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쇠러 고향집에 갔었습니다.
외사촌 아우와 필리핀서 사업을 하던 중 일이 커지는 바람에
막내아우까지 불러들인 까닭에 홀 어머니만 계시는 고향집엔 장남인 내가
대표?로 가게 된 것입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 갑자기 벌어져 아우 전화기를 빌려 갔습니다.
한국에서 쓰던 내 전화는 아들놈에게 빌려 준 상태여서 그랬습니다.
아우 전화기는 소위 ‘터치폰’으로 불리는 것으로 기능이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익숙치 않은 것이라 전화 거는 것도 받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더군다나 문자를 보내고 확인하는 것은 더 그랬습니다.
평소 주식 투자를 즐겨하던 아우인지라 전화기에는 수시로 문자가 떴습니다.
오늘의 증시 시황은 물론 추천종목도 자주 뜹니다.
여기에다가 가족이 물건만 사도 결제 내역이 뜨고
친구와 지인들이 보내는 문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정작 내 용무와는 관계없는 문자를 확인하고 지우는게 일일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가만 보니 아우와 제수씨가 나눈 문자 메시지도 여러 개가 보였습니다.
‘몸이 떨어져 있다고 마음까지 멀어지면 안돼’라는 것에서부터
‘여봉 보고 싶당’이라는 낯간지러운 표현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나이가 몇인데-. 이걸 다 지워 버려 말아’
혼자 고민하다가 그냥 남겨 놓았습니다.
왜냐면 지난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난 마눌과 결혼하고 지금까지도 그 흔한 닭살 문자 한 번 보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변명을 해 봐도 내 사랑은 빈수레 였던 셈입니다.
‘나 일찍 드간다’
‘밥 묵었나’
‘아들놈은 뭐하나’
이런 문자만 보내 봤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필리핀에 들어오자마자 마눌한테 정감 넘치는 문자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여봉. 내는 니를 억수로 사랑한데이-’
근디 이걸 영어로 어찌 표현해야 될지 몰라 아직도 키보드만 눌렀다 지웠다 하고 있답니다.
필리핀 전화는 문자도 영어라야 되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 살 때 닭살 돋는 문자 좀 많이 보낼껄’
지금도 후회중이랍니다^^