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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魅惑, 그 감동의 이중적 거리
- 김령숙 시인, 상상력과 담백한 격조格調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모던포엠』주간)
1. 개아個我의 차별성과 따뜻한 감응
모름지기 ‘통 큰 용서와 통섭通涉’을 자신의 삶을 통해 일관되게 지켜낸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대통령의 역설처럼 “몸소 꿈을 실현하지 않으면 불가능 또한 가능한 현실로 전환할 수 없다.” 따라서 삶의 일상에서 모처럼 묶어 간행하는 그 자신의 시집『오월, 당신의 무늬』(성원출판사, 2026)는 그간에 독자와의 눈부신 언약은「매혹魅惑, 그 감동의 이중적 거리 – 김령숙 시인, 상상력과 담백한 격조格調」의 해법으로 못내 다정다감多情多感이다. 그렇다. 시집 평설에 앞서 지면이 허락될 때마다 평자 그 나름으로 오랜 날 ‘우리들의 소중한 삶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때로는 운명적임’을 역설해왔듯 김령숙 시인이 당시 필자가 협회의 회장을 담당한『한겨레문학』지 출신임도 그렇거니와 또 대학원 지도교수로서 사제 간의 관계를 40년 남짓 각별하게 유지하고 있음은 우연일 수 없다.
그 같은 맥락에서 다소 인상 비평적이나「개아個我의 차별성과 따뜻한 감응」이라는 관점에서 대다수의 시편을 심층적으로 분할·통합하려는 평자 그 나름의 어설픈 시적 변명은, 창조적 영혼은 한층 더 미적 형사形似로 격조가 빛나기에 신선한 충격衝擊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자잘한 기억과 시적 상상력의 결합임에 그 자신의 시집의 서문격序文格인 |시인의 말|에서 “길을 걷는다.//길은 같으나/어제의 길이 아니다.//물은 유유히 흐르며/따르라고 한다.//햇살 한 줄기//또,/걷는다.”라는 시적 의미망의 일면에서 더없이 그 자아의 차별성이 빛나는 응축이다. 그렇다. 소소한 삶의 편린片鱗과 자연 친화적인 물상, 그리고 사유에서 파생된 느낌을 시의 종자로 발아發芽시킨 그 자신의 시집은 치밀한 구조로「대관령 산자락과 남대천의 정한情恨 제1부(16편), 동백꽃 그늘 아래, 가문비나무의 제2부(16편), 강릉 커피거리와 칠월의 하얀 밤 제3부(15편), 생멸生滅의 그 아침 제4부(15편)」로 단조로운 호흡에 균제미均齊美의 일체감에 푸른 식물성 언어의 다정다감함이 삶의 감회에 한껏 맞물린 징표일 따름이다.
그렇다. 마치 튀르키예의 혁명 시인 나짐 히크메트 란Nâzım Hikmet Ran이「신과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에 관한 지혜로운 일깨움을 분별하며 ‘주어진 하루가 내 인생의 최초의 날이고 최후의 날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비록 힘겨운 시간대일지라도 또 그 자신이 탯줄 묻은 ‘천년 그 자랑스러운 하슬라何瑟羅’ 강릉江陵태생이라 종종 ‘철마다 첩첩이 색다른 덧치마 두른 백두대간 능선’을 묵언으로 응시하면서 “가슴 저민 것들/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탁 트이며/찰나에 흐르는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에/잔잔히 스며든다(대관령 연가)”라는 그 공감도 다채롭다.
그 같은 맥락에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 자신이라 ‘음력 오월 오일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이며, 2005년 11월 25일에 '유네스코 세계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에 등록된 강릉단오제의 흥겨움을 한껏 시적 질료로 형상화하여 “흥겨운 어울림 한마당 축제/신명 나는 잔치에/강릉 남대천이 들썩들썩//용의 기운이 · 희망이 · 강릉단오제 위상이/솟아라, 단오(천년의 축제, 솟아라 단오!)”의 보기에서도 그렇거니와 아득한 유년의 꿈이 자리한 “내 살던 붉은 양옥집 창문 너머 골목에선/서늘한 ‘딜라일라’가 겨울밤을 울렸었지//정겹게 팔짱 끼는 골목길/바람이 토닥이는 이 길, 예전 그대로라 참 좋다!(옥천동 골목길)”라는 그 감동의 느낌표(!)야말로 또 하나 신선한 감동의 회복임에 틀림이 없다.
어디까지나 “비우고 두 손 모으면/한 송이 연꽃처럼 피어나는 고요/눈 살며시 감으며, 탑 둘레를 돈다(고요 속에 피어나는 마음)”의 보기도 그렇거니와 또 한편 ‘그녀의 이쁜 맘이 노랗게 벙글어지고 있는’ 그 같은 정황에서 강릉태생인 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을 새삼 호명(呼名)하지 않더라도 “한겨울 칼바람에도/물러설 기미 보이지 않던 낯설은 하루하루/거리 두며 함께 하지 못한 응어리가/너의 해맑음에 고요롭다//인연 따라 흘러가는 세월/변하기 마련인 것을/생각에 잠기다, 향기 속에(수선화 옆에서)”야말로 그 맑은 시상과 시적 형상화는 화자話者가 초지일관한 집념의 결과물이다.
그렇다. 홀로 아득한 사유思惟를 합리적으로 통용하되 응축된 긴장감이 미끄러짐의 시학에 견주어 그만의 ‘체취와 육성, 그리고 느낌’에 의한 시적 고뇌를 충직하게 이행시키되 현실의 안주함을 거부하고 “창조자의 이름에 합당한 것, 신과 시인 말고는 없다.”라는 시론에 주의 집중할 일이다. 까닭에 치열한 삶과 직면한 현상에서 ‘시를 쓰려면 최소한 깊은 자기 통찰’의 필요성을 의식할 일이기에 그 시적 작위作爲는 신표현주의를 표방한 화가 안셀롬 파커Anselm Kiefer의 “현실적인 모든 것은 단지 이미지일 뿐이다.”라는 주장과 무관치 아니하다. 까닭에 격동의 삶에서도 그 자신이 지혜로운 잠언인 시적 작업에서 그 처연함도 존재로 반짝이는 생명감의 역동성이다.
2. 시적 추이推移와 생명의 충동감
모름지기 ‘책의 바깥은 없다.’라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상징성은 간접체험을 통하여 사유의 깊이와 이중적 거리로 떠받들고 있기에 그 자신의 시 정신은 지극히 유의미하다. 혹여 인상 비평적인 접근일지라도 예술적인 터치의 대비對備로 자연에의 회귀는 탈진된 영혼에 생명의 소중함을 안겨줄 것이다. 까닭에 평자 그 나름으로 지적하려는 의중은 자연을 연결고리로 그 자신이 푸른 식물성 언어를 즐겨 사용한 연유도 응당 분별할 점이다. 따라서 ‘서서히 안개 꼬리 스러지며 깊숙한 숲의 푸르름이 경전처럼 펼쳐지는’ 현상일지라도 적요寂寥 속에서 “유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발왕산 자락/안개비 맞으며/쭉쭉 하늘 향해 뻗은/가문비나무 숲에 들다(가문비나무숲에서)”에서의 그 일면이나 ‘잔잔한 바다를 흔드는 파고도 몇 겹의 무늬도 별빛을 부수며 밀려 나가는’ 파도의 형태를 시각적 구도로 “바람과 햇살이 넘나들어 바래고 물살이 거세어도 늘 파닥거릴 것 같았는데, 갈바람 지나 초겨울 된바람이 머리를 갈기며 지나가자 서늘하게 내려앉은 한쪽//솔숲 부는 바람 사이로 희끗한 뒤통수가 비대칭으로 가고 있다(뒷모습)”라는 시적 형상화는 못내 매혹적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한 폭의 수채화水彩畵처럼 평생을 고향 산자락을 만보漫步하며 신앙에 의지해 살아가는 그 자신이 인생의 황혼 녘에, 비록 지정학적으로 동해의 연안에 접한 그 자신의 향리鄕里인 강릉은 시편「파도」에서도 그렇거니와 ‘바다향, 솔향, 커피향’의 공간임은 물론 ‘새해엔, 생각에 머물지 말고 행동으로 폐달을 활기차게, 한 발 한 발 흐르는(물 따라)’의 처소라 감동의 느낌표(!) 처리한 인용한 시편「겨울 바다」에서도 충직한 독자에게 큰 울림을 안겨주는 이채로운 모티프motif다.
낮은 울림의 조용함이여//
연이어 밀려와 부서지고 흩어지며/형태를 갖기도 전에 사라지는/허허로움이여//
수많은 발자국의 사연들을/묵묵히 품고 가는 너그러움이여//
장밋빛 노을이 바다에 스며든/농익은 아름다움이여//
흰 침묵의 기억 안으로/출렁이며 다독이는 내밀한 연인이여!//
-「겨울 바다」 전문
그렇다. 그 자신의 시편 중「김치 국물」,「붉은 유혹」,「돌덩어리」같은 다소 역설적逆說的 일면도 접할 것이나 끝내 신선한 충격으로 ‘목련이 밤을 밝힌다 탐스런 송이 송이가’ 시적 이미지의 형상화로 “마른 가지들 움터/싱그런 기운 차오르고/적요 속에/일 년 중 사분의 일이/가버리는 단단한 어둠 속에(삼월 마지막 밤)”서의 보기처럼 그 자신의 존재감은 한층 더 경이롭고 눈부실 따름이다.
차제에 그 자신의 시편 중 산문시 형식으로 지극히 호흡이 긴 예시의 일면에서 ‘강릉바다 바윗돌 투어’랄까? 일단 고증考證에 의한 “강문동 감바위로부터/할미바위와 걸상바위(정주영바위), 경포의 오리바위와 십리바위,/일명 효녀바위인 멍개바위,/용이 되려던 아흔아홉 마리 이무기가 끝내 승천하지 못했다는/전설과 교산 허균 얘기도 전하는 사천 교문암,/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소돌 아들바위,/해달이 와서 즐겨 놀았다는 해달바위,/연꽃이 피어나는 모양이라 연꽃바위,/금강산처럼 웅장하다고 금강산 바위,/두꺼비 형상의 노귀바위,/여보바위, 꼬부랑할미바위, 장수바위(왕바위), 탕건바위, 고래바위,/코끼리바위, 큰불바위, 작은불바위 등등...(강릉 바다 바위 이야기)”에 견주어 시의 본말本末인 순수서정시에 한층 더 충실하되 차별화랄까? 대조적으로 “피멍으로/한 무더기 토해낸/붉디붉은 방백(동백꽃 그늘 아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묵언默言으로 지켜볼 바다.
특히 동시대 시인 중 그 누구보다 애향심과 관심이 지대한 그 자신은 국제적인 문화관광상품인 커피 가이드는 아닐지라도,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안목바다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다가’ 끝내 “혼자, 또는 여럿이/독백을 바다에 뿌리거나/푸르게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모습들//수평선 위에는/늦은 햇빛이 길게 띠를 두르고/커피 거리도 유리창마다/노을이 한 조각씩 물들며 출렁인다 (강릉 커피 거리)”라는 따뜻한 감성에 의한 시적 정감情感은 때로는 신선한 감동을 이같이 안겨줄 따름이다. 그렇다. ‘산 위에 올랐으며 뗏목이 필요 없거늘 어찌해 그대는 뱃사공에게 길을 묻는가?’라는 어느 선사禪師의 설법도 때로는 헤아릴 점이다.
소백산 정기 속에/한 계단씩 오르며//
무엇을 위해/무엇을 버리기 위해...//
“이 세상 내 것이 어디 있나/사용하다 버리고 갈 뿐이다.”//
버리고 갈 인생인데/그러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일깨우는 법어//
옷에 묻은 눈을 털 듯/마음의 먼지도 가벼이 털 수 있다면.../걸음걸음마다, 간절//
-「적멸궁을 오르며」에서
까닭에 정신작업의 종사자인 그 자신의 역동적인 시 세계의 고찰에서 통합적으로 시의 본질규명을 엄격하게 입증하되 견고한 고뇌 없이 차별화된 영역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이 같은 점은 감성의 시학을 이해하는 도움이 될 것임에 ‘정신적으로 창조된 것이 물질보다 한결 생명적임’에 짐짓「개아의 현존성과 우주의 길 찾기」에 잇닿아 그 자신이 처한 정신세계의 토양임은 결단코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이다. 혹여 한 편의 시는 내면 인식의 증상症狀에 기인하기에 사회학·심리학·음악학 등에 비판이론이 주입될 수 있다. 따라서 미학의 발전을 역사 진화와 진리추구의 중요한 인자因子로 비중 있게 논의한 아도르노Adorno, Theodor Wiesengrund는 일찍이 서정시의 죽음을 공언하였듯, 그 자신은 시편을 통해 충직한 독자가 감지할 수는 있도록 일관성 있게 풀어낸 따듯한 감성은 영혼 깊이 잠식되어 못내 이채롭다.
특히 인생의 황혼기에 ‘느림의 미학’으로 삶의 여정을 쪼금은 여유롭게 만보漫步하는 그 자신이 저토록 “태어나 성장해서 청춘으로, 나이 들어가는 삶의 길/나를 돌아보며/금강송 숲속 맑은 공기 속에/명상에 잠긴다//사랑?/부부의 인연이란?//붉은 베고니아*와 함께 온화한 사랑이 푸근하게 감쌌던 하루(노부부 사랑의 정원)”의 보기에서나 한편 그 자신이 아득한 중학교 시절의 은사를 떠올린 한 편의 추모시追慕詩인 “존경하는 선생님/선생님의 그 따스한 미소가 그립습니다//흰 백합꽃 핀 아름다운 세상에 드시어/부디, 영원한 안식을 누리옵소서(고 심재교 선생님을 그리며)”에는 못내 ‘하늘의 언어’인 감사感謝와 묻어 있는 비장감悲壯感이다.
그렇다. 지상에 갈 앉은 낮은 음조로 ‘짙푸르러지는 나날, 서성거림에 오월 햇살이 다독이는 오후’에 읊조린 “달뜨던 장미의 계절이/붉은 꽃으로/무리 지어 피어나며//담장에 어우러진 그 낯빛에서/어설프게 얽힌/나른한 고요가 나비되어 앉는다(어느 오후)”에서 확인되는 시적 정조情調도 경이롭거니와 또 한편 꽃말이 ‘상쾌한 기분’인 금계국을 시적 질료로 삼아 “먹장구름 낀 동굴 같은 이 계절에/노오란 꽃무리로/맘을 쓸어주니/그나마 일순 환해지는 하루//하루하루가 얼룩으로/쏟아지는 비보 속에/비대면, 거리 두기, 무증상 감염/침울한 안개에 앗아가는 자유(금계국 옆에서)”의 일면에서 그 자신의 지극선至極善의 심성은 눈부신 존재감으로 더없이 빛난다. 또 한편 지극히 모성적인 김령숙 시인의 차별성을 지닌 시편은 경이롭게도 ‘천상에는 별, 지상에는 꽃, 그리고 마음에는 시詩’라는 지적과 짐짓 생명적인 꽃은 재생이라는 순환적 이미지로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의 상상력에 의한 식물성의 불이며, 생명의 빛인 까닭에 비교적 그의 시편에 수용된 다양한 꽃의 기능은 계절과 뼐갱일 수 없다. 까닭에 강인한 생명력의 통로로 작용하기에 그 자신의 시편에 폭넓고 다양하게 수용된 ‘비판적, 즉물적, 정의와 지성의 구성적인 특성의 효용성’은 뜻깊다.
차제에 그 자신의 삶에서 자아가 자기성찰에 도달할 즈음, 자아를 통렬하게 괴롭히는 현실의 곤혹을 응시하는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접하게 된다. 그렇다. 한 편의 시는 존재 내면의 증상症狀임에 사회학·심리학·음악학 등에 비판이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따라서 미학의 발전을 역사 진화와 진리추구의 중요 요소로 역설한 아도르노Adorno는 서정시의 죽음을 선언하였나 그 질과는 상이하게도 양적 진화라는 측면에서 지금도 여전히 시의 모태母胎인 서정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서정성은 시의 본질적인 키워드key word로 인간의 내면의식의 심층에서 공명된 삶의 비의秘意를 함축해 왔음은 유념할 점이기에, 한 사람의 충직한 독자인 우리는 그의 시작품에서 허무와 회의懷疑, 방황과 모순, 그리고 그 자신의 삶을 감싼 세계 등 단절과 혼돈의 사슬로 엮어진 세계에 관해 투명한 생명 기호로 노래하고 있음을 파악할 것이다.
특히 양적 진화의 측면에서 순수서정의 시편을 이같이 펼쳐 보이듯 시의 모태인 서정시는 그나마 건재하다. 까닭에 전통적으로 서정성은 인간 의식의 심층 내부에서 공명된 삶의 비의秘意를 응축해왔기에 자아의 개별성을 자극하는 한순간 그 같은 시적 행위는 연민의 대상과 연계성을 지닌다. 따라서 최소한 엄숙한 생명 외경심과 자존감을 지닌 시인은 암울한 삶의 현재성에서 푸른 생명의 언어나 창조적 영혼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시대적 소임을 철저히 수행할 일이다. 그 같은 정황에서 그 자신은 등단 직후부터 엄격하게 시가 태어난 자리를 틈틈이 엿보며 ‘어떤 일, 어떤 풍경, 어떤 생각에서 어떤 시가 만들어지는지?’ 줄곧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꽃은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나지만, 그 향기는 비에 젖지 아니하듯’ 담백한 품격과 빛나는 시 의식을 망각하지 않고 시혼을 버텨왔기에 한층 더 처연悽然하다.
3. 바람의 통로와 시 의미의 순환循環
각론하고 몇 년 전 절찬리에 상영된 영화「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메건 데니즈 폭스Megan Denise Fox가 연기한 매기라는 캐릭터는 한국전쟁Korea War 당시의 정황을 취재한 미국의 종군기자 마가렛 히긴스Marguerite Higgins의 대역이지만, 그녀가 기아와 혹한에 떠는 병사에게 “만약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무엇을 소원하겠느냐?”라는 물음에 “give me tomorrow!”라고 절규하듯 답변했다. 이같이 한 시대를 앞서 숨져간 어제의 그들이 “하루만 더 살았으면…”하던 그 시간의 끝자락에서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 앞에 거부감 없이 자신을 놓아보아야 한다. 까닭에 신 앞에서 살아온 날을 감사하는 심사心事로 일관해야 할 정신작업의 종사자는 ‘최소한 한 시대의 예언적 존재이며, 독창적인 예술가임’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언어의 집을 짓는 시인의 몫’은 끊임없이 지켜낼 일이다.
차제에 존귀한 생명의 외경심이 경시되는 세태에서 비록 불안감에 떨쳐버릴 수 없을지라도, 무엇보다 명백한 것은 비록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도 낡은 자기는 이미 죽고 또 그렇게 해서 한 인간이 태어나기까지의 새로운 것을 점철點綴하는 고뇌의 시간은 때로는 가혹하고 처절하기에 창조적 영혼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특히 날줄과 씨줄이 섬세하게 직조된 모직물의 구도처럼「생멸生滅의 그 아침 제4부」에 해당하는 시편의 평설에 앞서 굳이 밝혀두어야 할 상황 중에 김령숙 시인이 강릉의 전통찻집에서 조심스럽게 시고詩稿를 건네며 ‘교수님, 제4부는 가급적 작품 평을 생략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일순간 낮은 음성엔 눈물이 묻어 있고 또 눈시울은 촉촉이 젖은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불교의「동종선근설同種善根說」에서 최대의 인연은 ‘부부와 사제 간의 연임’은 명백한 관계일 것이나 앞서 사별死別한 생의 반려자에 대한 그 애틋한 정情,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한스러움이 심장을 저며주는 탓이리라. 무엇보다 ‘빛의 모서리에서 잘려나간 숨결’이 한순간 적절하게 단조로운 호흡과 의성어를 기교적으로 처리하여 “낱낱의 붉은 파편들이/혀끝을 더듬어 웅성웅성//얇게 저민 고요가/침묵을 올려놓는다. (입술)”라는 발상의 전환도 한층 놀랍거니와 문득 이채롭게도 ‘안개에 묻혀 있던 산이 가까이 다가왔다’라는 시 인식은 그 감회感懷와의 맞물림이다. 까닭에 삶의 일상에서 “스치며 흔들린다//무지無知와 무상,//초침은 팽팽히 서두르는데? (물음표)”라는 그 물음표 앞에서 알맞은 연계음連繫音의 수식으로 ‘꼬리에 꼬리가 물리며 하얗게 밤이 피어나고 있는’ 정황도 그렇거니와 “흩어졌다 모였다 스르르 허물며/오만가지 일렁이다/희끄무레한 먼동 어둠을 떨치려 할 때/아스라이 사라지는 먹구름(어둠의 길)”은 아쉬움 뒤 짧은 휴식休息의 의미망이다.
그렇다. ‘서서히 바다와 하늘이 한 몸 되어 어둠을 끌어당기는’ 그 같은 현상에서 “검푸른 파도/허기의 빈 잔, 사는 게 별거냐/흰 시선으로 파도를 탄다//부질없는 것들, 저 포말처럼(생멸生滅)”에서의 보기나 한결같은 묵언默言의 응시 뒤에 ‘괜찮아, 괜찮아 용기 잃지 말고’라며 그렇게 또 스스로 자위自慰한 끝에 “다 지나가/모든 것은 흘러가//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이 시련 잘 넘기면/더 단단해지고, 잘 될 거야//그러니, 힘 내!(괜찮아)”에서 다시금 입증되듯, 그 자신의 소박한 기대감만큼이나 제4부에 수록된 시편의 일체를 독자의 시 감상 몫으로 시적 여백을 공감케 하는 고뇌와 의미망은 더없이 각별할 따름이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탯줄을 묻은 고향이란 ‘바다가 무릇 생명의 본원本源이듯, 모친의 풀어놓은 젖가슴처럼 항상 안기면 포근함과 넉넉함으로 감싸주는 아득한 유년의 공간이다. 비록 생득의 공간인 고향은 한껏 서정적 양감量感으로, 바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환기喚起시키는 생명적인 원형이며, 각박한 삶의 일상에서 공감하는 고향 회귀回歸의 상징성으로 세상의 고뇌와 갈등도 말끔히 치유하는 모성母性의 동질성이다.
결론적으로 김령숙 시인의 묵시적 항변抗辯처럼 세상의 흐름에 무의식적으로 가볍게 동조하지 말고 부단히 깊은 사유와 ‘전통의 실타래를 다시 꼬며, 출어를 위해 찢어진 그물코를 다시 깁는 치열한 시인의 혼불’을 통해 소통의 도구인 생명의 기호로 미적 주권이 확립된 시 쓰기에도 몰두해야 한다. 모쪼록 2%의 염분이 오염된 바다를 더없이 정화淨化시키듯 끝내 날刃 푸른 강직한 시 정신을 지닌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소외된 타자 간 상처 깊은 영혼을 치유할 시대적 소임은 온전히 수행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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