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판 김 유 선 (1950~2019)
당신이 오신다는 전갈에 마음이 먼저 오색 꽃밭입니다 음양을 맞추고 오미를 갖추어 가장 귀하고 어여쁜 것만 골라 열은 꽉 차니 피하고 과불급이라 행운의 아홉수로 당신을 모십니다 구차한 이야길랑 모란꽃 수놓은 자개로 덮사오니 속살 같은 밀전병 위에 오방색 구름만 얹으셔요 구구하고 절절한 화심花心을 보름달로 쌈 싸드릴게요 『대지』의 소설가 펼벅 여사가 구절판 나전칠기 뚜껑에 놀라고 열어보고 또 넋을 놓았다지요 망가진다고 젓가락 들지 못했다지요 창경궁 옆에 살던 이모는 몸매도 봄볕 같았지만 음식 솜씨 역시나 메구여서 버릴 것 없는 여자라고 했는데 몸 약한 이모부가 혈색 좋은 국악원 선생인 친구를 부르는 날이면 두 볼 바알개져서는 밤새워 자로 잰 듯 채치고 볶는 참기름 냄새로 달빛 언저리를 밤 이슥토록 매끌댔어요 피리 선생 젓가락 들지 못하고 피리만 불었어요 보일 듯 말 듯 했던 화심에 이모가 꽃뚜껑을 덮는 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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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누굴 위해서라기 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단정하게
자기 솜씨를 자기 마음을 보이고 싶은 것이 구절판 이란 생각이 들어요
음식을 보면 함부로 할 수 없는 귀한 정성 앞에 누구나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하지요
구절판 꾸미는 인생처럼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