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해장국 신 달 자 (1943~ )
한 사내가 근질근질한 등을 숙이고 걸어갑니다 새벽까지 마신 소주가 아직 온몸에 절망을 풍기는 저 사내 욕을 퍼마시고 세상의 원망을 퍼마시고 마누라와 자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퍼마시다가 누구를 향해 화를 내는지 두리번거리다 다시 한잔 드디어 자신의 꿈도 씹지도 못한 채 꿀꺽 넘겨버린 저 사내 으슥으슥 얼음이 박힌 바람이 몰아치는 청진동 길을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걸어가다가 바람처럼 ‘선지해장국’ 집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야릇한 미소를 문지르며 진한 희망 냄새 나는 뜨거운 해장국 한 그릇을 받아 드는데 소의 피, 선지 한 숟가락을 물컹하게 입 안으로 우거지 한 숟가락을 들판같이 벌린 입 안으로 속풀이 해장국을 한 번에 후루룩 꿀꺽 마셔버리는데 그 사내 얼굴빛 한번 시원하게 붉으레 합니다 구겨진 가난도 깡 소주의 뒤틀림도 다 사라지고 속 터지는 외로움도 잠시 풀리는데 아이구 그 선짓국 한 그릇 참 극락 밥이네 어디서 술로 밤을 지샌 것일까 구석진 자리 울음 꽉 깨무는 한 여자도 마지막 국물을 목을 뒤로 젖힌 채 마시다가 마른 눈물을 다시 한번 문지르는데 쓰린 가슴에 곪은 사연들이 술술 사라지는데 여자는 빈 해장국 오지그릇을 부처인 듯 두 손 모으고 해장국 수행 끝을 희디흰 미소로 마무리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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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지국 안 먹어본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저도 무척 좋아하지요
돌아가신 울 엄마랑 여행가다가 어느 음식점에서 사먹던 생각이 납니다
어찌나 좋아하시던지요
속풀이 제일 좋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국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