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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흐바토르 가는 길.
이틀 뒤 우리 일행은 아침 여덟시 타미라가 가지고 온 차를 타고 수흐바토르를 향해서 출발했어요. 이번 여행은 장모님과 아내의 사촌 언니인 어용도 함께 하기로 했어요. 장모님은 남편의 고향이고 어용 누님은 자신의 친 형제들이 있는 도시에요. 오랜만의 고향 방문에 우리 가족보다 어용 누님과 장모님이 더 신이 났어요.
여기서 잠깐 몽골의 도시에 대해 설명하자면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고 수흐바토르는 도끼 영웅이라는 뜻이에요.
담디니 수흐바토르는 1893년 2월 2일 출생해서 1923년 2월 22일까지 짧은 생애를 마치고 간 몽골의 독립 영웅이에요. 1921년 붉은 혁명으로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꿨지만 2년 뒤 반대파에 의해 독살 당한 비운의 정치가이기도 해요.
수흐바토르는 몽골 국민들에게 있어서 징기츠칸을 포함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존경받는 정치가에요. 몽골은 200년 넘게 만주(여기서 만주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중국을 말하는 건지? 여진족을 말하는 건지 - 아내의 말에 의하면 중국이 아니라 만주 족이라고 해요)의 지배를 받았어요. 1911년 독립 후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었고 도시 이름을 몽골식으로 바꾸었는데 수흐바토르라는 도시도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거예요.
역사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지금부터는 기나긴 여정을 이야기 하기로 해요.
아르항가이를 다녀 온 뒤 여행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느긋하게 즐기면서 가기로 했어요.
역시나 허허 벌판을 달려요. 열심히 달려요. 몽골의 초원이 정말 희한한 건 그 넓은 초원에 단 한 그루의 나무도 없다는 거예요. 100km를 넘게 달려도 오로지 풀 뿐이에요. 화장실 따위는 필요 없어요. 아무데서나 차를 세우고... 더는 말 안 할래요.
한참을 달리다 보니 우측 도로에 관광버스 몇 대가 서 있어요. 궁금중에 차를 세우고 기웃거려 봐요.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 사진을 찍는 장사꾼이에요.
낙타를 태우고 길들여진 매를 팔에 올리고 사진을 찍는 거예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요. 아내가 권유하는 바람에 저도 매와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언어가 들려와요. 그래요. 한국 관광객들이에요. 그치만 저는 모른척 해요. 저는 관광이 아닌 친척 방문차 몽골에 온 거예요. 당연히 단체 관광을 온 그들과 섞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유럽인들과 러시아 관광객들도 함께 몰려 있어요. 그러나 관광객들보다 월등히 많은 건 파리 떼에요. 낙타와 당나귀가 움직일때마다 엄청난 수의 파리 떼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요.
순서를 기다려서 매와 함께 사진을 찍고 낙타타기 체험을 했어요. 낙타의 등에 올라타니 생각보다 높아요. 하늘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아요.
낙타가 움직이자 좌우로 요동치는데 반동이 장난이 아니에요. 낙타의 고삐를 쥔 소년은 이제 겨우 서너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타를 끌고 잘도 돌아다녀요. 한국 같았으면 아동학대죄로 신고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 몽골은 집안의 모든 일을 가족 단위로 협동해요.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말을 타는, 타야만 하는 민족이에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험난한 목축업을 유지할 수 없어요.
낙타를 타는데 5천 투그룩, 매를 팔에 얹고 사진을 찍는데도 5천 투구룩 활쏘기 경험도 5천 투구룩이에요. 5천 투구룩은 한화로 대략 2300원 정도에요.
날레흐에서 낙타 타기 체험을 마치고 다시 수흐바토르를 향해 출발 했어요.
해는 이미 중천이에요. 몽골의 남부는 햇볕이 장난이 아니에요.
도로 중간 중간에 호수가 보여요. 호수를 향해 달리다보면 어느샌가 호수는 사라지고 아스팔트 길이 보여요.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신기루에요.
책으로 읽던 신기루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신기루라는 말처럼 정말 신기해요.
신기루에 대한 신기함도 잠시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도로는 지루함의 절정이에요.
아내는 십 몇 년 만에 만난 사촌 동생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아들과 나는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아재개그 게임을 즐겨요.
어차피 바깥 풍경은 말, 풀, 양, 말, 풀, 양, 말, 풀, 양...가끔가다 낙타 그뿐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는?”
“정답, 태평양!”
“세상에서 가장 큰 코는?”
“정답, 맥시코!”
정말 유치하지만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우리 부자는 아재개그 게임 700 문제를 거뜬히 풀어내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 주었어요.
아재개그 게임을 다 풀었어도 아직 반도 못 왔어요.
저 멀리 징키츠칸 기념관이 보여요. 천징볼떡에 있는 이 기념관은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에요.
몽골의 피가 흐르는 아내의 자랑은 징기츠칸이에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당연히 아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우리 가족들은 칭기츠칸 기념관을 구경하기로 하고 차를 세웠어요.
아! 역시나 이곳에도 관광객들이 넘쳐나요.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었는지 정말 신기해요. 그리고 여기 화장실은 수세식이에요. 손도 씻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수 있어요. 더욱이 100투구룩을 내지 않는 공짜라서 더 좋아요. 주변에선 말타키 체험도 할 수 있고 활쏘기 경험도 할수 있지만 이미 낙타를 타본 저로서는 별로 흥미가 당기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말타기 체험과 활쏘기 체험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들을 뒤로 하고 징기츠칸 기념관에 들어가 아들과 아내 나 셋의 입장권을 끊었어요. 장모님과 어용 누님 그리고 타미라는 기념관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쉬기로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요.
어린이는 5천 투구룩 내국인 성인 2만 투구룩 외국인 성인은 3만 투구룩이에요.
앞에 서 있던 몽골 아줌마가 표 판매원에게 사정없이 지적질을 하고 있어요. 아내의 통역에 따르면 대충 이런 거예요.
“왜 내국인과 외국인의 가격표가 다르냐? 외국인은 눈이 네 개냐? 그렇게 차별할 거면 올라오는 계단이나 제대로 수리해서 불편함이 없게 하던가. 당신들보다 내가 외국인들 보기 더 부끄럽다. 이런데서 어떻게 구경하냐?”
그렇게 삿대질을 하던 아주머니는 씩씩대면서 표도 끊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 버렸어요. 사실 계단이 무너져서 올라오는 데 불편함을 겪긴 했어요.
표를 끊는 아내의 차례가 돌아오자 아내는 내국인 성인 두장과 어린이 표 한 장을 끊었어요. 표를 끊기 전 외국인인 거 들키지 않게 함구하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아들과 나는 벙어리처럼 입을 꽉 닫고 있었어요. 하지만 입을 다문다고 외국인이라는 걸 모를 리 만무해요.
저 또한 몽골 인들과 교류가 잦다보니 얼굴만 봐도 단번에 ‘아! 당신은 몽골 사람이군요.’ 라고 할 정도로 바로 알아 볼 수 있으니까요.
개표원이 외국인 아니냐고 아내에게 따지듯 묻자 아내가 큰 소리로 대답해요.
“몽골 사람이랑 결혼했으니까 몽골 사람이죠.”
아내의 기백에 눌린 개표원은 단 한마디의 대꾸도 못하고 우리 가족을 들여보냈어요.
안에 들어가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엄청나게 큰 신발이에요.
뭐 저금통 같은 곳이에요. 유럽식으로 말하면 분수대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이 신발 꼭대기에 돈을 던지고 신발 입구에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나 뭐라나~
건물이 꽤 높은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엔 엄청나게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로 인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로 했어요.
꼭대기까지는 대략 한국 빌라의 4층 정도의 높이에요. 원통형으로 된 좁은 계단을 돌고돌아 5층 전망대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었어요. 높은 건물도 없고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몽골의 초원에서 이 정도의 높이는 굉장한 거예요. 광활한 초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여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내려오려는 아! 이런 제 다리에 쥐가 나고 말았어요.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아마도 갑자기 계단을 오르다 보니 탈이 났나 봐요. 한쪽 다리를 붙들고 절뚝이며 겨우겨우 계단을 내려왔어요.
게단을 내려와서 지하실에 들어가니 몽골 게르의 역사를 하눈에 불수 있게끔 모형을 만들어 놨어요. 실물 크기로 만들어졌지만 만질 수는 없고 눈으로만 볼 수 있어요.
선사 시대의 게르부터 현대식 게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변화와 몽골 전성기 시대 왕의 역사가 몽골어로 기록되어 있어요.
가장 신기 한 것은 게르 안에 양을 키우고 있다는 거에요. 게르라는 말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집이라는 뜻이에요.
다만 몽골의 게르는 목축업이 중심이기 때문에 조립식이고 텐트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하루면 조립이 완성되니 집 한 채 짓는데 하루면 충분한 거예요.
징기츠칸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다시 수흐바토르를 향해 줄발했어요.
힌티 아이막(아이막은 시라는 뜻이에요) 쳉케르(파랑) 만달 쏨(쏨은 리 라는 뜻이에요)에서 점심을 먹었어요. 기름진 몽골 음식을 먹지 못하는 아들과 나는 한국 음식과 가장 비슷한 볼라쉬 (소고기 찜)을 먹었어요.
음~ 맛은 조금 많이 짜고 대략 소고기 육포 맛이 나요. 몽골 음식 대부분이 엄청나게 짜요. 한국 음식 국물이 세계적으로 짜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몽골 음식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해요.
시내임에도 불구하고 지천에 소들이 널려 있어요. 고삐도 코뚜레도 없는 소들은 마을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돌아다녀요.
수세식 화장실이 있어서 100투구룩을 내고 아들과 둘이 사용했어요.
다시 수흐바토르를 향해 출발~
강도 구경하고 초원에서 응가도 하고 열심히 달리다보니 저녁 아홉 시, 어느덧 수흐바토르에 도착 했어요.
수흐바토르에 대해서는 특별히 쓸 말이 없어요. 그냥 여느 시골 도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대락 읍 소재지 정도라고나 할까요.
수흐바토르에 도착하고 보니 13 시간의 여행에 지친 우리 일행은 넋다운이 됐어요.
지칠대로 지친 우리 일행에게 아내의 사촌 오빠는 끊임없이 술을 권해요. 40도 짜리 보드카인데 은잔에 가득 따라 준 보드카를 하나도 남김없이 벌컥벌컥 들이켜요.
은잔의 크기는 우리의 막걸리 잔 정도의 크기에요.
제가 단숨에 잔을 비우자 처남은 다시 잔을 가득 채우고 잔을 다시 받아 든 저는 또 잔을 말끔히 비우고 두잔, 세잔, 저는 정신이 점점 몽롱해 지기 시작해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아내가 보드카를 마시고 정신이 몽롱해진 저를 보고 기겁을 해요. 그래요. 저는 몰랐어요. 진정 몰랐어요.
몽골의 풍습은 손님이 오면 보드카를 은잔에 따라주고 은잔을 받은 손님은 입가심으로 한모금만 마시고 다른이에게 권하는 것이었어요. 그걸 몰랐던 저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주는 족족 퍼 마셔댔던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눈 떠 보니 아침이더라고요.
4. 옹공 쏨 가는 길
아침에 일어나 쓰린 속을 달래는데 우리의 아내님께서 시골에 있는 사촌 동생 집에 가서 이틀을 묵고 온다고 여행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려요.
아들과 나는 아내의 말에 묵묵히 여행 준비를 마쳐요. 여행 준비는 짚차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거예요.
신이 난 어용 누님과 장모님은 우산, 모자 ,등산 가방 이것저것 참 많이도 챙겨요.
수흐바토르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옹공 쏨 까지는 160km에요.
지금까지 다녔던 500km 600km에 비하면 정말 가까운 거리에요. 정말 그럴까요?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음이에요. 160km 전 구간이 완전한 비포장 도로에요.
생각해 보세요.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데 완전한 비포장 도로 그것도 비온 뒤라 곳곳이 끊긴 짚차가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 사막의 랠리에요.
오후 열두 시 경 점심을 먹고 옹공 쏨을 향해 출발 했어요. 이번엔 타미라가 아닌 아내의 사촌오빠 막내 아들인 네네가 운전대를 잡았어요. 차는 일본산 짚차에요.
앞에 아내가 타고 뒷좌석에 장모님과 어용 누님 그리고 나 화물칸에 아들과 여자 조카 나모나 남자 조카 나착 얌이 탔어요.
짚차가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비포장 도로에 진입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이건 진짜 장난이 아니에요.
망망대해에 작은 나룻배 하나가 떠 있어요. 바람이 거세 파도가 심해요. 나룻배는 파도에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 밀리면서 좌우로 위태롭게 흔들려요.
지금 우리가 탄 차가 딱 그 모양새에요.
차가 어찌나 좌우로 요동치는지 저절로 비명이 터져요.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여전히 말, 풀, 양, 말, 풀, 양, 말, 풀, 양.... 가끔가다 낙타에요. 포장 도로 건 비포장 도로 건 말과 양들이 도로를 점령하는 것 또한 여전해요. 곳곳에 길이 끊겨 있어서 길을 벗어나 초원을 달리다 다시 도로에 합류하는 게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물론 비켜주지 않는 양떼들 때문에도 도로를 몇 번이나 벗어나야 했어요. 한참을 광야를 달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초원 어딘가에서 길을 잃으면 이틀을 못견디게 죽겠구나 하는 생각요.
옹공 쏨까지 160km를 달리는 동안에도 마을은 보이지 않아요. 가끔 가다 게르 한 두채가 보일 뿐이에요.
비포장 도로를 달린지 두 시간이 지나자 인내의 한계가 오기 시작해요. 체력이 가장 약한 막내 나모나가 제일 먼저 구토를 하기 시작해요. 아들도 지쳤는지 말이 없어요.
저 또한 어제 먹은 보드카가 자꾸만 기어올라 와요.
네네가 초원 한가운데 차를 세워요. 차가 서자마자 우리 가족들은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져요. 왜 흩어지는 지는 말 안해도 잘 알 거예요.
장모님께서 간식으로 싸 온 사과를 나눠 주지만 먹는 사람은 없어요. 사실 몽골의 과일은 진짜진짜 더럽게 맛이 없어요. 사과도 꼭 스폰지 같아요. 푸석푸석하고 단맛이란고는 1도 없어요.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비포장 도로를 달려요. 정말 끝없이 달려요. 이렇게 요동치다가는 차가 부서질것만 같아요.
다섯 시간을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옹곰 쏨에 도착했어요.
와우! 다섯 시간 만에 처음 보는 마을다운 마을이에요. 슈퍼마켓도 있고 울타리가 쳐진 집도 있어요. 학교도 있고...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면 소재지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최종 목적지가 이 동네가 아니에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요.”
네네가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지만 그딴 말 이제 믿지 않아요. 몽골의 얼마 안됨과 한국의 얼마 안됨은 천양지차에요. 음 그러니까 몽골의 얼마 안됨은 대략 2-30 km 사실 얼마 안 되긴 해요. 600km, 500km에 비하면요. 그런데 그 2-30km가 도로가 아닌, 비포장 도로도 아닌, 길없는 사막의 초원이라는 게 문제에요.
이제 길 따위는 없어요. 옹공 쏨에서 아내의 사촌 동생이 목축업을 하고 있는 마을 까지는 대략 20km 길은 있다가 없다가 가끔 초원의 랠리를...
어쨌든 간에 대략 여섯 시간만에 아내의 사촌 동생이 있는 옹공 쏨 방목장에 도착했어요.
아들과 차에서 내리자 마자 녹초가 되어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참 몽골의 해는 정말 길어요. 저녁 8시가 되어야 해가 떨어지고 열시가 되어야 어두워져요.
한참을 쉬고 난 후에 게르 주변을 불러보니 우리 안에 양떼가 가득 갇혀 있어요. 몇마린 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략 2-3백 마리는 되어 보여요. 아내의 사촌 형제들이 키우는 가축은 양이 대략 6천마리 소가 2백 여마리 말이 백여 마리에요. 숫자를 세어 놓으면 어디선가 몇 마리의 소와 양이 새끼를 낳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세는 건 불가능하다고 해요.
아내의 사촌 동생과 조카들이 우리 안에서 양을 한쪽으로 몰아붙이고 있어요. 둥그런 우리 안에 갇혀 도망갈 곳이 없는 양떼들은 겁에 질려 우리 안을 뱅글뱅글 돌아요. 마치 양떼로 만들어진 소용돌이 같아요. 양떼들이 움직일때마다 노란 흙먼지가 피어올라요.
아내에게 무엇 하느냐고 물으니 내년에 새끼를 가질 양과 올해 새끼를 낳은 양을 구분하는 거라고 해요. 쉽게 설명하자면 올해 난 새끼 양과 어미를 떼어놓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강제로 젖을 떼게 하는 거예요.
양떼들이 우리를 한바퀴 돌때마다 사촌 오빠와 조카 얌바타르의 손에 붙들린 양과 염소가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요.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양과 염소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저 멀리 무리를 이루고 있는 양떼를 향해 달려가요.
한 파트의 작업이 끝나자 큰 조카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양을 몰아 우리에 집어넣어요.
먼저 분류 작업이 끝난 양떼와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양이 탈출하는 걸 막아야 해요. 얌 바타르를 비롯한 조카 넷이서 양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팔을 벌리고 막고 있어요. 아들과 나도 이 일에 동참했어요.
겁에 질린 양들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밖을 맴돌아요. 그 와중에 양 몇 마리가 과감히 탈출을 시도해요.
정말 놀라운 것은 양의 점프력이에요. 제자리에서 껑충 뛰어올라 아들의 키를 훌쩍 뛰어넘고 먼저 무리를 이룬 양떼를 향해 냅다 달려요. 점프력이 대충 봐도 2.5m는 되어보여요. 그러니까 제 몸의 다섯 배를 훌쩍 뛰어 넘은 거예요.
풀밭을 달리는 양의 속도도 장난이 아니에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들의 달리기 실력이에요.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양을 따라 잡아서 우리 안에 몰아넣은 거예요.
우리의 조카들, 아들의 달리기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엄지 척을 해요. 사실 아들은 포천시 육상 선수에요.
양들의 분류 작업은 해가 질때까지도 계속 되었어요. 열네살 조카 얌바타르와 열 여섯 살 조카는 하루 종일 말 위에서 내려오지 않아요. 저도 말을 타보고 싶긴 했지만 그만 두웠어요. 왜 그랬냐고요? 그니까... 그니까... 그게... 다 알면서 뭘 물어요.
그래요, 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왜요?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가라앉고 있어요. 그나마 조금은 더위가 누그러졌어요.
이제 소 젖을 짤 시간이에요. 이 목장에 도착할 때부터 어미 소들이 울타리 주변을 돌면서 끊임없이 울어댔어요. 해석하자면 이런 거예요.
“내 새끼 어딨니? 내 새끼 두고 나는 못 간다. 절대 못 간다. 내 새끼 놔두고 풀이 목구멍에 들어가겄냐?”
송아지 몇 마리가 울타리에 묶여 있어요. 송아지 또한 어미소를 향해 끊임 없이 울어대고 있어요. 또 해석해 보자면
“나 버리고 가지 마, 엄마, 엄마, 나 버리고 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송아지를 울타리에 묶어 놓는 건 젖을 쉽게 짜기 위함이에요. 해질녘이 되면 동료들과 풀을 뜯던 어미 소도 제 새끼를 찾아 울타리 주변에 자진해서 들어와요.
그러면 아낙네들은 양동이 하나와 끈을 들고 와서 젖 짤 준비를 해요. 일단 어미 소의 뿔에 끈을 묶어서 울타리 기둥에 묶어요. 어미소 가 움직이지 않게 하는 거예요. 준비가 되면 송아지에게 젖을 물려요. 하루 종일 더위와 배고픔에 지친 송아지는 정신없이 어미젖을 빨아요. 송아지가 정신없이 빨다보면 어미 젖에 거품이 잔뜩 일어나요. 거품이 일면 송아지를 강제로 떼어놓아요.
이제 여자들의 현란한 손 기술을 볼 차례에요. 엄지와 집게로 젖을 말아쥐듯이 압박을 가하면 소젖이 한줄기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요. 사촌 처남 댁의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에요. 금새 양동이를 반이나 채웠어요.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우리의 어용누님도 좀이 쑤시는지 소 젖짜기에 도전했어요. 송아지가 소젖을 잔뜩 부풀려 놓으면 어미소의 뒷다리에 새끼줄을 묶어서 발로 차지 못하게 한 다음 출유 작업을 시작해요. 그러나 우리의 어용 누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요.
어용 누님의 젖짜는 모습을 지켜보던 저 또한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래뵈도 시골 출신에 농업고등학교, 농대 출신이에요.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소 젖짜기 생각 났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포기했어요. 무섭냐고요? 아뇨? 사실 몽골의 소와 양과 말들은 생각보다 온순해요. 타는 말 이외에는 고삐나 코뚜레 목줄 같은 건 없어요. 가축들은 초원 위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는 거예요. 그러면 왜 그만 두었냐고요? 그건 바로 이론과 실지의 차이에요. 괜히 나섰다가 소 뒷발에 채이기라도 하면... 그니까 무서운 거 아니냐고요? 마... 맞아요. 흑흑 또 들켰어요.
현란한 솜씨로 소 젖을 짜는 아내의 올캐 잉케 세흥이에요.
옛 영광을 꿈꾸는 어용 누님 그러나 젖 짜는 게 맘처럼 쉽지 않아요.
사촌 처형이 소 세 마리를 돌며 양동이를 가득 채울 동안 우리의 어용 누님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짜고 포기했어요. 지난 날 현란했던 기술이 세월 앞에 녹 슬었나 봐요. 소젖 짜기가 끝나면 그때야 송아지가 어미 젖을 빨 수 있어요.
바로 짜낸 소젖은 불순물이 아주 많아요. 먼지와 벌레와 소 털과....
열여섯 여자 조카 애가 채를 가지고 와서 젖의 불순물을 걸러내요. 불순물을 걸러낸 소 젖을 큰 솥에 담아서 끓이기 시작해요.
나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 초원 사막의 연료는 말린 소똥이에요. 게르 한쪽에 화덕이 있고 화덕 위에는 커다란 통이 있어요. 방금 짜낸 소젖을 통에 가득 붓고 끓이기 시작해요. 젖이 끓기 시작하자 소젖이 눌러붙지 않게 나무 막대로 끊임없이 저어줘야 해요. 이 와중에 여러 가지 부산물이 생겨요. 젖이 끓면서 올라온 증류수는 술이 되요. 도수를 어떻게 조절하는 지 잘 모르겠는데 아르항가이에서 마셨던 소주는 도수가 거의 없는 물이었는데 여기 수흐바토르의 소주는 45도가 넘는 독한 소주에요.
이 소주를 한 잔만 들이켜면 착하디 착한 태영이가 입에서 불을 뿜는 용가리로 변신하는 놀라운 광경을 볼수 있어요.
소젖이 끓어 넘쳐 옆으로 흘러 나오는 기름 덩어리는 오름이에요. 치즈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만 솔직히 치즈보다 맛이 없고 느끼해요. 몽골 시골에 가면 무조건 권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술, 둘째가 오름, 셋째가 아롤이에요. 물론 자리에 앉자마자 권하는 건 수테채에요. 수테채는 우유에 소금과 찻잎을 넣고 끓인 차에요. 우유를 먹지 못하는 저는 수테 채를 못 먹어요. 우유 맛에 짜기만 해서 제 입맛에는 영 맞질 않아요.
젖이 끓으면 우유로 마실 양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아롤을 만들어요. 아롤이란 우유로 만든 과자인데 약간 달면서 시큼한 맛이 나요. 소젖의 수분이 거의 빠져나가고 걸죽해지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아롤을 만들어요. 이렇게 만든 아롤은 게르 지붕이나 탁자 같은 곳에 널어서 말려요.
게르의 한쪽에는 꾸떡꾸덕한 양고기가 걸려 있어요.
먹고 남은 양고기를 게르 안에서 말리는 건데 양으로 만든 육포에요. 저는 육포를 매우 매우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이 게르 안에 걸려 있는 육포는 별로 땡기지 않아요.
사촌 처형잉케는 우리 일행이 이 게르에 도착한 이후부터 단 1초도 쉬지않고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어요. 모르긴 몰라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거예요.
왜냐면 이곳 목장은 완벽한 원시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고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의 흔적은 자동차와 조카 손에 들려 있는 주머니 칼이에요.
몽골의 초원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어둠이 내리자마자 한낮의 더위는 사라지고 추위가 몰려와요. 반팔 티만으로는 차가운 밤공기를 견딜 수 없어요.
한여름인데 일교차가 무려 20도 이상 차이가 나요. 아내가 건네준 외투를 걸치고 조카와 네네가 양을 잡는 걸 구경해요.
역시나 이 곳에서도 귀한 손님이 왔다고 아낌없이 양을 잡아요. 아직 양 잡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열 여섯 살 조카는 양의 숨통을 끊는 것이 조금은 어설퍼요. 아르항가이에서는 20초 만에 죽던 양이 이곳에서는 3분이 지나서야 양의 숨이 끊어졌어요. 양이 죽자 양의 고기와 뼈를 추리는 작업을 해요. 도구 같은 건 없어요. 조카 손에 들린 작은 주머니 칼이 전부에요. 전기가 없어서 자동차 밧데리로 등을 켰는데 등불을 보고 날아 온 벌레 떼로 인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에요.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양의 해체 작업이 끝났어요. 양 가죽은 잘 벗겨서 풀밭에 널어서 말려요. 처남의 아내가 양을 삶고 요리를 시작해요. 밤 열시가 되어서야 삶은 양고기를 먹을 수 있었어요. 갓잡은 양고기는 생각보다 질겨요.
양고기와 함께 보드카를 마셔요.
어느덧 몽골의 밤이 깊어가요.
아직 이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터라 이곳 게르는 비좁아요. 목축업을 하는 사촌형제들은 여름이면 이사를 몇 번 해야 해요. 유목민의 특징이에요.
마침 오늘이 이사한 첫날이라 가족이 거주하는 대형 텐트는 아직 이동하지 못하고 주방용 게르만 이사한 거예요. 덕분에 우리 가족은 잘 곳이 없어서 좁디 좁은 짚차 트렁크에서 자기로 했어요.
저녁 11시 몽골의 밤하늘에 별이 가득 찼어요. 북두칠성 오리온 자리 전갈 자리등등... 셀수 없는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떠 있어요. 하룻밤 저녁에 아들과 나는 유성도 보는 행운을 얻었어요.
쏟아지는 별빛도 잠시 추위를 견디지 못한 아내와 나와 아들은 짚차 트렁크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해요. 짚차 트렁크에서 하룻밤은 정말 최악이에요.
5. 정의 사도 어용 에그치(에그치는 누님이라는 뜻)
고비 사막 부근에 위치한 옹공 쏨 초원 한낮의 햇볕은 장난이 아니에요. 울타리에 묶여 있는 송아지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요.
사람도 가축도 이 강렬한 태양 볕은 피할 길이 없어요. 낮 기온의 온도는 대략 32도 정도지만 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에요. 그늘 진 게르 안에 들어간다 한다 해도 더위는 마찬가지에요.
더위에 지친 나모나가 제 손을 잡고 뛰어요.
“설렁스 우어 테르 수드레 베가 텐드 여이, 호르땅..”
(한국 할아버지, 저기 그늘 있어요. 저기로 가요.)
나모나가 그늘이 있다고 가리킨 곳은 흘러가는 구름이 만들어 놓은 그늘이에요. 구름 그림자를 향해서 나모나와 함께 뛰어요. 그림자에 들어서니 아! 인제 정말 살 것 같아요.
“한국 할아버지 이제 가자.”
구름 그림자의 시간은 5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나버렸어요.
다시 게르로 돌아온 아들과 우리 일행을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개처럼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헥헥 거려요. 더위를 이기지 못한 막내 여자 조카는 옷을 홀딱 벗었어요. 막내 조카는 사촌 언니를 조르고 졸라서 물이 담긴 커다란 양동이에 들어가서 앉아 있어요. 5일 전 아르항가이만 해도 영상 11도라 추워서 두꺼운 가을 옷을 입고 있었는데... 두 지역이 같은 나라인지 같은 한여름이지 의심이 들기 시작해요.
우리 일행이 더위에 지쳐 헥헥대자 보다 못한 장모님과 어용 누님이 게르의 그늘진 곳에 카페트를 깔아주었어요. 아들과 조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늘진 카페트에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아!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그때 어디선가 검은 색 개 한마리가 나타나서 게르 주변을 어슬렁대기 시작해요.
검은색 개의 등에는 엄청난 수의 검은 색 파리 떼가 달라붙어 있어요.
개가 귀찮은 파리떼를 쫓기 위해서 몸을 털 때마다 파리 떼가 날아올라 검은색 구름을 만들어요. 그것도 잠시 다시 개 등 위에 달라 붙는 바람에 개의 등은 파리 떼인지 개 털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요.
몽골 초원의 개는 대부분 양떼를 늑대로부터 지키는 사냥개에요. 당연히 용맹하고 사나울 수밖에 없어요. 아내도 아들과 내게 끊임없이 강조한 말이 목장에 가서 개 조심하라는 거였어요.
막상 개와 대면하고 보니 아내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어요. 어디서 굴러온 개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납작 업드려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네발로 기어와요. 그 모습이 절대적 강자에게 복종하는 약자의 모습 그대로에요.
제가 손짓하며 부르자 이녀석 슬슬 기어오더니
어라! 카페트 그늘진 중앙 최고 좋은 자리에 떡허니 드러눕는 게 아니겠어요.
“잠깐만, 잠깐만, 야 이건 아니잖아. 우리가 주인이고 네가 개잖아.”나와 조카들이 이 건방진 개를 쫗아내기 위해 소리도 질러보고 엉덩이도 때려봤지만 최상의 그늘을 차지한 이녀석 요지부동이에요.
귀를 잡아 당겨서 끌어내려고 해도 이 녀석의 버티기 장난이 아니에요. 졸지에 그늘을 빼앗긴 우리는 개의 눈치를 보며 가장자리로 쫓겨나야 했어요.
이때 게르 문을 열고 나온 우리의 어용 에그치
이 부도덕한 개를 보고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라요. 아 정수리에서 스팀도 나는 것 같아요.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어용 에그치의 손에 들린 건 다름 아닌 장화에요.
“네놈이 감히 우리 사위와 조카들의 그늘을 빼앗아? 각오해랏!”
일갈과 함께 정의의 사도 어용에그치 장화 든 손을 빙빙 돌리더니 검은 색 개를 향해 장화를 날려요.
그렇게 날아간 장화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검은 색 개의 정수리를 정통으로 맞춰요.
이 정도면 다윗이 골리앗에게 던졌다는 돌팔매질에 버금가는 거예요.
장화에 정통으로 쳐맞은 개가 깨갱 소리와 함께 달아나기 시작해요. 우리의 어용에그치 바람보다 빨리 달려서 나머지 장화 한짝을 도망치는 검은 색 개에게 날려요. 허공을 향해 날아간 장화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검은 색 개의 등짝에 꽃혀요.
검은색 개는 정말 뒤도 안돌아보고 냅다 도망쳐요. 도망친 개는 초원 저 멀찍이서 이쪽 눈치를 살피다가 슬금슬금 기어와요.
한번 혼쭐이 난 이 녀석은 게르 주변엔 접근하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차 밑에 들어가서 헥헥 대고 있어요.
개와 어용에그치의 승부는 어용에그치의 한판승으로 끝이 났어요. 그리고 그놈의 검색 개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건 귀찮은 파리떼에요.
이곳 목장에는 파리만 백만 마리쯤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풀밭에는 메뚜기 떼와 셀수 없이 많은 벌레들과 곤충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첫댓글 오메 독수리 말 도 타고 ㅋㅋ 제 글 지우러 왔다가 댓글 달려서 가냥 갈랍니다 ^^ 근데 형 얼굴 진짜 대빵 크다는 ㅋㅋ 사랑합니다........아 말이 아니고 낙타구나 ㅋㅋㅋ 낙타를 괴롭혔구나 형 ㅋㅋ
ㅋㅋㅋ
대한민국에서 내 얼굴이 문천식 다음으로 크다~ 자랑스러운 내 대갈통~ㅋㅋㅋ
몽골엔 말과 낙타만 많은 줄 알았더니 양도 많군요
저는 양보다 질입니다.
전 무조건 양입니다 ㅎㅎ
@우리윤아 저 초등학교때 성적표를 오랫만에 봤더니, 양은 없고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더군요. 우수수수수~~~
모처럼 몽골 여름 풍경을 눈으로 본듯 구경 글 잘 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팔꿈치에 앉은 독수리도 멋지고 낙타도 너무 예뻐요 좋은글 열심히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