 직업사관학교 개교를 준비 중에 있어 12월이면 가개교를 할 예정입니다. 거기다가 2004년에 사회복지대학원 입학해서 북한이탈청년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1년 가량은 그들과 같이 생활하다시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비교적 직접적인 경험과 진지한 연구노력을 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눈앞에 닥친 이탈주민의 힘든 현실과, 말로는 무성한 미래의 통일시대에 대비한 진정한 준비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북이탈주민들을 위한 경비는 많이 지원하는데, 생계비와 단편적인 교육훈련지원 위주가 되어 실효성이 적다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INPUT 에 비하여 OUTPUT이 적다는 사실, 관,민,기업의 3자 협력체제에 의한 근본적인 처방에 접근하지 못하는 행정부의 취약함에 안타까움을 가집니다.
자율성이 담보되지 아니하는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정책은, 훨씬 더 정교한 PLAN으로 일관성있는 방향설정과 실행이라야 효과가 커지는 것입니다.
25,000명을 년령대별, 남녀별, 유효가능 노동인력별, 몇가지 기준으로 분류하고 거기에 맞은 그룹별 처방으로 한사람 한사람 새 사람으로 재생산하는 절차가 있어야 이 사회의 적응인력으로 전환이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강원도와 처음 협의할 때에, 제가 세우는 학교는 3년이 지나야 학교존폐가 결정되고, 5년이 지나면 북한이탈주민에게 박수 받는 학교, 10년이 되면 북한에서 내려오는 청년들이 줄을 서는 학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10년은 내다보는 plan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입니다.
둘째는,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한 인식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 얼마나 힘든 조국이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지금 우리는 북한이야기만 나와도 불편합니다. 그러나 우선 북한이탈주민들부터 조금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혹시라도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 상대방을 배려한 부드러운 이야기, 격려, 이런 것들이 쌓이면 너와 내가 모두 행복하고 공존이 가능한 세상일 것 입니다. 북한이탈주민 상담과 보호 일에 오래 종사해 온 분의 이야기, 만일 남과 북의 소요사태가 발생했을 때 과연 탈북자들이 우리 편을 들것인가 염려된다고 했습니다.
공산사회에서도, 독재체제에서도, 체제와 이념을 뛰어 넘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사이의 신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권에서의 “한반도 신뢰 process 구축”이라는 과제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수로건설현장 제1기 현장대표는 형식적으로는 외무부 직원이며 같이 정보기관 직원이 공동대표를 하였습니다. 정보기관 직원의 내유외강 성격은 북한 관리들을 통하여 상부에 보고되었으며, 그 후 정상회담을 위시한 남북회담에서 고비고비마다 hot line을 통한 협상이 다 마무리 되었습니다.
수면위 협상은 제스쳐일 뿐 물밑 협상과 최종 결론은 신뢰속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도 이산가족이라 언젠가는 가족상봉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은행은 사실상 개점휴업이라 할 일이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위에서 말한 초대소에 설치된 휴게소와 식당, 맥주바에 자주 직원이랑 들렀습니다. 일과 중에 가면 멀리서 빈둥거리던 북한수행원들이 사람찾는 척하며 가게에 들릅니다. 그러면 불러서 맥주 한잔 먹여 보냅니다. 일본 아사히, 삽보로 맥주입니다. 한병에 5달라 정도인가 하여튼 서울 가격하고 똑 같습니다. 가격을 정확히 잘 알고 있습니다.
5불이면 그곳 기술자 10개월 월급입니다. 그 당시 1$ : 2.13 북한원인데 암시장에서 1$ : 200원합니다. 기술자 월급이 식량배급과 100원 정도입니다. 그러나 식량배급을 끊어진지 오래고, 월급은 암시세로 50센트에 불과한 것입니다.
외화벌이 접대원으로 일하는 여성이 10여명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예쁘장한 아가씨가 최고 인기입니다. 남자 여자 통틀어서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오는 손님들은 반드시 그 바에 들렀다 가야 북한 여성을 만나고 대화가 가능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직원 3명이 그 친구 바에서 환담을 하다가, “우리 지점장님 딸이 없는데 00씨, 수양딸 하면 어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아가씨 가만히 생각하더니 정색을 하고 “동의합니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겁을 했지요. 그 아가씨 당원 되겠다고 아침 새벽에 5km가 넘은 기차역 앞 김일성부자 동상에 청소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한달 후에 집에 가서는 아버지한테도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제가 휴가가는 날에는 버스까지 나와서 “선정이 엄마한데 인사 전해 주세요” 하는 겁니다. 귀국하고 얼마있다가 그 딸이 평양으로 시집간다 해서 2돈짜리 딸아이 것, 3돈짜리 남편 될 사람 금반지 해서 보냈지요. 역시 똑똑하니 1등 시민이 되는 평양으로 갔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어떠한 갈등과 위험도 사랑과 신뢰하는 사람 앞에서는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셋째는,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이 달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70년대에서 2000년대 까지는 북한 때문에 불안하고 증오스럽긴 했지만, 먹고 사는 일에 치중했습니다. 그 이후가 오히려 불안한 것 같습니다. 국민소득 수준 20배, 국방비 예산 40배 차이의 국력을 가지고 우리가 불안하다면 얼마의 차이가 있어야 위협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것인가요. 이것은 대립구도의 대북정책에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정권 교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이 꾸준히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 기반 위에 정치권의 성향에 따라 다소 변화는 있을지언정, 통일정책은 온 국민의 중지와 역사적 사명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조금은 쿨하게 흐름으로,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준비되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지난 주에 이 발표문을 준비하고, 이번 주 월요일 아침 신문을 보았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보다 통일준비가 우선”이라며 통일부 서기관, 사무관 10명으로 TF팀을 구성하여 지난 주말 장시간 토론에 들어갔다는 기사였습니다. 바로 제가 말씀 드린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의 우선순위필요성을 통일부 장관이 처음으로 언급한 사례입니다. 통일부가 처음 제 역할을 하고 있고, 장관이 북한대학대학원 교수 출신이라 그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 6월까지 4년간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위원직을 가졌습니다. 통일부 정착지원과에서 통일부 T/O 라며 그래도 대단히 생각해서 위촉을 했습니다. 아마 만명이 넘은 숫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정책 추진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할 거대한 집단이, 집권정당의 대북정책 홍보와 지원역할에 그치는 우리의 현실도 허망했습니다. 정부기관 어느 한 곳에는 대단한 권위를 가진 전략연구소가 있어서 전략카드를 만들고, 집권층에서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거기에서 카드를 꺼내 사용하는 관행이 서야, 행정부의 교체마다 통일정책이 달라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주변 4대 강국의 각축장인 한반도가 어느 한 쪽의 붕괴가 있다고 해서 철조망을 거둘 수는 없고 어차피 허수아비정권이 들어설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을 적어도 3천불 이상의 국민소득국가로 가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 교류와 더불어, 가족 상봉의 여건만 허락한다면 구태여 물리적 통일을 서둘러야 할 이유도 적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본 주제의 결론으로, 우리의 아이들 처럼, 우리가 가꾸는 화초처럼, 북한이탈주민도, 사랑과 신뢰와 격려를 먹고 사는 것이지, 혐오와 증오를 받으며 단순히 정착지원금을 받으며 산다면 그들이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없는 것이며, 그들이 우리 사회에 독초가 될 지 언정, 언필칭 세미나에서나 말하는 먼저 온 통일세대의 전위대 역할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은 과제는 우리 사회의 북한이탈주민을 보는 시각을 개선하는 일과, 그들을 지원하는 지도층들이 본질에 충실한 지혜로운 리더들이 되는 일이라고 말씀 드리며 그치겠습니다.
도입 : 4개월간의 장정에 들어가며
여러분
이제 우리들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무릇 여행이라 함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과 문물을 접하면서 우리의 인생외연을 확장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여행을 통하여 다시 한번 자신을 refresh 하고 재충전하여 우리 삶의 여정을 풍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여행이라 함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이번 여행은 통상의 refresh, 재충전을 넘어서 우리의 인생을 다시 설계하는 시간이라 하겠습니다.
재설계라 함은, 기존에 있는 시설을 정도의 차이에 따라 완전히 개조하거나 일부 수정하여 지금보다 나은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길을 온전히 되돌아 보려 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환경과 가족관계와 기타 인간관계를 점검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북한과 우리가 살아갈 남한을 이모 저모로 비교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열거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상태로 살면 우리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고, 변화해 가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우리가 갈 길의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그 여정에 임할 우리의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서 철학의 처음 출발점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문구입니다. 여러분 하나 기억하십시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철학은 그리스의 삼총사 소크라테스(Socrates)- 플라톤(Plato)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용기가 부족해서, 때로는 자신이 창피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고, 알기 위해서 무언가 찾아가며 배워야 하는데도 외면해 버립니다. 때로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못합니다. 길을 모르고, 길을 인도해 주는 이도 없습니다.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점은, 이 여행길에서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제껏 우리는 너무나 힘든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마음이 피폐해져 있습니다. 남에게 쉽사리 자신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남을 믿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해 보아도 별로 도움을 받는 일도 없고 오히려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우리 자신을 리모델링(remodeling)하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이 시간을 놓치면 다시 이런 기회를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불안과 걱정, 방황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여행을 떠납니다. 분명, 이 여행은 우리가 절실히 바랐던 여행일 겁니다. 우리끼리는 남을 의식하지 말고, 서로를 선생으로 삼아 마음껏 생각을 나누어 갑시다. 그래서 이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내면의 빛을 비추고 우리의 갈 길을 훤하게 밝힙시다.
먼저 제가 14주간에 걸쳐, 매주 1개의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합니다. 그 날의 주제에 관하여 발표자가 일정한 내용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제에 관한 의견, 생각할 점, 문제의 제기 등 듣는 이에게 화두를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내용에 관하여 첫째는 여러 번 통독을 하고, 둘째는 그 내용을 곰곰히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만듭니다.
일주일 내내 이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씨름합니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자신의 생각과 비교합니다. 내가 미쳐 알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저는 여러분이 매주 발표문을 거의 암기하듯이 수 없이 많이 읽기를 권합니다. 이 글이 명문이라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국어공부입니다. 국문이지만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도 있습니다. 그때는 사전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단언컨데, 14주간의 우리 이야기를 여러분이 암기할 때 국어실력이 현저하게 향상될 것 입니다.
그리고 나서, 일정한 시간에 여러분이 모여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기에서 토론문화를 열어 갑니다. 북한에서의 총화와는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사물, 사실,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므로 각자가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거듭 강조하지만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가 없습니다. 오랜 대화와 의견교환 속에서 대체로 비슷한 공감대가 생길 수 있고, 아니면 자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갈 길을 모색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주제를 놓고 사색하고, 토론하고, 고민하고 나면 반드시 스스로 성숙해진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여행이 성공적이기를 기대합니다. 환영합니다.
제1강 : 인간의 발달단계
<<<들어가면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년령대 별로 성장, 발달하고 경험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각 시기별로 배우는 일, 경험하는 일, 열심히 해야 할 일들이 있고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발달을 이해하는 데에는 사람마다 개인의 차이가 있고, 타고 난 즉 선천적인 부분과 주위 환경 모두가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사람은 각자 일반적으로 일정한 유형의 기질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각 개인마다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고, 이 과정에서 타고 난 기질을 어떻게 표출할 것인지는 변한다고 봅니다.
<<<인간의 년령별 발달단계>>>
그 발달단계에 관하여 여러 심리학자들이 나름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태아기>, <영. 유아기( 0~2세. 3~6세)>, <아동기(7~12세)>, <청소년기(13~18세), 청년기(19세 ~30세)>, <중.장년기(31~65세)>, 노년기(65세~)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쉽게 풀어쓰면, 임신중 아기/ 어린 아기/ 초등학생/ 중.고등학생과 인생 준비 및 출발시절/ 활발히 살아가는 시절/ 은퇴해서 쉬다가 죽을 때 까지의 시기로 나누어 보는 겁니다.
태아기는 엄마가 임신해서 출생하기 까지, 평균 임신기간은 266일이라고 합니다. 태아기 엄마의 영양은 아이의 두뇌발달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태아기 사이에 엄마가 건강하고, 정서가 안정되고, 태아와의 대화, 즉 태아교육이 잘되면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임산부의 영양결핍은 조산, 저체중아 출산, 신생아 사망률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임신 중 약물치료, 지나친 알코올, 흡연, 불량한 위생상태 등은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줍니다. 기타 요인으로는 예를 들면, 수입이 적고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낮은 것도 태아와 임산부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영.유아기 아동 발달과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현대 심리학의 시초이며 정신분석 심리학의 대가인 프로이트라는 사람은 영아기의 경험이 성인기의 성격과 심리발달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밝힘으로써 유아교육의 중요성, 양육방법 등에 대하여 부모, 교육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지대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자신이 정보를 받아 들이면서 다양한 감각을 배우고, 상징적인 표상을 사용하여 정신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긍정적인 양육방식, 가족의 상호작용, 부모의 만족도와 같은 요인이 아동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자아개념이 생기고 자존감도 가지게 됩니다.
아동기라 함은 초등학교 시절의 나이라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 시기에는 신체적으로 활발하게 성장하는 기간이며 학교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타인과의 교류와 친구 사이의 경쟁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더욱 자기 가치를 탐색하면서, 학업능력, 운동능력, 사회적 능력, 신체적 외모 등의 자아가치를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람은, 부모, 학급또래, 그리고 친구와 선생님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자존감을 발달시키는 교육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기에는 이미 남한의 아이들은 학교 수업 외에 일주일에 2~3종류의 학원에 갑니다. 거기에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배웠느냐가 아니고 몇 등이냐에 초점이 맞추어 집니다. 학교란 친구들과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너와 나의 존재가 있고, 그 사이에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이냐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를 비교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겁니다. 남한의 아이들은 소년기 이전부터 이 생활에 익숙해 져 갑니다.
학교에는 엄격한 규율이 있습니다. 줄서기, 수업시간 중의 정신집중, 학교 뒤에는 부모의 보이지 않는 관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들은 길들여집니다. 야생적으로 각기 개성에 맞는 성장이 아니라 평가와 경쟁에 이기기 위한 길들임입니다.
청소년기라 함은 남한의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과정의 기간이라 생각하면 쉽게 기간개념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가 되면 이성간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위 사춘기의 과정을 겪습니다. 성적인 욕구가 강해지며 동물적인 본능에서 이성적인 절제와 세련됨을 익혀 향후의 성생활에 대한 건전한 기반을 구축하는 시기입니다. 변화와 적응은 청소년기와 초기성인기를 특징짓는 말입니다. 청소년기는 ‘성숙을 향한 성장’이라 합니다. 신체상의 변화는 사춘기를 겪게 하고, 급격한 신장의 증가를 동반합니다. 그리하여 자가비판(self criticism)하여 신체적인 모자람을 찾아내고 또 거기에 빠집니다. 성 행동 패턴에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인종이나 민족에 연유하기 보다 가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보다 성 활동을 더 절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짐으로써, 인생이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남과의 관계형성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내가 남과의 다름과 같음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시기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육체적 성숙과 더불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기간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인생에서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답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은 직업의 선택, 결혼과 관련한 다양한 선택사항, 주거지 결정 등등에서 결정력과 방향성이 없어 고통받습니다. 그래서 정체성 위기를 겪을 지라도 결코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사상이나 직업의 선택에 대해서도 명료한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결국 낮은 자존감과 해결 능력의 부족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정체성의 발달은 평생의 과정입니다. 비록 초기의 정체감은 주로 타인의 반응으로 결정되어 낮은 자존감을 가질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여기는 사람도 긍정적인 변화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결정할 때에 과거의 경험보다 과연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가 훨씬 중요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거는 결정되었고 바뀔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과거가 고통스럽고 상처뿐이더라도 현재와 미래 역시 그러게 되리란 법은 없습니다.
이 기간 중에 남한의 학생들은 아마 세계에서 최고 강도의 학습교육을 강요 받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만큼 고강도 훈련을 시키는 나라는 없습니다. 엄청난 많은 주입식 교육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학업이라는 경쟁에 휘말려 학업능력이 좋은 사람은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심한 정체성 위기와 낮은 자존감으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힘들게 보냅니다.
청년기는 친밀한 관계, 직업, 인생목표를 포함하여 주요한 관계를 강렬하게 추구합니다. 일련의 개인적인 도덕가치를 형성하는 것도 이 시기입니다. ‘도덕성(morality)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일련의 원칙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명료하게 규정되지 않고 회색의 음영을 띄어서 절대적인 답은 없습니다. 도덕적인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사소한 일상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합니다. 도덕성도 평생동안 발달하지만 특히 청소년기와 청년기 동안에 중요하여 이때에 사람들은 독립적인 결정과 선택을 하는 권리를 가지게 되며 이 시기에 발달한 가치가 평생 작용합니다.
중.장년기라 함은 사회진출을 시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왕성한 사회활동과 자신의 역량개발에 충실하는 시기입니다.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상적으로 노력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이 시기가 신체적으로 황금기이며 가장 건강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점차 외모가 변화하고 노화가 시작되며 감각기관과 육체의 힘이 점차 쇠퇴합니다. 특히 육체노동자나 운동선수 등은 더 이상 경쟁적이지 못하여 주체성의 위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건강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운동과 개인적인 삶의 양식과 생활습관을 통하여 유지됩니다. 좋은 건강습관은 우선 아침 식사를 포함하여 모든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이며 음주와 alcohol의 문제, 흡연, 과도한 스트레스도 변수입니다.
반면, 정신기능은 중년기에 정점을 이룹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실을 계속 학습할 수 있고, 더불어 잘 아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중년기에 이르면, 직업과 가족생활에 안주하여, 자신의 지적능력을 덜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노년기의 생활을 소극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창조적 생산성은 중년에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리고 통합적인 사고능력이 극대화되어 40,50대는 실제적인 문제 해결능력이 정점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의 후반기가 되면 여성은 폐경기, 남성은 갱년기 시기를 맞으며 ‘중년의 위기’라는 인생의 불확실한 시기를 경험합니다. 이 시기에는 이혼, 외도, 직업의 변경, 사고, 자살기도의 위험성이 높아지며 심리적으로도 위축되어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가정적으로는 아래로 자식 혼사와 분가하여야 하고, 위로는 부모가 연로하여 병수발을 하여야 합니다.
노년기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실감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노년기는 보상의 시기입니다. 젊은 시절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노년기의 삶이 결정됩니다.
이 노년기가 지난 세기(century)만 해도 인간의 평균 생존 년령이 낮아서 별다른 의미를 못 가지며 삶의 bonus 기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살고 있는 21세기는 고령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평균 90세를 살게 된다는 엄청난 축복과 재앙을 동시에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중에는 건강이 나빠지고 인생의 결산기에 접어 들며 영성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노년기의 삶은 그 시기에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길의 연장선상이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60년은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 지가 명백하여 집니다.
<<< 생각하기 >>>
인간은 대단한 지능을 보유하고 있고, 그 능력이 현대화하면서 고도로 발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단순히 주어진 본능적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다른 동물에 비하여 사람 사이에는 능력의 차이가 많다는 점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힘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영리한 개라고 해서 큰 집을 짓고 살며, 둔한 개라고 해서 집도 없이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은 태아기에서부터 유.영아기, 소년기,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각자의 개인적인 역량이 많이 차이가 나게 되고 그 요인들이 남은 6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삶의 질에 차이를 낳게 되는 것 입니다.
인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나 온 과거에는 먹는 것, 배우는 것, 사는 것 모든 게 궁핍한 사정으로 살아왔으며, 현재도 녹녹하지 않은 여건에서 어려운 상황이니, 과거와 현재는 버리고 미래를 새로이 원점에서 시작할 수 있으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원점이라 함은 나나 다른 사람 모두가 똑 같은 상황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승산은 있습니다. 내 나이의 모든 아이들이 같은 돈, 같은 집, 같은 지식, 같은 건강에서 출발하니까요. 지금부터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온 태아기에서 청소년기까지의 유산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과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배운, 태아기,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의 우리의 성장환경과 남한 또래의 성장과정이 많이 차이가 나서 그 gap 이 대단히 커 보이는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우리는 남한 또래보다도 많이 부족합니다. 도저히 경쟁에서 이길 수 없어 이 사회에서 살기가 불가능하거나 계속 어려울 것 같은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과의 사회생활에서 항상 패배자이고 자존심 상하고 동등하게 나설 용기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아는 것도 부족하고, 가진 것도 부족하고, 다음 주에 우리가 공부하게 될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환경”도 불리하기만 하여 단순히 멍청히 생각하면 도저히 이 사회에서 견디기 힘들 것 같습니다.
내가 태아기에 있을 때 우리 가정은 힘들어 엄마의 영양도 충분치 못했고, 태아교육이라고 무슨 특별히 돈 들여서 한 일도 없습니다. 좋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영양도 충분하고 어린 시절부터 사립유아원에서 교육받지도 못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좋은 옷 입고, 학원에 밀려 다니고 중고등시절 과외공부하고, 부모들 따라 가끔 여행도 하고 그러면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학교 수업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서 학습 실력에서 월등히 뒤처져 있습니다. 너무나 획일적이고 고루한 사회체계에서 성장하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거의 생존 차원에서 살아가며 내 인생의 앞날을 설계해 보지 못했습니다. 도덕성에 있어서도 사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저개발 사회에서 성장하여 개인적인 morality 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감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오히려 다음 주에 생각하게 될, 부모와 가족, 학교, 직장, 정치.사회체제, 사회집단 등의 사회안전망이 훨씬 부족했으며 앞으로도 부족할 거라는 현실예측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사회에서 경쟁에 이겨나갈 vision 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밀리면 결국은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며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가능성이 있고, vision이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지는 장점이 있고 무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다행스럽게도 비슷한 지능과 비슷한 선천적인 기질과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남한사람들이 북한사람보다 반드시 경쟁우위적이고 능력을 가진 것만도 아닙니다. 사회가 가지는 복잡다단성 때문에 많은 남한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생활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의하여 당당히 중산층 사회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태아기에는 우리가 불리한 과정을 거쳤을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의 생활환경이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남한또래 중 일부는 우리 못지 않은 여건에서 태아생활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장과정의 유아기 소년기는 비록 교육이나 환경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는 자연속에서 뛰고 또래들과 어울리고 부모님의 원초적인 사랑을 받고 성장하였기에 우리의 잠재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생선회 중에는 양식이 있고 자연산이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우리가 더 행복해 질 수 있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자존감의 형성에도 남한의 또래들은 지나친 경쟁구도 때문에 내면적으로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 생활에서 일탈하여 빗나가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정체성의 확립 역시 남한아이들이라고 하여 다 건전하고 경쟁력을 가지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성장과정에서 학습기회가 부족하여 지식습득에 뒤쳐져서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사고의 영역이 좁고, 지식을 통한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 온 북한 사회와 지금의 북한이탈주민 사회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주 원인이 되어 도덕성에서 세련되지 못한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고 습득하고 발달시켜야 할 여러가지 후천적 자질이 남한 또래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부족분을 채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비록 지금 보기에는 그 격차가 대단히 커서 극복하기 어려워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회복하지 못할 일도 아니고 실제 남한 학생들의 상당 비율은 우리보다 못한 상황에 있기도 합니다.
우선, 우리는 남한의 또래들에 비하여 무엇이 얼마나 부족한지 이해하고, 우리가 그 부족분을 채우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4개월에 걸친 대 장정을 통하여 그 내용을 명확히 하고 인내를 가지고 부족분을 채우는 작업을 진행하여야 할 것 입니다.
이 과정을 저는 힐링(healing)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healing이란 몸과 마음의 치유를 통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어쩌면 북한에서 태어나고 살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남한 사회에서 살려면 몸과 마음의 치유 대상이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살던 전력만으로는 남한에서 살기에 역부족이니까 그것 때문에 국경을 넘어 타국을 거치며 위기를 경험하고 남한에 와서도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마음의 상처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한살이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부족분을 하나 하나 채워나가면 그것이 바로 healing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시작하여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는 영양이 부족하고 체력이 뒤집니다. 지금부터 편안하게 식생활을 개선하고 운동을 통하여 몸의 활기를 부여하고 체력을 보완하여야 합니다. 편식을 하는 이유는 원래 체질이 무엇을 못 먹거나 적게 먹는 게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생긴 일종의 버릇입니다. 1일 3식,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 섭취, 못 먹는 게 없는 체질로 전환, 여자친구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모관리가 아니라 경쟁력과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체형관리와 강한 몸을 단련하는 노력이면 됩니다.
둘째, 정신력을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일정기간 동안 자신의 몸 값을 높이기 위하여 투자합니다. 게임, 스마트폰 의존, 바보상자 쳐다보기, 친구나 여친과 무절제하게 만나고 어울리기, 게으름 등에서 멀어져 오직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전력 투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 자기 내면이 채워지면 정신이 풍요로워 지고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채워지며 스스로가 평안함을 발견할 것 입니다.
셋째, 목표가 있는 규칙적인 생활, 자기 주도적인 삶,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 그리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용어를 여러분들이 너무 어려워하고 싫어해서 언급하기가 망설여지지만, 사실 공부만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됩니다.
몇 주 후에 ‘공부, 지식, 학력’ 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하겠지만, 공부란 자기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결코 밖으로 나아 갈 수 없고 경쟁에서 견뎌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낮은 자존감과 명확하지 아니한 우리의 정체성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으며, 이 과정이 곧 우리가 이제껏 남한 또래들과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입니다.
여러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피하지도 마십시요. 이 일은 앞으로 여러분이 남한 땅에서 살거나,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에도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는 과제입니다.
기회는 지금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정에 같이 동도하는 길잡이가 있으니까요. (끝)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작은손길이 하는 일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지는군요. ()
(사)해솔직업사관학교 이사장이신 김영우(전,외환은행 부행장)님의 발표문과 학생들에게 당부 내용입니다.
기회가 되면 학교도 방문하고 운영현황, 계획, 애로사항등을 대화나눠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