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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문 -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 유엔본부에서 17일 열린 군축회의에서 북한 대표는 북한의 적대세력들의 핵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의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 실험을 동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 대표는 이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미국대표는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의 핵 활동이 중단되어야 의미있는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핵실험에 대한 북한의 고집과 주장이 바뀜으로 북한이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남으로 많은 나라와 경제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게 하옵소서. - 개혁개방과 체제변화를 통하여 북한주민들에게도 경제발전과 함께 자유와 인권이 주어지게 하시고, 이제 북한에서도 자유롭게 예수님 믿고 성삼위 하나님을 예배하고 전도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소서. |
2. 북한경제
스위스, 대북 독자제재…"자국내 북한 자산 동결"
북한 은행 지점·계좌 6월 2일까지 폐쇄 등
스위스가 강력한 금융제재를 포함해 대북 독자 제재를 단행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스위스가 자국 내 모든 북한 관련 자산을 동결하고 금융 서비스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금융제재가 포함된 포괄적 대북 독자 제재를 전격 단행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연방정부는 지난 18일 오후 6시를 기해 새 대북 제재를 전면 시행했다. 노동당을 포함한 북한당국이 스위스 은행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모든 자산이 동결된다. 다만, 북한 공관의 활동에 필요한 자금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
또 스위스 은행은 북한에서 지점이나 자회사를 열지 못하도록 했으며 기존 은행지점이나 계좌는 다음 달 2일까지 폐쇄해야 한다. 스위스에 있는 북한 은행의 지점과 계좌도 이 기간 내 폐쇄해야 한다.
대북 수출입 품목은 모두 통관검사를 받아야 하며 대북 수출품은 예외 없이 연방경제부 산하 대외경제본부의 사전 승인을 거치도록 했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급 시계와 스노모빌을 비롯해 스키관련 제품, 골프 및 볼링 제품 등 사치품들이 수출 금지 품목에 대거 포함됐다.
항공유는 대북 수출과 공급이, 북한산 금·석탄·철·희토류는 수입이 금지됐다.
해상·항공 운항과 관련, 북한 기업과 전세나 임차 계약을 체결할 수 없으며 북한과의 연계가 의심되면 항공기 이착륙과 영공 통과를 거부할 수 있다.
또 북한 주민들은 스위스에서 고등 물리학, 컴퓨터, 핵공학 관련 과목을 수강할 수 없고, 과거에 이뤄진 북한 관리 등에 대한 군사훈련도 전면 금지된다.
스위스 정부의 이번 조처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응해 지난 3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2270호에 따른 것이다.
RFA는 “스위스 정부의 조처는 금융, 수출입, 선박·항공기 운항, 교육 등 다방면이며 그 대상과 폭도 광범위하고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출처: 2016. 5. 19 서울경제】
▶ ▶ 기도문 - 스위스가 자국 내 모든 북한 관련 자산을 동결하고 금융 서비스를 급지하는 등 강력한 금융제재가 포함된 포괄적 대북 독자제재를 단행하였습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선호한다고 알려진 고급시계와 스노모빌, 스키관련 제품 등 사치품들의 수출이 금지 되었습니다. 또 북한산 금, 석탄, 철, 희토류는 수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스위스 정부의 이번 조처는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2270호에 따른 것입니다.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안에 따른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이루어짐에 감사를 드립니다. UN 회원국들의 북한에 대한 일관된 통제와 제약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시고 체제가 올바르게 변화되게 하여 주소서. |
3. 북한사회
북한에 ‘키 크는 약’ 광고.. 신흥 부유층 겨냥한 광고 등장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광고라고는 체제선전물이 전부인 북한에서 최근 신흥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상품광고가 등장해 주목된다.
19일 미국의소리(VOA)방송은 평양발 로이터통신을 인용, “떠오르는 신흥 소비자층과 부유층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광고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통신이 언급한 신흥 부유층은 ‘돈주’들로, 장마당 활성화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신흥자산계층이다. 등장한 광고는 대부분 A4나 A3사이즈 일반 종이에 컬러 인쇄 형태로 제작돼 상점 계산대 앞이나 벽면에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상점에선 상품의 상세정보를 설명하는 별도의 용지가 광고와 함께 전시되기도 한다.
광고 상품은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치아 미백용 치약과 암과 결핵 치료에 좋다는 해삼 가공식품, 어린이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키 크는 약’, 피를 맑게 해 준다는 약 등으로 다양하다.
북한에는 그동안 남한 통일교와 북한 정부가 공동 설립한 평화자동차 광고판이나 남한으로 한때 대동강맥주의 수입이 허용됐을 때 등장한 TV광고 등이 있었다. 그러나 남북 경제협력과 관계 없이 북한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한 광고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제임스 피어슨 기자는 로이터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은 늘어나고 있는 소비자 계층과 매우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동시에 이들의 생활방식이 바뀌는 과정의 중간지점에서 광고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상품광고는 여전히 노동당이나 김정은 당 위원장을 찬양하는 선전물에 비해서는 작고 위치도 애매한 곳에 진열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2016. 5. 19 헤럴드경제】
▶ ▶ 기도문 - 체제선전물이 아닌 ‘상품광고’가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등장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의소리(VOA)는 북한에서 장마당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을 타겟으로 A4나 A3사이즈로 상점 계산대나 벽면에 광고가 게시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제임스 피어슨’은 “북한 정권은 늘어나고 있는 소비자 계층과 매우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동시에 이들의 생활방식이 바뀌는 과정의 중간지점에서 광고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광고 상품은 ‘미백용 치약, 암과 결핵 치료에 좋다는 해삼 가공식품, 어린이 성장 촉진 키 크는 약’ 등 다양하다고 합니다. - 북한사회에 장마당을 통한 경제활동으로 이런 작은 변화들이 있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변화들을 통하여 북한 당국과 북한주민들의 통제된 사고가 깨어나게 해주시고,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큰 변화로 이어지게 하여 주소서. |
4. 기타
[특별기획: 탈북 난민 미국 정착 10년] 197명 입국, 60% 여성
북한 요덕관리소 출신 탈북자 정광일 씨(왼쪽 세번째)와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그레이스 조 씨(왼쪽 두번째)가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탈북자들이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 내일 (5일)로 10 년이 됩니다. 저희 `VOA'는 탈북 난민 미국 정착 10년을 맞아 세 차례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미국 내 탈북 난민 현황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보도에 이연철 기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5월 5일, 탈북 난민 6 명이 동남아시아 제 3국을 거쳐 미국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20대와 30대 남성 2 명과 여성 4 명 등 이들 6 명은 며칠 뒤 워싱턴에서 `VOA'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 입국 소감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녹취: 미국 정착 1호 탈북자들] “중국에서처럼 언제 잡힐까 이런 불안감이 없이 자유를 찾았다는 것이 기쁘고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른 나라예요. 북한의 모든 정책에 속아 왔다…” “내가 진짜 자유의 땅에 왔는가 안 믿어졌어요…” “열심히 하면 되겠죠, 기회의 나라이니까…”
지난 2004년 미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이후 미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탈북자들이 미국에 난민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98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10 년 가까이 살고 있던 탈북자 조진혜 씨는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행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조진혜] “저는 중국 청도에 있을 때 인권법안이 통과됐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 소리를 듣고 신문을 읽으면서 어머니하고 너무 좋아서 희망을 가졌어요.”
지난 2008년 3월,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미국에 입국한 조 씨는 탈북자들을 구출하고 탈북 난민들의 미국 정착을 돕는 단체 ‘재미탈북민연대’ 대표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9 명을 시작으로 지난 10 년 동안 197 명의 탈북자들이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전체 197 명 가운데 여성이 118 명으로 60%, 남성은 79 명으로 40%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 난민의 약 80%가 여성인 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남성의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56 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49 명, 40대가 33 명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 밖에 14세에서 20세 사이가 30 명, 14세 미만이 19 명이었고, 51세에서 64세 사이가 8 명, 65세 이상이 2 명이었습니다.
미국에 입국한 탈북 난민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지역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와 남부 켄터키 주로 각각 27 명을 기록했습니다.
이어 뉴욕이 20 명, 콜로라도가 18 명, 유타가 16 명, 버지니아와 애리조나 주가 각각 15명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밖에 탈북 난민들은 일리노이 (14 명)와 워싱턴 (8 명), 텍사스 (7 명), 조지아 (6명), 테네시 (6 명), 플로리다 (5 명), 메릴랜드 (5 명), 노스캐롤라이나 (2 명), 아이다호 (2 명), 오리건 (1 명), 인디애나 (1 명) 등 미국 각 지역에 정착하고 있습니다.
학력별로는 고등학교 졸업이 97 명으로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고, 대학 졸업 29 명, 기술학교 졸업이 11 명을 기록하는 등 전체의 70% 가량이 고등학교 졸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2010년 미국에 입국해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정착한 탈북 난민 앤드류 씨는 미국에 도착하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 앤드류] “환상적이었지요. 자유로운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내렸다는 사실이 나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환상적이고 꿈에 잠겨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영어를 하지 못해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탈북 난민들이 뿌리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임시거처를 나와서 영구적으로 거주할 집을 구하는 일과 자동차를 마련하는 일 등 가장 시급한 일에서부터 은행계좌 개설, 사회보장번호와 신분증 발급, 의료보험 신청 등 각종 서류 작업은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2014년 미국에 입국한 탈북 난민 미쉘 씨는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미쉘] “그 때는 정말 눈 뜬 소경이고 가는 데 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쇼핑을 하려고 해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글도 모르지, 너무 힘들었지요”
또한 탈북 난민들은 처음에는 세탁소와 건설 현장, 식당종업원 같은 힘든 허드렛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앤드류 씨도 처음에는 유명 호텔 세탁소에서 일했습니다.
[녹취: 앤드류] “ 그 때 시간 당 7불 50전 받고 일을 했는데, 말을 모르니까 어렵기도 하고요, 눈치도 많이 봐야 되고, 그래도 일을 받아주고 일을 시킨다는 것이 매우 고마웠어요.”
과거 북한이나 탈북 과정에서 겪은 힘든 경험에서 비롯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탈북 난민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난민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반면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 정착에 성공하는 탈북 난민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에 입국한 탈북 난민 제임스 씨는 지금 기계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이제는 미국 정착에 성공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녹취: 제임스] “ 1년 정도 지나니까 내가 가야 될 길을 어떻게 가야 될까 보였고, 그래서 1 년, 늦어도 2 년 안에는 그 길을 가기 시작했어요. 제가 번 것으로 제가 알아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열심히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지난 2008년 미국에 입국한 그레이스 씨는 연 소득 70만 달러를 올리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탈북 난민 사업가로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같은 처지의 탈북 난민들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선 그레이스 씨는 2014년에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레이스 씨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라는 의미로 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너무너무 감사하죠. 저는 이 상을 받는데 제가 한 일 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마음이 무겁고, 앞으로 제가 능력껏 도우려고 많이 생각하죠.”
첫 번째 탈북 난민으로 미국에 들어온 6 명 가운데 한 명인 데보라 씨는 10년 전 미국에 입국할 때 가졌던 꿈을 다 이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보라] “그 때 제 꿈은 제가 여기서 영어를 미국 사람처럼 구사하면서 안정된 직업을 찾고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생활을 사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이제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힘이 나고, 열심히 현재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면서 좋은 가족을 이루고 애기를 키우며 살고 있죠.”
【출처: 2016. 5. 4 VOA】
▶ ▶ 기도문 -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탈북자들이 난민자격으로 미국에 정착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2006년 6명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197명의 탈북자들이 난민 지위로 미국에 입국하였습니다. 그 중 여성은 60%, 남성은 40%이고, 연령대로는 30대가 가장 많고, 20대, 40대가 그 다음 순위로 많았습니다. 북한 난민들은 처음 언어의 어려움과 탈북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외상으로 미국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 정착에 성공하는 탈북 난민들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탈북 난민 사업가 그레이스 씨는 2014년에 대통령 자원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 미국에서 난민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들의 상황을 아시는 주님, 그들이 처해 있는 모든 환경 가운데서 잘 적응하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 남한과 해외 곳곳에 있는 탈북민들이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신앙생활을 잘 하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져서 통일시대에 북한주민들을 섬기는 리더들로 준비되게 하여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