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후기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역사 동화로 손꼽힌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대적 배경이 아니더라도 아홉살에서 열댓살이 되는 장이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 성장 동화로 보기에도 무방할 것 같다. 또 책에 대한 제목부터 뭔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책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많아 ‘책’에 대한 헌사를 표방하는 동화인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중간 중간 각주가 너무 많았다. 각주가 많이 달려 있는 글이라 아이들이 좀 어렵게 읽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각주의 방해 요소만 조금 너그럽게 넘기면 그 당대의 언문 소설의 유행과 전기수 등장과 천주교라는 종교로 평등 사상을 공감 또는 자각하게 되며 신분 사회가 무너지려고 하는 당대의 민중의 삶이 쉽게 잘 보여줘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주요 인물로는 주인공 장이 외에도 필사쟁이인 아버지, 장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이를 거둬 길러주시는 책방 주인 최 서쾌, 나이는 어리지만 영리하고 깜찍한 아이 낙심이, 낙심이를 돌보는 미천한 신분이지만 고매한 성품을 가진 미적 아씨, 당대 책 덕후이자 천주교에 발 담가 위험에 빠질 뻔 했던 홍 교리, 사람이 본디 나쁜 것일까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허궁제비. 이 밖에도 허궁제비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장이를 도와준 청지기, 지물포 오씨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장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다 생각했으나 허궁제비와 엮인 일화로 인해 자신의 곁에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 중 아무래도 장이와 낙심이의 관계가 재미있었다. 처음 만나서 울고 있는 낙심이를 달래고 위로해주다가 반말을 하는 낙심이에게 장이가 나이를 묻는데 남의 집 정원에서 얼쩡거리고 있다고 핀잔을 주는 낙심이의 당돌함이 너무 귀여웠다.그리고 낙심이 덕분에 장이의 큰 걱정거리였던 허궁제비에게 삥 뜯긴 일이 해결되고 나서 찾아갔을 때 인상적이었다. 장이가 낙심이에게 엿을 사주며 심청이 이야기를 해 주는 장면을 그린 김동성 그림에서는 이처럼 평화롭고 고운 풍경( 134~135쪽)이 없는데 정작 둘은 또 울리고 울게 되며 한바탕 난리를 친다. 어릴 때 이곳 도리원으로 오게 된 낙심이의 사연을 모르는 장이는 어리둥절했겠지만 심봉사가 눈 뜨고자하는 자신의 욕구로 인당수 제물로 딸을 파는 부분에서 낙심이는 꼭 이 곳으로 팔려온 자신의 처지와 같아 얼마나 속상했을까. 아무리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이야기를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다시금 알았다.그런 면을 잘 알려주시는 최 서쾌의 가르침은 훌륭하다 생각했다. 최 서쾌가 책 장사를 잘 하는 이유는 그저 이윤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흥미와 요구를 충분히 고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절에서 아버지가 우물가에서 갓난아기인 장이를 발견하고 기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장이의 기분은 어땠을까.자신의 곁에 계시지 않아 힘들때마다 부모 원망을 하던 장이가 상처받지 않고 잘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지 않게 도와준 사천왕에게 두 손을 모았다는 것을 보면 원망이나 한보다는 깊이 감사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어른이 된 장이는 아버지 따라 필사의 길을 쭉 걸으며 아마도 낙심이와 알콩달콩 잘 살았을 것 같다. 그리고 홍 교리의 책에 대한 철학은 덕후들에게 공감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책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게 행복하다.” 이 구절은 나를 비롯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공감을 하며 밑줄 쳤을 것이다. 검색하다 보니 ‘책과 노니는 집(서유당)’은 대여,중고책을 판매하는 업체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었다.작가에게 제목 또는 이름을 허락을 맡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좀 씁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