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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요 제6 시집 평설>
창조적 작위(作爲)와 서정성의 균제미
- 정대요 시인, 『가슴 속 산들바람 불어오고』의 진동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 『모던포엠』 주간)
1. 존재의 시학과 생명의 충동감
모름지기 평자 그 나름의 지대한 관심사일 것이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문제로 온 나라가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시간대에서도 그 자신의 시 의식은 자연의 이법(理法)에 거슬림이 없다. 까닭에 정대요 시인의 제6 시집 『가슴 속 산들바람 불어오고』(홍익출판사, 2026)의 시집 평설에서 한순간 ‘바람의 정원과 생명의 합일’로 일단 묵언의 응시로 지켜볼 점이다. 또 한편 그 자신의 시집 편집의 구도 처리는「존재의 시학과 생명의 충동감」에 맞물린 결(結) 고운 모직물처럼 자서(自序)인「바람결에 나의 체취(體臭) 흩날리」에서 그 자신이 “저 멀리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푸르름 얇게 퍼진 운무(雲霧)가 있어 더 신비로운 풍광(風光), 그려내며 나의 동행(同行)이라 손짓한다. 마음이 가는 곳, 시선이 멈추는 곳에 시상(詩想)이 찾아와 새로운 시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오늘도 시작(詩作)에 열중한다.”라는 집념은 못내 이채롭다.
특히 그 자신의 제6 시집은 「꽃의 차별성과 합리적 해법」의 치밀한 구조로 「제1부 삶의 일상과 따뜻한 정한(情恨)(27편), 제2부 꽃과 그늘, 그리고 햇살(40편), 제3부 숲의 가르침과 개미취(40편), 제4부 고향의 그 배롱나무(25편)」로 총 132편은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에 개아의 차별성이 한껏 맞물린 징조다. 따라서 튀르키예의 혁명 시인 나짐 히크메트 란(Nâzım Hikmet Ran)이 「신과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에 관한 지혜로운 일깨움을 분별하며 ‘주어진 하루가 내 인생의 최초의 날이고 최후의 날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비록 힘겨운 시간대일지라도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창조주로부터 허락된 그 삶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역경을 버텨낼 일이다.
그렇다. 비교적 응축성을 살려낸 단음조의 변형과 서정성의 미감이 눈부시게 빛남으로 확증되는 그 자신의 시편은 배경 지식(schema)으로 이채롭게 장식되어 지극히 밝음 지향주의로 담백한 격조(格調)를 가일층 부추기는 추이(推移)다. 까닭에 ‘노란색 군집의 어울림에 유채꽃 만개한 공원으로 착각할 정도’의 정황에서 “노랗게 피는 꽃 애기똥풀/좋은 이름 많은데,/무슨 연유로 애기똥풀이라/명명되었는지 고개가 갸우뚱.(애기똥풀)”의 보기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그 자신이 삶의 일상에서 ‘참 좋은 말 “범사(凡事)에 감사하라.”라며 고희 넘기도록 철없이 지내다가 이제야 그 뜻의 심오함 알게 되었다.’라는 감회(感懷) 눈물겹다. 따라서 “괴로움 나만의 고통으로 착각하고,/매사에 만족하지 못하는 습성(習性)/나의 전유물로 품에 안고 살아온 지난날이다. (범사에 감사)”라는 지혜로운 삶의 잠언은 못내 교시적이다. 차제에 반평생을 공직에 몸담아온 그 자신이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고광나무 하얀 꽃이 앙증맞고 포근한 느낌’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검은색 벌들에게만 진입 허용하는데/지정된 손님만 초대하는 신기술이 확실하다.(고광나무)”라고 나직하게 읊조린 뒤, 묵언의 응시로 “안개가 자욱한 산야/시야가 좁아져 마음도 좁아지고,/청명하고 드높은 하늘/바라만 보아도 가슴 활짝 열려/세상을 품 안에 안은 정조(情調)다. (하늘커튼 시야 가리고)”라는 그 일면에서 ‘답답하고 무거운 외로움에 외출도 자제한 듯 짙은 안개에 산새도 가택연금 중인가?’라는 반문(反問)에 지상에 갈 앉은 시적 의미망은 더없이 함묵적(含默的)이다.
특히 황혼의 시간대에 혈연(血緣)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소소한 삶을 ‘느림의 시학’으로 만보(漫步)하면서 “손녀에게 “안돼, 하지 마, 먹지 마” 등/부정적인 말로 표현하면 즉시 큰 소리로/슬프게 울기 시작하는데,//지금은 14세 부정 의미의 단어/거부하는 현상은 변함이 없다/긍정적인 품성은 발달 과정인가? (부정과 긍정)”라는 시 인식도 그렇거니와 ‘더불어 함께’라는 삶의 의지를 떠받드는 그 자신의 비법(秘法)으로 ‘상대의 철갑을 벗기는 부드러운 비밀의 무기’ 항상 소장하고 “상대의 주장에 맞서기보다/한발 물러서며 경청하여/상대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감정 손상 없이 접근한다.(양보)”라는 그 소회(所懷)는 끝내 신선한 감동의 회복이다. 그렇다. 비교적 푸른 식물성의 직물 대상인 풀꽃의 이미지를 즐겨 이미지를 형상화한 시편에서 꽃말이 ‘‘덧없는 사랑, 기쁜 소식, 결속, 허무한 사랑’ 등으로 짧지만 강렬한 아름다움과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 나팔꽃은 한층 더 그 의미가 이채롭다.
트럼펫을 닮은 나팔꽃 남색(藍色)의 귀한 꽃/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한낮 따가운 햇살/피하여 또 그렇게 오므라드는데,/
성장 속도 너무 빨라 숙주(宿主) 나무 질식 상태/전지가위는 관용을 허락하지 아니하다./먼저 피어난 그 예쁘고 순수한
모습에/그대의 생명줄 무기한 연기한다.//
-「나팔꽃」에서
위에 인용한 시편에서 ‘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활짝 핀 예쁜 꽃 그 수줍은 모습에 마음 빼앗긴다.’라는 일면은 시 의미가 새롭다. 모처럼 그 자신의 단언적인 전의식(前意識)에 미뤄 변곡점이 불투명하나 감미로운 시적 감응에 활력이 넘쳐날 것임에 ‘창조적인 에너(Golden Brain)’의 지속적인 탐색은 눈부신 존재의 꽃으로 빛나고 꽃말이 ‘결속, 기쁜 소식’이듯 삶의 연륜과 결속되어 감동을 안겨주는 현상이다.
2. 풀꽃의 영혼과 그 감성의 빛남
각론하고 영국의 비평가인 스펜더(Spender)가 제시한 '기억력'은 특정한 감각적 인상으로 시인의 천부적인 재능인 시적 상상력과 결부되어 고통을 통해 생산된 창조적 기억의 변형이다. 여기서 그 자신의 시편 “더불어 함께 동물의 의사 표현 능력 없지만/단순한 행동으로 개, 앵무새 등은 지능지수 예측 가능해도/구체화한 감정 표현은 아직도 알 수 없는 수준이다.(생명체와 대화)”의 일면에서나 또는 “10년 전 뜰앞에 심은 황금 소나무 2주/주위 일대 푸른 잎새 넘실대는데/황금색 솔잎은 예쁜 자태 뽐내는 모양새다.//“저 황금색 소나무 참 예쁩니다.”/지나는 길손이 모두 한마디씩 던지고/촬영하기 바쁘다. (황금소나무)”의 양상도 그렇다. 따라서 낮은 산자락에 탯줄을 묻은 “큰 형님 노후 전원생활을 위해서/골기와 고택(古宅) 철거하고/지붕 외관 옛 모습 살려내어/실내는 아파트와 같은 구조로 바뀌었다. (고향 마을)”라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지극한 관심은 동시대 그 어느 시인에 견주어 한층 더 절대적이다.
차제에 ‘가지런히 마주 보며 지나는 바람결에 나비같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 예쁘다.’라는 시적 감응에 잇닿은 결과물로 “벌 나비가 꿀 따기에 정신이 팔린 듯,/활짝 핀 꽃가지에 서로 충돌할 듯 가까운/거리지만 요리조리 피하는 민첩함이다. (아카시아)”의 보기에서나 “오늘 낮 최고 기온은 36℃/금년 처음으로 폭염경보 발령에/아침부터 열기 절감(切感)이다. (폭염경보)”에 이어 오랜 그 자신의 공직생활의 잔상(殘像)이랄까? “경산시와 포항시 일원 기상관측 이후 처음으로/폭염 중대경보 지역으로 고지되었다.//태백산맥 끝자락의 경북 남부 지역은/분지 지형의 특성상 여름철 기온이/타지역보다 높은 공간이다. (폭염 중대경보)”라는 이 같은 관심사(關心事)는 못내 지극한 정성하다. 그렇다. 평자가 짐짓 지적할 사항은 동시대의 문인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역설에 걸맞게 일관성을 지니고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그만의 지역에 대한 각별한 정체성과 애정은 더없이 이채롭다. 따라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우리의 조국을 극찬한 “동방의 빛이 되리라.”라는 그 지혜로운 삶의 잠언은 신선한 충격이다. 또 한편 “푸른 잎 사라지고 연초록 잎으로 바뀌고,/얇은 잎에 강렬한 햇빛이 투사(投射)되니/본래의 푸른색은 분산되어 더 부드럽고/포근하고 더 넓은 연초록 세상이다. (역광의 빛 분산)”라는 그 자신의 담백한 시격(詩格)에 견주어 비열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모호함과 다양성을 심층적으로 수용한 끝에 이처럼 삶에서 부대끼는 직물 대상을 여과한 재구성은 참신할 따름이다.
차제에 ‘때로는 강물처럼 덧없이 흐르는 세월이라지만, 아득한 기억을 되살려 그간의 고루한 여백의 틈새를 좁혀가며 그 사유의 거리를 지탱한 일면에서 정갈하고도 적요(寂寥)한 정조는 시적 상상력의 확장을 통한 순수서정성은 이처럼 비장감(悲壯感)이 묻어난다.
퇴직 후 특정한 기회에 만난 동료/10여 년 흘러 노쇠한 형상의 친구 많지만/세련되고 건강미 넘치는 모습을/유지하고 있는 친구도
보인다.//
건강한 친구들 성품 현직의 기억과/주위 소문 근거로 살펴보았다./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에 미소 짓는 얼굴/남의 잘못을 지적
하지 않는 편안한 마음/잘잘못 알고 있지만 비유법으로 설명하여/장시간 상대를 설득하는 자세다.//
힘든 일 스스로 지원하여 남보다 먼저/참여하여 해결하는 직장의 근무 습성은/마치 그리스도, 석가모니 닮은 품성이다.//
몸에 밴 품격 긴 세월 흐르는 동안/건강 지켜주는 그 길잡이 되었다.//
-「형상」 전문
위에 인용한 시편은 시간과 장소성의 개념처리에서 여백의 틈새를 보이지 않는 시적 기법(craft)으로 푸른 생명의 언어를 정화하는 연금술사의 능란한 기법만큼 그 자신의 시적 기법에 맞물린 음계 처리는 낮은음자리표로 갈 앉는 다양한 연계성이다. 또 한편 ‘바람의 정원’을 즐겨 시적 질료로 삼은 그 자신이 ‘문고리가 남은 그늘을 달랑달랑 흔들지라도’ “벌써 풀이 돋고/뒷면이 자란다 (절반의 그늘)”의 깊은 사변성이나 서정적 미감이 응축된 시편에서 감응되는 시적 질료의 동일화 양상의 이행은, 시적 투사(透寫)가 칙칙한 어둠과 그늘을 말끔 걷어낸 내면 인식의 현상이다. 까닭에 ‘절반의 그늘’은 무언가의 존재로 형상화되었기에 영혼이 자유로운 바람처럼 ‘느릿느릿 망각의 강을 건너는’ 한껏 조화로움의 신선한 충동이다. 그렇다. 꿈꾸는 것 같은 황홀함 이전에 예감하지 못했던 ‘시 작업은 힘들고 시의 길은 낯설기’는 파스(Octavio Paz)의 지적처럼 ‘종교의 문제는 신이 아니라 시간이다.’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차제에 평생을 한국 농어촌에 지대한 일념(一念)으로 살아온 화자(persona)가 퇴직 후에도 ‘저수지는 바닥을 보이고 자연보에서 도수하는 계곡의 자연보수량 부족으로 정상 가동 중지할지 모르는 암울한 현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응시하며 시적으로 형상화한 시편 “농심은 가뭄과 폭염으로 애가 타는데/물 걱정 없이 농사지어온 농부는/벼, 과일, 채소 농사 불안한 조짐이다.(장마는 끝나고)”의 일면도 놀랍거니와 현실적으로 안타깝게도 ‘채소류는 한번 시들면 회복 어려운 듯 밤이슬에도 깨어날 기미 보이지 않는’ 그 같은 정황에서도 새삼 강인한 생명력에 경탄(敬歎)한 뒤 “잎새는 싱싱한 모습으로/반짝반짝 빛나고,/밤새 이슬 맞고 생기 찾아/활력이 넘친다. (잡풀의 생존 비결)”에서 이처럼 못내 탄복할 따름이다. 그렇다. 점차 온갖 소음과 도시 공해로 사각의 빌딩 숲에서 사라지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낮의 매미 소리, 단순 반복 울음이 오케스트라(Orchestra) 하모니로 인정할밖에’ 없는 그 같은 정황에서 다음 직접 인용하는 시편은 그 나름의 유의미한 언어의 그물망으로서 맑은 영혼의 울림(波動)임에 틀림이 없다. 혹여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생명의 신비랄까? 경이로운 매미의 허물 벗기(脫皮殼)의 교훈은 저토록 신선한 충격이다.
초여름까지 우화(羽化)를 미루다가/폭음 경보에 맞춰 나타난 매미,/찜통 같은 무더위에 시원한 나무 그늘/속에서 매미 울음소리
이어진다.//
여름을 여름답게 장식하는 매미 소리/그 속에 시원함도 함께 섞여 있는지/거부감 없이 그렇게 들려온다.//
열대야에 잠 못 드는 밤/한밤중 매미 소리 소음에 가까워/또 원망이 점차 가중될지라도,//
-「매미 소리」에서
모처럼 그 자신이 ‘하얀색 백일홍은 큰 키에 수국꽃 많이 닮아 청순하고 예쁜 모습에 혹하기도 하는’ 시적 이미지를 형상화한 「하얀 꽃 배롱나무」의 보기도 그렇거니와 “입추 당일에도 폭염의 열대야/입추 지난 지 5일째다./지구가 열병에 걸린 듯 찜통 날씨 이어지고,/오늘은 갑자기 산들산들 소슬바람에/어제보다 하늘은 드높고 아아(峨峨)하다. (소슬(蕭瑟)바람)”라는 그 시적 정감(情感)은 거듭 환상적이다.
이같이 그 자신의 미적 주권을 확장한 시편은 생명의 변주(變奏)에 의한 신선한 감동을 일깨워준 정신작업이기에 미국의 생물학자인 레이첼 캇슨(Rachel Louise Carson)이 『침묵의 봄』에서 ‘새가 사라진 거대한 숲의 그 참담한 침묵’을 ‘칼을 품고 때를 엿보듯’ 한순간 긴장감으로 조응(照應)하지 않을 수 없음은 인용한 시편에서 그 시적 정조(情調)는 새삼 명증된다. 따라서 새로운 가치와 질서의 창출을 위한 그만의 ‘시적 환상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에스프리와 접한 순수의 감동, 즉 앙양(昂揚)된 심리상태’는 적절히 유지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그 자신의 정신적 결과물인 시편을 통해 거듭 확증되듯 생명의 존엄성을 신앙처럼 떠받들며 아득한 풍경과 여울의 흐름도 놓치지 않고, 영혼의 진동을 조율하여 절여오는 마음의 아픔도 다독이며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은 경이로운 양상이다. 까닭에 자기성찰의 겸허함은 오웬(Owen)의 지적처럼 “시인의 소임은 시대적 상황에 경고하는 것이다.”라는 의식의 깨어남은 정서법에 충직하여 마침표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시적 감응(感應)을 불러주기에 거부감이 없다.
3. 따뜻한 감성과 시적 추이(推移)
모름지기 20세기 유대계의 종교철학자로 「관계철학」의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너와 나의 대화법을 천착시켜 생각과 마음을 비우면 영원한 그대인 신과의 합일이 이루어짐’을 체계적으로 이론화시켰다. 그렇다. 소통을 교감하는 대화는 타자와의 연 관계 층위로 해명되기에 「따뜻한 감성과 시적 추이(推移)」의 논의에서 때로는 거부할 수 없는 삶의 현상에 잇닿은 이국적인 정신풍경이며 또 다른 자의식이다. 차제에 ‘짙푸른 기억 아래의 기억을 숨겨와’ 마침내 서정적 개아에 의한 좋은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한 사고기능에서 사물을 따뜻하게 응시할 층위의 인식은 작은 기쁨이다.
그 같은 일면에서 일찍이 엘렌 워츠(Alan Watts)가「자기부정의 패러독스(paradox)」에서 “죽음은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주 새롭고 아주 생생한 삶의 빵식의 엉뚱한 원전이다.”라고 역설했듯 획일화된 생각이 고정 인식의 틀을 깨는 방해물이 되기에 느림의 미학 차원에서 지혜롭게 직면하는 현상을 선입견으로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또 한편 그 자신의 수사적 기교(craft)는 ‘심상(心象)의 표출과 인간적 풍모(風貌)’의 일면에서 진지한 탐색과 각고의 노력 끝에 형태의 추구는 마침내 도달하여 독자적인 조화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예술적 삶이다. 까닭에 그 자신의 시적 작위(作爲)는 공간과 시각에 대해 단편적이나마 합리적인 이론에 접근하여 검증을 시도하는 정신작업의 맞물림이다.
여기서 ‘바로 옆 나무 평상은 최고의 쉼터로 마을 주민의 열린 대화방임’을 헤아린 끝에 “옛 시절 고향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 옆/왕버들 고목 한 그루 밑쪽 절반이/텅 비어 있어 보기에도/오래된 노거수 왕버들이다. (고향마을 왕버들)”라는 한 폭의 수채화는 때로는 경이로울 것이나 가끔은 ‘햇살 따가운 한낮에 보이지 않는’ 정황에서도 “가뭄 속 무더위 피한 은신 중인가? (기도중)”라는 그 반문(反問)에서도 감당키 어려운 아쉬움은 확증될 것이다. 이처럼 생생한 일탈의 시 정신을 축(軸)으로 예술적인 질감과 터치의 대비로서 자연에의 회귀(回歸)를 형상화한 정대요 시인이 매사에 적극적이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나 자기 헌신과 수분(守分)의 철학을 지닌 존재감은 놀라운 빛남이다. 그렇다. 기상 변화에 민감한 화자(話者)가 예외 없이 ‘태풍 제13호 돌핀이 중국으로 상륙할 예정인’ 상황에서도 저토록 “이번 태풍의 직간접 영향권에 들어서면/한반도 서쪽은 중대 폭염경보가 이어질 전망에/동쪽은 서쪽보다 저온이 예상될 것이나/태풍의 직접 영향에 오랜 가뭄으로/폭우가 쏟아질 예측이 강세 조짐이다. (푄 현상)”도 놀랍거니와「하노이의 숨겨진 경치」에서의 시적 감응은 못내 다채롭다.
까닭에 ‘가을 냄새를 배송한 자연 집배원의 더없이 사려 깊은 고마움’마저 그 자신의 후각을 통해 감지(感知)하여 “오늘은 말복(末伏)이다./한낮 더위는 폭염 수준이지만,/아침저녁에 불어오는 바람은/한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 아니다. (가을 냄새가)”라도 그렇거니와 ‘호르무즈해협 미국령 편입 선언 언급에 고관세 부과로 자국 이익 증대다.’라는 “첩보에 의한 미 공군 1호기 탑승 회피/(기자와 일부 수행원은 1호기 탑승)/미•이란 전쟁 휴전협정 낙관에 이란은 거짓 주장이다. (막가파 首長)”에서 다소 역설적(逆說的)이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모한 미국 도날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사회현상을 질타한 그 자긍심은 결코 외면하고 지나칠 수 없다. 그렇다. 불확실한 시간대에도 기억할 것은 질서의 무너짐과 으깨어진 도덕성에서 비롯된 불감증(不感症)이다. 이 같은 정황에서 '분노, 시기심, 울부짖음, 예정된 이별 등'이 개인적인 그림자의 투사(投射)로 일어나는 제 현상을, ‘삶의 갈림길마다 지혜를 차곡차곡 쌓고 싶은 충동감’으로 모처럼 그 자신에게 있어 삶의 경계는 엄숙할 것이다. 모처럼 갈매기는 파도의 품에 안겨 시린 계절을 건너가는 현상에서도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미끄러짐의 접근을 끊임없이 반복하듯 긴장 뒤의 안도감 안겨주는 시적 특이성은 독자의 지대한 관심사임에 틀림이 없다.
결론적으로 정대요 시인이 삶의 일상에서 적절한 조화와 여유로움 뒤 빚어낸 치밀한 시적 구도 처리는 테제(These)의 엄밀성과 상승효과를 불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까닭에 그 자신의 정신적 집산물(集散物)인 시집의 간행은, 시적 주제의 통일성이 동시대 충직한 독자에게 시적 의미의 파악을 쉽게 해명하는 효용성을 지닌다. 모쪼록 그 자신의 시편에 관한 분할․통합에서 비교적 시의 본말인 서정시에 충실한 따뜻한 감성의 시 인식은 엄격한 존재감의 일깨움으로 갈등의 대립 구도를 풀어줄 시 심리의 현상은 지극히 충직한 삶을 반추하는 생명 외경의 엄숙성은 끝내 확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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