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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주 박사의 "성서 건강학, 삼박자 건강"
"건강의 비결은?" .01 "기도냐? 의학이냐?" .03 "보는 마력에 빠지지 말라!" .05
"식생활은 신앙고백이다!" .07 "하루 30분씩이라도 운둥을 하라!" .09
"아침 1시간이 일생을 좌우한다!".11 "효자는 장수한다!" .13 "쓰면 쓸수록 튼튼해진다!" .15
"먹을만한 것을 먹어라!" .17 "좋은 음악은 엔돌핀의 샘이다!" .19
"좋은 가정분위기가 건강을 만든다!" .21 "몸이 가벼워야 멀리 뛴다!" .23
"하나님의 처방, 할례의 비밀!" .25 "자극이 없으면 빨리 늙는다!" .27
"시편 23편은 정신건강의 명약!" .29 "마음을 다스려라!" .31"조급증과 공범의식!" .33 "지적 감동이 건강을 창출한다!" .35 "좋은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 .37
"목욕은 혈관을 젊게한다!" .39 "가을은 건강비축의 계절!" .41
"즐거운 대화는 피로회복제!" .43 "기도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한다!" .45
"불고기의 비밀!" .47 "스트레스의 이해!" .49 "욕구불만의 폐혜!" .51
"치아건강 비결!" .53 "긍정적 사고!" .55 "음향 건강학!" .57
"자유시간과 건강!" .59 "종합검진!" .61 "스트레스 건강학!" .63
"올바른 육류섭취" .65 "가정 건강학!" .67 "건강과 운동의 관계" .69
"자기절제의 미학" .71 "섬유질 건강학" .73 "정신신체 의학" .75
02. "예수님의 건강비결은?"04. "좋은 스트레스! 나쁜 스트레스!"
06. "건강은 심은대로 거둔다!" 08. "진리안에서 꿈을 가져라!"
10. "스트레스와는 정면으로 대결하라!" 12. "휴식은 조금씩 자주하라!"
14. "생수를 마셔라! 최고의 보약이다!" 16. "부지런한 자가 아름답다!"
18. "인생열차의 제동장치를 점검하라!" 20. "음식은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한다!"
22. "가정화목이 활력의 샘터!" 24. "자신에 맞게 꾸준히 하라!"
26. "아침 식사는 반드시 하라! 28. "건강은 자신감의 원천이다!"
30. "자연과 더불어 심신의 건강을!" 32. "쾌적한 수면은 건강의 주춧돌!"
34. "에어컨과 여름건강!" 36. "햇빛은 건강의 금가루!"
38. "정직과 절제의 건강학!" 40. "습관성 분노가 수명을 줄인다!"
42. "운동이 성인병을 고친다!" 44. "낮잠으로 피로를 풀어라!"
46. "포옹이 면역성을 높인다!" 48. "식생활 개선법!"
50. "인체의 신비!" 52. "신종 자폐증!" 54. "조깅 건강학!"
56. "효자 장수학!" 58. "올바른 자기 이해!" 60. "수면 건강학!"
62. "건강문화 창조!" 64. "정신신체 의학!" 66. "내면의 상처치유"
68. "한방과 자연의학" 70. "겨울철 건강학" 72. "암과 여성"
74. "김치의 건강학" 76. "잠언의 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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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주 박사의 "성서 건강학"
1. 건강의 비결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애굽기 15:26)
건강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건강은 환경이나 의료의 혜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양식이 건강을 결정한다.(알렌 데버) 무절제한 생활로 불건강의 씨앗을 계속 뿌리면서 건강의 열매를 거두기 원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는 것이다. 최근 예방의학의 학문적 결론은 생활양식을 변화시킴으로서 심장병, 암, 당뇨병, 고혈압등의 성인병을 70-80%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출애굽기 15:26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곧 질병없는 삶이라고 하셨다. 질병없는 삶이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양질의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의 이런 삶을 위하여 포괄적인 건강지침을 주셨는데 이것이 곧 성경말씀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은 자가 새로운 인격과 새삶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이 새삶이 건전한 생활양식을 가져오므로 건강의 회복이 이루어 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건강하려면 생활양식을 수정하라! 건강의 열매를 거두려면 성경말씀대로 사는 건강의 씨앗을 심어라!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면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자신의 삶을 말씀에 비추어 보라!
2. 예수님의 건강 비결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동안 그 엄청난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던 비결은 깊은 기도와 순종의 생활과 철저한 건강 관리에 있었다. 예수님이 무슨 건강관리냐? 하겠지만 예수님 만큼 건강이 필요하신 분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하신 예수님의 건강비결은 무엇이였을까?
예수님은 "보행 건강학"의 대표적인 모델이시다. 공생애 기간동안만도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오가는 천리길 행군을 여러번 하셨다. 걷기는 "경제성"과 "편의성"으로 보아 최고의 운동이며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효과도 큰 운동이다. 더구나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는 걷기가 가장 좋은 운동이다.(걷기를 통한 전도!!)
고개를 들고 입을 다물고 가슴을 펴 힘차게 걸어보라!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고 피곤이 물러갈 것이다. 활기차게 걸으면 혈액순환이 왕성해지고 혈압이 조절되며 신경통의 통증이 감소된다. 몸 전체의 신진대사가 왕성해지고 생동감이 넘치게 될 것이다. 하루 30분씩이라도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자!
그리고 아무리 바뻐도 기도와 휴식을 통한 자기관리에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한적한 곳의 휴식을 통해 신앙과 생의 목표를 점검하라! 나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건강을 열망하라!
3. 기도냐? 의학이냐?
"너희중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
병을 고치려면 의사를 신뢰하는 가운데 처방과 지시대로 순종해야 한다. 같은 병이라도 의사에 대한 "신뢰여부"에 따라 입원기간이 달라지는 것을 종종 본다. 의사를 믿지 못하면 자기 몸을 맡길 수 없다. 의사에게 치료받으려 오는 행위 자체에는 "나의 생명을 위임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의학적 치료의 원리에는 전문가에게 나를 맡기고 온전히 신뢰한다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난치병에 걸렸을 때 크리스챤이면 누구나 "병원이냐, 기도원이냐""금식기도냐, 수술이냐"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이 경우 어떤 선택을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도박일 수밖에 없다. 대개의 경우 그러한 갈등은 치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모든 치료는 하나님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신불신(信不信)을 막론하고 치료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 다만 인간은 치료에 있어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선택될 뿐이다. 의사나 환자(또는 목회자, 기도자까지?:편집자) 모두 겸손하게 치료에 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도를 통하든 금식을 통하든, 의사를 통하든 약을 통하든 궁극적으로 병은 하나님이 고치신다! 정확히 표현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체에게 주신 자연 치유력을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활성화 시켜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기도나 금식 자체를 신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치료에 있어서 본질과 수단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어떤 수단을 선택하든 치료의 근원이신 하나님(출15:26)을 신뢰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물론 수단의 선택도 합리적인 자세로 신중하게 해야 한다. 특히 난치병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리고 치료의 수단을 일단 정했으면 우왕좌왕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기도나 금식으로 병이 낫든 현대의학으로 낫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모든 수단을 통해 역사하시는 광활하신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현대의학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쉽게 완치될 수 있는 초기 유방암을 기도로만 고치겠다고 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쳐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성경말씀 야고보서 5장 14절에 나오는 "기름 바르는 것"은 고대의 보편적인 치료법이다.(이사야 1:6, 누가복음 10:34) 성경은 당시의 현대의학(기름)과 기도를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기도와 현대의학을 병행한다면 치료의 효과가 증폭될 수 밖에 없다. 기도하는 자만이 치료에 병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치료가 은혜임을 알 수 있다. 약을 먹을 때나 수술을 받을 때 모든 치료의 근원이신 하나님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성숙한 크리스챤 문화가 정립되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현이다.
현대의학과 기도의 상승작용을 기대하라! 모든 것이 은혜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은혜를 은헤되게 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신다!!
4. 좋은 스트레스! 나쁜 스트레스!
스트레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요, 다른 하나는 건강에 유익한 스트레스이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라고 하면 "나쁜 스트레스"를 떠 올리게 되나 스트레스의 정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스트레스를 "있어서는 안 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스트레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전9:2)는 성경말씀처럼 크리스천이라고해서 세상사람이 당하는 스트레스에 직면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잇는 크리스천이 많다.
문제는 스트레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태도에 있다. 어떤 꿈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약간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탐험가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혼은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이지만 결혼을 앞둔 연인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말씀대로 사는 크리스천은 세상사람이 평생 직면하고 있는 근원적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크리스천은 죄, 불의, 두려움, 미움, 음행, 방탕등 나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십자가를 통하여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부과하신 "좋은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하다. 예수님이 주신 스트레스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고의 목표에 직결되므로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과정에서 인생 최대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이 스트레스는 또한 무기력한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하고 중단한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는 말씀은 이런 의미에서 진리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나룻배는 바닥짐이 있어야 균형을 유지한다. 트럭은 알맞은 적재량이 있을 때 제대로 스피드를 낼 수 있다. 인간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긴장이 유지되어야 몸이 민첩해지고 신진대사가 원활해진다. 무제한의 자유와 방종과 무사안일은 인간을 타락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죄성을 가진 연약한 인간에게는 좋은 스트레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크리스천의 내적 성숙을 위하여 스트레스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다. 다만 사람에 따라 어떤 종류의, 어떤 강도의 스트레스가 필요한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며,스트레스의 기간까지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만을 주신다. 고전 10:13을 보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조와 생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 개개인의 강점과 취약점을 모두 파악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철저히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스트레스를 없애달라고 간구하기 보다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는 크리스천이 되자!
5. 보는 마력에 빠지지 말라!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시119:36-38)
인간의 뇌와 연결되어 있는 신경 중에 시신경은 유난히 크다. 그만큼 눈은 뇌의 사고 기능과 통합기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의 시야가 가리면 운전을 할 수 없듯이 눈의 피로는 심신의 피로와 직결된다. 눈을 혹사하면 두통과 더불어 만사가 귀찮아지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예수님도 "눈은 몸의 등불"(마6:22)이라고 눈과 몸의 상호관계를 설명하신 적이 있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또한 바라보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눈이 가는 곳에 마음이 따라 다닌다. 이른바 "보는 것"의 마력이다. 이 마력에는 어떠한 강자라도 당할 수 없다.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 죄의 출발점은 선악과를 바라보는 것(창3:6)이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라디오에 비해 TV의 영향력이 큰 이유는 TV시청이 청각과 더불어 시각을 동원한다는 점이다. 라디오 청취의 경우 시각을 자유롭개 해줌으로서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여유가 있는데 비해 TV시청자는 무방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천박한 철학과 조잡한 사상을 강요 당하는 경우가 많다. TV가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적, 지적 욕구퉁족의 수단으로 그 효용성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TV시청은 우리에게 독서와 사고의 기회를 빼앗아가고 불건강한 생활양식을 자연스럽게 전 계층의 문화속에 침투시켜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키는 세뇌 기능이 있다. 또한 불필요한 소비를 자극하고 욕구불만을 조성시켜 상대적 빈곤감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보는 것의 마력"은 국민의 정신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울 미친다. 저질 논쟁으로 양식있는 분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포츠신문이 요란스럽게 컬러로 지면을 장식하는 이유도 "보는 것"의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전쟁은 영적전쟁이며 "영혼 빼앗기 싸움"이다. 많은 대중매체들이 사람의 시각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기업들도 광고에 사운을 걸고 있다. 소용돌이 치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나의 눈을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려있다. 시편기자는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허탄한 것을 바라보면 탐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탐심은 죄의 출발이다. "탐심이 곧 우상숭배"(골3:5)라는 성경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나환자촌인 "애양원"의 환자 중 장님된 나환자 한분의 간증 중에 "시력상실=축복"이라는 공식을 제기한 분이 있다.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면서 눈이 온전한 것의 결과가 "죄"였다면 현재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된 시력상실의 결과가 곧 최고의 축복이 아니겠는가 하고 오히려 눈 뜬자들을 위로하시는 것이다. 이는 영안을 상실한 현대인들이 귀 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가 아닐까? 물론 우리들에게 온전한 눈과 시력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크리스천은 마땅히 시력의 청지기로서 "보는 것"의 마력을 역 이용해야 한다. 단순히 허탄한 것을 피하는 자세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측면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신앙과 인격의 성숙에 유익이 되는 것을 자주 바라봄으로서 죄로부터 자유로운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창조적인 크리스쳔 문화의 형성이 시급하다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게 되고 보는 것을 닮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쳔은 마땅히 주님을 바라봄으로서 주님을 닮아 가야 한다. 우리 시력의 무게 중심을 늘 주님에게 집중하여 최고의 스트레스인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 가도록 하자!
6. 건강도 심은대로 거둔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준엄한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곧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원리이다. 크리스쳔일수록 이 준엄한 원리를 바로 알고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성숙한 크리스쳔의 대표적인 특성 중의 하나는 우연이나 요행을 바란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악은 심지않고 거두겠다는 탐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 중에 오히려 "거룩하신 하니님"을 담보로 도박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성경의 원리 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지 막연한 "확률게임"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얼마전 직장동료 중 한 분이 넌지시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우측 상복부의 묵직한 통증 때문에 고민인데 이 경우 좋은 건강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분은 이미 지방간으로 진단받은바 있었다. 사실 간질환에는 안정과 식이요법이 최고의 치료법이기에 몇가지 권면을 하는 중에 그가 아직도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방간은 난치성 간질환의 효시이다. 그리고 더 이상 술을 용납할 수 없다고 인체가 발하는 최후의 통첩이다. 병을 고치려면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원인을 방치한 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계속 술을 마시면서 지방간을 치료하는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술을 택하든지 지방간을 고치든지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이다. 이른바 "심은대로 거둔다"는 준엄한 성경의 원리는 건강에 있어서도 자명한 진리이다.
많은 사람이 건강의 지혜를 찾고 있으나 사실 건강의 법칙은 매우 단순하다. 자신은 끊임없이 불건강의 씨앗을 심으면서 건강의 열매를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기 기만이다. 건강하려면 건강의 씨앗을 지속적으로 심어야 한다.
대체적으로 건강은 행복과 관련이 있고 불건강은 쾌락과 연관성이 깊다. 건전한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건강한 사람은 행복하지만 쾌락 중심의 삶은 불건강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쾌락에 탐닉하게 된다. 항상 피곤하고 몸이 허약하면 매사가 귀찮아 지고 신앙생활도 무력해 진다. 반면에 몸과 마음이 건강할수록 행복의 지수가 높아지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열망이 생겨나게 된다.
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45세인 성인 남자의 경우 "금연, 절주 운동(주3회, 하루30분)"이라는 세가지의 간단한 건강법을 실천하였을 때 대조군의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11년의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건강의 씨앗을 부지런히 심어 바른 건강 습관을 형성하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이웃을 섬기는 삶에도 건강은 필수적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에는 상승과 하강이 있을 뿐 "중간지대"란 있을 수 없다. 건강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는 결국 "불건강 지대"로 귀착되고 말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자. 진실을 외면하지 말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크리스천은 마땅히 건강의 씨앗을 부지런히 심어야 한다.
7. 식생활은 신앙고백이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딤전4:3-5)
아무리 기도생활에 게으른 사람이라도 크리스천이라면 하루 세 번은 기도하게끔 되어 있다. 대외적으로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한 식사기도가 가장 보편화된 기도의 형태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 인류 최초의 범죄가 "먹는 것"과 직결되어 있음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레위기에서는 식생활에 "제사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고 신,구약에서 공히 금식 자체를 신앙훈련의 높은 단계로 인식하고 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금식으로 시작한 것과 구속의 상징으로 성만찬을 제정하신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해 식생활, 즉 "먹는 것"과 신앙생활은 별개의 행위가 아니다. 물론 식욕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먹는 기쁨은 축복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먹는 것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기를 열망하신다.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인간의 한게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고도로 예민한 경보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즉 식생활의 패턴이 정상적인 사람은 자기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건강한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식사패턴이 불규칙적이고 결식이 잦은 사람은 대개가 생활의 균형을 상실한 사람이다. 즉 삶의 우선 순위가 엉망이라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 주고 있다. 비만이나 체중증가로 고민하는 사람은 자기 절제에 실패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과식이나 탐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평화를 상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가 잘 달리려면 양질의 기름이 필요하듯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영역에서 생동감있게 살려면 조화있는 영양이 필수적이다. 인간은 일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어떤 형태이든 "노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소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식생활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만약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놓는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하지 않고 먹기만하면 뚱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위반한 당연한 대가일 뿐이다.
암에 의한 사망이 모두 제거된다면 인간의 평균 수명이 2년 연장되지만 비만에 관련된 사망이 제거된다면 7년이상 연장된다는 이론이 있을 정도로 비만은 건강의 적이다. 체중이 정상치에서 20% 초과하면 사망율이 30% 증가하고 체중이 35% 이상 증가하면 사망율이 80%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비만이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동맥경화, 담석증, 관절염등 거의 모든 성인병의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유전적인 요인이 아닌 비만의 경우 먼저 자기 관리의 실패를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식생활에 있어서 "무엇을 먹느냐?"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크리스천은 마땅히 영양의 조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먹느냐?"이다. 성경은 음식을 "감사함"으로 받을 것을 명령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음식을 대할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과 경건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성경은 어떤 음식이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복음화된 식생활을 권면하고 있다.(딤전4:4,5)
8. 진리안에서 꿈을 가져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 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성경은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성을 "꿈을 가진 자"로 정의하고 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말씀충만한 사람이며 진리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크리스천은 욕심과 꿈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상황을 불문하고 바른 꿈은 진리와 결부되어 있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91년에는 걸프전쟁으로 온 세계가 시끄러웠다. 크리스천은 전황에 따라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고 감정이 춤추는 것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오히려 오늘날 현실의 여러가지 소용돌이 속에서 성경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에 주목해야 한다. "무릇 지킬만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에서 벗어날 때 세상소식은 나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모든 정치적, 경제적 싸움과 전쟁은 욕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본질적으로 "꿈"과 "욕망"은 정반대이다. 꿈은 "타인 지향적"이지만 욕망은 "자기 중심적"이다.
꿈을 상실한 자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욕망의 노예가 된 사람은 바른 꿈을 가질 수 없다. 성경에도 "꿈이 없는 백성"은 타락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꿈은 충동적인 욕망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통제탑이다. 꿈이 크고 진리의 토양에 뿌리가 깊을수록 통제능력은 상승된다.
꿈의 정의는 "꼭해야 할 일" "꼭 이루어져야 할 일" "꼭 필요한 일"을 해야겠다는 사심없는 열망이다. 꿈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최소한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기껏 자기자신과 가정을 위한 꿈외에 원대한 비젼이 없어져가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명의식이 충만한 사람, 꿈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겨도 불평하지 않는다. 기꺼이 현실과 싸우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희생정신이 강하고 실험정신이 강하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목표가 확고부동하고 소망의 말씀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능력을 공급받는 사람은 풍성한 삶을 누린다.
꿈꾸는 자는 건강하다. 바른 꿈과 분명한 목표는 생활의 추진력과 건강의 원동력이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있는 자는 항상 생동감이 넘친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꿈을 가지고 이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현실에 집착하는 사람보다 저항력이 강하다. 꿈이 있는 사람은 훨씬 행복하며 건강한 생활을 한다."고 하였다.
미국 군인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우는 맥아더 원수가 말한 자신의 건강 비결을 기억해 보자!
"사람은 나이가 먹엇다는 이유로 늙지 않는다. 사람은 꿈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게 하지만 인생에 대한 호기심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살이 생긴다."
계속해서 무기력한 생활을 하는 크리스천은 진리 안에서 자신의 꿈과 인생의 목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꿈을 포기하는 것은 신앙과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고 꿈을 상실하는 것은 건강의 근원을 상실하는 것이다. 진리 안에서 꿈과 환상을 가져라! 건강한 삶은 꿈꾸는 이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꿈,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믿음으로 말미암는 소망을 가져라! 바른 꿈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겠다는 열망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건강을 원하는 크리스천들이여!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섬기며 살려는 바른 꿈을 가지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전하라!
9. 하루 30분씩이라도 운동을 하라!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0,11)
인간은 일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후 주신 첫 번째 명령은 일하라는 명령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근로명령"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부여하신 것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과 마음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활성화시켜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인간 존재의 법칙을 어기고서 건강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으른 사람이 건강한 것을 본적이 있는가? 휴식이라는 것도 열심히 일한 다음에 해야 제 맛이 난다. 무작정 많이 쉰다고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수면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잠이 달고 맛있는 법이다. 이 경우 오히려 짧은 시간에 숙면할 수 있음은 경이로운 현상이다.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은 신체기능이 저하되고 저항력이 약하므로 감기에도 잘 걸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건강하다.
인간은 일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후 주신 첫 번째 명령은 일하라는 명령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근로명령"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부여하신 것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과 마음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활성화시켜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인간 존재의 법칙을 어기고서 건강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으른 사람이 건강한 것을 본적이 있는가? 휴식이라는 것도 열심히 일한 다음에 해야 제 맛이 난다. 무작정 많이 쉰다고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수면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잠이 달고 맛있는 법이다. 이 경우 오히려 짧은 시간에 숙면할 수 있음은 경이로운 현상이다.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은 신체기능이 저하되고 저항력이 약하므로 감기에도 잘 걸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건강하다.
대학시절부터 영적인 충전이 필요할 때는 종종 강원도 예수원에 다녀오곤 하였다. 한국에서는 가장 삭막하고 구석진 땅이라고 할 수 잇는 그곳이 항상 영적 구도자들로 채워진다는 사실은 놀랍기만하다. 예수원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기도하는 것은 노동이요, 노동하는 것은 기도다"라는 표어였다. 물론 이 표어는 기도가 힘든 작업이라는 것과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난 각도를 달리해 보면 기도는 영혼의 활성화이고 노동은 신체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전인 건강의 비결을 담고있는 표어이다. 열심을 다해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이 건강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노동을 통한 육체의 활성화만 있고 영적 활성화를 위한 영적 노동이 없다면 우리의 영혼은 메말라 죽어 갈 것이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병 아닌 병(의사는 아무 병도 없다는데 증상은 계속되는 현상 - 즉 어깨 결림, 요통, 두통, 무기력함, 불면증, 만상 피로 등)은 적, 육적 활동, 운동의 부족으로 인한 육체와 영혼의 쇠퇴병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적, 육체적 근로 명령을 어긴 대가이다. 이 경우 비싼 보약, 보신식품이 소용없다.
건강하려면 과감하게 생활 양식을 바꾸라! 하루 30분씩이라도 영적, 육체적 운동을 하라! 성경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다.
10. 스트레스와 정면으로 대결하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산다는 것은 곧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 흐르듯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직면할 기회가 적으나 꿈이 있고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고 스트레스의 기회도 많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14:4)는 말씀처럼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무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성을 선물로 주셨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하나님의 선물인 지성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또는 우상화하는 양 극단을 달리고 있다. 특히 크리스천의 경우 자신의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맹목적인 기도만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즉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닌 기도 그 자체를 신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을 없애거나 피하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달라"고 구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말이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선물인 지성을 성령 안에서 잘 개발시켜 나가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려면 스트레스와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피하면 피할수록 내면적 고통의 강도가 커진다. "자기합리화"나 "변명"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스트레스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스트레스에 과감하게 직면하는 길만이 극복의 지름길이다.
우선 좋은 스트레스인지 나쁜 스트레스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현실적인 목표는 좋은 스트레스에 속하나 비현실적인 목표는 나쁜 스트레스에 속한다. 나쁜 스트레스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나쁜 스트레스는 대개 이기심이나 탐욕에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성취하려는 욕심은 목표 달성도 어렵거니와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허다하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일을 추진하다 보면 일의 묘미를 알게 되어 재미도 있고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세상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을 몰아 붙인다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니다. 일의 핵심을 바르게 이해하고 정상적인 단계를 거쳐 꾸준하게 하는 것이 일의 성취도 견고하거니와 심신의 건간에도 좋다. 몰아 붙이는 사람(A형 성격)은 합리적인 사람(B형 성격)에 비해 심장병의 발생률이 현저하게 높다는 것이 최근 예방의학의 결론이다.
스트레스와 정면대결을 하다보면 역부족으로 몰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대처방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충분한 수면이나 적절한 휴식, 좋아하는 운동, 음악감상, 목욕등이 스트레스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
특히 목욕요법 중 온냉교대법은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지속시간도 매우 길다. 그리고 이웃에게 문제를 숨기지 말고 같이 의논, 상담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축적된 지혜를 빌리는 일에 주저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종종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 "계획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내일 일어 날 일에 대하여 "예방조처를 취하는 것"(잠21:31)은 염려를 줄이는 현명한 길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염려 중 8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라는 보고가 있듯 인간의 걱정거리는 허황된 것이 많다. 이러한 염려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일을 피하고 게을리 할수록 증폭되고 커지는 법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현재"라는 고통의 상황을 회피하지 말라. 그날의 책임에 따르는 괴로움과 고통은 그날로 마감되어야 한다. 그날의 스트레스는 그날로 처리되어야 한다.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의 결과를 주님께 맡기는 자세(잠16:3)가 절실한 시대인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지성을 바르게 활용하여 스트레스의 원인을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지혜가 아쉽다.스트레스를 극복하려면 스트레스와 정면 대결을 하라!
11. 아침 1시간이 일생의 건강을 좌우한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 이니다'(시143:8)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야생동물이나 새는 어두워지면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잠을 깬다. 건강하려면 역시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 건강의 원천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오직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만이 대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자연의 원리를 잘 활용하신 분이다. 예수님의 건강비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기 취침"과 "조기 기상"이다. 물론 밤을 새워 기도하신 기록이 있으나 그것은 특별한 목적과 비상 시기에 한정되어 있다.
하루 중 아침시간이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것을 아시는 주님이 "가장 중요한 일(명상과 기도)"을 아침에 처리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이 정한 법칙에 가장 충실하셨으리라는 짐작도 상식에 속한 당연한 일이다.
성공한 사람을 만나보면 대개가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자산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간의 양을 질로 바꾸어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슬기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건강하다.
이른 아침에 하루를 준비하는 정성이 있다. 맑은 정신의 토양위에 예리한 판단력이 꽃 핀다. 그들에게 성공과 건강과 명예가 따라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서양 속담에 "지나치게 잠을 자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듯 수면시간이 길면 길수록 뇌 세포가 활성화되는 시간이 줄고 두뇌 기능이 저하된다. 아침에 일어난 뒤 기분이 개운치 않으면 "수면부족"이라는 핑계를 대고 잠에 연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섯시간의 잠으로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시간으로도 부족하다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수면의 양이 아니라 수면의 질이다. 짧은 수면을 취하고도 싱싱하게 일어나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깨어있는 동안 그 만큼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가 된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 이 말씀처럼 잠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자신의 일(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단잠을 자게 되어 있다. 근면한 사람이 불면증으로 시다리는 경우는 병이 아닌 이상 더물다.
업무상 도저히 일찍 잘 수 없는 사람이라도 늦잠은 금물이다.이 경우 잠을 줄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아침 한 시간이 일생을 좌우한다. 잠을 줄이려면 분명한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숨을 바치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서너 시간의 잠으로도 건강하게 살아간다.
자! 일어나자! 결단하자! 아침 시간을 통해 승리하자!
사람의 체질은 바뀔 수 있다. 새벽녘 시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보라! 차거운 물로 세수를 하고 창문을 열어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마셔보라! 그리고 아침 산책을 생활화해보자!
줄넘기나 가벼운 조깅은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휼륭한 운동이다. 가능하다면 건강을 위하여 하루 30분씩 주 3회 정도의 운동 시간을 확보하라.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양질의 수면을 취한다는 보고가 있다. 억지로라도 몇번 일어나면 대뇌중추에 자동 입력되어 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일찍 이러나게 되어 있다.그리고 일찍 잠을 자는 패턴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아슬아슬한 기상에서 불규칙한 아침식사로, 출근전쟁과 지각출근으로, 진 빠진 하루로, 저녁 술 모임과 늦은 귀가로, 가정에서 가족간의 불협화음으로, 늦은 취침과 부족한 수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아침 한 시간을 확보하라!
아침 한 시간이 일생을 좌우한다.
성공과 건강과 이미지 쇄신을 위한 절호의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조기 취침 - 조기기상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법칙이자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자! 이제 생활 패턴의 변화를 시작하자!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자!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에 도우시리로다!"
12. 휴식은 조금씩 자주하라!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네게 명한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신5:12-14)
고대 이집트 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15세기에 모세에게 주어진 십계명은 영적, 도덕적 측면에서만 아니라 사회건강 및 개인 건강의 차원에서도 탁월한 법령이었음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안식일 준수의 계명은 당시 유대민족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종교적 표준으로 제시되었는데 바로 여기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당시는 노예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고 노예가 일주일에 하루를 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예의 정기적인 휴식은 그만큼 생산력의 저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쉴새없이 계속되는 노예의 혹사가 결국은 급격한 체력쇠퇴와 함께 조기 사망을 가져 온다는 장기적인 안목은 없었던 것 같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고용주의 탐욕 때문에 노사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의 적용대상자에 남종과 여종을 포함시킴과 아울러 안식일 준수의 명령에 절대성을 부여하신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막2:27)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할 뿐 아니라(창2:3) 인간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선물로 주신 것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끝없는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는 안식일 기능도 중요하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근로명령"과 함께 "휴식명령"을 주신 이유는 이 두가지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필수적인 요인임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잘 쉴 줄도 알아야 한다. 힘을 재 충전할 수 있는 적절한 휴식없이 생동감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으리라. 건강의 비결도 마찬가지다. 건강하려면 일과 휴식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능력있는 사람이란 자기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지 일의 노예가 된 사람이 아니다. 일과 휴식은 나룻배를 저어가는 좌우편 노와 같다. 푸르른 창공에 비상하는 독수리의 양 날개와도 같다. 강력한 추진력을 얻으려면 양쪽에 동일한 비중을 두는 균형잡힌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무조건 쉰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휴식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 휴식은 조금씩 자주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몸을 노예처럼 부린 후 한꺼번에 취하는 휴식은 오히려 소모적,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쉰다는 것이 반드시 누워있거나 무념무상에 잠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 것이 좋은 휴식일 수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경우 등산이나 운동이 최고의 휴식이 되기도 한다.
현대 산업사회에 들어 조급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쉴 줄 모른다는 점이다. 휴가 중에도 직장에 계속 전화를 걸어 업무를 챙기는 사람,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보다 여행의 코스에만 신경쓰는 사람,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람..., 이들에게 진정한 휴식이 있을리 없다.
건강에 좋다는 운동의 경우도 승부욕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보고가 나오고 있다. 조급증 환자에겐 휴식이나 오락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셈이다.
어떠한 경우도 휴식은 조금씩, 자주 취해야 한다. 물론 일을 하다보면 가속이 붙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런 때에라도 스스로 자기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라야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장거리일수록 천천히 출발하듯 일이 많을 때일수록 휴식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휴식이란 몸과 마음의 휴식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반쪽의 휴식은 휴식일 수 없다. 인간의 진정한 안식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에서 이루어 짐도 이 때문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역대상 28:9)
13. 효자는 장수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효자는 장수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물론 장수하기 위해 효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효(孝)라는 씨앗을 심어 건강이라는 열매를 거둔다고 선포하고 있다. 효도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부모와의 관계는 인간의 근원적 관계이다. 이는 본래적이며 자연적이며 천부적인 관계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어떤 상황도 이 관계의 끈을 끊을 수 없다. 그러허기에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면 할수록 항상 가정이 건강하고 자녀들 마음이 든든하다.
인간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이른바 부모에 대한, 특히 어머니에 대한 회귀본능이 발동한다. 특히 어머니의 존재와 사랑은 어떠한 스트레스라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한다.
이른바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며 피난처인 셈이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장수하는 분들의 경우를 보면 대다수가 나이드신 노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살아간다.
어머니의 존재가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하는데 효성이 지극한 삶이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릴 수 없게 하며, 효자는 부모의 충고를 무시하지 않는다.
건강의 차원에서도 노부모의 잔소리는 숨겨진 지혜의 응집된 표현이다. 어머니의 존재가 건강의 영향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효성이 지극한 자식을 둔 부모는 오래 살 수밖에 없고 장수하는 부모는 자식의 건강에 선한 영향을 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대로 장수하는 집안일수록, 명문일수록 유난히 효자, 효녀가 많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효자는 항상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풍요롭고 따뜻한 마음으로 부모를 생각할 때마다 생체기능이 활성화되고 감동의 샘인 엔돌핀이 생산된다. 효자는 시간이 갈수록 면역기능이 증대되고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현재 부모와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크게 불효했던 사람은 부모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관계의 근원이 흔들리고 있으니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불효자는 세상의 거대한 세파를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방패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 글을 타이핑하는 저 자신도, 또한 한 분 뿐인 저의 형님께서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을 때에는 몸과 마음이 무력해지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던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다.
효로 효를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 저 자신의 주변 가정들과 가족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말(言) 처럼 실감나는 말(言)이 없는 듯하다.
역시 효녀가 효녀를 낳는다. 자녀들은 눈을 번뜩이며 자신들의 부모가 부모의 부모이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대하는 태도를 직시하고, 어느틈인가 배우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런 예수님의 깊으신 말씀이 실감나는 상황이 바로 부모에 대한 효도의 측면이 아닌가 싶다. 효자 효녀를 둔 공경받는 부모는 건강할 수밖에 없다. 건강은 강한 전념성을 가지고 있다. 고로 부모의 건강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달되어 효자, 효녀는 장수할 수밖에 없다.
14. 생수기 최고의 보약이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 14)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성경의 창세기는 창조의 원료가 물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창1:2) 모든 동식물의 주성분은 물이다. 인체의 주성분도 물이다. 성인의 경우 60%, 신생아의 경우 77%, 태아의 경우 97%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창조의 원리를 이해하면 물이 얼마니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밥은 두세 달 안먹어도 살 수 있지만 물은 안먹으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물은 영양분 중의 영양분이고, 최고의 보약이다. 영양학자나 의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을 액세서리로 여기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물은 H2O가 아니다. H2O는 인간이 만들어 낸 화학적인 물이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물은 아니다. 물은 "H2O + 미네랄 + 산소"이다. 물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십종의 미네랄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의 몸은 흙으로 창조되어(창2:7) 흙으로 돌아 간다.(창3:19) 흙을 구성하는 성분과 사람을 구성하는 원소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현대과학의 결론이다.
흙으로 창조된 인간이 싱싱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토양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각종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식물의 경우도 토양의 양분을 일부 흡수하지만 표면에 한정된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나온 물일수록 좋은 물이라는 말은 여기에 기인한다. 대부분의 약수가 거대한 산맥을 뚫고 나온 광천수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로부터 무거운 물이 보약이라는 말도 다 일리가 있는 말인 것이다.
전염병이 만연하던 시대에는 물을 끓여 먹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경도(미네랄 함유량)가 높은 물이 성인병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가 세계 각국에서 발표되면서 양상이 바뀌게 되었다. 성인병 시대인 현대는 성인병 예방을 위해서러도 생수를 권장해야 할 형편이다.
물을 끓일 경우 물에 녹아 있는 용존산소가 제거됨은 물론 물에 함유된 미네랄이 화학적 반응으로 가라앉아 물의 영양분이 상실된다.
우리의 국민은 대체로 물의 섭취량이 적다. 식사시간 전후를 제외하면 평소에 물마시는 일이 별로 없다. 구미의 학자들은 매일 8잔의 물을 마실 것을 권하고 있다. 대부분 물로 이루어진 몸에 대한 충분한 수분의 공급은 건강유지에 필수적이라 하겠다.
특히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액농축현상이 생겨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방치할 경우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병의 발생을 초래하게 된다.
취침 전 마시는 한 잔의 생수는 밤새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켜 주고 기관지 점막에 탄력을 부여해 감기를 예방해 준다. 기상 후 마시는 한 잔의 생수는 위장기능을 강화해 주고 위장 청소 및 변비 예방에 기여한다. 충분한 물의 섭취는 노화방지는 물론 피부를 싱싱하고 탄력성있게 해줌으로서 미용에도 좋다.
늙어간다는 것은 신체에 대한 물의 비율이 줄어 드는 것을 의미한다. 젊고 싱싱하게 살려면 물을 충분히 마셔라!
이렇게 휼륭한 영양분을 가진 물을 멀리하고 각종 색소와 설탕이 첨가된 인공음료를 즐기는 사람은 어딘가 병들어 있지 않나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음료들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는 경향이 있다.
갈증이라는 현상은 물(자연수)에 대한 생리적 필요이지 인공음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인공음료를 즐기는 사람들은 왜곡된 필요를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 생수가 맛있게 느껴지는 사람은 확실히 건강한 사람이다.
영적 건강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 최대의 행복은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다. 인간은 예수 안에서만 참된 만족을 누리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것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르게 되어있다. 인간이 가지는 총체적 갈증의 궁극적 해결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의 근원이신 에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15. 쓰면 쓸수록 튼튼해 진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고목에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다. 60대에 주말등산을 시작한 노정치인이 젊은이 못지 않은 심폐기능을 보유하게 되고 건강에 자신을 갖게 되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생각난 말이다. 물건은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진다. 반면에 인간의 몸은 쓰면 쓸수록 튼튼해지고 유연해진다. 여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체의 무한한 신비가 숨어 있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면 신체적 적합성(Physical Fitness)이 잘 유지되어야 한다. 보통 힘으로 표현되는 "근력"과 스테미너로 표현하는 '심폐기능", 그리고 "유연성", 이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우리의 몸은 최대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세가지는 모두 인간의 정상적인 활동을 통해 충분히 얻어질 수 있다. 다만 육체적 활동이 거의 없는 정신노동자의 경우 별도의 운동을 통해 부족한 신체활동을 보충해야 한다.
근력을 위해서는 "팔 굽혀 펴기"와 "윗 몸 일으키기"를 권할만하고, 심폐기능을 위해서는 걷기, 조깅, 수영, 등산, 줄 넘기가 좋으며, 유연성을 위해서는 스트레칭과 가벼운 체조가 바람직하다. 운동을 할 때는 반드시 이 세가지 요인을 골고루 활성화시켜야 한다. 스테미너를 위해서는 먹는 것에만 의존하는 풍토는 과학적 진실에 기초한 건강행동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스테미너는 먹는 것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동물성 식품은 식물성 식품과 달리 일시적으로 열량을 냄으로 마치 인체에 힘을 공급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 뿐이다.
스테미너를 얻으려면 위에서 열거한 운동을 통해 심폐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심장의 혈액방출 능력과 폐활량이 곧 스테미너의 원천임을 계몽시켜야 할 시대가 된 것 같다.
신체의 모든 부분은 쓰면 쓸수록 튼튼해진다. 야구선수의 왼팔과 오른팔을 비교해 보라! 두뇌 건강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쓰지 않는 근육이 쇠퇴하듯 두뇌건강도 전적으로 그 활용도에 달려있다.
인간의 사고기능, 분석기능, 통합기능 등의 지적능력은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쓰면 쓸수록 끊임없이 상승되어 간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지적능력이 쇠퇴해 가는 것으로 단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영적 건강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기도해 본 사람만이 기도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말씀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다.
사랑해 본 사람만이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감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극한 적인 상황에서도 감사의 고백이 흘러 나오게 된다.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기도의 근육, 믿음의 근육, 사랑의 근육, 감사의 근육을 계속 사용하라!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쇠퇴하고 만다.
우리는 영적 근육을 튼튼하게 키워감으로 "영적 적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건강에 있어서 중간지대란 있을 수 없다. 상승이 아니면 하강이 있을 뿐이다.
자전거의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속도는 줄어들게 되고 결국은 멈추고 만다. 현상 유지라는 것도 어느정도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빨리 녹쓸 듯 사람의 인체도 사용하지 않으면 노화현상이 빨리 나타난다. 더욱이 장기간 방치해둔 기계는 "사용불가"의 판정을 받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몸과 마음을 방치하는 "심신 불사용 죄"를 범하고 살아 감으로 "사용불가"의 판정을 받지 않도록 건강의 청지기로서 준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영적 부분과 함께 우리들의 육체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16. 부지런한 자가 아름답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 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잠31:10, 13-17, 18, 20)
성경의 지혜서인 잠언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이 여인은 우리말로하면 대표적인 "현모양처(賢母良妻)"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전형적인 직장여성으로서 나름대로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한마디로 비범한 여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여인을 재능이 뛰어난 여인이라 하지 않고 "현숙한 여인", 즉 "슬기로운 여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재능은 선천적인 면이 강한 선택적인 좁은 문이지만 지혜는 사실상 누구에게나 개방된 넓은 문이다. 이 현숙한 여인의 특성은 무엇일까? 최고의 지혜를 소유한 이 여인의 삶을 해부해 보자!
한마디로 잠언의 이 여인은 생동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고인물은 반드시 썩지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다.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부동(不動)의 미(美)"란 정체와 변질의 우려가 높다. 미의 개념에 "역동성의 우너리"가 빠진다면 절름발이가 될 것이다.
게으름은 질병이나 추함과 가까운 반면 부지런함은 건강과 아름다움의 이웃사촌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한 여인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자명한 것이 아닐까?
또한 여인은 자기관리에 뛰어난 역량을 가졌다. 바쁜 스케줄 중에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꿀 줄 아는 슬기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건강하지 못하면 부지런할 수 없는 법, 삶의 구석구석에 나름대로의 건강을 지키는 지혜가 번득이고 있다고 하겠다.
부지런하고 활기찬 삶을 사는 여인은 건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언의 여인은 "아름다움"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답는 비결을 체득하고 있는 여인인 듯 싶다. 오직 "부지런함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동기의 윤리만을 가지고는 안된다. 특히 여성들에게서 "동기는 좋았는데..,"라는 변명을 많이 듣는다. 상당수의 직장여성들이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일에만 집착하고 막상 일 처리에 있어서는 여성에 대한 시각이 관대한 것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자세가 절실한 시대다. 잠언의 여인은 동기의 윤리뿐 아니라 책임의 윤리에도 아울러 익숙해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어느 병원에 의사들조차 만만히 대할 수 없는 한 간호사가 있었다. 병원에 근무한지 얼마 안되는 신출내기인 그녀는 한마디로 성실, 그 자체였다. 그녀는 발로 뛰는 타입이였고 항상 진지했다.
매사에 현장 확인주의였기 때문에 주위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다른 학과에 입학했다가 뜻한바 있어 2학년때 휴학을 하고 다시 시험을 치루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백의의 천사"의 꿈을 이룬 탓일까?
그의 부지런하고, 성실, 근면한 태도는 바로 잠언서 31장에 나타나는 "현숙한 여인"의 모습 그대로 였다고 한다. 어느 목사님의 부인이 되어있다는 그 여인처럼 부지런한 여인은 항상 아름답다.
잠언31장의 여인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가정이라는 직장만해도 힘든 판에 자기 사업까지..,? 어쩐지 현실을 추월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다발이 아닌 점진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오히려 자연스런 결과일 수도 있다.
즉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다보면 관심의 폭이 넓어지면서 생활권이 확대되기 마련이다.
기회는 항상 부지런한 사람의 편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가정을 제대로 관리할 줄 아는 여인은 그 축적된 지혜와 건강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잘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오직 "부지런함으로"..,
17. 먹을만한 것을 먹어라!
"육지의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레11:2, 3, 7)
우리 주변에는 육식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채식을 강조하는 요즈음 세대속에 육식을 찾는 사람들은 감추어진 경계심과 염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육식을 허용하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창9:3).
그렇다고해서 성경이 모든 육식을 다 허용한 것은 아니다. 성경의 레위기는 육식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무엇이나 잘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이는 편식의 반대개념으로 골고루 먹는다는 의미에서 옳을 뿐이다.
닥치는대로 먹는다는 식의 무절제한 식생활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거룩한 삶이란 "구별된 삶"을 의미한다. 식생활의 영역에서도 구별된 삶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최고도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어느 것이 인간에게 적합한 양질의 음식인지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뿐이시다. 여기에 현대의학의 결론을 4천년 앞서 제시한 성경 진리의 묘미가 있다.
건강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이 붙들어야 할 최후의 진실(식생활의 표준)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이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일차적 에너지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채소, 곡식, 과일을 제시하고 있다(창1:29). 창조의 원리를 생각할 때 이들이 휼륭한 음식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성경은 굽이 갈라짐과 동시에 새김질하는 동물울 먹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즉 소나 양, 염소가 여기에 해당된다.
굽이 갈라진 동물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그것은 갈라진 틈으로 땀을 흘려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굽에 의해 완전히 덮힌 발을 가진 동물은 땀을 흘리지 않으므로 노폐물 처리가 원활하지 못하다. 그리고 신진대사가 저허될 수밖에 없다. 마치 옷을 꽉 껴입은 상태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런 동물은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새김질도 역시 마찬가지다. 새김질을 계속하게 되면 강력한 소화작용과 살균작용은 물론 뛰어난 해독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체내에 유독물질이 축적될 수 있는 가능성을 초기에 방지한다.
얼마 전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엄청난 양의 중금속이 검출되어 국민들을 경악케 한 사건이 있엇다. 이는 각 동물들의 특성을 알게되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식용육에서 제외시킨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셨다.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민감한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돼지고기 등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는 음식물의 섭취를 죄악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 환경이나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속성 여부"에 달려있다. 즉 무연휘발유가 필요한 승용차에 계속 납이 함유된 휘발유를 공급했을 때 차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때에 따라서는 감사함으로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다만 우리의 건강을 염려하시고 식생활의 영역에 있어서까지 "구별된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것이나 닥치는대로 잘 먹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성경은 먹을만한 것, 최고의 정결한 에너지원을 먹으라고 권고하고 계신다.
18. 인생열차의 제동장치를 점검하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1)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최근 미국에서 시행된 스트레스 연구에서 두 그룹의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두 그룹 모두 요란한 기계소음과 경적소리,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 등 매우 소란한 환경에서 일을 했다. 그 중 한 그룹은 작업장에 버튼이 있어서 원할 때면 언제나 주변의 소음을 차단시킬 수 있었고 다른 그룹에게는 이런 버튼이 없었다.
예상대로 소음을 차단시킬 수 있는 버튼이 설치된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생산성이 월등하게 높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도 설치된 버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언제라도 누를 수 있는 버튼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이기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연구의 교훈은 인생여정에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버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쉴새없이 밀어닥치는 온갖 스트레스를 이겨 낼 수 있는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휼륭한 방이라도 강력한 햇볕을 차단시킬 수 있는 커텐이 없다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리라.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는 속도를 내면 낼수록 오히려 죽음의 행로가 될 수밖에 없다. 속도를 내기 전에 브레이크를 점검하는 것은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다.
자동차를 심하게 몰아붙이는 사람일수록 제동장치가 완벽해야 한다. 시속 200Km를 달리는 자동차는 그만큼 브레이크의 성능이 좋은 법이다.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소화기능이 왕성해야 한다.
현대는 자기관리의 시대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기 절제에 능한 사람이고 소모적인 삶을 배격한다. 자기 자신을 방치하면 할수록 자신의 인격과 능력은 하향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통제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이 때가 되면 결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혼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잇는 하나의 버튼 임에 틀림없다.
미혼이나 이혼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부부에 비해 질병발생이 많고 수명도 짧다. 특히 정신질환의 발생에 있어서 두 그룹간의 현저한 차이는 결혼이라는 굴레가 스트레스 해소와 정신건강에 얼마나 유익한가를 증명해 준다.
좋은 인간관계는 분명 성능이 우수한 제동장치이다.
이름난 효자 중에 큰 인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고 휼륭한 친구를 많이 둔 사람이 타락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강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성공을 얻으려면 인생열차의 제동장치를 점검하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동장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관계이다.
이 제동장치는 자신의 재능을 최고조로 발휘하도록하는 안전핀의 역할을 한다. 인류사를 빛냈던 위대한 인물들의 최대공약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은 어떤 스트레스라도 녹일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 힘을 얻는 자가 되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만이 인생이라는 레이스에 최고의 스피드를 낼 수 있다!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그런데 왜 패배자 처럼 움추리고만 있는가?
19. 좋은 음악은 엔돌핀의 샘이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 150 : 1 - 6 )
수험생 중에 음악을 틀어놓고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는 부모들이 있는 것 같다. 소위 정신집중이 안될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그 일로 아이들과 다투는 일도 많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나면 그것은 금지사항이 아니라 장려사항이다. 왜냐하면 좋은 음악은 두뇌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커피의 효과와 영양 드링크제의 효과를 합한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좋은 음악과 함께 공부하는 습관은 신체의 원리를 잘 활용한 지혜에서 비롯된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좋은 음악이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에 공헌한다는 사실을 활용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좋은 음악이 공부의 능률이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음악이 건강에 활력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악은 영감의 원천이며 젊음의 비결이다. 음악은 인간에게 무한한 감동을 준다. 인간은 감동이 풍부할수록 활력이 넘치고 그만큼 젊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좋은 음악은 두뇌를 자극하여 기쁨의 호로몬인 엔돌핀을 샘물처럼 솟아나게 한다. 특히 음악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조화있는 음악일수록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준다.
좋은 음악은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최근에는 질병의 치료에도 음악을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꼭 음악이 아니어도 좋다. 작은 새의 지저귐, 시냇물 흐르는 소리, 바람소리 등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도 마음을 쾌적하게 만드는 기분좋은 일이다. 특히 매일 아침 기상을 경쾌하고 즐거운 음악으로 시작하는 것은 신선하고 생동감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비결이다. 건강하고 생기있게 살려면 좋은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라!
음악 중의 음악은 역시 인간의 입을 통한 노래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목소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고의 악기이기 때문이다. 이 악기는 감동을 받으면 울리게 되어 있다. 계속적인 감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리지 않으면 이 악기는 퇴화하게 되어 있다.
사실상 타고난 음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발이 덜 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노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어 좋다. 이런 의미에서 노래는 마음을 표현하는 총체적인 언어라고 할까?
사랑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부부가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한 후에 콧노래를 부른 것을 기억할 것이다. 가장 멋있는 사랑의 고백은 역시 오페라의 주인공처럼 노래로 하는 것이리라.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지 표현되어야 사랑이다.
성경은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전제하며 모든 수단(악기)을 동원하여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심지어 선뼉을 치며, 춤추며 노래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인간 최고의 특권이자 기쁨이다. 그리고 찬양은 인간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도 마땅한 명령이다.
20. 음식은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한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마6:17)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하루 세끼를 규칙적으로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다. 그러나 심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인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몸이 아프고 전혀 식욕이 없을 때는 안 먹는 것이 상책이다.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식음을 전폐하는 것도 일종의 인체 보호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동물은 병이 나거나 부상을 당하면 감식 또는 금식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에 따라서는 주변상황이 급작스럽게 바뀌거나 적응이 도저히 불가능할 때는 장기금식(동면)에 들어간다. 사람만이 병이 났을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때 평소보다 평소보다 더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대 성인병의 70%가 잘 먹어서 생기는 식원병(食原病)임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먹어야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식욕부진이라면 무조건 보약이나 보신식품을 과량으로 상용하고 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먹어서 생긴 병은 먹지 않음으로 회복된다는 원리는 결코 논리의 비약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체는 자체조절기능을 가진 유기적 시스템이다. 인체는 내부적 상황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고 때로는 강력한 경고를 발한다. 다만 말이 없을 뿐 증상으로 표시한다.
식욕이 전혀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현재의 비상사태에서 음식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음식을 소화, 흡수하기 위해 위장관계로 보낼 혈액을 다른 위급한 곳에 보내 혈액순환을 원활히 함으로 신체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사표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먹는 것의 우선 순위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음식물의 섭취를 중단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치료법 중의 하나이다. 히포크라테스나 갈렌 등 저명한 의사들이 질병치료를 위해 단식처방을 했으며 수많은 종교가, 철학가들이 정신적, 도덕적 수련을 위해 금식을 해왔다.
세계의 장수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 국민은 금식에관한 한 3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잇으며 유럽과 일본의 최고급 건강관리센터에서도 건강 및 미용을 위해 금식을 활용하고 있다.
금식은 타성에 빠진 신체를 활성화시키는 충격요법이다. 이른바 인체는 자극을 받으면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작용이 나타나는데 이런 정상화 작용이 인체에 유익한 방향으로 극대화되는 것이 금식의 효과이다. 즉 음식물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정상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인체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되고 각종 호르몬의 분비가 활성화된다.
이러한 정상화 작용에 의해 인체의 저항력은 강화되고 자연치유력은 극대화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되어 온 노폐물은 배출되고 잉여물질은 에너지의 공급을 위해 처리된다. 특히 위장관과 혈관 등에 있던 불순물이 제거되므로 소화기 및 순환기 질환에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으며 각종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난치병을 금식으로 고쳤다는 많은 사례가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금식은 무분별한 식생활과 환경공해, 운동부족 등 열악한 조건에서 생존해야하는 현대인의 심신을 새롭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숨겨두신 카드가 아닐까?
그러나 무분별한 금식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전문가에게 자문한 후 자신의 상태에 맞게 금식기간과 금식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금식 중에는 신체의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생수를 게속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회복식의 기간에는 금식기간 못지 않게 절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금식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금식을 오래하거나 자주한다고 더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금식을 구제 및 기도와 더불어 크리스쳔의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으로 언급하고 게신다(마6:16-18). 또한 예수님은 금식할 때에 머리에 "재(슬픔의 표현)" 대신 "기름(즐거움의 표현)"을 바르라고 하심으로 금식의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조명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함은 물론 몸과 마음이 완전히 새롭게 되는 금식은 마땅히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21. 좋은 가정분위기가 건강을 만든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
가르침이란 한마디로 모델이 되는 것이다. 모델이 되어야만 교육의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고 효과가 극대화된다. 예를 들어 예방의학자 황성주 박사의 경우도 가끔 몸이 약해 보인다든지 나이에 비해 흰 머리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그럴 때마다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한다.
특히 "예방의학의 대중화"를 부르짖는 의학자로서, 성서적 건강의 원리를 보급하는 사람인 그분으로서는 넘치는 건강을 보여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건강은 점진적인 것이지 비약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분은 이런 건강진리를 깨닫기 이전과 비교하면 자신의 건강이 많이 좋아진 셈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 와서 그분은 "습관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분은 어린시절의 편식 습관, 구부정한 허리, 운동을 싫어하는 아이로 잘못 형성된 습관 때문에 아직도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허약성은 체질이 아니라 습관의 문제요 가정교육의 문제였다. 이점에 관한한 그분은 부모님께 할 말이 많다고 한다.
"매를 들어서라도 잘못된 건강습관은 일찍 그리고 반드시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청소년기에 공부에만 신경을 써온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 그분의 지론이다. 다른 것을 희생할지라도 건강유산은 물려 주어야 한다.
흡연하는 습관을 가진 아버지를 둔 아들이 담배를 피울 확률이 90% 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이 결과는 흡연에 있어서 본인의 책임도 책임이려니와 부모의 영향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모든 질병의 15%, 모든 암의 30% 가 담배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은 어쩔수 없다고 치자. 물론 의도는 없었다 할지라도 아들에게 불건강의 유산을 물려주는 아버지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폭음의 습관에 찌든 아버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음주문화에 빠져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뚱뚱한 엄마에 뚱뚱한 딸, 과식의 습관을 물려주는 엄마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건강의 절반은 부모의 책임이다. 습관과 분위기가 건강을 만든다.
용장 밑에 약졸은 없는 법, 튼튼한 부모 밑에 허약한 아이가 있을리 만무하다. 건강의 습관은 가장중심의 가정문화에서 비롯된다.
부모가 일찍자면 아이들도 일찍자게 되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정서가 풍부하다. 운동을 즐기는 아버지를 둔 자녀들이 운동의 묘미를 알뿐 아니라 스태미너가 넘친다. 가족등반을 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아무래도 활발하고 스케일이 크다.
아름다움을 가꿀 줄 아는 엄마를 둔 딸들은 맵시를 낼 줄 안다. 멋진 아빠에 멋진 아들, 현숙한 엄마에 현숙한 딸이 나오는 법이다.(이렇게 보면 자녀들이 부모를 닮았다는 말은 후천적으로도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배우게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자!.)
현대의 불행은 가정교육의 부재에 있다(부모가 올바른 가치관 아래 본을 보이지 못한 결과를 포함한다.). 범사에 정성이 없고 자기 희생이 없다. 고뇌가 없고 진실이 없다. 스스로 모델이 되어 바른 습관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 바른 가정교육이다. 건강의 측면에서도 세 살적 버룻은 여든까지 간다. 모델은 커녕 오히려 어른들이 온갖 건강치 못한 생활양식을 보여주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 줄 것인가? 성경은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다. 자녀에게 물려 줄 최고의 유산은 신앙유산과 건강유산이다. 한마디로 하면 영적, 정신적, 신체적 차원을 포괄한 "총체적 건강"이다.
이 총체적 건강을 누리는 사람은 건강한 가치관, 건강한 가정관, 건강한 사회관, 건강한 국가관, 건강한 세계관을 가지게 마련이다. 총체적 건강은 거대한 영향력과 강한 전염력을 가지고 잇다.
이 시대의 불행과 비극은 총체적 건강의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병든 인간과 병든 사회를 치료하려면 건강한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의 자녀를 "그 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지름길이다.
22. 가정화목이 활력의 샘터!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비밀이 크도다"(엡5:31, 32)
영국의 처칠 수상은 건강에 관한 한 최악의 생활 양식을 유지했던 분이다. 그는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줄담배, 폭음, 비만, 운동부족 등 성인병에 걸릴 수 있는 온갖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66세에 수상이 되었고 77세에 재선되었으며 재임기간 중 최대의 스트레스였던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고도 그는 회고록을 쓰는 등 정열적으로 활동하며 90세까지 장수하였다.
물론 그에게는 낮잠이라는 피로회복제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최고의 강점은 화목한 가정이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길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클레먼타인과의 꺼질 줄 모르는 사랑의 불꽃 때문이었다.
화목한 가정과 원만한 부부관계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최대의 저항력이라는 많은 스트레스 연구의 결론을 증명하듯 그는 가정건강학의 극적인 모델인 셈이다.
"건강하려면 결혼을 하라"는 말이 있다. 사랑의 감정은 면역기능을 강화시켜준다. 사랑의 감정을 많이 경험한 아이들은 감기에도 적게 걸린다는 연구보고가 있을 정도다. 최근 "정신신경면역학"이 발달하면서 정신기능이 신체의 면역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은 어떠한 질병이나 스트레스라도 이겨낼 수 있는 저항력의 산실이다. 화목한 가정생활이 질병을 원천봉쇄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귀가 후 아내가 집에 없을 때에는 그처럼 허전할 수가 없다. 역시 아내가 있는 가정이라야 따뜻하고 포근하다. 하루에 겪었던 마음의 격랑과 갈등과 방황이 봄눈 녹듯 사르르 없어지는 곳이 가정이요, 아내의 넉넉한 품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서 아무리 푸대접을 받더라도 일단 가정에 돌아오면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게 된다.
부부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최대의 기쁨을 누리고 마음의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부부간 성생활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정신건강의 수준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중명하듯 건전한 부부생활, 만족한 부부생활은 온갖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음을 알아야겠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부부와 자녀들로 구성되는 그 가정을 이루고 이 가저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창1:26-28)을 이루시는 것과 더불어 지음받은 인간의 최대 행복과 건강과 번영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고안하신 복지제도다(창 2장).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 18)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도 해당되지만, 심신의 건강에 대한 언급이라고 해도 무리한 해석은 아니다. 특히나 신앙생활의 영적인 건강에 있어서도 혼자서 자기 뜻대로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성령충만한 삶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부부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가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배우고 체험하는 학교 이전의 근본적인 학교요, 교회 이전의 기본적인 교회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과 가정생활은 가장 영적인 일이라 하겠다.
물론 가정도 가정 나름이다. 진리없는 가정생활, 하나님없는 결혼은 참사랑의 의미와 거리가 멀다. "에로스"로만 이루어진 사랑은 "생의 무의미"라는 종착역에서 해체된다.
결혼제도를 제정하신 분이 제시한 표준대로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사도 바울은 감격적인 어조로 결혼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아무리 파내도 끝이 없는 가정이라는 신비의 샘터, 총체적 건강의 산실을 재발견하자.
23. 몸이 가벼워야 멀리 뛴다.!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요통과 신경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이분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최근들어 체중이 급격히 불어났다는 것이다. 급격한 체중증가가 신체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골격과 관절에 무리한 부담을 주어 통증을 유발한 것이다. 게다가 몸놀림도 예전같지 않고 신체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살맛이 안난다고 입을 모은다.
비만이 건강의 적신호이며 온갖 난치병의 관문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비만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체중이 불어나는 기미가 보이면 즉시 "자신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자신의 생활양식을 점검하고 생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여 생활을 단순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통제 할 수 있는 환경을 새로 조성하든지 기존의 통제탑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체중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남자의 경우 군대생활이며 여자의 경우는 시집살이라 할 수 있다. 즉 생활 속에 "규칙성"이라는 팽팽한 요인이 유지될 때 신진대사가 활성화되고 결과적으로 표준체중을 유지하게 된다. 아무리 뚱뚱한 사람도 입대하면 "표준형"이 되는 것은 이러한 메커니즘 때문이다. 가사에만 전념하는 주부에 비해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여성이 몸매 가꾸기가 수월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비만이란 단순히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생활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비만을 치료하려면 총체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무조건 안먹는다고 체중이 감소되지 않는다. 다이어트의 기본 원칙은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식사의 내용을 규칙적인 "균형식"과 "저칼로리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하면 5배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생활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
운동을 하는 경우 격렬한 운동보다는 운동강도가 30∼50%인 가벼운 운동(빨리 걷기, 가벼운 조깅, 수영, 가벼운 등산, 계단 오르내리기, 고정식 사이클링)이 효과적이다. 가벼운 운동은 지방의 연소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운동강도가 높은 격렬한 운동은 당분만을 소모시켜 저혈당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격력한 운동 후 허기가 지고 식욕이 왕성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먹는 것에 의해 운동으로 소모된 열량이 보충되는 셈이니 헛고생만 한 셈이다. 격렬한 운동 후 일시적인 체중감소는 흘린 땀으로 인한 수분의 감소일 뿐이다.
성경은 경주자의 기본조건으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권면하고 있다. 즉 영혼의 비만인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관계의 복잡성을 염려하고 있다. 몸이 가벼워야 멀리 뛸 수 있다. 사심이 없는 사람이 강하고 담대한 법이다. 생활이 단순해야 주님의 뜻대로 살기가 쉽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생활의 단순성을 강조하신 바 있다. 비만이 거의 모든 성인병에 직접·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탐심에서 비롯된 "복잡한 삶"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온갖 죄악의 온상이 된다. 적재량을 초과해서 가라앉는 배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쓸데 없는 짐을 버리는 결단이 아닐까.
24. 자신에 맞게 꾸준히 하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 9)
50대가 되어 수영을 시작한 교수부부가 아침이면 일어나 물살을 가른다. 수영으로 건강관리를 시작한지 벌써 8년째라는 이 교수는 체력테스트 결과 놀랍게도 30대의 심폐기능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겉만 노인이지 속은 청년인 셈이다.
허리가 아파 결근이 잦았고 위장장애 만성피로 등 잔병이 많아 삶에 의욕이 없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며 "건강관리는 꾸준한 운동, 운동은 역시 수영"이라며 환한 얼굴로 넘치는 건강을 과시한다. 건강관리의 기본원칙은 자신에게 맞는 건강법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남이 먹는 보약이나 건강식이 좋아 보이고 색다른 방식의 건강법이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때 해외에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물개사냥, 뱀사냥, 코뿔소사냥 등은 이제 옛말이고 심지어는 요즈음 "요로법"이라하여 자신의 오줌을 건강음료로 매일 마시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하니 예방의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그저 허탈할 뿐이다. 상식이나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건강법은 심리적 효과가 있을 뿐 실제의 건강증진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건강을 위해 기이한 행각을 하는 사람치고 건강에 자신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어느 것 하나 신통치 않고 그러다보니 몸에 좋다면 귀가 번득 뜨인다. 새로운 방법도 얼마동안 하다보면 뚜렷한 효과가 없는 것 같아 폐기처분한다. 갈수록 몸은 허해지고 악순환은 계속된다. 건강에는 비약이 있을 수 없다. 정말 건강을 원한다면 쓸데없는 욕심과 조급한 성격을 버려야 한다.아무리 급하다고 열매를 만들어 달 수야 없지 않은가.
건강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강은 생활의 문제다. 생활의 현장에서 건강의 씨앗을 부지런히 심고 가꾸는 것만이 건강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하는 것보다 어느정도 과학적인 원리가 입증된 한가지 건강법이라고 확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을 할 경우에도 자신에게 적합한 운동을 선택해 등에서 땀이 날 정도의 강도로 하루 20분 이상, 주 3∼5회 정도 꾸준히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번 시작했으면 효과를 느낄 때까지 초지일관해야 한다. 보통사람의 경우 4∼6주, 허약한 사람의 경우 8∼12주 정도 지나야 운동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후배가 "나도 빨리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는 열렬한 소망을 토로하길래 "하나님의 사람은 캠퍼스 시절 4년 동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해주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생의 경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은 물론이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겸비되어야 한다. 신앙의 성장에는 아무래도 연륜이 필요하다.
온전한 신앙성장은 전인적 성장(지식, 인격, 정서, 경험 등)과 병행되어야 한다. 신앙에 있어서 "속성재배"란 본인을 위해서도 공동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섭리의 강물을 따라 "현재의 주어진 상황"에서 묵묵히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자신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것이 신앙성장의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25. 하나님의 처방, 할례의 비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즉,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골 3: 5-8)
지금부터 약 4000년전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할례를 명하신다. 그것도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 즉 포경수술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다. 이러한 명령은 이후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아랍사람들의 종교적 관습으로 존속하게 된다. 왜 하필 하나님께서 아직 피도 안마른 갓난아기에게 할례를 요구하시는가. 잔인하신 하나님이 아닐까? 할례를 꼭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도 하필 생후 8일째인가.
1949년 미국의 "메이요 클리닉"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5백68명의 자궁암환자 중에서 단 한명의 유대인도 없음을 발견하였다. 이 병원의 입원환자 중 7%가 유대인이므로 5백68명 중 약 40명의 유대인 자궁암 환자가 있어야 확률적으로 옳은 셈이다.
많은 병원에서 실시한 기록조사에서도 유대인에게는 자궁암이 없거나 현저하게 적게 발생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인도의 모슬렘교도의 부인들은 다른 종족에 비해 자궁암의 발생률이 적은 것도 조사된 바 있다.
인체 중 유일하게 피부과잉부분인 음경의 표피는 빨리 제거 될 수록 잡균들의 서식처를 없애고 청결을 유지 할 수 있다. 만일 분만 등의 이유로 자궁점막에 상처를 입혔을 경우 이러한 균들이 상당한 자극을 주어 다른 요인과의 상승작용에 의해 자궁암을 쉽게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포경수술을 받은 남자들에게서 음경암의 발생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할례의 암예방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물론 자궁암 발생은 성경에서 명한 다른계명(생리시의 철저한 개인위생, 깨끗한 성생활 등)과의 관련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현대의학은 불합리한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히려 암예방에 대한 거의 완전한 처방임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왜 하필 8일째인가. 1946년 11월 미국 의학협회지에서는 신생 남아의 할례가 유익하다는 내용이 실린 바 있고 이어 3개월 후 같은 잡지에 실린 마틴 박사의 "시기논쟁"에 이어 홀트 박사 등은 할례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 생후 8일째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즉 신생아는 생후 2∼5일에는 출혈에 민감하고 뇌출혈 등이 우려되어 수술이 불가하고 5∼7일째는 피를 응고시키는 비타민 K가 정상수준에 이르지 못해 역시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역시 혈액응고인자인 프로트롬빈이 생후 3일째는 정상인의 33%이며 이후 점점 증가하여 생후 8일째 정상인의 110%가 돼 일생중 가장 높은 때이고 이후 다시 감소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비타민K와 프로트롬빈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시 별다른 의학적 처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생후 8일이 할례를 행해야 할 가장 적기임은 자명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속속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최고의 생리학자이다. 결국 인간의 무지와 한계가 하나님의 "합리성"과 "완전성"을 철저히 왜곡해 왔던 셈이다.
육적 할례가 두가지 무서운 암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면 악한 성품의 제거와 함께 근원적인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는 영적할례(중생)는 심신에 많은 질병은 물론 "죽음"이라고 하는 불치의 병에서 우리를 능히 건질 수 있는 것이다. 진리에의 순종이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하나님은 예방의학의 창시자이고 성경은 예방의학의 지침서라고나 할까.
황성주 박사의 "성서 건강학"
26. 아침 식사는 반드시 하라!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 23:12)
얼마 전 한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최근에 출간한 필자의 책을 읽고 건강을 위해 한가지 결심을 했노라고 했다. 그 결심인즉 "반드시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결심 하나로 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나 "일단 시도해 본다"는 태도변화는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샐러리맨이 반드시 아침식사를 하겠다는 결심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침식사를 하려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야 식욕이 생긴다. 거기에다 단 10분이라도 산책이나 운동을 곁들이면 더욱 식욕이 왕성해진다. 위장도 잠을 깨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어나자마자 생수나 과일쥬스를 마시고 한참 후 식사를 하면 위장운동이 활발해져 소화에 도움이 된다.
일찍 일어나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자야한다. 일찍 자려면 귀가시간이 빨라야 하고 그만큼 아내가 정성껏 차린 저녁상을 대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포근한 가정에서 사랑이 담긴 음식을 먹으니 건강에도 좋고 돈도 절약된다.
부부애도 깊어지고 자녀와의 대화시간도 풍성해져 가정의 기능이 정상화된다. 존경받는 남편, 인정받는 아빠로서 이른바 가장의 권위를 회복하게 되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면 저녁모임 대신 점심약속이나 조찬모임으로 대신할 수 있다.
출근시간에 좇겨 아침을 거르는 직장인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대개의 경우 음주를 포함한 저녁과식은 늦은 귀가, 늦잠, 아침결식으로 연결된다. 정신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식욕이 생길리 만무하다. 오히려 꼭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쫓기는듯한 아침식사가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무겁고 불편한 오전근무로 연결되어 역효과를 초래한다.
아침결식은 맥빠진 근무시간으로 직결된다. 활동할 수 있는 열량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자니 도무지 의욕이 없다. 뇌는 깨어 활동하고 있으나 몸은 아직 자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일을 하자니 자극이 필요하다. 커피를 마셔야하고 담배를 피워야 일이 된다.
점심도 맵고 얼큰한 자극성 음식을 선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만성영양부족"상태에 빠지게 된다. 오전에 정신없이 지내다 오후에는 시간에 쫓겨 일을 몰아 붙이니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이 허기와 스트레스를 풀자니 그냥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반드시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라. 아침시간에 정 바쁘면 먹기에 편하고 영양가가 높은 죽을 대용하라. 그것도 힘들면 과일 쥬스 한잔도 좋다. 활기찬 하루 일과를 위해서 아침식사를 잊지 말라. 성공의 비결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침식사가 당신의 건강과 성공을 좌우한다.
신앙생활의 성패도 아침시간이 좌우한다. 식사를 매일 하는 것처럼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공급받는 것은 바른 신앙성장의 열쇠다.
며칠씩 결식하고 이를 보강하기 위해 한꺼번에 과식하는 방식의 신앙생활은 무기력 할 수 밖에 없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좋다. 조용한 아침시간에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라.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단 한절이라도 매일 묵상하라. 생생한 꿈을 가지고 기도하라.
효과적인 시간활용을 위해 성경구절의 선정과 기도제목을 자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른 아침 정신의 공백상태를 TV나 신문보다 먼저 진리의 말씀으로 채워라.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이 하루를 풍요롭고 싱싱하게 해준다는 수많은 증인들의 말에 겸손히 귀를 기울여라.
27. 자극이 없으면 빨리 늙는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히 12: 6)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 27)
육상종목의 신기록은 조용한 연습장에서 수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 다른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함으로써 기록은 갱신된다. 학생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기간도 학기말 시험이나 리포트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이다.
배우들이 가장 감동적인 연기를 할 때는 리허설에서가 아니라 많은 청중들이 숨막힐 듯 지켜보고 있는 생생한 공연장에서다. 이런 의미에서 스트레스는 일의 추진력을 높여주고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깨우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과도한 긴장상태가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 스트레스는 파괴의 요소로 작용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다. 반면에 할 일이 없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적은 것도 불행한 일이다. 직장인의 경우 명확한 목표가 없으면 능륙과 의욕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긴장이 풀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노화현상이 촉진되고 병이 생기기가 쉽다.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 비해 몸이 허약하고 수명이 짧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남자의 경우 실직이나 퇴직 후 1∼2년 사이에 만성질환의 발병률이 높고 사망률이 급증한다고 한다. 직장에서 과로로 쓰러지는 경우도 일에 쫓겨 한창 바쁜 때보다 일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긴장이 풀렸을 때에 많다.
팽팽한 긴장이 유지될 때는 몸과 마음이 활성화되고 저항력이 높지만 긴장이 완전히 풀리면 신체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마치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갑자기 놓으면 큰 충격이 일어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긴장은 서서히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차가 정지하기 위해서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가야 한다. 최고의 속도를 내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사고의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과로는 무조건 쉰다고 해서 풀리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색다른 도전과 자극이 필요하다. 누적된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도 사람의 유형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정신노동자의 경우는 운동이나 등산을 권장할만하고, 육체노동자의 경우는 독서나 음악감상이 바람직하다.
목욕이나 샤워, 산책의 경우는 두 그룹에 다 효과가 있다. 싱싱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지적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육체적 자극이 필요하고 육체적 활동을 하는 사람의 경우 지적자극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평탄한 신앙생활은 아무래도 감격이 없고 은혜가 적다. 생동감있는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도전과 자극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내적 잠재력과 달란트는 역경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를 "주님을 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아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정신적으로 느슨해지면 정욕과 탐심이 꿈틀거리기 마련이다. 성군 다윗의 간음죄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삼하 11장).
분명한 꿈과 목표가 없는 사람은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꽃 피우려면 반드시 "꿈"의 몽둥이와 "도전"의 회초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무사안일의 늪에 빠져 스스로 채찍질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직접 회초리를 드신다. 주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자극이 없으면 금방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가끔 징계의 회초리를 드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8. 건강은 자신감의 원천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 8)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 103)
현재의 삶보다 훨씬 행복한 삶이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을 만나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불건강한 생활양식에 찌들어서 "인생은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푸념 속에 건강의 경험없이 사는 현대인이 많은 것 같다. 건강의 희열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건강은 행복감의 제일가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방치하거나 제멋대로 굴리는 사람치고 행복의 참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행복의 참맛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일시적인 쾌락에 탐닉할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쾌락은 대개의 경우 불건강한 생활양식에서 파생되는 것이므로 불건강의 악순환은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불견강은 불건강을 낳게 마련이다.
건강을 포기한 사람은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나 다름없다.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일을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 일을 할 때에는 먼저 겸손하게 자신의 능력과 건강이 감당할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일을 벌이는 것은 "자해행위"에 해당된다.
건강없이 하는 일이 잘 될리 만무하다. 건강이 없으면 냉철한 지성과 판단력이 무디어지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쉽다. 일은 갈수록 꼬이고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따라주지 않으니 초조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결국 일도 망치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중책을 맡을 때에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맞게 일의 속도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일의 추진에 앞서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29. 시편 23편은 정신건강의 명약!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 4, 5).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글 중 가장 아름다운 글이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애송되고 있는 시가 성경의 시편 23편이다. 크리스천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이 시는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결혼식에도 어울리고 금혼식에도 어울린다.
또한 새로 태어난 아기의 축복시로도 적합하고 부모의 장례식에도 어색하지 않아 시·공간을 막론하고 인생의 모든 사건에 전천후로 애송되는 시다.
이 시의 분위기는 승리의 확신, 감사, 기쁨, 평화로 압축할 수 있으나 삶의 장엄함과 치열함을 아울러 드러내고 있다. 또한 신적인 경건함과 풍요로운 인간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시의 작가인 다윗은 목자에서 왕에 이르는 신분상승의 극적인 모델이면서 사자와 곰, 골리앗, 사울왕, 이방의 세력들 심지어 자기의 아들인 압살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대와 싸워야했던 파란의 생애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라 하겠다.
시편 23편의 능력은 바로 처절한 두려움과 배신, 절대절명의 위기와 절망적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함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했던 다윗의 생생한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는 틀에 박힌 형태의 관념적인 신앙의 표현이 아니다. 시편 23편은 광풍이 몰아치는 생의 한복판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즉 "거기 계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듣고 만졌던 피 보다도 진한 고백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이 시편은 다윗의 업적이라기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았던 한 인간의 겸손한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스쉬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 박사는 노이로제나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데 "하루 두 번 아침 저녁으로 시편 23편 묵상"이라는 유명한 처방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의 하워드캘리 박사도 "성경은 나에게 동료의사의 역할을 해준다. 성경말씀은 매우 훌륭한 의술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의 처방대로 했들 때 단 한사람도 치료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절실한 고백을 했다.
필자도 학생시절 매일밤 불면증과 번민으로 시달리는 당시 장관이었던 남편에게 6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취침 전에 시편 23편을 읽어주어 신앙을 회복시키고 불면증을 완치시킨 슬기로운 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시편 23편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이 정신질환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겪는 마음의 상처와 두려움을 치료하는 비상한 능력발휘의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더 큰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공감대의 형성이라고 할까. 동병상련의 정이라고 할까. 이런 의미에서 시편 23편의 치유력은 인간정서의 보편성에 호소하면서도 절대신앙을 통한 "극한적 상황과 내적 위기의 극복"이라는 깊은 체험에서 우러나온다고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좋다. 직장에서도 좋고 가정에서도 좋다. 근무시간에도 좋고 여행 중에도 좋다. 화장실에서도, 만원버스에서도 좋다. 시편 23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건강한 삶을 누리자.
아침 경건의 시간에 한 두달 동안 지속적으로 시편 23편만을 묵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온갖 정신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여 정신건강을 위한 최고의 명약인 시편 23편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정신적 자유"를 누리자.
30. 자연과 더불어 심신의 건강을!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 : 23)
아이들은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고 하면 이 점에 관한한 더욱 그렇다. 하나님이 주신 타고난 품성의 발현일까. 아직 문명의 때가 덜 묻은 탓일까. 하여튼 아이들의 자연에 대한 친화도는 어른보다 훨씬 높다. 우리 아이들만 해도 그렇다. 우리 가족이 즐겨찾는 북악산의 성곽코스가 한 시간씩 걸리는데도 기회만 있으면 가자고 아우성이다. 다섯 살짜리 막내도 난코스를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 힘든 줄 모른다.
인간은 관계속에서 성장한다. 인격의 성숙에는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물론 인간관계가 중요하긴 하나 이 경우 성장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비뚤림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인간을 무한정 신뢰할 수 없는 속마음이 끝없는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 : 9)는 성경말씀이 날이 가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실감나는 것은 웬일일까?
인간관계를 제외한다면 현대인이 접촉하는 대상은 오염된 물과 공기, 콘크리트 벽으로 된 아파트와 사무실, TV, 신문, 자동차, 지하철 등이 고작이다. 이러한 대상은 그냥 존재하거나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강요할 뿐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 약동하는 생명의 교감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러한 문명은 인격의 성장이나 도덕심의 고양, 아름다움, 평화, 환희, 풍요로움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 시대의 불행은 자연과 접촉함으로써 창의력과 감수성을 풍요롭게 하고 현대문명의 온갖 노폐물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콘크리트문명에서 파생된 온갖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은 생명이 약동하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치료될 수 있다.
인생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진지한 탐구도 자연의 품 속에서 기존의 모든 관계의 끈을 잠시라도 끊어버릴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틈나는대로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것 자체가 최고의 정신활동이자 최상의 건강법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황무지인 이스라엘 땅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갈릴리 호반이라고 한다. 마치 "진흙속에 박힌 사파이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갈릴리 지역은 다른 지역과는 대조적으로 땅도 비옥하여 농사도 잘 되고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아 수려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여유있는 생활이 돋보이는 지역이다. 인심과 자연이 무관하지 않음을 고려할 때 이 지역 주민들의 심성이 고운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풍요로운 인간성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러한 생활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예수님은 생의 대부분을 아름다운 갈릴리에서 보냈다. 공생애 기간 예수님의 활동도 거의 갈릴리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설교와 기도와 묵상이 곧 갈릴리의 산물이다. 어부에서 대사도로 변신한 당시 제자들도 대부분 갈릴리와 인연이 깊다.
그렇다면 "구속사역의 완성"이라는 예수님의 사명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수할 수 있었던 "건강의 원동력"도 갈릴리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창조주인 예수님이 아름다운 자연과 건강의 함수관계를 모르실리 없을 것이다. 한방에서도 좋은 공기를 최고의 보약으로 친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후지산의 맑은 공기를 시판하고 있으며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시키는 삼림욕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리고 인류역사상 위대한 인물이 각박한 도시문명 속에서 탄생한 적이 없다. 위대한 사상, 위대한 문학, 위대한 예술은 자연과 더불어 잉태되고 성장하게 마련이다. 자연이 위대한 정신의 산실이었다고 하면 "자연과의 친화도가 심신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자연건강법의 논리는 결코 비약이 아닐 것이다.
31. 마음을 다스려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 : 4-7)
최근에 좀 과장된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40대 남성 사망률 세계최고"라는 불명예는 바로 경쟁심의 산물이다. 공교롭게도 40대 남성사망 원인의 1위는 간경변이고 5위는 간암으로 되어있다. 물론 간염의 천국이랄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간과 관련된 사망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시기가 40대라는 것이 문제이다.
왜 하필 40대인가. 그들은 대부분 중간관리자로 각 분야의 실무책임자이다. 위아래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인데다가 충동적 경쟁사회가 빚어 낸 과도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다. 즉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데서 오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간에 치명적인 3대요인은 과음과 과식과 과로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균형을 잃은 결과이다. 경제속도로 달려야 차의 수명이 오래가고 기름의 소비도 적다. 과속으로 일관한다면 차의 수명이 짧아짐은 물론 고장의 위험과 사고의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차는 아낄 줄 알면서 자기 몸을 함부로 방치하는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간은 우리 몸의 화학공장이며 정화조이다. 과음(알콜), 과로(젖산), 과식(영양분)은 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적정량을 초과하므로 이런 상태를 지속하는 사람은 마치 숨돌릴 사이없이 공장시설과 종업원을 혹사시키는 악덕기업주라 할 수 있다.
과음이 간장을 해친다는 사실은 잘 알면서도 다른 요인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여성이나 크리스천에게도 간질환이 많은 것은 과로와 과식 때문인 경우가 많다. 특히 간염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과로와 과식은 간경변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많다.
이중 과로는 스트레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과식과 과음은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일이 과로로 인식됨은 벌써 정신적 영역에서 감당할 수 없는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로는 반드시 과도한 스트레스를 업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간을 튼튼히 하려면 일과 휴식의 조화를 이루어야함은 물론 세끼 식사를 균형있게 해야 한다. 이에반해 "아침은 굶고 점심은 대충 저녁은 왕창"식의 습관은 간기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면 별 문제가 아니나 계속되는 습관이라면 어떻게든 고쳐야 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식사를 하면 위장도 문제려니와 간이 어찌 감당하겠는가.
과식에다 운동부족까지 겹치면 비만은 따놓은 당상이나 마찬 가지다. 비만인 사람은 지방살이 많음은 물론 여분의 지방을 간에 축적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약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 국민성에 비추어 약의 남용과 오용이 간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간을 튼튼히 하려면 마음을 지켜야 한다. 마음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이를 원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마음을 지키려해도 안된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확실히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성경은 마음을 지키는 비결이 "기쁨"과 "감사"와 "기도"에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믿음 안에서 기도 가운데 적극적 자세로 기뻐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지켜주신다.
이런 의미에서 최고의 간장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이 아닐까.
32. 쾌적한 수면은 건강의 주춧돌!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 : 2)
잠자는 습관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종달새형"으로 비교적 일찍 자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형이고 다른 하나는 "올빼미형"으로 밤만 되면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져 늦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은 형이다. 올빼미형의 경우 일부 자유직이나 전문직에 적합할지 모르나 현대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직업인에 있어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컴퓨터 단말기로 가정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새로운 업종이 아닌데서야 출세형은 당연히 종달새형이다. 올빼미형을 고집하면서 각박한 산업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환경에서 요즈음 직장인들의 심각한 고민거리 중의 하나가 "수면부족"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수면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짧은 잠이나마 철저하게 시간을 지키는 규칙적인 수면, 또는 낮잠이나 잠자기 전 운동 등을 활용해 수면의 양을 질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만성 수면부족 상태에 있는 직장인이나 각종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경우 일주일에 한두번이라도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쾌적한 수면은 건강의 주춧돌이다.
업무의 능률이나 생산성 향상에도 수면의 효과는 절대적이다. 여성의 경우에도 고운 피부와 아름다운 모발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잠을 잘 자야 한다. 피부도 모발도 충분한 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데이트를 위해서, 훌륭한 연주와 시합을 위해서, 또한 입학시험이나 입사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수면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쾌적한 수면이야말로 인생을 살찌우는 최고의 보약이라고 할 수 있다. 쾌적한 수면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남녀노소는 물론 부와 명예와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규칙은 있다.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깨끗한 수면을 하게 되어 있다. 이들에게 죄악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새벽이 있을리 없고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잠 못이루는 밤이 있을리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만족하여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 단잠을 자게 되어 있다. 건강한 생활양식을 유지하며 생동감 있게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건강한 수면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예수를 믿고 나서 불면증을 고쳤다고 간증하는 분들이 많다. 우주의 고아처럼 방황하며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으니 불면증에서 해방될만도 하다. 인간이 직면하는 최대의 스트레스는 "죄"라는 스트레스다. 어느 누구도 "죄"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마음에 참된 평화가 있을리 없다. 마음의 평화없이 단잠을 잘 수 없고 쾌적한 수면없이 건강을 논할 수 없다.
바른 신앙은 건강한 인격과 생활을 낳게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불면증을 고치는 최상의 치료제가 아닐까.
33. 조급증과 공범의식!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 : 9)
지나치게 건강에 집착하는 사람치고 건강한 사람이 드물다. "건강에 집착하는 삶"과 "건강지향적 삶"과는 엄연히 다르다. 건강은 지속적인 생활의 열매이지 순간적인 비약이 아니다. 일시적인 건강의 체험이 곧 실제적인 건강증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관적 체험을 절대시 하거나 옛것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체 최근의 곰쓸개 파동과 같이 건강을 위해 온갖 해괴한 양태가 계속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 한국인은 보약이나 몸보신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건강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으로는 이상이 없다는데 자기자신은 분명히 이상을 느끼는 현상, 즉 "몸이 허하다"는 느낌 이름하여 "반건강"이라는 병 아닌 병 때문이다. 반건강의 상태는 불건강으로도 갈 수 있고 건강으로도 갈 수 있는 교차로이다. 아직 가시적인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신호등이다.
영양의 부조화, 과식, 탐식, 운동부족, 불규칙한 생활패턴, 잦은 음주와 지나친 흡연, 과도한 스트레스와 휴식의 부족 등 불건강한 생활양식을 시정하라는 강력한 요구가 반건강의 증상이다.
이 신호를 보약이나 몸보신이 필요하다는 사인으로 잘못 보았으니 원인이 제거될리 만무하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건강지대에 방치한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비방을 찾아 나선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떼를 지어서 다니는 이른바 "집단 히스테리"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동료의식"이라기보다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을 같이 해보자는 "공범의식"의 발현이다.
한국인의 왜 명백한 원인을 애써 무시하고 보약이나 몸보신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조급증"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화 되고 "편의성"이 주인행세를 하는 사회풍조의 탓일까. 성장위주의 정책에 따른 성공지향적 경쟁심의 산물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과정을 겪지 않고 결과만 얻으려는 얌체족이 되어가고 있다. "정성"과 "노력"이라는 말대신 "묘수"와 "비결"이 판을 치는 천박한 정신문화가 보편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실상은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구미에서도 조급증환자 (A타입 성격)들이 급증하고 있고 이들은 합리적이고 느긋한 사람(B타입 성격)에 비해 심장병(협심증, 심근경색) 발생이 2.5배 정도 높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A타입의 성격이란 무리하게 일의 마감시간을 설정하고 몰아 붙이는 타입,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렬하고 자기분야에서 슈퍼스타가 되려는 타입,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타입,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하며 편안히 쉬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타입을 말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심장병에 잘 걸리고 수명이 짧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세속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어떤 극적인 체험이나 단순한 비결을 통해 단번에 문제해결이나 신앙성장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체험위주의 신앙은 특수한 체험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체험을 요구하는 영적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인격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 자체를 절대시 하게된다.
신앙생활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믿음에 어떤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신앙, 성숙한 신앙은 순간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크리스천에게는 항상 즐거운 체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울러 자신이 지는 십자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앙성장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세밀한 순종"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34. 에어컨과 여름건강!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 : 1, 11)
한여름 무덥고 습기찬 날이 계속되면 식욕이 없고 몸이 나른해지며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닥치는 이른바 "여름탄다"는 현상이다. 여름타는 것은 하나의 증상이지 질병은 아니다. 이러한 증상은 영양섭취의 불균형, 지나친 땀분비, 수면부족, 가중된 스트레스 등에 의한 생리적 적응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증상은 원인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여름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한 경제적 출혈을 하면서까지 보약이나 보신식품에 의존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짜증을 내기 쉬운 여름철에 위장병 환자가 많은 것은 상한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잦은 신경질로 인해 위산분비가 증가되어 위염을 유발하기도 하고 위궤양을 재발시키기도 한다. 여름에 몸이 나른하고 귀 피곤한 이유는 수분부족, 염분부족, 그리고 체온상승으로 인한 각종 영양소의 부족현상 때문이다. 특히 비타민의 소비가 늘어나고 칼슘의 배출이 많아지므로 비타민과 칼슘의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
현미, 콩, 야채, 과일, 해초류 등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이러한 원리를 잘 활용한 오이냉국, 미역냉국, 콩나물냉국 등을 자주 공급할 필요가 있다. 냉국류는 일종의 여름을 잘 넘기는 보약 중의 보약이라 할 수 있다.
갈증해소를 위해 물을 공급할 때는 콩팥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천천히 마셔야 하며 많은 양을 마셔야 할 경우 맹물보다는 수박이나 과일쥬스, 냉채나 냉국류로 보충하는 것이 좋다. 무릇 더위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지 피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여름철 냉방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냉방에 의존하는 불건강한 습성을 버리자는 뜻이다. 그리고 인체에 내재하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사장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여름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에어컨 없이 지내는 것이다. 여름에는 더워야 제맛이 난다. 마찬가지로 여름에 건강하게 땀을 흘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땀을 흘리는 계절에 기를 쓰고 땀을 흘리지 않겠다는 발상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직장의 경우 일의 효율을 위해 에어컨의 가동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시적인 일의 효율이 총체적 건강과 직결되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인체의 기본생리와 정반대의 환경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적당히 땀을 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체의 요구이다. 무더운 계절 신진대사가 왕성하지 못해 몸에 쌓이기 쉬운 노폐물을 땀으로 배출하겠다는 피부의 열망을 냉방으로 좌절시킨다면 인체로서는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정에서만이라도 에어컨 없는 자연 그대로의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결단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오는 가을을 막을 자가 누구며 가는 여름을 붙잡을 자가 있으랴. 여름은 인내를 배우는 계절이며 내적으로 열매를 준비하는 치열한 시간의 행로임을 기억하라.
여름은 여름답게 겨울은 겨울답게 지내는 것이 거대한 섭리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더위를 탓한다고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의 시계바늘을 앞당길 수는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그대로가 좋다. 땀을 흘리는 계절에는 마음껏 땀을 흘려라.
35. 지적 감동이 건강을 창출한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 : 11)
사람은 나면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취욕구 가운데 지적 성취감만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쌓은 공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수나 교사가 인기있는 직종으로 부각되는 것도 무한한 지적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꼭 학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끊임없이 두뇌에 자극을 받는 사람은 젊고 싱싱하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두뇌혈액순환이 활발해진다. 따라서 적당히 머리를 쓰는 것은 두뇌세포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일종의 두뇌운동이다. 지적도전을 생활화하고 있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적활동의 꽃은 역시 독서이다. 내용이 유익하다면 TV 및 비디오 시청, 라디오 정취, 각종 강의의 수강도 건전한 지적 자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사상의 일방통행이라는데 그 한계가 있다. "얼마나 보고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소화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왕성한 지적활동이 젊음의 활력소라는 의미에서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최고의 두뇌건강법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점들은 가을에는 울상을 짓고 반면에 일년중 여름에 책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별반 뚜렷한 건강증진의 비결이 없는 무더운 여름철에 좋은 책을 대한다는 것은 건강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휴가철을 조용한 곳에서 "저자의 인격과 사상을 나의 것으로 흡수하려는 열망"과 아울러 "좋은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건강피서법이 아닐까. 사람은 보는 것을 사랑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닮게 되어있다. 눈이 가는 곳에 마음의 무게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즐겨 읽는 책에 따라 인격의 체질이 형성되고 좋은 사상이 주는 감동은 몸 전체를 지배하는 중추신경을 활성화시켜 몸과 마음의 균형잡힌 건강을 창출해낸다. 감동이 오래 지속되는 책일수록, 깊은 공감대가 형성될수록 건강창출의 기능은 증폭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끊임없는 지적 자극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킨다.
성경이야말고 건전한 지적자극의 극치요, 넘치는 감동의 샘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경우 성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한지 1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성경을 대하면 짜릿한 흥분을 느낄 때가 많다. 같은 말씀이라도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동의 파장이 다르다. 말씀을 대하면 대할수록,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세상과 인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진리"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
물론 신앙과 인격의 성장에는 설교와 간증도 도움이 되고 찬양테이프를 듣는 일, 좋은 신앙서적과 일반서적 보는 일이 다 유익하며 합력하여 믿음의 뼈대를 형성해준다. 그러나 어떠한 지적 도전과 자극도 "준비된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성경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상고하여 소화 시키는 일"보다 더 큰 기쁨과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마치 성경말씀은 물을 타지 않은 최고급 포도주의 원액이라고나 할까.
36. 햇빛은 "건강의 금가루"!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요 3 : 20, 21)
1년 내내 흐린 날씨탓으로 일광을 맛볼 기회가 비교적 적은 구라파의 경우 햇빛은 건강의 금가루 만큼이나 귀하게 취급된다. 모처럼 갠 날 일광욕을 하기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나와 햇빛의 고마움을 만끽하는 광경은 한국인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다. 우리에게는 맑게 갠 날이 많아 햇빛이 너무 흔한 탓일까.
화장품회사에서 지나친 햇빛이 피부암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과장되게 홍보한 탓일까. 아마도 생명의 생원료라고 할 수 있는 햇빛의 기능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한 탓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름철 내내 건강의 보고인 햇빛을 피해 냉방문화권에만 웅크리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물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과다한 햇빛의 노출은 피부암, 발적, 화상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는 비단 햇빛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만큼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햇빛이 주는 건강에 대한 유익함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햇빛은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마음을 상쾌하게하고 눈에 흡수된 광선은 항우울성분인 멜라토닌의 분비를 활성화시켜 불면증 치료에 기여하며 각종 임파구의 수를 증가시켜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시켜준다. 전반적인 신진대사에 좋은 영향을 끼침은 물론 뼈의 성장에 기여하고 혈당을 감소시켜 당뇨병의 치료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소아과에서 보편화 되어 있는 자외선치료 역시 영국의 간호사들에 의해 신생아의 황달이 햇빛에 쬐면 회복되는데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음식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햇빛에 말리는 건조법은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가장 위생적이고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당량의 햇빛은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탄력성을 증가시켜 피부미용에도 좋다. 싱싱하게 살려면, 그리고 미인이 되려면 햇빛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이토록 심신의 건강에 유익한 햇빛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들은 각종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등이다. 햇빛은 이들에게 최대의 천적이며 최고의 살균제인 셈이다. 가장 무섭다고 하는 AIDS도 햇빛 아래서는 맥을 못춘다. 우리의 몸은 말할 것 없고 의복이나 이불 그리고 생활용품들을 정기적으로 햇빛에 노출시키는 것은 건강과 환경보건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9 : 5)가 궁극적인 인간평가의 시금석이라는 것은 참으로 공평하다. 어차피 도덕성의 측면에서 도토리 키재기인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빛을 사랑하여 빛으로 나왔느냐 어둠을 사랑하여 어둠에 머물러 있느냐"가 심판의 기준이 된다면 아무도 항변할 수 없으리라. 크리스천의 경우에도 진리의 빛 아래 끊임없이 자신의 인격과 생활을 비추어보는 사람과 죄에 미혹되어 진리의 빛을 점점 멀리하는 사람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모든 죄는 어두운 곳에서 생긴다. 인간의 온갖 부패와 추악한 행위는 밤에 이루어진다. 인격에 깊은 암흑이 있는 사람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진정한 구도자는 빛이신 하나님께 나올 수밖에 없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사랑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일단 빛을 사랑하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바른 신앙의 본질이 있고 죄악을 극복하는 비결이 있다.
37. 좋은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달리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 말지니라" (레 7 : 23-24)
성경의 레위기는 한마디로 예방의학의 세밀한 지침서이다. 놀랍게도 의학이 발달할수록 성경의 정교한 진리성은 점차 빛을 발하고 있다. 성경에서 분명히 식용으로 허용하신 소, 양, 염소(레 11장) 등 깨끗한 동물에도 먹어서는 안될 부위가 있는데 이것이 곧 지방조직(기름)이다. 왜 하나님은 동물성 기름을 금하셨을까. 한때 동물성 기름에만 있는 필수지방산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성경의 기록을 "비과학적"이라고 몰아붙이던 시대가 있었다.
필수지방산이 3가지에서 한가지(리놀레산-식물성 기름에 있음)로 줄어든 오늘날, 식물성 기름만으로도 훌륭한 식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영양학자가 아니더라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이 되었다. 더욱이 동물성 기름이 현대인의 가장 치명적 질병인 동맥경화와 심장병(협심증, 심근경색), 그리고 각종 암(유방암, 대장암)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실상 동물성 기름은 인체에 전혀 무익한 "건강의 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현대의학에 의해 하나님의 법은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닌 "사랑의 배려"임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문제는 기름기 없이는 고기를 먹은 것 같지 않다는 현대인의 변질된 입맛에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 성인남자의 11%가 "콜레스테롤 위험군"에 속한다는 한 연구보고는 예방의학을 하는 필자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혈중 콜레스테롤치의 상승이 곧 본격적인 성인병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물성지방의 섭취량이 최근 2배 이상 증가했고 일부 도시인들의 경우 하루 50g 이상으로 구미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7년 동안 "심근경색증"으로 입원한 환자수가 4배 이상 급증하고 있음도 주목할만한 사실이라 하겠다.
이러한 콜레스테롤 경계상황에서 "동물성 기름 무용론"을 주장한다고해서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콜레스테롤은 동물성 기름(포화지방산)이 많은 고기, 달걀, 버터, 우유 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참기름, 콩기름, 옥수수기름 등 식물성 기름(불포화지방산)은 오히려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동물성 기름을 먹을 때에는 식물성 기름과 같이 먹을 필요가 있는데 삼겹살과 참기름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섬유질의 충분한 섭취도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콜레스테롤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콜레스테롤(LDL)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예방해주는 콜레스테롤(HDL)도 있다.
동부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에서 콜레스테롤이 풍부한 음식(일종의 요구르트)을 주식으로 하는 이들에게 심장발작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명백한 모순을 파헤친 결과 이들은 대부분 가축몰이꾼이며 하루에 평균 40km를 걸을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는 것을 알아 냈다.
그 이후 이들에게 HDL의 수치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지금은 규칙적인 운동이HDL을 활성화 시켜주는 최선의 방법임이 상식화되고 있다. 반면에 흡연, 약물남용(특히 피임약) 등 불건강한 생활은 HDL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건강하게 살려면 성경의 원리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라면 하나님이 배려하신 다른 대안이라도 받아들여 건강의 청지기로서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38. 정직과 절제의 건강학!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잠 30 : 7-8)
"눈 딱 감고 받자니 양심에 가책이 되고 나만 안받자니 아래위로 눈치가 보이고…"
돈봉투를 받을 수도 없고 안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고통을 받는 한 세무공무원의 이야기는 이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해 빠진 소재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분의 경우는 "못받아서 안달"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양심적인 편에 속한다. 결국 그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직장인들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일을 처리할 때"라고 한다. 즐겁게 하는 일은 건강에 유익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만 마지못해 하는 일이 나쁜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론이 아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졌을 때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청렴결백으로 칭송을 받던 관리가 거액의 뇌물로 한순간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와 "번 돈을 어디에 쓰느냐"는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쉽게 번 돈은 헤프게 쓰게 마련이다. 과소비 자체를 문제삼기 이전에 돈의 출처를 따져보아야 한다.
정직하게 번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없다. 부정직하게 번 돈으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쾌락을 사는 일에 쓰게 되고 여기에 한번 맛을 들이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이것이 돈과 쾌락, 과소비와 부정부패의 함수관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숨겨진 스트레스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각종 쾌락의 수단으로 인해 양심을 찌르는 스트레스가 잠시 잊혀질 뿐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기능이 없어질 수는 없다.
"정직"이라는 도덕적 자유와 "절제"라고 하는 경제적 자유만이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보장해주는 정신건강의 파수꾼이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고 활기찬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정직한 삶과 검소한 삶을 생활화해야 한다.
미국의 한 목사님이 이러한 고백을 했다고 한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점점 타락해가고 있다."
얼른 생각하면 타락의 도시에서 그만큼 성공적인 목회를 하는 것이 대견할 수도 있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목회의 성공을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무기력함을 한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의 소금으로 부름받은 교회가 지역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교회의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이라는 음식 속에 녹아들어 가지 않고 소금덩어리로만 존재한다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정치와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낭비와 과소비, 무책임과 탐욕과 이기주의, 상실되어가는 근로의욕과 한탕주의 등 "이대로 가다가는 망한다"는 외침 속에서 크리스천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의해 변질되어 가는 오늘의 세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시점에서 자신의 생애를 걸고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는 아굴의 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떠한 행사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정직하기 원합니다" "자족하기 원합니다"라는 처절한 기도와 "세상의 소금으로써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뼈를 깎는 각성이 무기력한 교회를 살리고 병든 사회를 구하는 유일한 처방이 아닐는지.
39. 목욕은 혈관을 젊게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 : 9)
목욕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진취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들이 건강하고 오래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목욕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위축되어 있고 자기 관리에 대한 의욕이 결여되어 있다. 온갖 잘못된 건강속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자신은 물론 자신의 주변을 청결하게 하는 간단한 습관이 건강의 주춧돌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따뜻한 물(40도)에 3분, 찬물(18도)에 1분 정도 하는 온냉교대법을 2∼3번하면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전통적 민간요법인 목욕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 예로부터 목욕은 몸의 피로와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피로회복제와 긴장완화제로써 널리 애용되어 왔다.
그리고 목욕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하여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키고 피부호흡을 촉진시켜 준다. 특히 온냉교대법의 경우 모세혈관의 팽창과 수축을 극대화 시켜 전신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 혈관을 더욱 젊고 싱싱하게 해준다. 또한 땀을 충분히 흘리게 해줌으로 노폐물을 배출하는 이른바 운동효과가 있다. 그러나 뜨거운 탕욕이나 사우나에 장시간 노출되는 경우 몸에 무리한 자극을 주어 체력소모와 부작용을 유발할 염려가 있다.
스트레스 해소와 피로회복을 위해서는 온냉교대법과 중온장기법(40도에서 20분), 생활의 활력과 운동전 워밍업을 위해선 고온 단기욕(43도에서 3분), 식욕증진을 위해선 점증 온욕법(20분에 걸쳐 38도에서 43도까지 점차로 올림)이 적합하다. 특히 위궤양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신경성 위염, 긴장성 변비의 경우 중온장기법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때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목욕탕에 가면 무리한 힘을주어 때를 벗겨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피부를 손상시키는 경우가 많고 목욕후에 맥이 빠지는 현상의 원인이 된다. 최근 첨단의학의 발달로 피부의 맨 바깥쪽에 붙어 있는 죽은 세포들로 알려진 각질세로층의 기능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즉, 최근 연구에 의하면 각질세포층은 피부습도의 유지와 피부를 통한 신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이 밝혀진바 있다. 손으로 해도 충분한 것을 때밀이 수건이나 심지어는 "전문가"까지 동원하는 것은 피부건강 차원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신앙생활에도 정기적인 목욕은 필요하다. 자백과 참회가 없는 신앙생활은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능이 마비되고서야 어찌 생동감있는 영적생활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불완전한 인간이 왜곡된 사회구조 속에서 왜곡된 인격을 가진 이웃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한 죄를 짓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죄를 안짓는 것은 불가능하나 죄를 인정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길은 항상 열려 있다. 진흙바닥에 넘어진 어린아이가 곧 바로 부모에게 달려가듯 죄를 깨달은 즉시 사랑의 하나님 앞에 "잘못했습니다"고 고백하는 탄력있는 신앙생활이 성숙한 크리스천의 증거가 아닐는지. 고백은 우리의 일이고 용서와 깨끗케해주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이다.
죄 고백의 깊이에 따라 신앙의 성숙도가 좌우된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을 깊이 하는 것은 곧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이라는 한 원로목사님의 설교가 귓가에 쟁쟁하다.
40. 습관성 분노가 수명을 줄인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 : 32)
신경질이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대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현대는 상처의 시대다.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실감날 정도로 사회의 구석구석이 상하고 병들어 이른바 상처투성이다. 심지어는 가정까지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 아닌 "스트레스가 쌓이는 곳"으로 여기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상처받은 인간이 토해낸 상처의 파편이 가정과 사회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존심의 아성이 더욱 견고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토치카에 홀로 사는 사람과 같다. 그 자존심이 때로는 우월감으로 때로는 열등감으로 표출된다. 사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우월감에서 나온 자기과시욕은 깊게 뭉쳐진 열등감의 표현이며 얼등감 역시 자신의 존재를 절대시하는 교만심에서 비롯된다.
이런 의미에서 열등감은 겸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상처를 받을수록 우월감과 열등감이 깊어지는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습관성 분노의 노예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지에는 보통사람에 비해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20%가량 높다는 듀크 의대팀의 연구결과가 나와 습관성 분노가 일시적으로 기분을 잡치게 하는 기능만이 아닌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이 보도된바 있다. 이는 마음과 신체의 건강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화를 냄으로써 상대방에게 인격적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자신의 상처가 더욱 깊어짐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의 신체는 유명한 권투선수의 강편치를 맞는 것같은 타격을 받는다고 한다. 화를 참고 살히면 병이 된다는 속설이 있어 직장이나 가정에서 분별없이 화를 폭발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마음속에 있는 갈등이나 분노를 표현하고 발산하는 것은 정신건강의 비결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창조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심신을 망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화를 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확대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실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은 교육적 의미에서도 효과가 없다고 한다. 특히 분노와 증오의 감정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아이에게 매질을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아이의 장래를 위한 사랑의 표현인지 아니면 부모의 단순한 화풀이인지가 명확하게 전달된다고 한다.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폭발시키는 것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일을 성취시킬 수 있을는지 모르나 상대의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화내는 것을 금지시킨 것이 아니라 한 템포 늦추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면 언제까지 늦출 것인가. 그것은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들 때까지를 의미한다. 내가 화를 내고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 정말 상대방의 인격과 신앙을 위해서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만 참으라는 이야기다.
이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상처투성이의 불쌍한 "환자"로 볼 때만이 가능하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사랑으로 상대방을 보라. 그는 나의 사랑과 섬김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다.
41. 가을은 건강비축의 계절!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21 : 31)
가을철에는 사람들이 유난히 보약을 많이 찾는다. 여름더위에 지친 체력을 회복하고 겨울추위에 대비한 "보호본능"에서 다들 몸의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 영양의 조화, 적절한 운동 등 건강한 생활양식을 견지한다면 굳이 보약이나 몸보신을 따로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한마디로 가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건강풍년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건강을 위한 절호의 찬스인 가을을 "먹고 마시고 노는" 계절로 잘못 인식하여 타락성이 농후한 소모적인 생활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외적 조건이 완벽하더라도 스스로 무너지는 데야 할 말이 없다.
건강을 곳간에 모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듬뿍 안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의 비축은커녕 그때그때 건강을 탕진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고서 몸보신을 도모한대서야 보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근 한 친구로부터 들은 예기다. 그 친구의 병원에 한 유명인사가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불행하게도 말기 암환자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환자같지 않은 인상을 풍겼고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있었다고 한다.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의아해하는 그 분에게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분은 매일 음주를 즐겼고 그것도 폭음을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거기에 비례해서 많은 보약을 상용했었다고 한다.
그 분의 경우 폭음과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몸은 엉망진창으로 무너져가는데 보약의 심리적 효과 때문에 잠시 위장되어 아무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른바 "마스크 효과"의 전형적인 실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의 의식 속에 이런일이 얼마나 많은가. "불건강"의 씨앗을 끊임없이 심으면서 "건강"의 수확을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결코 요행이나 도박으로 될 수 없는 일이다.
"합리성"을 신조로 삼는 현대인이 건강의 측면에서만 유독 "상식밖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건강의 법칙에는 "심은대로 거둔다"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몸을 마음대로 방치하면서 약을 먹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비단 가을은 몸의 건강만을 추구하는 계절이 아니다. 곳간에 채워야 할 건강은 정신적·영적 영역에도 마찬가지다. 쾌적한 독서의 계절에 그동안 미뤄왔던 양서를 읽는 일과 성경을 통독하는 일에 도전해보라. 또한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다. 진지한 성경연구와 깊은 기도와 명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마음껏 누려보라.
가족등반 등 대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여름내 쌓였던 스트레스를 묻어버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만끽하라. 우리의 가을은 길지 않다. 가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황금같은 시간을 아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영양가 있는 양식을 마음껏 섭취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리라.
건강자체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건강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소모적인 일을 위해서가 아닌 창조적이 생산적인 일에 대비해서 건강을 비축해야 한다.
무조건 뛴다고 일이 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서는 사람"을 쓰지 않고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과 지혜와 인격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 시급하지 않을까.
42. 운동이 성인병을 고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 : 17)
최근 선진국에서는 임상예방의학에 대한 관심이 놓아지고 있다.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등 난치병의 치료에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던 대증요법(증상을 제거하는 치료)에 원인요법(원인을 제거하는 치료)을 병행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원인요법이란 대부분의 성인병이 운동부족, 잘못된 식생활, 과중한 스트레스, 지나친 음주와 흡연 등에 기인하는데 이러한 원인을 그대로 방치한체 결과만을 처리하는 지금까지의 치료의학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새는 파이프를 고치지 않고 고인물을 퍼내기만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까. 이런 맥락에서 최근 우리 의학계에서 대두되고 있는 운동요법에 대한 관심은 때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의학계나 일반인에게 지금까지 통용되는 상식중의 하나는 "환자=무조건 안정"이라는 공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등식은 성인병의 치료에 대한 운동요법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즉 급성질환에 대한 절대적 안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을 수 없겠으나 만성질환, 특히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등 성인병에 대해서는 안정보다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들이 점점 설득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운동은 일종의 약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약은 잘쓰면 양약이고 잘못 쓰면 독약이 된다. 운동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해서 무조건 시작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리한 운동은 안하는 것만 못한 경우가 있다. 모든 일에 원리와 순서가 있듯이 운동에도 처방이 필요하다. 특히 환자의 경우 운동은 각자의 건강수준에 맞게 전문가의 정밀처방에 따라 실시되어야 한다. 질병의 종류와 중증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운동은 가벼운 산책이나 걷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례이다.
성인병의 치료에 있어서 운동이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면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에 대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인병이 운동부족이나 비만에 관련되어 있음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운동이 부족하게 되면 심장근육이 약화되고 혈관이 탄력성을 잃게되어 순환기에 심각한 부담을 주게 된다. 각종 심장병과 동맥경화, 고혈압, 뇌졸증이 여기에 기인한다. 또한 운동부족은 근육이나 골격기능을 약화시켜 요통, 신경통, 디스크, 류머티즘 관절염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변비나 소화불량, 반성두통, 우울증 등 잔병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규칙적인 운동이나 등산 후『증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규칙적인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수명연장 뿐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데 있다. 풍성한 삶을 누리려면 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가을은 운동을 시작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제공해 주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땀으로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 가을운동의 특성이다. 하루 십분씩 아침산책이라도 시작해보라. 출근시 한 정거장 앞에 내려 가슴을 펴고 힘차게 걸어보라. 하루 컨디션이 달라질 것이다.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건강은 소명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영적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원이란 삶의 전 영역이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몸과 마음의 건강이 예외일 수 없다.
부름받은 자로서 주님의 일을 책임있게 감당하려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건강의 소명을 가진 자로서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일처럼, 일을 운동처럼 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43. 즐거운 대화는 피로회복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시 133:1)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도 모르게 피곤이 풀리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피곤해지는 상대가 있다. 전자의 경우 어쩐지 마음에 끌려 친해지고 싶은 열망이 싹트는 반면 후자의 경우 어쩔 수 없이 계속 만나야하는 상대가 아닌 다음에야 다시는 만나기 싫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긍정적인 대화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훌륭한 방편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인간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상대방이 자신을 인격체로 대하는지, 아니면 수단으로 대하는지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너와 나』의 인격적 만남은 서로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나와 그것」의 관계인 자기중심적 대화는 실망과 피곤으로 끝을 맺는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에는 반드시 창조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즉 인격의 스파크가 일고 높은 에너지가 창출된다. 좋은 대화를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 에너지는 지적 성숙은 물론 몸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사람을 만나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피곤이 싹 사라지고 분위기가 일신되는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화는 최상의 피로회복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기를 열망한다. 이러한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좋은 대화의 기본적인 전제는 상대방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고 먼저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열심으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과 서로의 주변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인격적 대화에 필수적이다. 대화가 얻은 것 없이 실망으로 끝나는 이유는 「성의부족」인 경우가 많다.
준비없는 대화, 자기중심적 대화는 상대에게 흥미를 잃게하고 결국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유발하게 된다. 대화의 내용도 중요하다. 모처럼의 대화가 자기과시나 남의 험담으로 일관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정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에 건강이 깃들리 없다. 건강한 대화가 건강을 낳는다. 건강한 대화를 나누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좋은 사람 = 좋은 대화」라는 공식을 기억하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다. 그러므로 대화는 본질적으로「하나님과 더불어 하는 것」이다.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 성령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스트레스를 녹이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이 유언처럼 주신「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크리스천에게 생명처럼 소중하다고 하겠다.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덩달아 건강해지듯 성숙한 신앙과 인격도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영적 기류에 편승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지금은 선교사훈련을 받기위해 외국에 계시지만 필자가 잊을 수 없는 어느 집사님에 관한 이야기다. 그 분은 이비인후과 의사고 작년까지 부산에서 조그만 개인병원을 운영했는데 그 분의 병원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물론 치료받기 위해 찾아온 환자들도 있었지만 「그 분을 만나 이야기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며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온 분들도 많았다고 한다. 마치 예수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할까. 크리스천은 마땅히 「닮고 싶은 사람」「만나고 싶은 사람」「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나에게 「만나면 피곤한 사람」이라는 레테르가 붙는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44. 낮잠으로 피로를 풀어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 : 15)
출퇴근 시 버스나 전철 안에서 종종 보는 진풍경 중의 하나는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토막잠을 자는 모습이다. 심지어는 서서 조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직장에서 사무실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괴며 말뚝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짧은 수면이지만 잠을 보충하는데는 토막잠이나 말뚝잠 만큼 효과가 높은 것도 없다. 꾸벅꾸벅 얕은 잠을 10분 정도 자고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온 세상이 새로워 보인다.
최근 미국 브라운의대 연구팀은 인간의 뇌는 오후 1시에서 5시 사이에 일정시간의 낮잠을 필요로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특히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쉽게 피로를 트끼는 사람의 경우 낮잠을 통한 뇌의 휴식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낮잠을 잘 필요가 없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 있으나 이 경우에도 수면부족이나 잠을 설쳤을 경우 낮잠은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이상으로 낮잠을 많이 자면 오히려 머리가 무겁고 피로감이 오래가는 경우가 있으므로 낮잠은 30분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불규칙적인 낮잠은 불면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낮잠시간은 가능하면 짧게 규칙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어떻게 직장에서 공식적으로 낮잠을 잘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 경우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한 시간여의 점심시간을 잡담이나 오락 등으로 소모시키지 말고 단 10분이라도 낮잠을 자라. 특히 식곤증이 심한 사람이나 오후만 되면 맥이 빠지고 피로가 가중되는 사람에게는 낮잠이 보약이다.
뇌와 몸의 휴식을 통해 피로를 회복하고 생체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낮잠만큼 짥은 시간에 확실한 효과가 있는 간편한 처방이 있겠는가. 꼭 잠이 오지 않아도 좋다. 바른자세로 누워서 다리를 조금 높이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상쾌한 오후를 맞이하는 비결 중의 하나이다. 의자에 앉아서 조는 말뚝잠이나 토막잠도 스트레스를 풀고 무거운 몸을 가볍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건강한 삶을 살려면 자기 몸의 상태를 잘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쉴 때인지 일할 때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댜 한다. 몰아붙일 때인지 서서히 할 때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휴식도 일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일과 휴식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이를 빨리 깨달을수록 인생을 깊이 있게 살 수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과 건강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신의 한계를 빨리 인식하고 주어진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에게 『무한한 건강』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꼭 해야 할 일』은 대충하고 『안해도 되는 일』『해서는 안될 일』에 몰두하는 현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크리스천은 마땅히『꼭 해야 할 일』과『안해도 되는 일』을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대신할 사람은 나외에 아무도 없음을 알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등한시하고 큰일만을 추구하는 크리스천이 의외로 많은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주님은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신다. 주님이 허락하신 시간과 건강내에서『지금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책임있게 완수하는 일』에 영적 실체성이 있음을 왜 모를까.
45. 기도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한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롬 8 : 26)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대개 받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얼마전 한 청년이 여의도광장에서 차를 몰아 끔찍한 살상을 초래한 사건을 해석할 때 간과하기 쉬운 점이 여기에 있다. 이 청년은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청년에게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만 사회의 냉대 속에 그 청년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직장마다 쫓겨나는 청년의 설움과 한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병든 부위가 곪으면 터지듯이 쌓인 상처는 어떤 형태로든 표출되게 마련이다. 이 불쌍한 청년에게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나 자신이 남에게 상처준 일이 없는가를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무의 나이테는 단순히 연륜의 표시만은 아니다. 유능한 식물학자는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나무의 나이는 물론 나무의 성장과정에 있었던 많은 사건을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내면세계에는 과거의 온갖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나이테가 있다. 우리의 생각과 정서의 필름 속에 기록되어 있는 아픈 상처와 불행했던 과거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그 기억들은 살아 움직인다. 또한 그것들은 현재 나의 사고와 정서와 행동에 깊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내가 맺고 있는 모든 대인관계의 영역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특히 인격적인 모독이나 자존심의 심한 손상, 쓰라린 추억 등은 망각에 의해 쉽게 처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제라도 그 때와 동일한 상황이 조성되면 옛날의 감정과 반응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상처받은 감정과 쓰라린 추억이 되살아나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상한 감정의 특성은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열등의식, 항상 애쓰고 힘쓰나 만족하지 못하고 죄의식을 느까는 완전주의,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상처를 쉽게 받는 예민성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무마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예사로 행하기도 한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언행에 있어서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없다. 이들은 아픈 상처를 모면하기 위해 강인함과 날카로움으로 자신을 위장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고치려면 먼저 내가『상처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도 가해자였음을 시인해야 한다. 나에게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통찰력이 없는 한 마음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는다.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의사에게 치료받으러 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치부하는 한 병든 부분을 고칠 기회는 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위로도 보상도 통하지 않는다. 설사 이들이 극심한 어려움 끝에 성공했다 해도 그 마음의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이들보다『더 큰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만이 그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직접 체험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이 온전히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그들을 치료하실 수 있다(히 4 : 15, 16).
이러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기도는『관념적인 기도』가 아닌『상한 감정 속에 녹아 들어가는 기도』를 의미한다. 그러려면 쓰라린 추억에 과감하게 직면해야 한다. 즉 자신이 상처를 받았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 원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바르게 이해하라. 그런 다음 자신에게도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라.
그리고 성삼위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고 처절하게 상한 감정을 경험하신 예수님(마 26, 27장)을 바라보라. 스 순간 나의 모든 상처는 그분의 것이 되고 주님의 평강은 나의 것이 된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나를 지킬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은 물론 나 자신까지도 온전히 용서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치유의 기도를 통해 상한 마음을 치료받은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기도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상처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최대의 뉴스거리가 아닐까.
46. 포옹이 면역성을 높인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 : 8)
최근 영국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랑의 감정을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면역성이 높아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신체적 접촉이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혈압과 맥박을 정상화시킨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입증된 후 애완동물의 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정신건강 상담원으로 활약하는 캐들린 키팅이라는 간호사는 포옹요법을 개발하여 고통 근심 절망 가운데 있는 상처받은 사람을 치료해주고 환자의 생존의지를 북돋워 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녀에 의해 제창된 포옹요법은 미국의 대형종합병원에서 간호사 훈련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의학적인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이론에 의하면『포옹은 기분전환에 좋고 외로움을 없애주며 두려움을 이기게 해준다.
자부심을 갖게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해주고 젊음을 되찾아 준다. 긴장을 풀어주고 불면증을 없애주며 근육을 튼튼하게 해준다. 욕구불만으로 많이 먹어 뚱뚱한 사람에게 식욕을 줄여주고 알콜 및 약물중독자에게 안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한다.
특히 맞벌이부부가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엄마의 품을 떠나 탁아소에서 자란 아이들의 애정결핍증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실감을 치료하는 유일한 비결은 시간나는 대로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이다. 물론 안아주는 일은 꼭 치료요법으로만 써야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47. 불고기의 비밀!
건강을 지켜주는 불고기와 양념의 놀라운 조화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중 쇠고기만큼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은 음식도 드물 것이다. 옛부터 허약체질이나 병후회복에 가장 많이 써온 것이 쇠고기국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이나 우리 민족이 사는 곳이면 잔칫집에 당연히 등장할 정도로 겨레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 불고기이다.
불고기 자체 영양도 영양이러니와 양념의 영양도 뛰어나다. 쌀밥, 채소와 더불어 불고기의 양념에 사용되는 마늘, 파, 참기름, 생강즙, 배즙, 깨소금 등이 절묘한 예방의학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미식을 하면 식사량을 절반으로 중일 수 있고 간식을 하지 않아도 배가 든든하다. 그러나 흰 쌀밥을 먹으면 쉽게 허기지고 충족감이 없다.
백미에는 완전식품인 현미에 포함되어 있는 단백질의 상당량과 대부분의 식물성 기름, 섬유질, 미네랄, 비타민이 깎여 나갔기 때문이다. 흰 쌀밥에는 콩을 섞거나 육류를 곁들여야 어느 정도 영양의 보완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흰 쌀밥에 불고기는 천생연분이다.
불고기를 먹을 때는 대개 상추 쑥갓 등의 채소에 싸서 먹게 되는데 이는 섬유질과 비타민C의 공급원이 된다. 불고기가 양질의 단백질원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으나 포화지방산이 대부분인 동물성 기름이 동맥경화와 심장병, 뇌졸중을 유발시키는 주원인이 된다는 것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불고기를 먹을 때 으레 참기름에 찍어 먹는데 이 때 참기름에 포함된 식물성기름(불포화지방산)이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불고기를 먹을 때 마늘을 먹게 되는데 마늘에는 셀레늄이라는 미량원소가 함유되어 있어 중금속 등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또 셀레늄은 노화방지 효과가 높다.
때문에 동물성기름이 많고 동물성 지방조직에 축적된 농약과 중금속 등을 해독함으로 불고기를 먹을 때 마늘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적정수준의 양을 섭취했을 때를 전제로 한다.
한편 양념으로 쓰이는 배즙과 식후에 디저트로 등장하는 배는 단백질 분해효소와 섬유질, 석세포가 많아 소화를 도와주며 육식위주의 부작용인 변비를 예방해주니 현대의학과 식품영양학이 밝혀낸 우리 조상들의 직관적인 건강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영양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지고 골고루 다양하게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임을 새삼 깨닫는다.
48. 식생활 개선법!
"짠 음식보다 신선한 채소로 입맛 돋궈야"
음식을 짜게 먹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을 분석한 다음 원인에 따라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소금을 줄이려면 짠 밑반찬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물론 음식을 염장하는 지혜는 식품보존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냉장고의 보급으로 신선한 식품의 공급이 언제든지 가능한 지금에 와서까지 옛 방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염장식품은 고혈압뿐 아니라 위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암사망률이 높아 평균수명이 낮았던 노르웨이에서는 소금에 절여서 즐겨 먹던 염장어가 원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냉동공업이 발달하면서 염장어의 소비량이 줄어들어 그 결과 위암발생이 현저하게 감소된 예가 있다.
아무튼 염장식품의 섭취를 심각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물 없이는 식사 못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우리 국민들은 국을 좋아한다. 이 국에 제대로 간을 맞추려면 반 숟갈 정도의 소금으로는 어림없다.
식사 중 섭취하는 많은 양의 국물은 자동적으로 소금의 과잉섭취를 강요하는 셈이 된다. 국물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자. 많은 양의 국물은 위에 부담을 주고 소화액을 희석시켜 소화불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빈번한 외식과 인스턴트 식품의 과용은 자연히 소금의 섭취를 증가시킨다. 예를 들면 라면에 함유된 소금의 평균함량이 5g이고 여기에 김치 등을 같이 섭취할 때 대충 10g 정도의 소금을 먹는 셈이 된다.
한편 기후와 식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쪽으로 갈수록 음식이 짜고 매운 이유는 한마디로 기후 탓이다.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여름철에는 식욕이 없어 자극적인 음식(비빔밥, 보신탕 등)을 선호하게 된다. 더위에 축 늘어진 몸과 마음을 억지로라도 깨우자니 음식이 짜고 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두뇌에 이른바 고유의 식성이 형성되어 이제는 사시사철 짜게 먹는 형편이 되었다.
"에피타이저"라는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도 원인 중에 하나이겠으나 짠 김치를 선호하는 우리의 전통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상 신선한 채소를 많이 먹게 되면 김치의 섭취량은 줄어들게 되어있다.
김치를 먹으려면 짜지 않게 그리고 맛있고 상큼하게 담아 먹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운동과 창조적인 정신활동을 통한 심신의 활성화가 병행되어야 짠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감소한다. 계절에 따른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면서 느끼는 자연 그대로의 상큼한 맛 …. 소금보다 훨씬 강력한 입맛의 자극제가 아닐까.
49. 스트레스의 이해!
"일을 사랑하는 긍정적 태도로 스트레스 극복"
스트레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요, 하나는 건강에 유익한 스트레스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트레스하면 나쁜 스트레스를 떠올리게 되나 스트레스의 정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즉 ‘있어서는 안될’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의 내적 성숙을 위해 스트레스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스트레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반응에 있다. 탐험자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려움과 고통은 항상 따르기 마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나룻배는 바닥짐이 있어야 균형을 유지한다. 트럭은 알맞은 적재량이 있을 때 제 속력을 낼 수 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긴장이 유지되어야 몸이 민첩해지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통합기능이 원활해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스트레스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해야 할 좋은 기회인 셈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관계를 자신의 능력에 연관시켜 깊이 연구할 계기가 된다.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를 유익한 스트레스로 전환시키려는 결연된 의지가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다. 모든 스트레스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스스로의 내적인 변화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환경이나 근무조건 등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대하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나쁜 영향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그는 열심히 일할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스타일이다. 그는 높은 성취의욕과 비전이 충만한 사람이다.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든지 일의 내용을 바꾸든지. 순환근무나 전직이나 전업을 고려할 수 있다. 지방근무나 해외근무를 자원할 수도 있다. 특히 경영자의 경우, 생산성 향상이나 노사분규 예방의 차원에서 근로자의 스트레스 관리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생은 사랑하는 이의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 즐겁게 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길만이 스트레스의 거친 세파를 해치며 살아가는 최고의 건강 비결이다.
50. 인체의 신비!
"인체는 질병에 대해 자연치유력을 지니고 있다"
"병은 자연이 고쳐주고 돈은 의사가 받아간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 있다. 의과대학 3학년 때 일이다. 당시 명의로 이름을 날리던 한 교수님이 강의 도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병은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치료를 돕는 역할을 할 뿐 진짜 치료는 인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에 의해서 되어진다. 자기가 환자를 치료했다고 자만하는 건 스스로 풋내기 의사라고 지칭하는 것밖에 안 된다. 의사는 겸허한 자세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
당시 혈기왕성한 의학도들이 대의학자의 경험담에 감동되어 모두들 숙연한 표정으로 강의를 들었다. 의사는 선의의 조력자임을 항상 명심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논쟁중의 하나는‘증상을 질병으로 보느냐, 자연치유 과정으로 보느냐’이다. 예를 들면 부패한 음식이나 이질적인 식사를 했을 때 나타나는 구토나 설사는 증상자체만으로는 일종의 ‘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생체의 방어기전의 차원에서는 유독물질이 장에 흡수되기 이전에 몸밖으로 빨리 배출해야 하는 자연치유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할 때 지속되는 심한 설사가 아닌 경우 증상만을 없애기 위해 지사제를 쓰는 것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때는 생수를 많이 마셔 장의 배출기능을 도와주고 한두 끼쯤 단식함으로써 장에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
대개의 정신노동자들이 식욕이 없을 땐 몸의 상태가 나쁜 것으로 여기고 고단백식을 억지로 하거나 보약을 찾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증상은 더 이상 에너지 공급이 필요치 않다는 신호로 보아야 한다. 부족한 운동량에 대한 계기판이기도 하다. 또 그동안 위장이 혹사되어 좀 쉬고 싶다는 표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모든 의료인은 우리 인체가 고도로 예민한 자체조절기능을 가진 살아있는 컴퓨터임을 전제로 하고 자연치유력이라는 무한한 잠재력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치료원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 요법은 자신이 회복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아울러 자신이 살아야 할 강력한 이유를 가지고 치료에 임하기 때문에 의사와의 협력이 잘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주므로 치료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 의사들의 지혜가 ‘암 환자는 반드시 또는 대개 죽는다’라고 믿고 치료하는 우리의 현실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평소 과학적인 건강관리로 자연치유력을 극대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체의 신비를 바로 알고 바르게 관리하자
황성주 박사의 "3박자 건강"
51. 욕구불만의 폐혜!
"피해망상 억제하고 꿈과 소망 키워야 건강한 잠재력 생겨"
현재 사람의 역량이나 지나온 노력의 발자취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그 결과가 같아야 한다는 의식구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고 자기같이 선량한 사람은 이 왜곡된 구조에 철저히 희생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을 자신에 불리한 쪽으로만 해석한다. 그래서 항상 모든 일에 욕구불만이다.
그런데 이 욕구불만이 노화를 촉진시키고 수명을 단축시킨다. 욕구불만은 우울증이나 깊은 열등감으로의 지름길이다. 물론 서구의 철저한 능력주의의 인사에 비해 우리나라는 학벌, 혈연, 지연 등 외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자신의 열등감이나 피해망상에서 나온 과장된 해석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명예나 부는 행복의 보완수단이지 행복 자체는 아니다. 행복하게 보이는 것과 행복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천부의 재능과 인격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나는 인간존재의 독특성과 다양성의 원리를 굳게 믿는다.
평범함을 감사하라. 주어진 상황을 일단 받아들여라. 이 경쟁심리와 열등감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만이 그동안 얼어붙었던 무한한 잠재능력을 샘솟게 하는 시발점이 된다.
지금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당신의 새로운 능력이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새로운 꿈이 솟아날 수도 있다. 대기만성형의 대표격인 삼국지의 유비는 한 마디로 아둔했다. 전략이나 전술에 어둡고 동작에 민첩성이 부족했다. 몇 번이나 기회를 잡는가 하면 잃어버리고 결정적인 찬스 때마다 의리를 내세워 양보하곤 했다.
그는 항상 빈털털이였고 사실상 실업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태연자약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웅대한 꿈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유비의 이런 점 때문에 적들은 유비에 대해 경계심을 품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뜻과 포부를 비밀스럽게 키워갈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있었다. 그는 군림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과감히 맡기고 잔소리가 없다. 그래서 부하들은 소신껏 말할 수가 있고 일할 수가 있다. 이른바 거대한 조직이 물 흐르듯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평범함을 감사하라. 그리고 나름대로 꿈과 소망을 성실하게 키워 나가라.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만한 건강을 위해 투자하라. 언젠가 때가 오면 당신의 폭발적인 잠재력이 빛을 발할 때가 올 것이다.
52. 신종 자폐증!
"장시간의 TV시청 안질환, 당뇨병 등 심신건강에 악영향"
현대인의 샐활양식 중 TV시청은 삶의 모든 영역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TV시청이 심신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TV를 가까이 보는 것은 가성근시의 중요한 원인이지만 장시간의 TV시청이라 할지라도 눈의 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눈의 피로와 통증을 유발시켜 각종 안질환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TV시청이 건강에 관련된 위험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활동 및 운동부족, 가공식품에 의한 인공미각 길들이기, 불필요한 소비욕구의 자극으로 인한 욕구불만의 유발, 불건강한 생활양식의 침투 등이며 가정 내 대화의 단절로 인한 ‘신종 자폐증’의 출현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TV시청은 건강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많다. 적당한 시간의 TV시청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정서적 그리고 지적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리고 사회교육과 정보전달의 수단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내용에 따라서는 TV시청이 시각과 청각을 다 동원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는 무방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천박한 철학과 조잡한 사상을 강요당하는 셈이 된다.
오랜 시간의 TV시청은 우리에게 부동자세를 요구하기 때문에 체중증가나 비만의 원인이 됨과 동시에 당뇨병, 심장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TV는 불안정한 자세에서 시청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요통이나 관절염 등을 만성화시키는 데 많은 공헌을 하기도 한다.
또한 TV시청은 우리에게 독서와 사고의 기회를 빼앗아간다.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개인의 고립감을 심화시키는 이른바 ‘신종자폐증’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가족들이 TV를 중심으로 교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이는 궁여지책으로 쓰는 방법이다. 필자가 본 가족끼리 대화가 풍성한 아름다운 가정들은 대개가 TV가 없는 가정이었다.
거실은 대화와 놀이의 장이지 TV시청관이 아니다. 단란한 대화의 기회를 늘려가기 위해서는 TV는 일단 없애고 보라.
그리고 온 가족이 지혜를 모아 가정의 지적·정신적 공백을 메꾸어 가라. 처음에는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가정에까지 침투된 개인주의적 사고의 벽은 헐어야 한다. 가정을 자폐증 환자로 채울 수야 없지 않은가.
불가피한 경우 TV는 하루 한 시간만 보라. 스트레스 해소라는 특별한 처방을 스스로 내렸을 때는 90분까지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일찍 자는 게 차라리 낫다.
53. 치아건강 비결!
"양치질 횟수보다 올바른 칫솔질로 노폐물 제거해야"
치아는 자연치유력이 없다. 한번 나빠진 치아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고로 부지런히 닦는 것이 치아건강의 유일한 길이다. 이닦는 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3-3-3법이라고 해서 하루 3번, 식후 3분 안에, 3분간이라는 말이 있다. 자주 이를 닦자는 것 자체는 좋은 발상이나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규칙이다.
바르게 이닦는 비결은 충치나 풍치를 만드는 세균이 모여드는 장소에 칫솔로 직접 문질러 세균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세균은 잇몸의 홈 속에 가장 많다. 그러므로 잇몸의 홈 속에 칫솔의 털을 넣는 것이 기본이다.
문제는 하루 몇번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긴요한 곳에 닿도록 바르게 닦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특히 어금니는 충치가 되기 쉬우모로 잘 닦아야 한다.
시간은 아무 때라도 좋다. 단 바쁜 아침 출근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시간에 쫓기게 되면 양치질이 제대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꼭 하루에 세 번 닦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도 하루 한 번은 제대로 닦아야 한다.
양치질 할 때 치약은 양치질을 부드럽게 하고 충치예방에 기여하는 등 유익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입 안 청소는 칫솔이 하는 것이지 치약의 역할이 아니다. 치약으로 닦으면 입안이 상쾌해지는 것도 사실이나 청량제의 작용일 뿐 입안이 깨끗하게 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치약에의 과신은 금물이다. 값비싼 치약이 마치 치아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처럼 과대선전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치약 선전비의 1/10만 바른 치솔 사용법 홍보에 쓴다면 우리나라 구강보건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 되리라.
칫솔의 선택과 이닦기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좋은 칫솔은 두부(모가 심어져 있는 부분)가 작아야 하며 모가 부드러워야 하고 털끝이 둥글게 되어 있어야 한다. 모가 센 칫솔로 싹싹 문질러 마구 닦아내면 치아가 마모된다. 특히 많이 사용하는 가로닦기는 이러한 위험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완벽한 칫솔은 없다. 치아의 표면이나 잇몸 사이의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1년에 2회 정도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 때에는 바른 칫솔 사용법에 대해 교육을 받고 교정을 받도록 해야 한다. 특히 스케일링은 충치와 잇몸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충분한 칼슘섭취는 치아를 튼튼하게 해주므로 간접적인 충치예방에 효과가 있다. 치아는 자연치유력이 없으므로 예방적 차원에서 치아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54. 조깅 건강학!
"자기 체력 감안해 적당한 거리와 일정 속도 유지해야"
조깅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운동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몇 번 시도하다 그만둔 경우가 많다. 건강에 좋은 줄은 알지만 자기 체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또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한가하게 뛰어다닐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체로 조급하다. 운동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몇 번 시도해보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보약을 먹고 당장 힘이 솟는다고 하면 그것은 보약이 아니고 독약이다. 진짜 보약은 지속적으로 복용할 때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서서히 나타나는 만큼 부작용도 줄어드는 것이다. 진짜 건강에 유익한 것은 최소한 6개월 정도 시도해 보고 나서 그 효과를 판정해야 한다. 조깅은 자기 체력에 맞는 만큼 적당한 거리를 자기 속도에 맞추어 뛰는 것이 원칙이다. 이후 자신감이 생기는 대로 거리를 늘려갈 수도 있고 속도를 빨리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무리하는 것은 금물이다.
구보에 있어서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열외해서 뒤따라가는 것이 좋다.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경쟁적으로 빨리 뛰거나 무작정 먼 거리를 가는 것은 차라리 뛰지 않는 것만 못하다.
조깅은 ‘편리성’과 ‘유용성’에 있어서 어떤 운동보다 낫다. 다른 운동과는 달리 조깅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돈이 들지 않는다. 꼭 이른 아침에만 한정될 필요도 없다. 서류봉투를 들고 1층에서 10층까지 뛸 수도 있고 출퇴근시 두세 정거장 거리를 뛰어 갈 수도 있다. 사실상 시간의 제약도 없다. 1분간 할 수도 있고 10분간 할 수도 있다.
또한 뛴다는 것은 성취감을 맛보게 해준다. 나름대로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만 고혈압이나 심장병,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경우 조깅은 피해야 하며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정도를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조깅은 심장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며 심장의 수축력을 증대시킨다. 조깅을 생활화하는 사람의 심폐기능은 보통사람에 비해 20~30% 증가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생체 포도당의 이용을 증대시켜 혈당을 내리는 작용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깅은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어 좋다.
이른 아침 거리를 누벼라. 꼭 아침이 아니어도 좋다. 일본에서의 한 연구결과, 아침 조깅보다 오후 5시 이후의 조깅이 휠씬 몸에 유익하다는 이론이 제기된 바도 있다. 뛰어도 좋고 걸어도 좋다. 뛰면서 건강해지는 새로운 건강문화가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55. 긍정적 사고!
"생활양식의 변화로 질병 극복하고 삶의 원동력 축적"
질병이나 반건강은 당신의 생활을 일신시킬 수 있다. 질병은 인생행로의 정지표시가 아니라 방향표시이다.
질병은 거대한 생의 흐름이 올바른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경고등이다. 많은 환자들이 의사를 찾는 이유는 병을 고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환자의 가장 깊은 욕구는 대화이다. 상담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생활을 바꾸기를 원한다. 지금까지 견지해 온 삶의 양식에서 탈피하고 싶은 것이다.
자극없이 내적인 충동에 의해서만 생활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반건강은 불건강한 생활양식을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로 삼도록 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심한 기관지염 때문에 담배를 끊은 사람, 지방간으로 진단 받은 후 심한 기관지염 때문에 담배를 끊은 사람, 지방간으로 진단받은 후 술을 끊은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인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불건강의 씨앗을 심고 키웠을 때 그 결과는 파멸로 끝날 수밖에 없다. 질병이나 반건강을 건강의 기회로 이용하는 지혜가 절실한 시대이다.
세계사의 인물 중에는 자신의 치명적인 질병을 세계정복의 원동력으로 이용한 극단적인 예가 있으니 그가 곧 로마의 초대황제 줄리어스 시저이다. 그는 타고난 허약체질에다가 항상 두통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충병인 간질병까지 있었으니 열등감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품위가 심하게 손상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한다.
그러나 그는 아픈 것을 핑계로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고 군무을 지병에 대한 치료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장거리의 심한 행진을 마다하지 않았고 항상 노천에 살면서 물밀듯 밀려오는 피로를 인내하며 병과 싸워 심신을 단련했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자신의 신체적 연약함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간질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무시하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질병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요구하는 경고장이기도 하다. 육체의 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할 때 발생하는 질병은 삶의 원동력을 축척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한 자기자신과 이웃의 높은 기대감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쉴새없이 뿌렸던 불건강의 씨앗으로 인해 질병이나 반건강이 현실로 나타난 이상 이제 이러한 원인제거와 아울러 총체적 건강향상을 위한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인생행로의 전환, 생활양식의 변화를 인체의 요구에 순응하라. 질병이라는 이름의 등대, 당신의 생활을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56. 효자 장수학!
"부모 공경의 마음 면역기능 높여 장수의 지름길"
"고향 열차에 오르면 담담한 심성을 재촉하는 부름이 언제나 나를 감싼다. 어머니, 이 다정한 이름이 아니었다면 수백 리 길을 밤으로 달려 설날 아침까지 꼭 도착해야 할 고향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느 날 아침 무서운 꿈에 놀란 우리의 가슴을 포근히 안아주는 비밀한 존재, 무의식 중에 발할 마지막 언어는 그리움의 본질인 어머니이다."
필지가 의대 재학 중 한 여자대학 교지에 기고한 에세이의 한 대목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인간의 근원적 관계다. 이는 본래적이며 자연적이며 천부적인 관계이다. 어느 누구도, 어떤 철학도, 어떤 극한 상황도 이 관계의 끈을 끊을 수 없다.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면 항상 마음 든든하다.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이른바 회귀본능이 발동한다. 특히 어머니의 존재와 사랑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인간은 어머니 품의 따뜻함과 포근함, 희생적인 사랑을 떠올릴 때 어떠한 스트레스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효자는 항상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러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생체기능이 활성화되고 엔돌핀이 풍부하게 나온다. 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면역기능이 증대되고 저항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현재 부모님과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불효를 끼쳤던 사람은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회환이 될 수밖에 없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걸림돌이 되고 스트레스 그 자체로 작용된다.
마음의 중심을 상실했으니 매사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없고 관계의 근원이 흔들리고 이으니 모든 관계의 끈이 느슨할 수밖에 없다. 불효자는 거대한 세파를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방패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된다.
그러므로 불건강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효로서 효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효자는 효자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 효자를 둔 부모는 항상 마음 든든하며 자녀와의 관계도 그만큼 원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녀의 공경받는 부모, 효자효녀를 둔 부모는 장수할 수밖에 없다.
효를 심어 효를 거두는 비결을 배우고 가르치자. 자녀들은 눈을 번뜩이고 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 대한는 자세를 직시하고 있다. 현재 부모님의 상황이 이삼십 년 후의 자신의 모습임을 바로 인식하는 지혜가 아쉬운 시대이다.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는 현대속에 묻어 살다보면 자칫 부모와의 관계를 그르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현재 부모님과의 관계는 미래의 자녀와의 관계의 살아있는 모델임을 명심하라. 효는 보여주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효는 곧 건강이다. 효의 씨앗을 심어 미래의 건강의 열매, 장수의 결실을 거두자.
57. 음향 건강학!
좋은 음악이 아름다운 시의 영감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음악이 건강의 활력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악은 영감의 원천이다. 음악은 인간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며 인간의 심상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삶은 끊임없이 감동의 샘인 인간의 뇌에서 엔돌핀이 솟아 나오게 하는 비결이다. 인간은 감동이 풍부할수록 활력이 넘치고 그만큼 젊어진다. 음악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조화있는 음악일수록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준다.
곡목의 선정도 중요하다. 명상 중에 듣는 음악, 불안할 때 듣는 음악, 흥분된 상태에서 듣는 음악 등 상황에 따라 음악이 다를 수밖에 없고, 계절과 환경에 맞는 음악을 들을 때 미묘한 맛이 있고 감동의 도가 높아진다.
꼭 음악이 아니라도 좋다. 작은 새의 지저귐, 시냇물 흐르는 소리, 나뭇가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도 매우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이런 좋은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는 하나의 법칙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F-1요동’이라 한다. ‘F-1 요동’은 두뇌를 활성화시키며 마음에 잔잔한 활력을 불어넣고 각종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특히 매일 아침 기상을 리드미컬한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것은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비결이다. 이런 때는 모짜르트나 하이든, 비발디, 멘델스존, 쇼팽 등의 밝은 곡들이 좋은 효과를 낸다.
또한 현대인은 소음공해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민감한 사람의 경우에는 평범한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미세한 소리까지 신경이 쓰여 괴롭고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음의 학술적 정의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소리’이다. 실내 소음의 경우 회의실에서는 30dB, 개인 사무실이나 가정에서는 50dB, 큰 사무실에서는 60dB 정도면 불쾌감을 준다. 대개 70dB 이상에서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많아지고 두통, 귀울림, 식욕감퇴, 소화불량, 신경쇠약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심한 소음은 혈압을 상승시키고 내분비계의 이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음은 소리의 크기나 종류보다는 마음의 문제다. 좋은 음악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 된다. 이왕 어쩔 수 없는 소음이라면 소음과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자.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한 달에 한 번은 가족동반 음악회라도 가자. 음반을 통한 가족끼리의 음악감상회라도 좋다.
58. 올바른 자기 이해!
"가정·사회의 불화 해결 실마리는 책임의식에서 찾아야"
인간은 누구나 자기자신만이 아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면서 살아간다. 인간 됨됨이의 위대성은 실수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거목은 썩은 부분도 많다는 옛말이 있듯이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이라도 치명적인 약점과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자기자신을 바르게 파악하는 지식과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올바른 자기이해는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링컨이래 미국의 가장 도덕적인 대통령이고 평가받고 있는 카터 대통령의 책상에는 항상 ‘모든 책임은 여기서 종결’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소인은 책임을 전가하고 대인은 책임을 진다는 말이다.
현대는 거인이 없는 시대이다. 한강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현대인이 받는 스트레스 중의 하나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자신에게 정직할 수 없는 중병을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불화 중 많은 부분이 ‘내가 잘못했소’, ‘모든 것이 내 책임입니다’, ‘미안합니다’ 등 진심 어린 한 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싸움으로 폭발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깊은 열등감에서 근원되는 것이다.
일이 조금만 잘 되면 모든 것이 내 탓이고 일이 잘못되면 남의 탓이요 사회구조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것이 이런 콤플렉스형 인간의 자연스런 생리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날이면 자신의 체면이나 명예가 손상당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일종의 심한 노이로제 증세라 할 수 있다. 물론 완벽주의에서 나온 발상일 수도 있고 책임 한계가 분명치 않은 다원적 사회의 달갑지 않은 유산일 수도 있다.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 한 변명이나 합리화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물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당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진실의 바탕을 벗어나는 경우 설사 변명이나 임기응변으로 위기가 극복되었다해도 자기자신은 속일 수 없으니 결과는 항상 찜찜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나도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주자.
59. 자유시간과 건강!
"업무, 자유시간 적절한 안배는 최상의 건강비결"
노동생리학의 대가인 독일의 레이만 박사는 직장인의 1일 생활을 크게 나누어 다음 4가지의 시간으로 분류했다.
이는 구속시간(근무시간), 반구속시간(통근, 가사, 식사, 운동, 목욕 등), 자유시간(오락, 휴식, 취미 생활 등), 수면시간이다. 그런데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시간과 수면시간을 합해 12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속시간과 반구속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만성피로 등 반건강의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급기야는 질병발생을 야기시킨다. 구속시간과 반구속시간은 많든 적든 간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시간으로 항상 긴장감이 감돌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심신이 지치게 된다.
반면에 자유시간과 수면시간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하루동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자유시간과 수면시간은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갖는 것이 원칙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 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결국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내용과 질이 문제다. 예를 들면 목욕을 꼭 해야 하는 부담감을 가지고 할 때는 반구속시간이 되지만 목욕을 즐기고 마음의 안식을 갖는 시간으로 활용된다면 이는 자유시간이 된다.
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식사시간이나 술좌석에 동석할 경우에도 직장상사나 고객과 부담스러운 자리를 마련했을 때 오히려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반구속시간이 아닌 구속시간으로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술좌석이라도 동료들과의 즐거운 한 판이 될 경우 반구속시간이 자유시간으로 될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자리일수록 모임의 주관자는 모든 참석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능력껏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2차, 3차를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으로 상용하고 있는 술, 담배, 도박 등은 스트레스 해소는 커녕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의기소침하거나 무력감을 느낄 때,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이용하는 담배나 술은 순간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으나 결국 몸 전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 해소는 억지로 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할 때 이는 결국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불건강의 씨앗을 심고 거두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스트레스 연구의 대가인 헨슨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화목한 가정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극대화시켜 준다고 한다. 가정이야말로 심신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60. 수면 건강학!
"푹신한 침대 높은 베개 삼가 숙면하면 건강"
아침에 일어난 뒤 기분이 개운치 않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면시간 부족’이라는 레떼르를 붙인다. 그러나 이러한 레떼르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여섯 시간의 잠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시간으로도 부족하다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수면의 양이 아니라 수면의 질이다. 짧은 수면을 하고도 싱싱하게 일어나 쾌적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깨어 있는 동안 그만큼 열심히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분들 역시 쾌적하고 깊은 양질의 수면을 취한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 일에 취하여 사는 사람도 단잠을 자게 되어있다. 그러나 계속 업무에 시달리며 만성적 수면부족에 허덕이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밤 열두시 이전의 한 시간 잠든 이후 두 시간에 필적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적은 시간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제일 가는 비결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정신노동자나 수험생의 경우 가능하면 일찍 자고 새벽시간을 공부나 연구에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하겠다. 잠들기 직전의 시간은 두뇌집중을 피하고 가벼운 운동, 즐거운 음악이나 재미있는 대화를 통해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것이 좋다.
수면 중에 무거운 이불이나 몸에 꼭 끼는 잠옷 등 몸에 저항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 해도 푹신한 침대, 높은 베개는 깊은 수면을 방해한다. 특히 지나치게 푹신한 침대는 몸의 무거운 부분이 집중적으로 파묻혀 혈액순환에 장애가 됨은 물론 척추가 구부러지고 허리에 힘이 걸려 요통의 원인이 되는 등 부자연스러운 체형을 유발한다.
충분한 시간의 수면을 취하고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잠자리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에는 인체공학의 개념을 도입한 약간 딱딱한 침대가 보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침대는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깨뜨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 하겠다.
또한 잠과 음식과의 관계를 연구한 보고서에 의하면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잠이 덜 오고 반대로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이나 칼슘이 많은 우유를 먹으면 잠을 유발한다고 한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잠을 조절하는 것도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나 잠을 쫓아야 되는 수험생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푹신한 침대, 높은 배게는 삼가라! 싱싱한 하루는 잠자리에 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황성주 박사의 "3박자 건강"
61. 종합검진!
"정기 건강진단 생활양식 검진 건강의 지름길"
가족집적성이 높은 질병을 경계하라!
암과 성인병의 발병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그리고 예방의학의 개념도 질병의 발생을 막는 1차 예방에서 질병의 진행을 막는 조기진단, 조기치료의 2차 예방, 그리고 질병의 가능성까지 막는 건강증진의 특차예방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매스컴을 통한 단편적 건강지식이 활개를 치면서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요즘 웬만한 병원에는 종합검진센타 등이 설치되어 있으나 그 이용기간이 단기 2~3일에서 보통 일주일로 입원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요즘에는 임상병리, 방사선, 초음파검사까지 27개 항목의 검사를 3시간 정도면 마칠 수 있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 건강진단시스템이 보급되어 이용이 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소모와 높은 의료비의 부담을 고려한다면 일반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종합검진을 권장하기보다는 발병위험군에 대한 선별적 검진이 먼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이는 국민의료비의 절감이라는 차원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발병위험군은 각종 직업병에 걸리기 쉬운 산업장 근로자들과 가족직접성이 높은 질병을 가진 환자의 가족들이다. 산업장 근로자들은 그나마 정기적 검진이 의무화되어 있으나 가족집적성이 있는 치명적인 질병의 경우는 의사나 환자가 무시하기 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가족직접성은 부모·자식, 형제·자매간, 부부간에 나타난다.
부모·자식, 형제·자매간에 가족집적성이 높은 질병으로는 당뇨병, 고혈압, 뇌졸증 그리고 위암, 유방암, 대장암이다. 가족 중에 이러한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발병한 사람이 있는 경우 당사자는 발병위험자인 셈이다.
이 경우 당사자는 필히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실시하고 질병의 위험요인을 과감하게 생활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이같은 사실을 무시할 경우 부자간에 위암으로 같이 입원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기가 막힐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부부간에 일치된 사망양을 보이는 질병으로는 심장병과 암이며 부부가 같이 앓는 대표적인 질병은 고혈압과 관절염이다.
가족집적성에는 유전적 요인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가족간에 생활양식을 공유함으로 나타나는 동일환경요인의 작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생활양식의 철저한 진단은 물론 정기종합검진을 반드시 실시하여 가족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
62. 건강문화 창조!
"신체 특성 고려한 운동방법 탐구 최상의 건강유지"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후배의 책상머리에 쓰여 있는 좌우명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건강’이라는 글이었다.
자신은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되 그 건강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좌우명이었다. 비록 7자에 불과한 글이지만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훌륭한 건강철학이라 하겠다.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인간은 관계의 틀 안에서 살아간다. 내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갈수록 나는 공인으로서 존재하는 셈이 된다. 건강은 잔잔한 파장을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필자 역시 건강한 사람 옆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덩달아 건강해 지는 건강의 파장을 경험하곤 한다.
사회학적으로 질병을 파악할 때 ‘외부성’이라는 독특한 현상이 흥미거리로 대두된다. 즉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기승을 부릴 때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단지 그 전염성에 의해 질병의 희생물이 될 뿐 아니라 질병의 확산에 기여하게 되는 특성을 말한다. 이제 나 자신은 더 이상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 자신에게 내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나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함부로 방치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공익을 위해서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을 위한 건강’ , ‘이웃을 위한 건강’, ‘사회적 책임 완수를 위한 최상의 건강’을 목표로 삼아 부지런히 건강의 씨앗을 심자.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남이 먹는 보약이나 건강식이 좋아 보이고 색다른 방식의 건강법이 훌륭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똑같은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똑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임을 기억하라. 자신의 몸의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건강법을 개발하자.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건강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말자. 모든 건강법을 자신에게 다 적용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쉽고 적절한 서너 가지 방법만이라도 확실하게 실천하여 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건강으로의 길은 모든 구도자에게 항상 열려있다. 자신의 건강문화를 창조하자. 건강에 대한 열망이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고 인생이라는 기나긴 경주에서 젊고 건강한 삶이라는 알찬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건강에의 탐구는 미완성 교향곡이다.
63. 스트레스 건강학!
"즐거운 스트레스 건강한 체력"
젊음을 유지하려면 적당한 긴장상태가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을 지키는 주부에 비해 직업을 가진 주부가 젊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새로운 일은 일상적인 일에 비해 스트레스의 강도가 크다. 중요한 점은 새로움이라는 흥분이 스트레스의 강도에 비해 훨씬 크다는데 있다. 새로움의 원동력은 창의력 발휘에 있다.
그러나 이 새로움이 다시 일상으로 바뀔 때 그동안 흥분에 가려졌던 스트레스가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긴장이 풀리면 즐거움이 부담으로 변한다. 즐거운 스트레스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창의력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름대로 품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 내재적인 독창성과 창의력이 꽃피울 때 인간은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일이 잘되고 있을 때는 과로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즐거운 흥분이 스트레스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서서히 과로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스트레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때이다. 막판에 일이 잘못되어 몸져 눕게 되는 경우 그 주범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의 상실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그리고 젊게 살려면 즐거운 스트레스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새로운 건강요리를 시도해 보라. 아름다움의 회복을 위해 운동을 시작해 보라. 화목한 가정을 위해 가족음악회나 독서토론회를 계획해 보라.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자신의 재능에 부합한 독자적인 사업을 계획해보라. 이때는 경제적 동기보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과 성취감이라는 차원에서 시작되었을 때 성공의 확률이 높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일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일이 상대적으로 나에게 쉬운 일이어야 하며 그 일을 하는 자신이 즐거워야 한다.
여성이 자기사업이나 직업을 갖는 것은 정신건강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자원봉사의 경우는 더욱 권장할 만하다.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즐거운 스트레스를 만들어라.
긴장이 오랫동안 풀려 있으면 심신의 노화가 족친될 수밖에 없다. 가능성을 가진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태엽이 풀린 시계처럼 맥빠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팽팽하게 태엽이 감긴 시계처럼 싱싱하고 생동감 있는 삶을 기대해 본다.
64. 정신신체 의학!
"분노와 싸움 심신 건강 최대의 적(敵)"
현대는 경쟁의 시대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성장동인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이 경쟁의 원리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사회는 복잡한 경쟁의 회오리 속에서 부딪히는 일이 많고 화내는 일도 많다. 또 만성피곤에 시달리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화를 낸다고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확대시킬 뿐이다. 화를 내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 대인관계에 깊은 골을 만들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한 번 쏟아버린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듯이 상대방이 받은 인격적 손상과 마음의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사실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은 교육적 의미에서도 효과가 없다. 상대방은 정말로 자신을 위해 야단치는지 아닌지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목소리를 높히고 화를 폭발시킨다는 것으로 일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중심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럴 때는 한 템포 늦추어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정말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는 대의 명분을 가지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당당하게 꾸짖어야 한다. 물론 진지한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화내는 사람의 신체는 유명한 권투선수의 펀치를 한 방 맞는 만큼의 큰 타격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미국 유수의 대학인 코넬 의과대학에서 식사 도중 식도를 다친 9살 난 소년을 15년 동안 관찰한 연구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술 도중 상태가 악화돼 위의 점막이 밀려나온 상태로 상처가 아물어 버린 이 소년을 통해 감정의 차이에 따른 위점막의 변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연구보고에 의하면 소년의 위점막이 마음이 평온한 상태일 때는 불그스름한 빛깔를 띤 건강색이었으나 근심 걱정을 할 때는 위의 운동과 위산의 분비가 감소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소화불량 상태라 할 수 있다. 그가 노여워하거나 흥분하거나 심히 긴장돼 있을 때는 위의 점막이 충혈되었고 위산의 분비도 증가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위나 십이지장에 궤양이 생기는 경우에 해당된다. 어느 때 그가 극도로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위점막은 심한 손상을 입어 실제로 위벽에서 출혈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보고됐다.
마음과 신체의 건강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분노와 싸움의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의 지배를 받지 말고 사랑과 평화의 호르몬인 엔돌핀의 지배를 받는 밝고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65. 올바른 육류섭취
"쇠고기 선호 지양 돈육 섭취 등의 경제적 방법이 적절"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육식을 즐겨먹는 스타일도 아니다. 평균적 한국인의 입맛이라고나 할까. 이왕 육식을 하게되면 부담 없이 즐겁게 먹어치운다. 사실 백미위주로 주곡이 부실한 우리의 상황에서 부족한 영양분을 육류로 보충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채식습관도 문제는 많아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채소나, 과일 해조류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김치는 훌륭한 발효식품으로 각종 효소와 장내 유용균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필수적이긴 하나 신선한 채소가 지닌 영양의 공급원으로는 부적격이다.
반찬으로 먹는 채소의 경우도 부적절한 조리법으로 비타민 등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상추쌈이나 쑥갓, 양배추, 당근 등의 신선한 채소와 산나물을 자주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과일의 경우 후식이나 간식으로 가끔 먹는 것보다 정기적인 주식의 일부로 매일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철 따라 나는 채소와 과일을 제때에 섭취함으로 부족되기 쉬운 영양분을 듬뿍 보강하는 계절식을 권하고 싶다.
육식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에는 쇠고기 선호사상이 있어 아예 안 먹든지 먹을려면 반드시 불고기나 불갈비를 먹어야 육식의 기분이 난다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의식구조 때문에 평소에는 대충 먹다가 주말에 가족동반으로 한꺼번에 포식하는 바람에 이로 인한 소화불량이나 과잉단백질에 의한 장내세균의 번식 등으로 대장염이 생겨 불편해 하는 분들이 많다.
쇠고기만이 육류가 아니다. 우유나 계란은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훌륭한 육류이다.
또한 EPA가 많아 뇌졸중 예방에 좋은 꽁치와 고등어,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한 고등어, 노화방지와 식욕촉진에 좋은 조기,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한 참치, 영양분이 골고루 있는 조개와 전복, 전체식으로 먹을 수 있는 멸치와 미꾸라지(추어탕) 등도 훌륭한 동물성 식품이다.
돼지고기의 경우도 비계만 제거한다면 쇠고기와 다를 바 없는 훌륭한 식품이며 백미를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부족되기 쉬운 비타민 B1이 쇠고기에 비해 10배나 들어있어 쌀밥과 이상적인 콤비를 이룬다. 양념이 잘된 돼지갈비의 경우 값이 쌀 뿐 아니라 냄새도 없고 맛도 훌륭하다.
다만 돼지나 닭은 되새김질을 하지 않아 소에 비해 해독능력이 떨어지므로, 삼결살이나 내장 등의 지방조직에 축적된 농약, 중금속 등 유독물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 문제가 되나 마늘을 같이 먹을 경우 해독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이왕 육식을 하려면 경제적인 방법으로 지혜롭게 하자.
66. 내면의 상처치유
"현실직시 통해 아픈 상처 탈피 내적치유의 첩경"
우리의 내면세계에는 과거의 온갖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나이테가 있다. 우리의 생각과 정서의 필름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아픈 상처와 불행했던 과거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그 기억은 살아 움직인다.
현재의 나의 사고와 정서와 행동에 깊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내가 맺고 있는 모든 대인관계의 영역 속까지 침투해 들어온다.
특히 인격적인 모독이나 자존심의 심한 손상, 쓰라린 추억 등은 망각에 의해 쉽게 처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제라도 그때와 동일한 상황이 조성되면 조건반사와 연상작용에 의해 그 때의 감정과 반응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처받은 감정과 쓰라린 추억이 재현되는 아픔을 맛보게 된다. 이는 좌절감과 증오심과 죄책감을 유발하여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래서 그는 다시는 동일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며 쓰라린 추억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
이렇게 손상된 자아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상황에 직면하기를 피하려는 노력은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엄청난 정신적 부담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자신을 혹사하거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러한 정서적 상처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쓰라린 추억에 과감하게 직면하는 것이다. 비록 일시적인 아픔이 있을지라도 피해선 안된다. 즉 자신이 상처를 받았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여라. 이제는 더이상 어린 소년도, 감정처리가 미숙한 청년도 아니다. 인생 여정의 거친 세파를 헤치고 나온 현재의 성숙한 자아로서 포용력을 가지고 그때의 상황을 바라보라.
그리고 가해자를 이해하라. 용서하고 불쌍히 여겨라. 가해자도 병든 자아와 쓰라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러한 상황이었더라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증오와 두려움의 감정 대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를 바로봐라. 그는 가해자가 아닌 병든 인격을 가진 환자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쓰라린 추억에 과감하게 직면하라. 이것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하는 지름길이다.
67. 가정 건강학
"가정 화목, 가족건강의 참된 파수꾼"
스트레스 연구의 대가인 한센박사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최고인 항목으로 ‘화목한 가정’을 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정은 건강의 산실임에 틀림없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쌓였던 어떠한 스트레스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열기와 포근함이 있는 곳이 가정이다. 그래서 가정은 건강의 최후의 보루이자 파수꾼이다.
나의 가정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남편과 아이들이 퇴근이나 하교시,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가족구성원 각자가 가정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곳으로 여기는 경우는 정상이지만 오히려 가정이 스트레스가 쌓이는 곳으로 여기는 경우는 어딘가에 병든 부분이 있음을 드러내는 현상이라 하겠다.
가정은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고 가꾸며 그 열매를 나누는 자옷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이라는 예방접종을 맞고 자란 아이들은 대체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
부부관계가 원만한 남편은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 사랑을 개념이 아닌 실체로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교가 가정이 아닌가 싶다. 도덕과 예절과 인격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도 가정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가정은 남편이 귀가할 때 아내와 아이들이 현관문에 모여 일제히 “웰컴 홈!”하며 맞이하는 규칙을 실천하고 있는데 그 순간 아빠의 얼굴에 하루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진다고 한다.
전생시에 군대에서 많이 발생하는 전쟁공포증 환자의 대부분은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군인들이라고 한다.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임감을 강하게 만든다. 사람을 사람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진선미를 창조한다.
최고의 자식사랑은 아내사랑이오, 남편사랑이다. 가정불화로 성처 입은 아이들의 최대의 소망은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한다. 아이들은 항상 엄마가 아빠를 어떻게 대하는지,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남편 사랑 없이, 아내사랑 없이 자녀를 사랑한다함은 진실이 아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가정을 건강의 산실로 꾸밀 것인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더하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는 가족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지만 특히 엄마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을 지킨다.
가정위기시대에 직면한 현대산업사회에서 가정은 건강의 최후의 보루이자 파수꾼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68. 한방과 자연의학
"자연식품 항암효과 높은 최고의 보약"
얼마 전 연구결과에 의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즐겨 먹는 산나물에 암세포의 생성과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취나물, 냉이, 씀바귀, 잔대순, 비름, 민들레 등 10여 종은 80~100%까지 암 세포 억제효과가 있고 고들빼기, 부추, 솔거지, 달래 등 11종의 산채도 60~80%의 억제효과가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연구대상인 21종의 산나물 모두에서 항암효과가 입증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70% 이상의 항암효과가 있는 식물로 학계에 보고된 것은 조사대상인 1백여 종의 채소와 과일 중 은행, 생강, 호두, 토란, 양상추, 파슬리 등 10여 종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나물을 좋아하는 우리 겨fp는 암 예방의 차원에서 자연의 특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대자연이 제공하는 자연 그대로의 식품은 최고의 보약이다. 산과 바위를 뚫고 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광천수’가 최고의 약수로 각광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최고의 건강식인 오곡밥, 피부미용에 좋은 율무, 최고의 노화방지제인 마늘과 참깨, 최고의 당분인 꿀, 건위작용과 정장작용이 있는 사과즙, 비타민C의 공급인 귤과 감잎차, 눈의 건강을 지키는 결명자차, 천연 소화제인 파인애플 등 모두가 자연이 준 최고의 건강식이다.
또한 비타민 A의 보고인 당근, 건뇌식품으로 최고인 호두와 잣, 혈압을 낮춰 주는 천연 혈압강하제 미역과 양파, 천연 거담제인 도라지,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의 공급원인 콩 등 따지고 보면 우리가 흔히 대하는 자연식품 모두가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최고의 보약이다.
자연의학이 한방에 우선한다. 지금도 부작용이 미처 밝혀지지 않은 무수한 한약재에 비해 자연식품은 안정성이 이미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식생활에 대한 바른 진단과 균형잡힌 식생활이라는 처방없이 보약만 팔겠다는 얌체가 있다면 그는 스스로 의료인이 아닌 장사치임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
물론 명백한 질병에 대한 치료약일 경우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단순히 보약만 필요한 경우는 최고의 보약인 자연식품에 의한 바른 식생활이 먼저 시도되어야 마땅하다. 자연의학이라는 대중적 건강법이 무시되고 상혼이 판을 치는 오늘날의 건강사업 형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쯤되면 건강의 결정적인 키는 의료인이 아닌 주부에게 달려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주부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최고의 요리가 가족의 건강을 지킨다. 엄마의 정성, 아내의 사랑이 가정이라는 천연치료센터의 주치의가 아닐까?
69. 건강과 운동의 관계
"개인체력 고려한 적당한 운동이 '최고'"
건강과 운동을 연결하려면 운동을 지도하는 분들 중에는 선수출신이 많아 스파르타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이러한 지도방법이 초보자의 무지와 겹쳐 운동 후 부작용과 후유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운동을 잘못하면 병이 되기도 한다. 40대 여성이 선호하는 골프의 경우 근력이나 유연성 등 기초체력의 단련 없이 시도하다 늑골 골절이나 허리손상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스포츠유해론’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전문체육과 사회체육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무지의 소산이다.
하루종일 운동만 하는 선수들과 일반인들은 다르게 취급해야 함은 상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하려는 분들도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일반인의 경우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려면 다음의 안전수칙을 염두에 두고 운동을 시작하기 바란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스포츠클리닉에서 자신의 건강상태와 체력에 맞는 운동처방을 받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건강상태가 좋은 시기에 시작하라.
컨디션이 좋아야 운동효과도 크고 운동하는 맛도 느끼게 된다. 운동을 시작한 후에도 건강상태가 나쁜 날은 쉬는 것이 좋다.
둘째,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하라.
1~2개월 정도를 준비기간으로 잡아 여유있게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감이 생기면 점점 운동강도와 운동시간을 늘려 가면 된다.
평소의 운동부족을 한꺼번에 보충하려는 듯 처음부터 몰아치는 것은 체력의 소모를 초래할 뿐이다. 이 경우 작심삼일이 되기 쉽다.
셋째, 가벼운 운동은 오래 하고 힘든 운동은 짧게 하되 20~40분간 가볍게 땀이 날 정도가 바람직하다.
넷째, 운동의 회수는 1주에 3~5회가 바람직하다.
그 이하는 운동효과 없고 그 이상은 체력소모와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다섯째, 운동 전후 5분 정도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을 반드시 하라.
여섯째, 일단 시작했으면 꾸준히 하라.
운동을 시작하다보면 한 두 번의 좌절은 누구나 겪게 마련이다. 정 힘들면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해 보라.
일곱째, 탐구하는 자세로 하라.
진지한 자세로 운동하다보면 운동이 인생의 축소판인 것을 알게 되고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운동의 참맛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라면 반드시 안전수칙을 지켜라.
70. 겨울철 건강학
"주기적인 환기 가벼운 운동으로 저항력 키워야"
겨울철에는 과감하게 창문을 열어 주기적인 환기에 신경을 써야 하며 난방의 경우 될 수 있으면 약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틈틈이 바깥에 나가 가벼운 운동과 심호흡을 함으로써 몸의 저항력을 키워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나치게 움츠러드는 것은 오히려 심신의 저항력을 약화시켜 잦은 감기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귤이 노랗게 익어가면 의사의 얼굴이 파랗게 된다’는 유명한 속담이 있듯이 귤을 많이 먹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 비결 중의 하나이다.
귤 속에 많은 비타민 C는 감기를 예방하고 추위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며 겨울철 피부를 보호해 주는 필요불가결의 영양소이다. 비타민 C가 풍부한 우리나라 고유의 감잎차 역시 겨울을 이기는 좋은 기호품이다.
겨울철 피부는 몸의 활동이 줄어드는 것과 비례해서 위축기에 들어간다. 땀이나 피지의 분비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인체의 보온을 위해 표면적이 줄어든다. 건조한 환경때문에 수분부족으로 꺼칠해지는 현상이 있을 수 있으므로 특별히 각질층 수분공급에 신경써야 한다.
추운 날씨 관계로 자칫 운동부족이 되기 쉬운 겨울철은 몸을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계절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비교적 삼한사온의 특성이 분명해서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운동을 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추워서 운동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다.
각종 가정용 헬스기구가 보편화되고 있는 요즘은 겨울에도 운동을 전천후로 할 수 있고 자기 체력에 맞는 실내운동을 생활화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기후에 관계없이 할 수있는 수영이나 조깅, 베드민턴 등이 야외운동도 권장 할만 하다.
운동이 어려운 노약자나 정신노동자의 경우 목욕을 자주함으로써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겨울철 온욕의 경우 40도 정도의 물에 10분 정도 있다가 나오는 방식으로 가볍게 자주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체력에 자신이 있는 분이면 두세 차례의 가벼운 온냉 교대법으로 스트레스 해소와 저항력 강화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여름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가 더위를 쫓는 것과 같은 원리로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점점 뜨거운 물을 추가하여 20분 정도 시간을 보내는 ‘족욕’을 통해 전신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했던 우리 조상들의 건강지혜에 따라 겨울철 건강증진을 꾀할 수도 있다.
겨울에는 몸을 아끼지 말고 과감하게 추위와 싸워라. 그리하여 습관적인 패배감을 극복하고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라. 그리고 겨울에는 무엇보다 귤을 많이 먹어라.
71. 자기절제의 미학
"다이어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충동적인 마음가짐으로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이어트는 생활전반에 대한 장기적인 프로그램이지 단기적 처방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체중조절은 자기절제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정확한 체중감량 처방에 의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몸매를 갖는 일은 ‘투쟁’이 아닌 ‘예술’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예술이다. 다이어트를 시도할 때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지침을 몇가지 소개하겠다.
첫째,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 때 시작하라.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 시작하라.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 시작하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다. 피곤하고 긴장된 상태나 욕구불만이 쌓였을 때는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둘째,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 약간의 긴장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긴장이 풀리면 식욕을 억제하기 힘들다. 특히 불규칙적인 식사나 수면부족, 휴식부족은 다이어트의 최대의 적이다.
셋째, 반드시 운동과 병행하라. 다이어트만 했을 때에 비해 운동과 병행했을 때 약 5배의 효과가 있다. 운동강도가 낮은 걷기, 가벼운 조깅, 수영, 계단 오르내리기 등이 비만의 치료에 효과가 크다.
넷째, 활기차게 걸어다녀라. 걷기는 체내 지방 소모율이 높은 운동중의 하나이며 식전 아침산책이 가장 이상적이다. 엘리베이터를 멀리하고 계단을 이용하라. 그리고 자동차를 이용할 때는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라. 그만큼 걸을 수 있어 좋다.
다섯째, 칼로리를 낮춘 균형식을 하라. 고른 영양의 섭취가 필수적이다. 특히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골고루 섭취하되 비타민, 미네랄, 섬유질의 보강을 위해 매끼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라. 그리고 생수를 즐겨 마셔라.
여섯째, 일주일에 한 번 좋아하는 음식 먹는 날을 정하라.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맛있게 먹으라, 무조건 안 먹겠다는 강박관념은 결국 인내의 한계심 때문에 다이어트를 망친다.
일곱째, 스트레스는 목욕과 운동으로 풀어라. 목욕은 혈액순환과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운동은 무기력한 삶을 깨우는 도전과 성취감을 제공해 준다.
특히 운동을 하면 식욕이 조절되고 운동 후에 칼로리 소모가 계속되므로 다이어트에 대한 자신감을 부연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꾸준히 하라. 최소한 3개월을 하고 나서 결과를 논하라. 강박관념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생활예술로써 몇가지만이라도 이 원칙들을 준수하라.
자기절제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아름다움을 소유할 자격이 있으며 이는 생각보다 엄격하게 인생전반에 적용된다. 그러기에 다이어트는 아무나 하는 것이다.
72. 암과 여성
"암 예방은 자연미의 추구로"
이론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할 때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러한 비정상성은 암뿐 아니라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대 여성이 가장 경계해야 할 암이 유방암과 대장암과 폐암이다.
유방암은 어머니와 두 딸이 동시에 걸릴 수도 있는 확률을 가진 해괴한 질병이다. 그만큼 모녀간, 자매간에 가족 집적성이 높은 암이다. 같은 유전적 요인을 가졌다는 점 이외에도 식생활 등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데서 올 수도 있다.
유방암의 위험요인으로 가족력이 매우 중요하므로 가족 중 유방암이 있는 사람은 불안에 떨지 말고 정기적인 암 검진은 물론 총체적인 건강 증진에 최고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으나 역시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지 않은 왜곡된 사회환경과 인위적인 '지연성'이 신체의 균형을 깨뜨리고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역으로 인체의 정교함이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할까. 아무튼 건강하게 살려면 인생의 행로를 자연의 흐름에 일치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유방암과 대장암은 발병요인에 있어서 비슷한 범이 많다. 한마디로 고지방식과 저섬유질식이 그 원인이다. 지방 섭취량이 30~40%인 구미의 여성에게 유방암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때는 지방의 섭취가 40%를 초과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식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그 부작용과 후유증을 짐작할만하다.
기계에 기름을 쳐도 적당한 양이어야 한다. 기름이 부족해도 기계가 돌아가지 않지만 너무 많으면 기계가 헛돌게 되는 법이다. 기름 속에 음식을 말아 먹는 것 같은 식생활이 건강을 지켜 줄리 만무하다.
끝마무리 영양소인 섬유질이 충분치 못한 것도 조화를 상실한 식생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섬유질은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시켜 숙변을 제거시키는 작용 이외에도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정상화시키는 고도의 조절기능이 있다.
암 예방뿐 아니라 각종 성인병의 예방에 섬유질은 나날이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통밀빵 대신 백밀빵을 먹는 일, 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채소와 과일의 섭취, 해조류의 섭취부족 등 편향된 식생활이 결국 섬유질의 부족을 야기한 것이다.
폐암의 경우 흡연이 주원인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궁암의 경우 조기 결혼, 조기 성생활, 성병감염 등 비정상적 성생활의 소산이며, 위암 역시 고염식, 어패류 등의 염장식품, 식품 첨가물 등 불건강한 식생활에 기인하는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모든 암은 스스로의 탐욕에 이끌려 자연의 순리를 위반한 대가라 할 수 있다.
73. 섬유질 건강학
"섬유질 음료 과연 효과가 있는가?"
섬유질이 예방의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기라 할 수 있다. 겨우 변비를 완화시키는 정도의 효과밖에 인정받지 못했던 섬유질이 영국의 의학자인 버킷과 트라웰에 의해 ‘섬유질을 적게 섭취하는 나라에 대장암을 비롯한 각종 만성 질환이 많다’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가설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지금은 정설이 된 상태이며 섬유질의 기능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섬유질은 탄수화물에 속하나 사람에게는 소화효소가 없어 열량으로 이용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섬유질이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영양소가 된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섬유질이 끝마무리 영양소로서 질병예방의 차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제6의 영양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섬유질은 채소의 잎이나 줄기, 해조류, 곡류의 껍질, 과일, 콩 등에 맣이 함유되어 있다.
섬유질은 크게 ‘스폰지형’과 ‘빗자루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당분이나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조절해 주며 후자는 독성물질의 흡수를 막고 신속하게 배설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러한 섬유질은 소화되지 않으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므로 식욕을 조절해 주고 비만을 예방해 주는 기능이 있어 많은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성인병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섬유질을 농축시킨 제재와 식품이 개발되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섬유질제품과 음료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제 문제는 섬유질의 중요성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느냐’이다. 우리의 전통적 식생활에서는 섬유질을 소홀이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큰 문제는 없다.
김치나 깍두기 없이 살 수 없는 한국인의 식성도 섬유질의 대량공급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서구화되고 인스턴트화되는 식생활에 의해 섬유질부족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만성변비의 치료나 비만 예방 등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섬유질 제재나 음료로 섬유질을 보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성의 측면에서도 비싼제품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기는 쉽지않다. 영양의 조화에 신경쓴다면 정상적인 식생활론도 섬유질의 충분한 섭취가 가능함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
살을 빼겠다는 욕심으로 과량의 섬유질을 복용했을 경우 트림이나 설사 등을 일으킬 뿐 아니라 불용성 섬유질인 경우 칼슘, 철분 등 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하기도 한다. 모든 일에 과욕은 금물이다. 정상적인 식생활로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여 아름다움과 건강을 추구하자.
74. 김치의 건강학
"제대로 담근 김치를 먹읍시다"
아무리 잘 차린 음식상을 받아도 김치가 빠지면 맥이 탁 풀리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설사 김치가 있다해도 덜 익었거나 맛이 없으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는 푸념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김치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해서 김치의 영양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인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지식이나마 예방 의학적 관점에서 합리적인 지침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말해 신선한 채소와는 다른 차원에서 김치는 풍부한 영양가가 있다.
문제는 제대로 담근 김치인가? 김치 흉내만 낸 것인가가 문제이다.
바꿔 말하면 제대로 담근 김치에는 풍부한 영양을 기대할 수 있으나 반대의 경우 김치는 식탁의 무용한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우선 김치에는 소금에 절임으로 신선한 배추 안에 있는 영양이 밖으로 이동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치 자체보다 김치 국물에 영양이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김치 자체에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김치 국물에는 비타민(A, B, C)이 많다.
김치나 김치찌개, 시레기국을 즐겨 먹는 여성들에게 변비가 적은 것은 섬유질 때문이고 김치와 더불어 적절한 양의 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식곤증이 없는 것은 풍부한 비타민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대장암이 적은 것은 지방질의 섭취가 적은 것과 더불어 김치의 공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렇듯 김치는 백미를 주식으로 고기를 가끔 즐기는 한국인에게 부족한 비타민, 미네랄, 섬유질을 보강해 주는 영양의 보고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김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한국인의 "김치에 대한 집념"이 예방의학자인 필자의 시각으로는 생존을 몸부림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김치의 영양은 잘 담근 맛있는 김치일 경우를 전제로 한다.
맛있는 김치란? "양념이 골고루 배합된 잘 익은 김치"를 의미한다.
익어야 맛이 있는 이유는 발효작용으로 인한 탄산가스 및 비타민의 증가에 있다.
결국 문제는 김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김치냐? 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치를 즐겨 먹되 잘 담근 김치를 먹어야 균형잡힌 영양의 섭취가 가능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색다른 영양식을 찾기보다 최고로 맛있는 김치로 영양보충을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리라.
맛있는 김치를 먹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건강한 미인이 되려면, 가족의 건강을 지키려면 맛있는 김치를 자주 담그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75. "정신신체 의학"(/b>
지금도 고향의 어머니를 그릴 때마다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날씨만 선선해지면 허리와 무릎, 그리고 손발이 시려워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어머니의 호소에 의학박사인 아들이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냉증이라는 병리학적 실체가 명쾌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미혼 여성에서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여성만을 괴롭힌다는 점에서 냉증은 여성의 잔혹한 동거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여성은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증명한다고나 할까.
계절에 관계없이 손발 혹은 전신이 항상 차게 느껴지는 냉증은 원인이 다양한만큼 증상도 복합성을 띠게 되어 치료에 있어서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냉증이야말로 "질병"보다는 "인간"을 , "증상"보다는 "생활"을 치료해야 할 대표적인 질환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이 병은 생활양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즉, 잘못 형성된 생활습관, 여성 특유의 생리작용(월경, 출산 등), 불편한 주거환경(불충분한 난방) 등 한 마디로 생활 전반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소극적인 성격이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하겠다. 이 병을 여성의 총체적인 건강상태를 표시해 주는 간접적인 지표로 활용할 수 있음도 여기에 기인한다.
원인이야 어지됐던 냉증은 말초혈액순환의 장애에 기인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이에 대한 치료로 증상 자체에 집착하거나 단기적 승부를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증상완화라는 "결과의 처리"와 아울러 생활양식을 수정함으로써 보다 근원적인 치료에 힘써야 한다. 냉증의 치료는 어차피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의사에게 의존하기보다 오히려 자기자신에게 치료의 책임이 부과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약물치료를 제외한다면 냉증의 예방법이나 치료법은 그 원리가 다르지 않다.
즉, 냉증의 퇴치를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 된다.
첫째는 목욕을 통한 방법으로 온냉교대법을 권장하고 싶다.
둘째는 운동을 통한 방법으로 말초혈액순환을 크게 증대시키는 부하운동이 적합하다.
셋째는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식생활을 통해 신진대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넷째는 활기찬 삶을 살아야 한다.
다섯째는 화목한 가정생활과 원만한 성생활이다.
여섯째는 주거환경을 과감하게 개선하는 일이다.
일곱째는 커피 대신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인삼차를 생활화하라.
76. "잠언의 여성학"
성경의 지혜서인 잠언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이 여인은 우리 말로 하면 대표적인 현모양처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전형적인 직장여성으로서 나름대로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한 마디로 비범한 여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여인을 재능이 뛰어난 여인이라 하지 않고 현숙한 여인 즉 슬기로운 여인이라 부르고 있다.
재능은 선천적인 면이 강한 선택적인 좁은 문이지만 지혜는 사실상 누구에게나 개방된 넓은 문이다. 이 현숙한 여인의 특성은 무엇일까? 최고의 지혜를 소유한 여인의 삶을 해부해 보자.
한 마디로 잠언의 여인은 생동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지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미의 개념에 "역동적인 원리"가 빠진다면 절름발이가 될 것이다. 게으름은 질병이나 추함과 가까운 반면 부지런함은 건강과 아름다움의 이웃사촌이다.
고로 부지런한 여인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자명한 것이 아닐까? 또한 여인은 자기관리에 뛰어난 역량을 가졌다. 바쁜 스케줄 중에도 자신을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짓고 세마포와 자색옷을 입은 멋있는 여인, 즉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꿀 줄 아는 슬기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여인은 허리와 팔을 강하게 하는 나름대로의 건강비법을 가지고 있었다. 건강하지 못하면 부지런할 수 없는 법, 삶의 구석구석에 나름대로의 건강을 지키는 지혜가 번득이고 있다고 하겠다. 사실 누구든지 부지런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면 건강할 수밖에 없다.
잠언의 여인은 인애의 법을 말하는 여인이며 "이웃사랑"의 실천에 있어 탁월한 여인이다. 그리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는 바른 "고집"을 가진 여인이다.
인격이나 도덕이라는 용어가 생소해지고 대단한 용기를 가져야 정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혼탁한 물결을 거슬러 흐르는 한 줄기 맑은 물줄기라고 할까.
아울러 잠언의 여인은 남편과 자녀에 "인정받는" 여인이라는 특성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가정에서 인정받는 여인이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일부 여성 유명인사의 내면에는 마치 속빈 강정처럼 "가정경영의 실패"라는 허탈감과 공허함에 대한 보상심리가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잠언의 여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인, 즉 절대자에 대한 경건한 신앙을 가진 여인이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환경의 압력에 의해서도 아닌 오직 절대자 하나님 앞에 묵묵히 살아가는 겸손한 여인, 모든 삶의 동기가 ?사랑?인 여인임을 이해해야 한다.
황성주(사랑의 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