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1. 7월 초대시조〉
길 위에서
강인순
길을 가다가 잠시 길을 잃어버리고
걸어온 길 돌아보며 허둥대며 길 찾는다
세상사 눈먼 사내는 푸념만 늘어놓고
길들라, 풍진風塵 세상 몇 번씩 꼬드기지만
지상의 모든 길은 그리 만만치 않아
이승의 길모퉁이서 짐 지고 선 오늘이다
강인순
경북 안동 출생. 1985년 《시조문학》 현상공모 장원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초록시편』 『생수에 관한 명상』 『그랬었지』 『사진 한 장』 등.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프롤로그를 ‘길’에서 시작했다. 모든 인간 삶의 프롤로그일 것이며, 모든 인간 삶의 에필로그일 것이다.
길은 곧 삶이요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삶이라는 길, 길이라는 삶이 주어졌지만 그것은 저마다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 하여 길은 철저히 홀로이기를 요구하며 절대고독이라는 숙명을 얹어 주었다.
시인은 말한다. “길을 가다가 잠시 길을 잃어버리고/걸어온 길 돌아보며 허둥대며 길 찾는다”고. 어디 “세상사 눈먼 사내”만 그러한가. 삶이라는 도저한 길을 가는 자, 누구라서 잠시 길을 잃지 않겠는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겠는가.
첫째 수에서 길로 상징되는 삶이라는 노정의 미망과 미혹을 “눈먼 사내”를 내세워 타자화했다면, 둘째 수에서는 내면화된 시적 자아가 “지상의 모든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고 단정하며 삶을 실존의 무게로 구체화하고 있다. 감정의 무리한 과잉이나 과장 없는 담담한 진술이 주는 공감의 여운이 길다.
가야 할 길, 앞에 놓인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떤 풍진(風塵)이 걸음을 더디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혼자서 내디딘 프롤로그처럼 그 에필로그 역시 철저히 ‘혼자’일 것일 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길은 만만한 낭만의 상징이 아니라 처절한 실존의 상징이다. 또다시, 아니 늘 “이승의 길모퉁이”에서 “짐 지고 선 오늘”이다. 그 짐을 오롯이 홀로 지고 가는 이 길의 장엄함이 아, 왜 이리도 아득하고 쓸쓸한가.
서숙희 시조시인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