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신구화ㅣ抱薪救火]
○ 섶을 안고 불을 끄다.
○ 抱(안을 포) 薪(섶 신) 救(구원할 구) 火(불 화)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러 간다는 뜻으로, 재해(災害)를 방지(防止)하려다가, 자기(自己)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損害)를 입음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의 위세가(魏世家)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일이다. 국력이 나날이 강대해진 진(秦)나라는 범저(范雎)가 주창한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을 펴 가까운 나라를 끊임없이 침략해 영토를 확장해 갔다. 이 정책으로 인해 위(魏)나라도 진나라로부터 연거푸 침공당해 영토를 점령당했다. 이처럼 진나라의 영토 침공이 계속되자, 위나라 백성들은 진나라를 두려워해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이때 위나라 장수 단간자(段干子)가 난양[南陽]을 할양하고 강화를 맺을 것을 왕에게 건의했다. 그러자 전술가 소대(蘇代)가 왕에게 충고하기를 "단간자의 본심은 왕위를 빼앗는 것이고, 진나라의 목적은 위나라를 병합하는 것이므로 화의를 맺어도 침공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나라에 땅을 할양하는 것은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려는 것[抱薪救火]'과 같아, 땔나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불은 꺼지지 않듯이, 땅을 할양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소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난양지구를 진나라에 할양하고 화의를 제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소대의 말처럼 화의를 맺고도 침공을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위나라 땅을 빼앗았다. 위나라 왕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진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하여 성을 20개나 빼앗아 진나라의 동군(東郡)이라 했다. 위나라는 마침내 저항할 힘을 잃고 BC 255년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포신구화'는 '섶을 지고 불을 끈다'는 뜻의 '부신구화(負薪救火)' 와 같은 말이다. 또 '불을 끄는데 섶을 던져 넣는다'는 뜻의 '구화투신(救火投薪)'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